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보살’·‘마오쩌둥’ 등
금기 주제를 파격적 접목
서양 패션을 선도하다

비비안 탐은 1995년 본격적인 패러디를 통해 마오쩌둥을 희화화한 ‘마오 컬렉션’을 선보였다. 
비비안 탐은 1995년 본격적인 패러디를 통해 마오쩌둥을 희화화한 ‘마오 컬렉션’을 선보였다. 

불교의 삼법인 중 무상(無常)을 패션만큼 잘 대변해주는 분야가 있을까? 기존에는 봄/여름 컬렉션, 가을/겨울 컬렉션이라고 1년에 2번만 디자인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1년에 52시즌이 있다고 할 만큼 패션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즉 일주일마다 트렌드가 변화한다는 뜻이다. 패션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몸을 가려주는 실용성을 넘은 지 오래고, 개성을 표현하는 독창성도 넘어서서 하나의 아트, 팝아트(Pop Art)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게 시대를 대변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디자이너의 무리에 비비안 탐(Vivienne Tam·譚燕玉, 1957~)이 있다. ‘입을 수 있는 예술작품(Wearable art)을 만든다.’는 그녀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함께 미국에 불어닥친 중국 바람을 타고 ‘중국풍(中國風)’이라는 패션 코드를 창조했다. 그리고 ‘동양, 서양을 만나다(East Meets West)’라는 슬로건과 함께 그녀만의 독창성과 대담한 행보로 패션계의 관심을 모았다.

매일 명상·요가, 영성 책 즐겨 읽어

매일 아침 명상과 요가를 수행하고 영성 책을 즐겨 읽으며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비비안은 중국문화를 현대 감각에 맞게 서양문화 속에 비벼 넣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비불교인의 일상에 들여왔고 불교를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의 자세에 걸맞게 자신이 여자/남자라는 생각, 동양인/서양인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고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라고 소신을 말한다. 홍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온 그녀는 맨땅에 헤딩하듯 열심히 노력하여 1994년 최초의 패션쇼를 올렸는데,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마술과 같은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그녀의 패션쇼는 미국 패션계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패션지 〈WWD(Women's Wear Daily)〉의 커버를 장식했고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런웨이를 걸었다.

비비안 탐은 〈중국의 멋(China Chic)〉이라는 저서도 발간했는데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문화의 미학을 자신만의 감각과 디자이너·예술가·수집가의 눈으로 서술한 것이다. 처음에는 대형 사진도 담은 18x18cm의 정방형 책으로 출간했고, 이후 소지가 간편한 소책자로도 출간했는데 표지 디자인은 비비안 탐이 맡았다. 〈모주석어록(毛主席語錄)〉을 패러디했지만 매우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이 책으로 그녀는 2001년 뉴욕도서전에서 최우수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비비안은 중국인 가정에서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다녔으며 서양 옷을 입고 서양 영화를 보고 팝송을 흥얼거리며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동양과 서양을 통합하고 혼합하여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반면 그렇게 다문화 속에서 자랐기에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고 느껴진 적도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그녀는 새로움을 시도했고, 그래서 기존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압력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압력에 저항하며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갔다. 이제 패션 디자인은 자신이 중국문화를 더 잘 알게 해주는 도구가 된 것 같다며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나의 정체성을 찾아서, 자신들에게 희망을 주는 무언가 특별하고 독특한 것을 찾아서 내게 온다. 묵묵히 나를 믿고 일을 계속하다 보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1995 마오 컬렉션, 세계에 이름을 알리다

