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교 가치관 혼재
불교 세속화 비판 담아

〈금오신화〉 1884년(고종 21) 목 판본.
〈금오신화〉 1884년(고종 21) 목 판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생육신 가운데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불자들은 좀 더 알고 있겠지요? 그가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실제로 김시습은 어머니의 죽음에 삶의 무상함을 절감하고 18세 송광사에 들어가 참선 수행에 침잠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스스로 삭발하고 승려가 되어 떠돌았지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그는 불교에 치우쳐 있지 않고, 유교·불교·도교를 섭렵하여 자기 나름의 사상적인 중심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의 기복적인 측면이나 초현실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엄하게 비판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그의 출가를 불교에 대한 진정한 귀의가 아니라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의 방편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여기는 그의 사상적 정체성을 논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김시습의 문학작품 속에 불교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그 표현은 얼마나 온당한지를 살피는 데 초점을 두겠습니다. 그의 문학작품이라면 또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알려진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김시습은 31세부터 37세까지 경주의 금오산 용장사에 머물렀는데, 그 기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비교적 젊은 시절에 썼다고 하겠네요. 그리고 명(明)나라 초의 전기체(傳奇體) 단편소설집인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실제 김시습은 ‘〈전등신화〉에 붙여[題剪燈新話後]’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전등(剪燈)’이란 말이 낭만적입니다. ‘등잔 심지를 잘라서 그을음이 나지 않게 한다.’는 뜻이므로 〈전등신화〉는 ‘등잔불 아래서 듣는 밤 이야기’라고 해석하면 되겠네요. 〈금오신화〉도 당연히 그런 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등잔불 주변에서, 등잔 심지를 잘라내며 밤늦도록 듣는 이야기. 뭔가 옛 생각이 나네요.

〈금오신화〉 속 5편의 단편소설

〈금오신화〉의 내용을 보면 “역시 그런 밤 이야기로구나!”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만해요. 원래는 더 지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 전해지는 것은 ‘만복사 저포기(萬福寺 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다섯 편입니다. 제목이 좀 어렵지요? ‘만복사 저포기’에서 ‘저포’란 윷놀이의 일종입니다. 이 놀이를 인연으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지요. ‘이생규장록’은 ‘이생이란 사람이 담장을 엿본다.’는 뜻인데, 역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취유부벽정기’란 ‘취해서 부벽정에서 놀았다.’는 뜻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신선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남염부주지’는 남염부주라는 염라대왕의 나라에 가서 겪은 일을 기록한 형식입니다. ‘용궁부연록’은 용궁의 연회에 참석한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입니다. 그 가운데 남염부주지는 염라대왕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속에 유교와 불교 등에 대한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도 나오고, 또 불교의 기복신앙 등에 대한 비판도 나오기에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시습의 속마음을 살펴보렵니다. 그래도 나머지를 그냥 넘어가기는 좀 섭섭하니 간단한 내용과 특징 정도는 살펴보고 가기로 하지요.

앞의 세 이야기는 모두 남녀 간의 사랑과 관계된 이야기인데, 상당히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랑받는 여성이 모두 사람이 아니란 점입니다. 바로 귀신입니다. ‘만복사 저포기’는 애초에 귀신과 만난 것이고, ‘이생규장전’은 사람으로 만나 사랑했는데, 나중에 죽어 귀신이 된 여인과 다시 사랑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취유부벽정기’의 여인도 일반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선녀입니다. 부벽정에서 선녀와 만나 시담(詩談)을 나누다가 헤어졌는데, 상사병을 앓게 되고, 선녀의 안배로 선관(仙官)에 부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의관을 정제하고 죽음을 맞습니다.

세상에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TV 드라마를 보세요. 사랑 이야기를 빼고 나면 뭐가 남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정말 비현실적인, 귀신이나 선녀와의 사랑쯤 되면 정말~ 재미있지 않겠어요? 귀신과 사랑이라니 이 무슨 무시무시한 이야기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금오신화〉의 이야기는 정말로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표현해내고 있어요.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사랑, 그러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지요. 그리고 아름다운 시들이 줄줄 이어져 나와요. 시적인 감수성을 가진 분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웬만한 감성을 지닌 분들이라면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 시입니다. 물론 고사성어 같은 기본적인 공부는 좀 하셔야 하겠지만요. 아무튼 슬픈 결말일 것이 분명한 사랑 이야기지요? 귀신과 평생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결국 애달픈 이별로 끝나는 슬픈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김시습이 겪었던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과 그것을 바꿀 힘이 없다는 자괴감이 이런 비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설을 쓰게 한 건 아닐까요?

