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자전거와
정원의 시간

〈삽화=이지미〉
〈삽화=이지미〉

두 대의 자전거

내 집에는 두 대의 자전거가 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를 오면서 다른 세간살이와 함께 배에 실려 왔다. 그런데 창고를 짓지 못해 그만 바깥에 세워두게 되었는데, 비와 바람과 이슬과 서리와 눈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볼 때마다 미안하고 딱했다. 비닐로 안장을 싸매고 자전거 전체를 또 한 번 덮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는 풍찬노숙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타이어는 펑크가 났고 바퀴에는 녹이 슬었다. 점점 방치되어 추레한 행색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자전거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문득 났다. 아버지께서 김천의 시장에서 중고로 사와서 타시던 자전거 생각이 났다. 그 자전거에 나를 태우고 달리시던, 젊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허리춤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탈 때면 불어오던 바람이 참 시원하니 좋았다. 이 생각이 나자 조만간 자전거 점포에 갖고 가서 수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한 번 방치하기 시작하면 그 방치는 밑도 끝도 없이 방치의 극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방치를 끝낼 때가 된 것이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끝맺을 때가 있다.

식물분류학자

요즘에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이 쓴 책 〈나의 초록 목록〉을 읽고 있다. 허태임 연구자를 소개한 글에는 “1년의 절반 이상은 전국 곳곳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로 살아간다.”라고 적혀 있다. 식물분류학이라는 학문이 있나 싶었는데, 허태임 연구자의 설명에 따르면 식물분류학은 기원전 철학자들이 탄생시킨 아주 오래된 학문 분야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론〉을 써서 500종이 넘는 동물들을 분류했다면, 그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학의 선구자였다고 한다. 식물분류학이 어떤 일을 하는가 하면 식물의 이름을 붙여주고 식물들 사이의 관계를 규명한다고 하니 생소하지만 꽤 흥미로운 학문이라고 하겠다.

가을이 되고 해서 가을꽃에 관해 쓴 글을 먼저 읽다가 ‘향유’라는 식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게 되면서 ‘아뿔싸’를 외쳤다. 내가 ‘아이코’라며 깨닫고 뉘우치는 이유는 내 사는 집 주변 밭둑에 이 향유가 해마다 가을이면 지천으로 피기 때문이다. 보랏빛 물결을 이루는 것인데, 나는 그냥 잡초이거니 하고 거들떠보지 않았으니 향유를 몰라도 한참은 몰랐던 셈이다. 게다가 옛사람들은 나물로 먹기도 했고, 약용으로 사용했고, 향기가 또 좋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의학서에는 11월은 향유를 따서 모으는 달이라고 되어 있다고 했다. 작년에 내가 뽑고 벤 향유가 꽤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자 더 난처해졌다. 곧 향유가 돌아올 테니 올해는 향유가 가을의 끝까지 밭둑을 다 차지하도록 해야겠다.

옛 시집을 펼쳐

작고하신 정진규 선생님은 내 아버지와 같은 해에 태어나셨다. 1939년생이시다. 오늘 서재에서 선생님의 시집 〈우주 한 분이 하얗게 걸리셨어요〉를 펼쳤는데, 시집 안쪽에 “문태준 詩人께 2015.4.3 夕佳軒 정진규”라고 쓴 선생님의 육필을 다시 보았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내가 1994년 겨울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신작시를 발표할 지면을 얻지 못하고 있었을 때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서울 인사동 현대시학사 사무실로 찾아가 처음으로 뵈었던 기억이 났다. 선생님께서는 당시 월간 ‘현대시학’ 주간으로 계셨다. 신예인 나를 아주 반겨주셨고, 시를 발표할 지면도 내주셨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실 때 병실을 찾아갔던 일도 생각났다.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오히려 이런저런 내 걱정뿐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뵙고 선생님께서 댁으로 귀가하실 때 택시를 잡아드리고 몇 차례 차비를 주머니에 넣어드렸지만 소액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내 고향 시골집에 ‘문정헌(文庭軒)’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셨고, 이 이름은 내가 살고 있는 제주 애월 장전리 집에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조문을 가서 한참을 울었다.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글씨를 접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손을 그 글씨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시집에는 시 ‘가을행 11-뭇국’이 실려 있는데 시는 이러하다. “가을무는 인삼이다 엇빚어 끓인 뭇국이 맛이 들었다 시원타”

〈삽화=이지미〉
〈삽화=이지미〉

정원의 시간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은 1943년에 태어났다.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12대 미국 계관(桂冠) 시인이었다. 202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개별적 실존을 보편적으로 만드는 분명한 시적 목소리”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에밀리 디킨슨과 윌리엄스를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았다. 1993년에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시집 〈야생 붓꽃〉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시집 〈야생 붓꽃〉에는 시 ‘저녁 기도’가 실려 있다. 이 시의 일부는 이러하다.