마오쩌둥의 얼굴은 비비안 이전에도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제작한 팝아트 작품에 등장한다. 워홀 역시 닉슨의 중국 방문 직후 마오의 초상을 그렸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인물에 대한 경의를 담아 마오를 그렸고, 따라서 약간의 화장을 입히긴 했지만 불경스러운 느낌은 없다. 하지만 워홀 본인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 가서 마오의 사진이 사방에 붙어있고 그것이 프로파간다(Propaganda, 사상 선전)에 이용되는 것을 보았을 때 미국에서 음식 광고를 통해 쏟아지는 캠벨 캔스프 사진을 떠올렸다고 한다. 하긴 프로파간다와 소비주의 광고 목적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되풀이하고 환기시켜, 메시지가 뇌리에 박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하지만 비비안의 마오는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본격적인 패러디를 적용해 마오를 희화화하고 있다. 마오 컬렉션은 예술가 장 홍추(Zhang Hongtu, 1943~)와 함께 작업했다. ‘양갈래 머리를 한 마오’, ‘코끝에 벌이 앉아 사시가 된 마오’ 등의 코믹하고 풍자된 모습이 주를 이룬다. 비비안에게 마오는 지주였던 부모가 땅을 빼앗기고 홍콩으로 이주해야만 했고 그래서 아직 아기였던 탐은 한동안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지내야만 했던 아픈 기억을 안겨준 사람이다. 장 홍추는 젊은 시절 마오를 숭배한 세대였지만 점차 그 환상에서 벗어났다. 장의 부모 역시 자본가였던 할아버지와 함께 마오의 비난을 감내하고 공식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비비안은 장 홍추가 만든 신랄하게 희화된 마오의 이미지를 조금은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대중이 수용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컬렉션 작품을 만들어줄 공장도 구하기가 힘들었을 정도였고, 겨우 공장 하나를 구해 컬렉션을 완성하니 발표와 함께 대논란이 일어났다. 전시물에 돌을 던지는 중국인들도 있었고, 언론에서는 칭찬과 비난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마오 컬렉션에는 좀 더 진지한 작품도 있다. FIT(Fashion Institue of Technology) 박물관에 소장된 흑백 수트 작품은 마오가 중국문화에 끼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다 표현한 것이다. 여기 사용된 마오 얼굴은 지금도 천안문 광장에 걸려있는 그 모습이다. 마오가 평소 즐겨 입던 인민복 패션(Zhongshan suit, 中山装)을 모방했다.

마오 컬렉션에 대해 비비안은 “해외에 문을 열기 시작한 중국을 온기와 유머, 자유가 증대되는 새로운 중국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마오 컬렉션은 앤디워홀미술관·FIT박물관·메트로폴리탄미술관·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등에서 전시했고, 일부 작품은 이들이 소장품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컬렉션은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앤디 워홀의 마오 작품은 2015년 소더비 경매에서 미화 4,700만 달러에 거래되는 기염을 토했다. 2012년 베이징은 앤디워홀미술관의 베이징·상하이 순회 전시품 목록에서 마오 초상 10점을 빼라고 조치했다. 워홀의 마오가 그럴진대 비비안의 마오는 당연하겠지만 중국에서 전시되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중국문화를 다양하게 소개한 업적을 인정받아 비비안은 2016년 베이징 인스타일 엑스포(Beijing InStyle Expo)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위챗을 비롯한 다른 중국 업체와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앤디 워홀이 팝아트 작품에서 선보인 마오(왼쪽 위)와 비비안 탐의 ‘마오 컬렉션’ 일부.
앤디 워홀이 팝아트 작품에서 선보인 마오(왼쪽 위)와 비비안 탐의 ‘마오 컬렉션’ 일부.

1997 ‘붓다’ 컬렉션

마오 컬렉션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 비비안은 2년이 지난 1997년 ‘붓다 컬렉션’을 선보인다. 중국 사찰과 붓다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 런웨이에는 불교 문양으로 장식한 다양한 상의와 하의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가장 하이라이트는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모델의 전신을 덮고 있는 드레스였다. 현재 이 컬렉션은 앤디워홀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붓다의 얼굴은 사찰에만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절에 갈 때마다 관음보살의 얼굴과 금방 하나가 되었고, 그 모습에서 고요함과 평화를 보았다. 이 모습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그들에게 불교의 역사를 보여주고 관음보살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싶었다.”

오늘날에도 이 컬렉션의 붓다 이미지는 당시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거리는 메쉬 소재의 드레스에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떠 있는듯한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아름다웠다. 이 드레스는 2015년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의상연구소(Costume Institute)가 주최하고 그해 가장 많은 사람이 관람한 전시 ‘중국: 거울을 통해 보다(China: Through The Looking Glass)’에도 포함되었다.

이 컬렉션 중 관음 셔츠는 줄리아 로버츠·마돈나·비욘세 등이 입고 사진을 올려 더욱 유명세를 탔다. 오늘날 이 붓다 컬렉션에 나온 작품의 재판매 가격은 수천 달러를 호가한다. 또한 붓다 컬렉션 역시 마오 컬렉션 만큼은 아니어도 제작에 애로가 있었다. 태국 공장에서는 ‘붓다를 신발에 넣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무(無)’를 주제로 한 2009 컬렉션

선불교에서 자주 말하는 ‘무(無)’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2009년 가을 컬렉션의 20개 작품은 기성복이긴 하지만 모두가 예술작품이며, ‘청정’·‘새로운 시작’ 등을 고취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한자 ‘無’가 때론 분명하게 때론 은은하게 드러난다. 작품 2번은 검은 시스(Sheath) 바탕에 보라색 레이저 프린팅 실크 샤무즈로 만든 입체적인 ‘무’가 전신에 표현되어 있다.

