두 대의 자전거내 집에는 두 대의 자전거가 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를 오면서 다른 세간살이와 함께 배에 실려 왔다. 그런데 창고를 짓지 못해 그만 바깥에 세워두게 되었는데, 비와 바람과 이슬과 서리와 눈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볼 때마다 미안하고 딱했다. 비닐로 안장을 싸매고 자전거 전체를 또 한 번 덮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는 풍찬노숙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타이어는 펑크가 났고 바퀴에는 녹이 슬었다. 점점 방치되어 추레한 행색이 되고 말았다.얼마 전 자전거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문득 났다. 아버지께서 김
현대인의 삶은 바쁘다. 매일 해야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빨리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늘 바쁘고 여러 가지 걱정에 시달린다. 돈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 인간관계 문제로 걱정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소멸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모든 삶의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생자필멸(生者必滅), 즉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모르스 세르타, 호라 인세르타(Mors certa, hora incerta.)’
‘법정’ 국수? 웬 뜬금없는 법정 국수!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고 낯선 이름의 국수 이름을 불쑥 말하면서 사찰음식을 이야기하려니 나도 조심스럽다. 사찰 음식에 대한 풀이나 설명은 30만 어휘가 수록된 국어 대사전에도 없다. ‘사찰’ 따로 ‘음식’ 따로 어휘설명이 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별다른 풀이나 설명 없이도 사찰음식이 무언지는 알 수 있겠다. 간단하다. 사찰은 절이요, 음식은 먹고 마시는 것. 그러니까 수행하는 스님들이나 절에 법회 때 모인 신도들이 끼니때에 먹거나 마시는 음식, 그것이 사찰음식일 것이다. 그러니 보통의 사
불교 경전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문학작품과 동화는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나라 고전 문학이나 동화 중에도 이런 사례가 여럿 있지요. 그 가운데 〈옹고집전(雍固執傳)〉과 〈심청전(沈淸傳)〉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두껍전〉·〈별주부전〉 같은 작품도 부처님 〈본생담〉에 비슷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 있어, 불교와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불교 작품을 그대로 본 따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가 비슷하기에 사람이 만들어 내는 문화도 비슷할 수밖에 없지요. 서로 다른 수많은 시간과
육지에서 가장 넓은 아시아대륙은 거의 모든 중요한 세계종교가 기원한 요람이다.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는 아프리카 나일강에서 시작하였지만 셋은 아시아에서 시작하였고 이보다 늦은 그리스·로마 문명이 유럽의 지중해에서 꽃을 피웠다. 아메리카 신대륙은 마야와 잉카와 아즈텍문명의 고향이지만 세계종교가 기원한 지역은 오직 아시아대륙뿐이다. 종교의 뿌리는 전통종교인 세계종교와 다양한 지역에서 혁신적인 신흥종교가 서로 경쟁했지만 세계종교는 보수성에 중심을 두는 속성이 있다.종교는 민족이나 문화·전통뿐 아니라 음료와도 관계가 깊게 연결되었다. 줄
미국 뉴욕주 우드스탁 시에 농가 헛간을 개조하여 만든 콘서트홀이 하나 있었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강한 개성을 발하는 사람을 뜻하는 ‘매버릭(Maverick)’이라는 이름의 이 콘서트홀에 1952년 8월, 한 남자가 등장했다. 청중들의 박수를 뒤로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앞에 놓인 악보를 한동안 살피던 남자는 이윽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33초, 2분 40초 그리고 1분 20초를 지날 때마다 음표 하나 없는 깨끗한 악보만 넘길 뿐이었다. 그렇게 4분 33초의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갔
밧다 카필라니(Bhaddā Kāpilānī)는 맛다(Madda)국의 사갈라(Sagala) 출신 코시야 종족(Kosiyagotta) 브라흐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사갈라는 현재 파키스탄 펀잡 지역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치마티(Sucimati)이고 아버지는 카필라(Kapila)였습니다. 밧다는 어렸을 때 까마귀에게 벌레가 잡아먹히는 고통을 목격하고 수행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맛다국의 사갈라 마을에 밧다 카필라니가 태어나 자라고 있었을 때, 핏팔리(Pippali)는 마가다국의 그레이트 포드(Great Ford)라고 불리는 마을에