“당신이 어디 있는지, 나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요./ 당신은 정원에 있어요; 거기 존이 있는 곳에 있어요,/ 흙 속에서, 정신 팔린 채, 초록색 모종삽을 쥐고./ 이게 그가 정원을 가꾸는 방식이에요: 십오 분 집중해서 일하고,/ 십오 분 황홀하게 생각에 잠기지요. 가끔씩/ 내가 그 옆에서 일을 해요, 땡볕 나기 전의 자잘한 일들,/ 잡초를 뽑고 상추를 솎아 내며; 때로 나는/ 위쪽 정원에 가까운 현관에서 바라보네요, 황혼이/ 첫 백합 등불을 만들어 낼 때까지: 그 시간 동안,/ 평화는 절대 그를 떠나지 않아요. 하지만 평화는 내게로 몰려오네요,”

이 시에는 정원을 가꾸는 가족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가족은 모종삽으로 뭔가를 심고 캐고, 잡초를 뽑고 상추를 솎는다. 십오 분은 정신이 팔린 듯이 일을 하고, 또 십오 분은 생각에 잠긴다. 땡볕이 나기 전에 혹은 해가 지는 저녁 무렵에 그렇게 한다. 저녁이 오면 등불이 켜지는데 그 등불은 마치 백합꽃과 같은 깨끗하고 흰 빛이다.

게다가 평화가 있다. 허물어지지 않는 평화가 있고, 어둠에 묻히지 않는 평화가 있다. 정원에서 일하거나 생각에 잠기는 이에게도 있고, 이만큼 떨어져 정원을 지켜보는 이에게도 있다. 그렇다. 정원의 시간은 두 종류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일하거나 쉬거나, 모종삽을 들고 있거나 모종삽을 내려놓거나 하는 두 종류의 시간만이 있다. 일하거나 쉴 때 상념이 끼어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상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어느샌가 상념은 자취를 감춘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니 내가 하는 정원의 일은 덜 분주해졌다. 월동하는 화초들이 있고, 또 뿌리와 구근을 돌봐야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풀을 뽑을 일은 없다. 이제 내게는 정원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많아질 것이다. 루이즈 글릭의 표현대로 정원을 바라볼 때도 평화는 온다.

얼굴이 가려지지 않도록

내 집 마당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그 정원 뒤쪽에는 돌담이 있다. 돌담은 꽤 오래된 것인데, 누가 축조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아내의 할아버지께서 쌓으신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돌에는 이끼가 잔뜩 올라와 있어 예스러운 멋이 있다. 돌담을 뒤편에 세우고 정원이 들어서 있는데 폭은 어른 큰 보폭으로 두 걸음, 길이는 어른 큰 보폭으로 다섯 걸음 정도 된다. 여기에 수선화·국화·단정화·작약·라벤더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여럿의 화초들이 함께 자라면서 꽃밭에는 계절마다 화사한 빛이 돈다.

그런데 어제 꽃밭의 정면에 서서 꽃밭을 바라보니 어떤 화초는 드러나 있고, 또 어떤 화초는 가려져 있었다. 키가 얼마나 크는지, 또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는지 살펴서 꽃밭에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짐작과는 아주 달랐다. 가령 한 뼘 정도 올라온 수선화는 바로 앞에 심은 국화에 가려져 있었고, 또 이 국화는 단정화와 너무 가까워 자리를 두고 다투는 형국이었다. 돌담에 올라가서 꽃밭을 내려다보아도 어떤 화초는 불룩하게 쑥 나와 두드러지고, 또 어떤 화초는 푹 꺼져 눈에 띄지 않았다. 화초들은 물론 이런 것에 개의치 않겠지만, 그래서 다만 내 세속적인 판단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서리가 내리고 화초가 다 시든 때가 오면 다시 정원을 살펴서 늦어도 초봄에는 화초들을 이쪽저쪽으로 옮겨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라도 그 얼굴이 가려지지 않도록. 앉고 선 자리가 비좁지 않도록.

돌을 피하고서

오일장에 가서 화초를 샀다. 화분을 파는 가게에서는 가을이라 국화와 구절초 화분이 많았고, 사람들도 이 화분들 앞에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라벤더 화분과 바늘꽃 화분을 몇 개 샀다. 바늘꽃은 여러해살이풀인데 연한 홍자색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작년에 이 바늘꽃 화분을 사서 정원에 심었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크게 자랐고, 꽃의 색감과 모양이 무척 아름다워서 올해 좀 더 화분을 샀다. 라벤더는 꽃도 좋거니와 추위에도 강하고 개체수를 늘리며 번지기를 잘해서 노는 땅이라도 있으면 곳곳에 심어왔다.

바늘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심을 곳을 찾았다. 심을 곳을 정한 후에 삽으로 땅을 팠는데 다른 곳들은 토양도 좋고 뿌리를 내리기에도 적합했으나 한 곳을 파며 땅속으로 들어가자 삽날이 돌에 부딪혔다. 좁고 기름하게 생긴 곡괭이의 날로 돌의 크기와 깊이를 쟀더니 꽤 큰 돌이었다. 박힌 돌을 캐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파냈던 흙으로 구멍이 난 자리를 메우고 심을 곳을 다시 찾았다. 차선(次善)의 자리를 찾았다. 마침 다시 찾은 곳은 바늘꽃을 심기에 괜찮은 곳이었다. 바늘꽃을 다 심고 물을 흠뻑 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돌이 나오면 돌을 피하자. 돌 위에 화초가 뿌리를 내릴 수는 없으니. 고집을 버리고 다른 곳을 찾으면 될 일. 마치 물이 흘러가되 막힌 곳을 만나면 돌아감으로써 물굽이를 만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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