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살생의 과보 계기
전 재산 버리고 나란히 출가

〈삽화=필몽〉
〈삽화=필몽〉

밧다 카필라니(Bhaddā Kāpilānī)는 맛다(Madda)국의 사갈라(Sagala) 출신 코시야 종족(Kosiyagotta) 브라흐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사갈라는 현재 파키스탄 펀잡 지역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치마티(Sucimati)이고 아버지는 카필라(Kapila)였습니다. 밧다는 어렸을 때 까마귀에게 벌레가 잡아먹히는 고통을 목격하고 수행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맛다국의 사갈라 마을에 밧다 카필라니가 태어나 자라고 있었을 때, 핏팔리(Pippali)는 마가다국의 그레이트 포드(Great Ford)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출가를 결심하다

밧다가 열여섯 살이 되고 핏팔리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핏팔리의 부모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구나. 가문을 이어야 하지 않겠니?”

부모의 압박에 핏팔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귀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저는 부모님을 돌볼 것이지만 아버님,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출가할 것입니다.”

며칠이 지난 후 핏팔리의 부모는 다시 아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했지만 핏팔리는 다시 거절했습니다. 그 이후로 수시로 핏팔리의 부모는 아들에게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젊은 아들은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1,000개의 금화를 세공인에게 주고 아름다운 여자의 형상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미인 조각상을 완성한 후 조각상을 문지르고 광을 내고 붉은 옷을 입히고 갖가지 장신구와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한 뒤 어머니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 아름다운 조각상과 같은 여인이 있으면 결혼하겠지만 이런 미인을 찾지 못하면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여덟 명의 브라흐민을 불러서 그들에게 돈을 충분히 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켜 주고 조각상과 같은 미인을 찾아오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집안과 대등한 귀족의 가문 출신의 여인을 찾아주세요. 재산이나 명예도 우리 집안과 유사한 가문 출신의 여인을 찾아야 됩니다.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찾으면 귀중한 선물을 주고 돌아와서 이야기해 주세요”.

8명의 브라흐민은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어디로 먼저 가야 할 것인지를 상의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먼저 갈까? 맛다(Madda)라는 나라는 아름다운 여인들로 가득하다고 소문이 나있다. 먼저 맛다국에서 찾아보자.”

그들은 맛다국의 사갈라로 갔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세우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때 밧다의 하녀가 볼일을 보고 가다가 우연히 그 아름다운 미인상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아가씨가 여기까지 오셨네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하녀는 그 여인상을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딸 밧다라고 착각하였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8명의 브라흐민들은 그 하녀를 에워싸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모시는 주인님의 딸도 이와 같은가요?”

하녀는 대답하였습니다.

“예, 우리 아가씨는 이와 똑같이 빛날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수천 개의 별빛도 우리 아가씨의 광채에 미치지 못해요. 아가씨 몸의 광채가 어둠을 없애버립니다!”

8명의 브라흐민들은 하녀에게 아가씨를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차에 황금 여인상을 싣고 선물을 챙겨서 하녀를 따라갔습니다. 코시야 가문의 브라흐민 집 앞에 멈춰서 그들의 도착을 알렸습니다. 8명의 브라흐민들은 결혼할 신부를 찾아서 이렇게 오게 된 경위를 밧다의 아버지에게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밧다의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저 코시야의 브라흐민은 우리와 같은 출생·혈통·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나의 딸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밧다의 아버지는 신부에게 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결혼할 소녀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달 받은 핏팔리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이 미인상과 같은 신부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들은 그녀를 찾았다고 한다. 불행한 일이 생겼다. 미래의 신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하겠다.’ 핏팔리가 밧다에게 보낸 편지는 결혼을 하지 말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편 부모로부터 결혼 이야기를 들은 밧다는 몰래 핏팔리에게 다른 여인과 결혼하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밧다는 하인을 시켜 편지를 핏팔리에게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편지를 전달하는 두 하인은 도중에 도로에서 만났습니다. 밧다와 핏팔리의 편지를 열어보고 아직 어린 아이들의 유치한 행동으로 생각하고 그 편지를 찢어서 들판에 버리고 서로 만날 것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편지로 적어서 밧다와 핏팔리에게 각각 보냈습니다.