〈대각국사문집〉에는 의천 스님의 수많은 글 가운데 유달리 성격이 다른 긴 편지가 있습니다. 속가의 형님인 숙종 임금에게 화폐를 만들어 보급할 것을 청하는 글입니다. 스님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주 많은 문헌을 두루 읽었고 화폐유통의 역사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재정을 담당한 연구기관의 보고서라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세속적인 일과는 결연히 작별을 고한 출가자가 돈과 관련한 내용을 이리도 길고 자세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 의아합니다.어쩌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첫째는, 출가한 스님이라 하더라도 고려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초·중·고 12년 동안 교과서에서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반가사유상.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낯설고 긴 이름이지만 온 국민이 다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이다. 필자는 2년 전 어느 봄날 방송국 교양프로그램 담당 피디(PD)를 만날 일이 있어 옛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 사진을 한 장씩 보여줬다. 그때 PD가 사진을 보면서 내 설명을 듣다가 “아! 국보 반가사유상이 2점 있었어요? 설명을 듣기 전에는 사진 속 반가사유상이 같은 것이라
큰 죄업·소소한 허물상쇄하는 길은 오직 ‘참회’― 글 구미래세 가지 거울에 담긴 업의 의미송광사 선방 한가운데는 부처님 대신 커다랗고 둥근 거울이 자리하고 있다. 촛대와 향로가 놓여있어 불단을 상징하니,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수좌는 거울에 비친 본래성불(本來成佛)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거울은 다양한 상징성을 지녔다. 선방 불단에 걸린 거울이 우리의 본래면목인 ‘청정한 불성(佛性)’을 깨닫게 하는 힘을 지녔다면, 일상의 수행과 관련된 거울은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비춰보는 성찰의 거울이다. 〈중아함경〉 ‘업상응품
개복숭아나무어릴 적에 복숭아나무 농사나 사과나무, 배나무 농사를 짓는 집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특히 여름날에 잘 익은 복숭아를 따서 나무 궤짝에 담아 가는 이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처럼 여러 해 동안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복숭아나무 묘목을 사서 밭에 심었으면 되었을 텐데 싶지만, 그때는 가족 가운데 그 누구도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어린 묘목을 심는 대신에 나와 누나들과 동생들은 산에서 자라는 개복숭아나무를 한 그루 알아두었다. 그래서 가끔 그 개복숭아나무에 가서 열매가 잘 익고 있는지를
우리 인생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처럼 흘러간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과 같은 아동기가 지나면 초목이 푸르름과 싱싱함을 자랑하는 여름의 청년기가 찾아온다. 조금씩 기온이 떨어지면서 노랗게 단풍이 드는 가을의 중년기가 되면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나면서 노화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눈발이 날리고 강추위가 몰아치는 인생의 겨울 노년기에 접어들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노년기의 매서운 추위와 폭설을 견뎌내려면, 인생의 월동 준비를 일찍부터 잘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령사회에서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생육신 가운데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불자들은 좀 더 알고 있겠지요? 그가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실제로 김시습은 어머니의 죽음에 삶의 무상함을 절감하고 18세 송광사에 들어가 참선 수행에 침잠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스스로 삭발하고 승려가 되어 떠돌았지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그는 불교에 치우쳐 있지 않고, 유교·불교·도교를 섭렵하여 자기 나름의 사상적인 중심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의 기복적인 측면이나 초현실
