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최고의 사찰음식
‘법정(法頂) 국수!’

〈삽화=전병준〉
〈삽화=전병준〉

‘법정’ 국수? 웬 뜬금없는 법정 국수!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고 낯선 이름의 국수 이름을 불쑥 말하면서 사찰음식을 이야기하려니 나도 조심스럽다. 사찰 음식에 대한 풀이나 설명은 30만 어휘가 수록된 국어 대사전에도 없다. ‘사찰’ 따로 ‘음식’ 따로 어휘설명이 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별다른 풀이나 설명 없이도 사찰음식이 무언지는 알 수 있겠다. 간단하다. 사찰은 절이요, 음식은 먹고 마시는 것. 그러니까 수행하는 스님들이나 절에 법회 때 모인 신도들이 끼니때에 먹거나 마시는 음식, 그것이 사찰음식일 것이다. 그러니 보통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같은 것도 있겠지만, 오신채나 육류를 쓰지 않는다든지, 말하자면 금기하는 식재료 등에서 다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거나 생각한다면, 아마 식재료에 있어 계절성이나 환경성이 더해질 터이니, 말하자면 죽순 같은 것이 나는 지역이나 바다가 가까운 곳이거나 특이한 약성 식물이 자라거나 특산 농산물이 나는 곳에서는 그 재료가 독특해서 차별화도 될 것이다. 또는 같은 재료라도 그 법제의 비법이 오랜 세월 전수된 곳에서는 비전의 음식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불교인이어서 ‘절밥’을 여러 차례 먹어보았는데 내 식성에는 절 음식, 곧 ‘사찰음식’이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좋았고, 기름지지 않고, 정갈하고 맛있었다. 요즘 표현으로 웰빙 다이어트 음식이니까.

여기에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음식 섭취와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관계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하겠다. 이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세상은 대체로 풍요로워서 너무 많이 먹고 마시는 과음 과식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그런데 요즘 보통 사람들이 1만 원이면 도시에서 점심을 먹을 만하다고 생각할까? 요즘 같은 고물가(高物價)에 주저주저할까? 그러면 더 심하게 5,000원으로는 도농(都農) 어디서든 어떻게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까? 또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때워보는 한 끼 정도가 아니라, 그 돈의 범위 내에서 계속 삼시 세끼를 해결해야 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올까? 또한 1만 원이든 5,000원이든 그 돈으로 한 끼를 먹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을까? 매우 궁금하다. 막노동자의 경우, 운동선수의 경우, 사무직의 경우, 예술가의 경우, 수도승 스님의 경우, 다이어트가 과제인 청춘스타 연예인의 경우……. 각각 어떤 반응일까?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힘쓰는 만큼 필요한 열량을 채우기 위해 먹어야 하고, 간혹 필요 이상의 열량을 공급하면 여분의 칼로리가 모여 비만을 초래한다. 다이어트의 원리는 그러므로 초과 또는 과잉 섭취한 음식으로 인한 칼로리를 운동으로라도 태워야 한다. 다이어트는 이렇듯 간단하다. 그리고 쉽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경제 발전과 함께 대체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한국인의 식생활은 필요한 만큼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식도락으로 즐기는 것 같고, 필요 이상 탐식을 하는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먹방’이 세계적 유행이 된 듯하다. ‘먹방’은 먹는 방송이라는 뜻이라는데, 체격과 식욕이 남다른 유명 연예인들을 내세워 그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자극적으로 보여 준다. 그 방송을 보면 시청자도 덩달아 식욕을 자극받아 먹고 싶어지게 된다. 그런 방송이 인기란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구석에는 아직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을 터인데 초과 음식을 먹도록 유도하다니. 또 자가용 보급 대수의 증가와 전자 통신 특히 스마트폰의 비약적 발전으로 전국의 ‘맛집’이란 곳을 찾아다니며 ‘맛집’을 순회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끼니때가 돼서 식성과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주변의 음식점을 골라가며 먹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나, 작심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전국을 헤맨다는 것은 옛사람의 사고방식을 가진 나로서는 미안하게도 이해불가이다. 자연스러운 기회에 맛도 좋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해서 먹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세태에 혹시 ‘사찰음식’도 그런 추세에 편승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려고 기웃거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치스러워지고 요즘 표현으로 ‘비주얼’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래서 전래의 소박한 사찰음식이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삽화=전병준〉
〈삽화=전병준〉

언제인가, 특별한 법회에 갔다가 ‘대접?’ 받은 사찰음식에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물론 사찰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서 억지로 소박하고 가난해 보여야 할 이유도 없고, 또 스님들이라고 그런 음식 드시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인삼튀김, 자연송이를 넉넉히 넣은 탕, 능이버섯 반찬, 미삼채 반찬, 희귀한 산나물 반찬을 먹으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절에서는 저렇게 먹나? 스님들은 날마다 저런 거 잡수시나? 하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특별 법회가 있는 날이라 그 손님들을 위한 재료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사찰 음식 전문가라나 무슨 유명한 분이 만들어 냈다는 발표회에 갔을 때는 음식에 압도돼 질문도 못하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행사장에 그냥 서 있다가 나온 적도 있다. 정말 전통 사찰 음식이 그런 것일까?