‘용궁부연록’은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인공 한생이 용궁에 초대받아 상량문을 쓰기도 하고, 여러 신선과 시를 주고받기도 하고, 정말 세상에서 겪을 수 없는 체험을 하고 돌아옵니다. 잠깐 꿈을 꾼 것 같은 시간이 지났는데 용궁에서 받아온 선물이 품속에 있으니 꿈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넘어서는 정말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자연히 현실에 빠져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는가 하는 가르침을 줍니다. ‘용궁부연록’의 마지막 구절을 볼까요?

“그 뒤에 한생(주인공)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갔다.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끝납니다. 사랑 이야기나 다른 이야기 모두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상은 언제나 현실 너머에 있지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것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귀신과의 사랑을 마음에 깊이 담은 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다 죽거나, 상사병에 걸려 죽습니다. 현실 저 너머에 있는 이상을 향한 집념일까요?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을 넘어서고 싶은 간절한 바람일까요? 아무튼 김시습의 소설은 그런 틀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생규장전’의 마지막 대목을 들어 보지요.

“이생(주인공)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윷놀이의 한 형태인 저포놀이는 백제 때부터 유행해 조선시대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쌍륙놀이를 그린 신윤복의 ‘쌍륙삼매’. 간송미술관 소장.
윷놀이의 한 형태인 저포놀이는 백제 때부터 유행해 조선시대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쌍륙놀이를 그린 신윤복의 ‘쌍륙삼매’. 간송미술관 소장.

유교의 우위 소설에 담아

그런데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하는 ‘남염부주지’는 좀 특이합니다. 박생이라는 유교적 신념을 가진 선비가 ‘염부주(염왕이 지배하는 나라)’에 가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염라대왕의 나라? 그 나라의 왕인 염왕의 입을 통해 유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현실의 종교적 양태, 특히 불교의 잘못된 양상을 비판하는 논조를 띄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유교가 가장 우월한 가르침이라는 내용을 분명히 합니다.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정도(正道)로써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일이었고, 석가의 법은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고,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석가의) 말씀은 허황하였습니다.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으므로 군자들이 따르기가 쉬웠고, (석가의 말씀은) 허황하였으므로 소인들이 믿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불교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욕망을 이끌어 바르게 인도하는 방편이 많으니, 직접적으로 진리를 표현한 유교에 비해 수준이 낮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불교에 근기 낮은 사람을 끌어 이끄는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란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결국 유교나 불교나 세상을 바른길로 들어가게 한다는 목적성은 같지만, 등급을 매길 경우는 유교가 불교보다 높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김시습의 사상 바탕이 어떠한지 조금 짐작이 됩니다. 승려로 떠돌았지만 진정한 불교 신앙을 지니지는 않았다는 말에 무게를 두게 합니다. 그런데 김시습이 불교를 저열하다고 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시습은 불교가 천당과 지옥을 내세워 사람을 두렵게 하여 끌어들인다든가, 종교적 의식인 재(齋)를 잘 지내서 재앙을 면한다는 기복적 요소들을 엄하게 비판합니다. 재를 지내서 복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그의 비판을 들어 볼까요?

“어찌 청정한 신이 인간 세상의 공양을 받고, 존엄한 임금이 죄인의 뇌물을 받으며, 저승의 귀신이 인간 세상의 형벌을 용서하겠습니까?”

종교적 의식 등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올바른 행위를 통해 올바른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에 이어서 윤회전생 또한 부정합니다.

“정령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는 윤회가 있는 듯하지만, 오래되면 흩어져 소멸하지요.”