고려의 정치와 외교는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특성이 강하였다. 태조는 후삼국을 신라의 귀순과 후백제의 정벌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하여 통합하였다. 질서와 평화를 존중하는 선(善)에는 귀순을 강조하고 이를 해치는 악(惡)에는 부득이 정벌을 사용하였다. 통합을 완성한 태조의 계승자도 전국의 지역별 차이와 토착 기반을 인정하고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의 북방민족 국가인 거란(Cathey)과 세 번이나 맞장을 떴을 정도로 고구려의 기상을 유지하였다. 한때 세계를 가장 넓게 정복한 몽골제국과도 대응하면서 외교로 돌파하고 왕정복고와 소수민족 연
불교의 삼법인 중 무상(無常)을 패션만큼 잘 대변해주는 분야가 있을까? 기존에는 봄/여름 컬렉션, 가을/겨울 컬렉션이라고 1년에 2번만 디자인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1년에 52시즌이 있다고 할 만큼 패션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즉 일주일마다 트렌드가 변화한다는 뜻이다. 패션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몸을 가려주는 실용성을 넘은 지 오래고, 개성을 표현하는 독창성도 넘어서서 하나의 아트, 팝아트(Pop Art)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게 시대를 대변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디자이너의 무리에 비비안 탐(Vivienne Tam·譚燕玉,
웁팔라반나(Uppalavanna, 蓮華色)는 부유한 상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의 피부는 푸른 연꽃과 같은 색상이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녀의 피부색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웁팔라반나(푸른 연꽃 색조를 가진 사람)’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 부모는 그녀를 부유한 가문의 젊은 상인과 결혼시켰습니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그녀는 사밧티(Savatthi)에 있는 남편의 집으로 시집갔습니다.시어머니의 의심웁팔라반나는 시댁 식구들과 행
장마와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 여름 한 편의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악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였다. 작가가 민속학자와 국립민속박물관에 오랫동안 자문하고 조사하며 마련한 치밀한 시나리오 덕분에 드라마 전반에 한국의 민속과 무속, 귀신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했다. 그런데 드라마 내용 중 중요한 단서처럼 그림이 한 점 등장하는데, 이 그림은 우리나라 사찰에 가면 법당 한편에 걸려있는 감로도(甘露圖)다. 드라마에서는 중앙의 커다란 아귀(餓鬼) 모습에 주목해서 이 그림을
세계 최고 동화작가는 바로 부처님― 글 신현득이솝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원전은 〈경면왕경〉이솝이야기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읽고 고개를 갸우뚱해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솝은 그리스 사람인데, 코끼리가 없는 그리스에서 코끼리 이야기를 어떻게 썼지?’ 하는 의문 때문이다.사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는 ‘팔만대장경’의 일부인 〈육도집경(六度集經)〉의 87번째 이야기 ‘경면왕경(鏡面王經)’ 내용 중 하나다. 이솝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불설(佛說) 동화인 셈이다.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부처님이 창작하신 동
만자문붓걸이(조선시대, 높이 41cm, 폭 40cm)붓걸이는 붓을 걸어 놓은 기구로, 문방구(文房具) 중 하나다. 이 유물은 두 개의 사각 다리 위에 만(卍)자문으로 장식한 장방형의 나무 통판을 부착했다. 통판 상단에는 다각으로 깎은 촉을 붙여 붓을 걸 수 있게 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문은 길상만덕(吉祥万徳)의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문양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대중적인 장식 문양으로 많이 사용했다. 양반가에서는 서안·경상·책장 등의 문양으로 투각(透刻)이나 음양각(陰陽刻)으로 시문(施紋)했다.
최소한의 실천종교를 깊이 있게 잘 모르는 필자 같은 이의 상식으로만 봐도 성직자에게 음식은 최소한일 것 같다. 과한 음식은 포만감을 주어 졸음 같은 것을 유발하는 등 집중할 수 없게 해 용맹정진(勇猛精進)을 방해하고, 나태로까지 이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한 살생과 자연의 훼손을 유발할 수 있음은 물론 농·어부와 같은 이들에게 불필요한 수고와 폐를 끼칠 수도 있다.이에 더해 불가에서는 ‘적당한 양을 담는 밥그릇’이란 의미의 발우(鉢盂)를 사용하여 공양함으로써 최소한의 음식 섭취를 실천하고 있다. 발우공양은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