이번에는 극과 극, 정반대로 책에서 본 수행 스님의 비참한 공양을 말해야겠다.

아직도 그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전설의 지허(知虛) 스님이 쓰셨다는 〈사벽(四壁)의 대화(지허 스님의 토굴일기)〉에 보면 눈이 푹 빠진 겨울 산 토굴에서 소금국에 꿀밤(도토리의 지방어)만 먹으면서 용맹정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너무나 처참하고 불쌍한 생각에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반찬이라야 소금국이며 독한 물도 덜 빠진 도토리를 삶아 끼니로 드시며 수행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신심이 났을 정도였다. 자, 그러면 과연 이 정도가 돼야 진정한 수행자가 먹는 음식이며, 이런 정도를 사찰음식이라고 해야 하나? 가히 극과 극이다!

나는 이제 고가의 식재료와 현란한 비주얼 때문에 지나친 호식(好食)의 눈총을 받을 일도, 참선 수행자가 먹는, 눈물이 날 정도의 악식(惡食)을 탓할 일도 없는 어느 스님의 수수하고 정갈한 중도(中道)의 사찰음식을 언급한 후, ‘내가 아는 최고의 사찰음식’으로 ‘법정 국수’를 소개하여 이글을 마무리하겠다.

‘이런 것이 사찰음식이 아닐까?’ 하는 표본이 될 만한 중도의 사찰음식. 지금 생각하니, 내가 먹어본 사찰 음식가운데 가장 근본 있고, 무욕을 느낄 정도로 소박하고, 수수하면서도 사찰음식의 기본 정의에 맞을 것 같다. ‘이런 음식이야말로 수행자들이 먹던 음식이겠구나?’하고 수긍할 수 있고,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찰음식일 것 같다. 그래서 사찰음식풍의 좋은 예로 들어본다.

수년 전 세종시에 계시는 ‘엄관동서박통고금(淹貫東西博通古今, 동서와 고금을 통달한 학식이 매우 넓다)’하시고 유명한 차인이신 원행 스님을 모시고 일 년간 예정으로 ‘차 마시고, 밥해먹고’라는 주제로 열두 번의 차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대략 다섯 계절 동안 진행해서 그 기록을 〈다반사(茶飯事)〉라는 책으로 엮는데 한자리를 차지한 기획이었는데, 차회 때마다 품격 있는 차로 음차하고, 차회 장소의 환경과 계절에 따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손쉬운 재료로 원행 스님께서 손수 밥 지으시고 반찬을 만들어 주셔서 호사를 누린 자리였다. 여기에 그 열두 번의 차회 중에 어느 봄날 먹었던 음식을 소개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그날은 마침 차회에 모인 차인일행이 ‘우거(寓居)’에 모인 늦은 봄날이었다. 주인인 나도 아무 준비를 안 해 놓고 원행 스님 일행의 차손님을 맞았다. 그날의 기록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스님은 남의 집[우리 집] 부엌에서도 빠른 손놀림으로 밥상에 올릴 음식들을 척척 만들었다. 사과를 갈아 넣고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간을 맞춘 겉절이에는 원행 스님이 집 주변 뒤뜰에서 직접 딴 상추와 겨자채, 참나물이 더해졌다. 밥상을 준비하기 전에 주변을 한 바퀴 휘 둘러본 스님은 미리 생각한 메뉴를 조금 변경한 듯했다. 집 주변과 산자락에 널려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밥상에 담아내고 싶었으리라. 공간을 바꿔 함께한 세 번째 밥상은 까칠한 식감이 입맛을 자극하는 조밥과 담백한 머위 들깻국, 상추 겨자채 겉절이, 죽순 버섯볶음, 겉옷을 입은 듯 안 입은 듯 소량의 밀가루를 묻혀 바삭하게 부쳐낸 참나물 전, 짠지와 묵은 김치로 푸짐하게 차려졌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감탄을 이어갔다.’(이하 생략) 그날 원행 스님께서 준비하신 즉석 음식을 사진 없이 글로만 설명해서 아쉬운데, 이런 정도의 음식이면 호화와 빈한(貧寒)의 극과 극인 사찰음식에 중도쯤 된다고 본다. 자 이제 드디어 ‘내가 아는 최고의 사찰음식’인 ‘법정(法頂) 국수’를 소개하겠다.

원적에 드시기 직전까지 출가 내내 주지 소임도 고사하시고 불일암이나 강원도 오두막 등 아담한 토굴에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셨던 법정 스님께선 언제나 혼자이셨다. 자연, 공양주도 안 두셨으니 손수 공양을 해결하셨을 것이다. 1990년, 스님을 처음 뵌 후 어느 시점에 스님께서는 우리 내외에게 계를 내려주셨다. 서울에서 꽤 먼 송광사 불일암에서였다. 방송일이 매우 바쁘던 시기라서 겨우 책과 소문으로 대충 소식을 듣고 있던 터라, 불일암 방문의 기회는 그저 여행처럼 느껴졌다. 송광사에 들러 예불하고 산길을 한참 걸어 대나무 숲을 지나니 거기 아늑하고 예쁜 터전에 사진에서 본 듯한 불일암이 있었다. 오랜 기억이라 확실치 않은데 그때는 암자와 뚝 떨어진 부속 건물 하나, 작은 장작더미, 몇 개의 장독과 손바닥만 한 채마전 그리고 샘이 솟아오르는 우물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암자와 우물이 중요한 기억이다.