〈삽화=필몽〉
〈삽화=필몽〉

형식적인 결혼 생활

밧다와 핏팔리의 의지에 반하여 결국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침실로 올라갔습니다. 침실에서 들어간 그들이 결혼한 날, 신부 밧다는 꽃으로 만든 화환을 가져다가 침대 중앙에 두었습니다. 신랑 핏팔리도 또한 침대 중앙에 꽃다발을 두었습니다. “이 화환에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서로 몸이 닿을까 두려워 밤 내내 잠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서로 웃음도 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핏팔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밧다와 핏팔리는 이 세상의 물질적 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핏팔리의 부모가 가족의 재산을 관리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핏팔리와 밧다가 가족의 전 재산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핏팔리에게 남겨진 재산은 엄청날 정도로 많았습니다. 관개 시설을 갖춘 저수지가 최소한 16개 있었고, 그의 농지는 너무나 커서 한쪽 끝에 서서 맞은편 끝을 보지 못할 정도로 넓었습니다. 코끼리 부대, 기마 부대, 전차 부대가 몇 개씩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밧다는 하녀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습니다. 한 농부가 참깨 세 항아리를 밭에 뿌리고 있었습니다. 까마귀가 참깨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먹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저 까마귀들은 무엇을 먹고 있나요?”

“벌레들입니다.”

“살생의 과보는 결국 누구의 것입니까?”

“부인께서 거두어야 합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는 약간의 옷과 주먹밥 한 줌이면 충분하지만, 이 많은 사람이 행한 불선(不善)한 행위의 결과가 나의 것이라면, 생사의 굴레에서 나는 결코 머리를 들 수 없을 것이다. 남편이 돌아오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출가하여야 하겠다.’

그때 남편 핏팔리도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까마귀들이 쟁기질을 한 자신의 밭에서 지렁이를 먹는 것을 보고 살생의 과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 살생의 결과가 나의 것이라면 이 재산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광활한 농토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관개 수로가 있는 수 십개의 저수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는 출가해야 하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종들이 떠나자 밧다와 핏팔리는 편안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 다음 핏팔리는 밧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밧다여! 당신은 이 집에 시집올 때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져왔습니까?”

“수레 천 대입니다.”

“당신이 가져온 모든 재산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나는 떠나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나요?”

“나는 출가하고자 합니다.”

“남편이시여! 나도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출가하고자 합니다.”

부부가 함께 출가하다

밧다와 핏팔리는 시장에서 사온 싼 옷을 누렇게 물들이고, 서로 머리를 깎아주면서 출가의 의지를 서로 확인하였습니다. 발우 그릇을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자신의 저택에서 몰래 나왔습니다. 하인이나 일꾼을 막론하고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 입구를 지나던 중 한 하인이 그들의 걸음걸이와 행동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인은 발 앞에 엎드려 울며 말했습니다.

“주인님이시여! 왜 우리를 내버려 두고 떠나십니까?” 밧다와 핏팔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삼계가 마치 불타고 있는 세 개의 오두막과 같다는 것을 자각하였다. 너희들은 자유롭게 살아가길 허락한다.”

핏팔리는 함께 가다가 생각했습니다.

‘나의 아내는 어떤 여인들보다 더 아름다운데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누군가는 오해할 수도 있다. 아내와 헤어져서 혼자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핏팔리는 도중에서 교차로를 발견하고 멈추어 섰습니다. 밧다에게 말했습니다.

“밧다여! 당신과 같은 여자가 나를 따라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오해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차로에서 당신과 나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녀도 동의하였습니다. 밧다는 남편 핏팔리에게 공손하게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작별 인사 후 핏팔리는 오른쪽 길을 택한 후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면에 밧다는 왼쪽 길을 택한 후 여성들의 출가를 허락하는 종교단체에 입문하였습니다. 당시 비구니 승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외도의 출가 수행자(Paribbājika)와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약 5년 후 최초의 비구니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Mahā Pajāpatī Gotamī)로부터 구족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구족계를 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해탈을 성취하여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비구니들 사이에서 밧다는 전생과 과거 업(業)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비구니로 존경받게 되었습니다. 젊은 비구니들을 교육하고 계율(Vinaya)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밧다를 비구니들 가운데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으뜸가는 자로 칭찬하셨습니다.

아주 먼 전생에 밧다는 파두뭇타라(Padumuttara) 부처님 시절에 항사바티(Haṁsavatī)에 있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녀는 성장해 파두뭇타라 부처님께서 법을 가르치시는 것을 경청하였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어떤 한 비구니를 전생을 회상하는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미래 세상에 그러한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대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밧다의 삶은 핏팔리와 분리하기 힘듭니다. 밧다와 핏팔리의 출가 수행은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둘 다 출가수행에 관심이 많아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뜻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이 끝난 후 독신 생활을 유지하기로 서로 결정하고 부부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사망한 후, 젊은 부부는 상당한 가족 재산을 관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유지에서 벌레가 죽임당하는 것을 보고 그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출가를 결심합니다. 하인들이 주인을 위해 농사짓는 과정에서 벌레가 죽는 살생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결국 주인 부부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니 최종 책임은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살생에 대한 모든 책임이 결국 그들에게 있다고 결론을 내린 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버리고 출가 수행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악업을 동반하는 결혼은 하지 아니하는 것이 불자의 의무라고 밧다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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