돈황 막고굴서 영감 받은 2014 컬렉션

실크로드 둔황 막고굴 프레스코 벽화에서 영감받은 불교적 모티프를 이용한 컬렉션을 2014년 가을에 선보였다. 막고굴의 불보살과 다양한 문양이 디지털 프린트로 재탄생하여 다양한 소재의 의상에 적용되었다. 중국의 통신사 위챗과 협업한 이 쇼에 참석한 손님은 막고굴 주제의 휴대폰 케이스를 선물로 받았다.

티베트불교 주제로 한 2018 컬렉션

‘하나, 전체, 무한(Unity, Wholeness, Infinity)’이라는 주제로 2018년 선보인 48개 작품은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로 가는 여정을 그렸다. 무한한 사랑·티베트의 생동하는 지형·예술·문화 그리고 티베트인을 작품에 담았다. 만다라를 상징하는 문양, 손으로 수놓은 타라가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작품 43번은 검은색 긴 드레스에 흰색 만다라 문양이 반복되어 입혀지고 붉은색 레이스 형태의 그린 타라가 몸체를 올라가 목선과 소매선을 형성하고 있다. 코트와 스웨터에는 스마트 열선이 내장되어 보온도 강조했다. 공연예술로서의 패션쇼를 선보이는 비비안은 천정에 빙빙 돌아가는 만다라 모형을 설치하고, 티베트의 북소리, 독경 소리를 울려 주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표현했다.

2009년 ‘무(無)’를 주제로 선보인 가을 컬렉션(왼쪽 위·아래)과 둔황 막고굴 프레스코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2014년 가을 컬렉션.
2009년 ‘무(無)’를 주제로 선보인 가을 컬렉션(왼쪽 위·아래)과 둔황 막고굴 프레스코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2014년 가을 컬렉션.

2023 컬렉션, 메타버스
‘탬버스(Tamverse)’로 모든 규칙 깨다

쇼 참가자들이 도착하면 두 개의 방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실제 쇼를 할 방이고 또 하나는 그 방의 디지털 복제판을 화면에 쏘아 올린 ‘메타버스’다. 핑크색 톤과 뉴욕 스카이라인까지 묘사된 이 메타버스에서는 무대 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쇼룸의 한 코너에는 작은 TV가 놓여 있는데 참가자들이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바로 메타버스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메타버스에는 각 참가자의 페르소나(Persona)가 작은 상자에 들어있고 디지털 참가자와 교류도 할 수 있다. 가상세계 참가자나 현실세계 참가자나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고대 갑골문자를 스타킹에 재해석했고, 12지지(地支) 동물이 투명한 소매에 등장한다. 아프리카 가나의 아딘크라(Adinkra) 상징기호도 적용되어 있다. “자비와 조화의 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는 비비안은 쇼가 끝나자 자신의 메타버스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두 눈을 감은 채 기도하듯 서 있었다. 스피커에선 아름다운 멜로디가 볼륨이 점점 커지며 피날레에 이르고, 참가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마지막 지혜 한 자락을 선물로 남긴다. “평화가 전쟁보다 더 패셔너블(Fashionable)하게 하라.”

비비안 탐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의 풍요한 전통과 문양을 서양적 감각으로 현대화하고 때론 약간의 장난기까지 가미하여 패션으로 세계문화를 고양시키고 있다. “예술적이면서도 착용이 가능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화두”라는 그녀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합성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고정관념과 우상을 파괴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그동안 붓다 컬렉션, 무(無) 컬렉션, 막고굴 컬렉션, 티베트불교 컬렉션 등을 성공적으로 런웨이에 올린 비비안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고 선양했다. 무소의 뿔처럼 거침없이 걸어가는 그녀의 창의적 행보 속에 자비와 평화의 불교 정신도 더 넓게 뻗어가길 바란다.

2017년 봄/여름 런웨이 쇼 백스테이지에서 모델과 함께.
2017년 봄/여름 런웨이 쇼 백스테이지에서 모델과 함께.
1997년 선보인 ‘붓다 컬렉션’ 일부.
1997년 선보인 ‘붓다 컬렉션’ 일부.
둔황을 여행하고 있는 비비안 탐.
둔황을 여행하고 있는 비비안 탐.
2018년 ‘하나, 전체, 무한’이란 주제로 선보인 48개 작품 중 43번째 작품.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로 가는 여 정을 작품에 담았다.
2018년 ‘하나, 전체, 무한’이란 주제로 선보인 48개 작품 중 43번째 작품.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로 가는 여 정을 작품에 담았다.
 중국 대표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의 아이폰 케이스.
 중국 대표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의 아이폰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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