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번민 교차하는 찰나
진리 향한 여정의 출발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2789.(왼쪽)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2789.(왼쪽)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3312.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초·중·고 12년 동안 교과서에서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반가사유상.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낯설고 긴 이름이지만 온 국민이 다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이다. 필자는 2년 전 어느 봄날 방송국 교양프로그램 담당 피디(PD)를 만날 일이 있어 옛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 사진을 한 장씩 보여줬다. 그때 PD가 사진을 보면서 내 설명을 듣다가 “아! 국보 반가사유상이 2점 있었어요? 설명을 듣기 전에는 사진 속 반가사유상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문화에 해박하고 이미지에 예민한 방송국 사람인데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니 이 두 국보를 어떻게 구분 못하지?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동안 포스터 속 두 반가사유상 사진은 대부분 정면 아니면 45도 비스듬한 각도의 같은 자세로 촬영되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국보 반가사유상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해마다 실시하는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서 반가사유상은 인지도 4위에 그칠 뿐이었다. 때로 안다고 생각하기에 관심이 줄어들고, 더 보이지 않기도 한다. 무언가를 다른 방향과 각도에서 보기란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다시 보는 ‘반가’와 ‘사유’의 의미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참으로 이상하다. 관음보살·문수보살처럼 어떤 존상인지 알려주는 이름이 아니다. 반가(半跏)는 반 결가부좌를 의미하고, 사유는 생각을 의미하니, 반가사유상은 어떤 자세로 어떤 행위를 하는지 묘사하는 명칭이다. 중국 불상 명문에 등장하는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 역시 존명인 석가모니(태자 싯다르타)를 먼저 언급한다. ‘반가사유상’은 불교미술을 학문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던 근대부터 주로 사용된 표현으로, ‘반가’와 ‘사유’ 자세의 불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현재 문화재청에 등록된 국보 반가사유상 명칭은 두 점 모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며, 지정된 연도와 순서에 따라 1962-1(국보 78호), 1962-2(국보 83호)로 구분하고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존명은 두 반가사유상이 발견되어 박물관에 전시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부터 미륵보살반가상이라고 불렸기에 1962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 이 명칭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이 ‘미륵’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명문이 발견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는 반가사유상이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 물론 ‘미륵’으로 신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보 반가사유상을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이 있었다. 옛 국보 83호였던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은 일제강점기 발행된 20세기 초 도록에 ‘여의륜관세음보살(如意輪觀世音菩薩)’로 표기되기도 한다. 여의륜관음은 변화관음 가운데 하나로 밀교의 주요 존상 가운데 하나인데 일본에서 조각과 그림으로 재현된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일본인들이 반가사유상을 이처럼 지칭한 이유는 여의륜관음의 자세 때문으로 보인다. 여의륜관음이 들고 있는 여의보주와 법륜은 없지만 반가사유상을 본 일본인들이 얼굴에 살짝 손을 댄 반가사유상의 자세가 한쪽 다리는 올리고 다른 한쪽 다리는 눕힌 채 오른손으로 얼굴을 괸 여의륜관음의 모습과 같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 지식으로 반가사유상을 바라본 결과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나의 과거 지식과 경험을 버리고, ‘반가사유상’으로 돌아와 보자. 앞서 ‘반가’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했지만, 실은 자세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반가’의 자세에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이 있다.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 수도 있고, 다리를 다시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수도 있다. ‘사유’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보살이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인생의 기로에서 번민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반가사유상의 ‘반가’와 ‘사유’는 수행과 번민이 교차하는 찰나를 보여주며 우주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기에 자세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2021년 11월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실 전경.  
2021년 11월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실 전경.  

다시 보는 반가사유상의 미소

오는 11월 12일이면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이 개관한 지 만 2년이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1년 반가사유상실 전시 개편을 준비하면서 관람객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코로나19로 사회 활동이 위축되고 우리 모두 정신적인 위안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건축가 최욱 원오원아키텍스 대표가 박물관 디자이너와 함께 전시실 설계를 맡아 진행하는 동안 필자는 반가사유상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이는 브랜딩 작업과 ‘사유의 방’이라는 전시실 명칭을 도출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기존과 다른 반가사유상의 이미지와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반가사유상 이미지가 여권 사진처럼 객관적인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새로운 이미지는 정말 우리를 마음 깊이 위로하는 반가사유상의 새로운 감성적인 모습이길 기대했다.

소위 얼짱 각도로 정면이 아닌 45도 비스듬히 살짝 손을 얼굴에 대고 미소를 머금은 모습을 찍은 사진이 가장 대표적인 반가사유상의 모습이었다. 이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촬영하려고 시도하자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반가사유상의 면모가 드러났다. 빛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간직한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세련되고 가녀린 이미지 뒤에 강한 턱선과 굳건한 표정이 감춰져 있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소년 같은 모습 너머에 깨달음을 얻은 찰나 보살과 부처의 모습이 공존한다. 둥근 어깨의 곡선과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표정 등 낯선 반가사유상의 모습도 발견된다. 3D 스캔 자료를 활용한 이미지에서는 특히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연출을 통해 반가사유상의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유의 방을 위한 포스터와 각종 홍보물, 문화상품을 위해 제작한 이미지는 마치 인물 사진을 찍듯 반가사유상의 눈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에는 보지 못한 반가사유상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은 살짝 다문 입가의 미소에서 시작하는 잔잔한 공감과 울림이다. 깊은 생각과 번민과 깨달음이 교차하는 찰나의 미소는 시공을 초월하며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 손님에게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고 추천할 기회가 있다면 어디를 말해야 할까? 경복궁·인사동·북촌 한옥마을·남산 등 전통적인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케이팝(K-pop)·케이 드라마(K-drama)·케이뷰티(K-beauty)·케이 푸드(K-food) 덕분에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관광명소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굳이 한 곳을 더 꼽으라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을 추천한다. 지금까지 박물관 ‘사유의 방’을 다녀간 사람만 130만 명이 넘으며 국보 반가사유상 2점에 대한 감상평·기사·SNS 게시물은 2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나올 정도로 이제는 박물관의 대표 전시실로 자리 잡았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반가사유상의 인지도도 박물관 내 1위일 정도로 관람객의 관심도 높아졌다.

반가사유상은 예전과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반가사유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편안하다. 이는 분명 반가사유상의 엄숙하고 고요하면서도 초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주요 요인은 박물관 전시에서 반가사유상이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공감하는 대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반가사유상이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시품이었다면 이제는 관람객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투영할 수 있는 감성적인 존재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여의륜 관세음보살도(왼쪽), 일본 가마쿠라 14세기, 비단에 색, 일본 나라국립박 물관(©National Institutes for Cultural Heritage),  e 國寶日本國立 文化 財 機 構 所藏  누리집. 1961년 한국고대문화전(프랑스), 1979년 한국미술5천년전(미국) 포스터.
여의륜 관세음보살도(왼쪽), 일본 가마쿠라 14세기, 비단에 색, 일본 나라국립박 물관(©National Institutes for Cultural Heritage),  e 國寶日本國立 文化 財 機 構 所藏  누리집. 1961년 한국고대문화전(프랑스), 1979년 한국미술5천년전(미국) 포스터.
왼쪽 위부터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김광섭 촬영 /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장줄리앙 푸스 촬영 /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장줄리앙 푸스 촬영 /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김광섭 촬영
왼쪽 위부터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김광섭 촬영 /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장줄리앙 푸스 촬영 /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장줄리앙 푸스 촬영 / 반가사유상, 금동,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김광섭 촬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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