스님은 향을 피우고 우리 내외를 위한 수계 법의식을 정성껏 올리시며 보살에게는 ‘삼매화(三昧華)’, 나에게는 ‘향적(香積)’이라는 법명을 내려주셨다. 우리 보살은 수련회를 다녀와서 의식의 내용을 잘 알고 따라했지만, 나는 스님의 말소리가 낮아서 무슨 말씀인지 몰라서 따라하질 못해 꾸중까지 들었다. 세상일을 다 아는 듯이 방송을 했지만 불교 의식을 잘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법명을 받고 수계식을 마쳤다.

수계식이 끝나니 바로 점심 공양시간 무렵이었다. 산중(山中)이니 암자에서 공양을 해야 하는데 공양주가 안 보이니 뭘 좀 아는 우리 보살이 쩔쩔매며 공양간을 두리번거렸지만, 공양간인 부엌에는 정갈하게 길이 든 무쇠솥과 무슨 항아리(쌀?)였는지 오지항아리[흙으로 만든 그릇에 오짓물(잿물)을 입혀 다시 구운 윤이 나는 그릇] 한 개가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스님께선 분위기를 눈치 채시고, ‘어이, 저기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어요!’ 하시더니 금방 수연(가느다란)국수를 삶아서 바가지에 퍼 드시고는 샘가로 가시며 우리 내외를 따라오라고 하셨다. ‘자 이거 봐요! 이렇게, 이렇게 몇 번 샘물에 헹궈서 면발을 탄력 있게 해서….’ 하시며 손가락 사이로 헹궈진 면발을 조금 휘감으시더니 쪼그리고 앉으신 채로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시며 간질간질 목젖께로 국수발을 흘려 넣으시는 게 아닌가? 조금 전까지도 엄숙하시던 스님께서 점심공양을 손수 준비하시면서 동심의 장난기를 발동하신 것이다. ‘샘가에서 맨 국수사리를 먹는 특별한 재미가 있어요! 자, 손으로 한 사리 집어먹어 보시라니까!’ 우리도 스님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국수사리를 목 너머로 넘겼다. 재미있었다.

샘물에 씻어서 사린(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국수를 정갈한 대접에 앞앞이(각 사람마다) 담으시고, 진간장을 찔끔 부으시더니,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시고, 약간의 깨소금, 마지막으로 맨 위에 잘고 길게 썬 맛김을 고명으로 소복이 얹으셨다.

국물도 없는 국수? (처음 보는 국수였다. 반찬이나 따뜻한 국물이 있겠지. 된장 국물?) 하는 그 순간에 스님께선 공양 시작을 말씀하셨다. ‘자, 다 됐습니다! 이 국수에는 찬과 국물이 없어요. 혼자 공양할 때 번잡한 게 싫어서 내가 가끔 간편하게 해 먹는데, 가난한 승가에는 이게 다예요. 시장하실 테니 어서 드세요!’ 절간에 온 새댁이라는 말처럼, 우린 아무 말씀도 못 드리고 스님을 따라 조용조용 그 국수공양을 시작했다. 스님께서 손수 만드신 공양을 들며 긴장감도 있고, 방금 샘물의 찬 기운과 함께 만든 국수라 목 넘김이 좀 뻑뻑했다. 참기름 맛과 진간장 맛이 어울리고, 맛김의 향이 더하며 담백한 맛이 좋았다. 처음 보는 조리법의 국수! 젓가락을 놓자 스님께서 우리 속을 들여다보신 듯 말씀하셨다. ‘속이 좀 차지요? 잠시만 기다리시라! 이 국수를 먹은 뒤에는 배 속의 찬 기운을 누를 수 있게 반드시 따끈한 커피를 마셔야 해요!’ (스님께서 커피를? 아, 찬 국수와 뜨거운 커피의 조화!) 찬 국수를 뻑뻑하게 먹고 오슬오슬 떨리던 속은 이내 따끈한 커피 한 잔에 마술처럼 평온해졌다.

이후 우리 부부는 그 국수를 ‘법정 국수’라 부르며, 특별한 날에 좋은 사람들이 우거에 찾아오면 그 국수를 해 먹으며 스님을 추억하곤 한다. 결국 이 세상에 처음, 내가 아는 최고의 사찰음식으로 ‘법정 국수’를 소개하고 그 레시피까지 공개하게 됐다. 오늘 갑자기 법정 스님이 그립다.

이계진
방송인.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30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제17대,18대 국회의원. 현재 국방FM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무소유〉 읽기 작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저서로〈아나운서 되기〉·〈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딸꾹!〉·소설〈솔베이지의 노래〉·〈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3인 아나운서 이야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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