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 받아들이고
늙음 관조하는 힘 길러
불안·우울 떨쳐내라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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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처럼 흘러간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과 같은 아동기가 지나면 초목이 푸르름과 싱싱함을 자랑하는 여름의 청년기가 찾아온다. 조금씩 기온이 떨어지면서 노랗게 단풍이 드는 가을의 중년기가 되면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나면서 노화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눈발이 날리고 강추위가 몰아치는 인생의 겨울 노년기에 접어들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노년기의 매서운 추위와 폭설을 견뎌내려면, 인생의 월동 준비를 일찍부터 잘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사회에서 품위 있게 늙기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의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내후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장수국가가 되는 것이다. 환갑 이후에도 20~30년의 삶을 살아가야 하며 100세 이상까지도 살 수 있는 장수시대가 열리고 있다. 장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지만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인생의 월동 준비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난·질병·고독 속에서 괴롭고 지루한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사회에 부담만 주는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게 잘 늙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 또는 웰에이징(Well-Ag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잘 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생의 겨울을 행복하게 보낼 월동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늙음에 대처하는 방법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행복한 중년기와 품위 있는 노년기를 맞이하려면 늙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변화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지혜롭게 대처하는 마음의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불교는 인생의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더 마음에 와닿는 종교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봄과 여름이 훌쩍 지나고 아름답던 단풍마저 낙엽이 되어 길바닥을 뒹구는 쓸쓸한 가을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실감하게 된다. 불교는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품위 있게 잘 대처하도록 돕는 종교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자의 길에 나선 것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대처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늙음의 의미: 늙는 과정의 여러 현상

늙는다는 것은 젊은 시절에 소중하게 여겼던 삶의 가치들과 이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육체적 노화가 진행되면서 젊은 육체와 이별하게 된다. 아름답고 싱싱했던 몸과 이별해야 한다. 감각-운동 기능도 저하되어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넘어질 뿐만 아니라 기억력이나 기민성과 같은 심리적 기능도 서서히 감퇴한다. 자녀가 성장하여 독립하면서 부모의 역할과도 이별하게 된다. 은퇴라는 중요한 사건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 일해온 직장과 이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맞게 되면서 부모와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하나둘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이처럼 늙음은 소중한 것들과 이별하는 상실 과정이다.

인생의 겨울이 깊어지면 추위와 눈보라가 몰려올 것이다. 몸이 쇠약해지고 여러 부위에서 질병이 생겨나면서 육체적인 무기력과 통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약하고 초라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고 무가치감과 허무감이 뼛속 깊이 스며들 것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예감하게 되면, 막연한 초조감과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꿈자리가 사나워질 것이다. 꿈속에 죽은 사람들이 자주 나타날 뿐만 아니라 정체불명의 시커먼 존재가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그에 저항하는 내용의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육체적 쇠약이 심화하면 의식이 혼미해지면서 죽음과 관련한 공포스러운 환각과 환상을 경험하는 섬망(譫妄)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늙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실과 고통이 바로 노고(老苦)다.

나이가 들면 몸이 쇠약해지고 눈을 비롯한 여러 부위에서 질병이 생겨나면서 육체적인 무기력과 통증을 경험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실과 고통이 바로 노고(老苦)다.​​​​​​​ⓒGettyimagesBank
나이가 들면 몸이 쇠약해지고 눈을 비롯한 여러 부위에서 질병이 생겨나면서 육체적인 무기력과 통증을 경험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실과 고통이 바로 노고(老苦)다.ⓒGettyimagesBank

노화 불안과 노화 우울

40대에는 쉰이라는 나이가 무섭고, 50대에는 예순이라는 나이가 두렵다. 중년기에 접어들면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깊어지면서 노화에 대한 저항 행동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노화 불안(Aging anxiety)이라고 부른다. 노인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노화 불안은 크게 네 가지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노인을 초라하고 추한 존재로 여기는 부정적인 생각, 자신의 외모가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항감,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노년기에 불행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노화 불안의 골격을 이룬다.

사람마다 노화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노화 안에 대처하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 운동과 건강식품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녀와 심리적으로 유착하면서 자녀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람은 자녀도 믿지 못해서 돈에 더욱 집착하기도 한다. 때로는 정치적 이념이나 집단활동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 자녀, 돈, 정치적 신념의 성벽을 아무리 높게 이중삼중으로 쌓더라도 노화의 침입을 막을 수는 없다. 성벽의 틈새를 통해 쳐들어오는 노화의 공세에 쫓겨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면, 노화 불안은 노화 우울로 변색한다. 노화 우울(Aging depression)은 늙음의 좌절감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자신의 인생 전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며 허무감과 절망감을 경험하는 심리상태를 뜻한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노년기에 더 강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게 된다.