결국 ‘지속적인 윤회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윤회전생이 있으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보상을 염두에 둔 삶이 아니라 유교식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도덕적 삶이 상대적으로 수준 높다는 말이지요. ‘천당이다’, ‘지옥이다’, ‘윤회전생이다’ 하는 이야기를 김시습은 ‘황탄(荒誕)하다’, 즉 ‘거칠고 허황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 자체를 진실이라기보다 중생을 유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본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의 등급을 낮춘 것이고요. 중간에 나오는 박생의 이야기는 김시습의 눈에 비친 잘못된 불교 제례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좀 긴 문장이라 요약해서 들려 드리지요.

“어버이가 돌아가신 지 사십구일이 되면 제대로 된 상례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절에 가서 재 지내는 짓만 일삼습니다……. 종이를 오려 깃발을 만들고 비단을 오려 꽃을 만들며, 스님을 모셔다 불상을 세우고 새가 울고 쥐가 찍찍대는 것 같아 알아들을 수 없는 범패를 합니다……. 시왕상(十王像)을 모셔 놓고 음식을 갖추어 제사 지내고, 지전(紙錢)을 불살라 죄를 속하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김시습이 비판한 불교의 모습은 본질을 잃고 지나치게 세속화된 기복 불교, 제례 중심의 불교였던 것이지요. 그는 천태종이나 선종의 수행 등에 관해서는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불교의 근본인 자비 사상에 대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고 자신을 밝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유학자였기에 유교가 가치관의 바탕을 형성했던 김시습의 눈으로 본 불교의 모습이라 할까요? 종교 전체를 보지 않고 자신이 형성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불교를 평가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불교가 탄압받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불교가 어찌 건강한 종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출 수 있었겠습니까? 명맥을 유지하기도 바쁜 열악한 상황 속에서, 대중의 기복신앙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불교의 모습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김시습의 비판이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불교의 본질이 뜨겁게 살아 있으면서 중생을 섭수하기 위한 방편이 조화롭게 쓰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본질은 상실되고 방편만 무성하게 되면 호된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혹, 우리가 사는 현실의 불교는 이런 비판받을 만한 요소가 없을까요? 좀 켕기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네요.

불운한 천재 방황의 소산

만수산 무량사 김시습 초상화.
만수산 무량사 김시습 초상화.

그런데 좀 재미있는 부분은 ‘남염부주지’에서 천당과 지옥 같은 설정은 부정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염왕은 불교의 염라대왕을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금 이 땅에 살면서 나를 우러러보는 자들은 모두 전생에 부모나 임금을 죽인 시역(弑逆)이거나 간흉(姦凶)들입니다. 이들은 이곳에 의지해 살면서 나의 통제를 받아 그릇된 마음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또 ‘만복사 저포기’에서는 귀신이었던 여인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건 분명 윤회전생 이야기 아닌가요?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모은 것이라면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김시습 같은 대천재가 그렇게 주섬주섬 아무 생각 없이 소설을 썼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그의 정신세계가 근본적으로 조화롭게 통일된 모습을 갖추기 힘들다는 점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본디 유학으로 가치관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유학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세조가 조카의 왕좌를 빼앗은 찬위(簒位)는 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입니다. 너무도 순수했기에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세상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불교 속으로 들어왔겠지요. 그러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귀의에 이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나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는 한계를, 현실에 바탕을 두되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세계에 투영했을 수 있고요. 불교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런 방황과 종교의 뒤섞임을 저변에 둔 그의 정신세계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불교의 잘못된 측면, 아니 불교가 본질을 잃었을 때 드러난 타락한 모습에 대한 엄중한 비판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튼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천재의 정신적 방황, 그러한 과정에서 쓴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 번역본으로라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렇지만 번역본도 읽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많은 고사성어와 숙어 때문입니다. 〈금오신화〉는 고산준령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발 끈을 매는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비경을 탐사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산입니다. 한 번 올라 보세요!

‘남염부주지’는 선비 박생이 염라대왕을 만나 유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게 줄거리다. 사진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을 그린 속초 신흥사 시왕도 중 상단.
‘남염부주지’는 선비 박생이 염라대왕을 만나 유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게 줄거리다. 사진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을 그린 속초 신흥사 시왕도 중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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