제행무상의 깨달음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인간은 고통과 공포를 느끼면 무언가에 의지하며 위안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경향성을 지닌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을 강조한다. 불교에도 신앙의 요소가 존재하지만, 불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별한 점은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6년간의 수행 끝에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계기는 모든 것이 연기(緣起)한다는 깨달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존재에 의지하여 생겨난 일시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존재는 항상 이대로 머물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인연이 모이면 생겨나서 지속하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허물어져 허공 상태로 돌아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겪는다. 모든 존재는 변한다. 다만 빨리 변하는 존재와 느리게 변하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도 인생의 사계절을 거치면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겪는다. 이것이 우리가 처해있는 냉엄한 존재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젊음을 유지하려는 무모한 욕망을 지닐 뿐만 아니라 죽지 않고 영원히 살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추구한다. 이러한 욕망은 필연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으며 노화 불안과 노화 우울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우리의 삶에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독일의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Reinholt Niebur)의 기도문처럼,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고,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겸허함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냉철하게 구별하는 지혜로움이다. 늙음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노화를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노년기에는 제행무상과 성주괴공의 진리를 마음 깊이 새기면서 몸과 마음의 노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중요하다.

늙음에 대한 관조적 자세

우리 사회에는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있다. 과연 늙는 것이 나쁘고 괴롭기만 한 것일까? 술과 간장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기간 잘 숙성된 술과 간장은 맛이 순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향도 깊고 은은하다. 품위있게 잘 늙기 위해서는 심리적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노년기는 인생을 깊이 음미하면서 원숙한 삶으로 익어가는 소중한 시기다. 영원히 살 것처럼 철없이 날뛰던 젊은 시절의 혈기를 순화시키면서 삶의 유한성을 깊이 성찰하며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노화현상을 지켜보면서 저항하기보다 수용하는 관조적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심리적 숙성을 위해서는 깊은 사색과 고뇌 속에서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뽀글뽀글 솟아오르는 끈질긴 집착을 달래며 끊어내야 한다. 심리적으로 잘 숙성된 사람은 인생의 변화에 대한 받아들임과 너그러움이 깊어진다.

원숙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제행무상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을 내려놓는 방하착(放下著)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기는 채우기보다 버리고 갈 일만 남아서 삶이 더욱 가볍고 자유로워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기인지 모른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처럼, 노년기에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담담히 바라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관조적 자세를 굳건하게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년기에 찾아오는 집착과 유혹 그리고 고통과 공포를 또렷하게 깨어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으려면 명상 수행을 통해 관조(觀照)의 힘을 길러 두어야 한다.

​​​​​​​인간은 인생의 사계절을 거치면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겪는다. 즉, 노화를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 는 없다. 그러므로 노년기에는 제행무상과 성주괴공의 진리를 마음에 새기면서 몸과 마음의 노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중요하다. ⓒGettyimagesBankⓒGettyimagesBank
인간은 인생의 사계절을 거치면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겪는다. 즉, 노화를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 는 없다. 그러므로 노년기에는 제행무상과 성주괴공의 진리를 마음에 새기면서 몸과 마음의 노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중요하다. ⓒGettyimagesBankⓒGettyimagesBank

명상을 통한 관조의 힘 기르기

명상 수행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일상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뿐만 아니라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괴로움을 극복하는 심리적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인생의 겨울에 자욱한 안개처럼 다가오는 불안과 우울, 때로는 혹한과 폭설처럼 밀려드는 공포와 절망에 휩쓸리지 않고 맑게 깨어 그것을 공(空)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늙음에 대한 불교적 대처방법은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인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꿈과 같은 것이며 허깨비·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와 같은 것이니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의 모든 경험을 당연히 이와 같이 바라볼 수 있도록 수행하라.”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노년기를 품위 있게 맞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월동 준비는 늙어가는 몸과 마음을 담담히 지켜볼 수 있는 관조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티베트의 수행자처럼 의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에 휘몰아치는 공포와 유혹의 환상들을 맑게 깨어 바라볼 수 있으려면 명상을 통해 관조의 힘을 길러 두어야 한다. 제행무상을 실감하는 중년기와 노년기는 명상을 통한 마음 수행이 가장 필요한 시기일 뿐만 아니라 마음 수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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