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개복숭아나무
발과 모기장

〈삽화=이지미〉
〈삽화=이지미〉

개복숭아나무

어릴 적에 복숭아나무 농사나 사과나무, 배나무 농사를 짓는 집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특히 여름날에 잘 익은 복숭아를 따서 나무 궤짝에 담아 가는 이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처럼 여러 해 동안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복숭아나무 묘목을 사서 밭에 심었으면 되었을 텐데 싶지만, 그때는 가족 가운데 그 누구도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어린 묘목을 심는 대신에 나와 누나들과 동생들은 산에서 자라는 개복숭아나무를 한 그루 알아두었다. 그래서 가끔 그 개복숭아나무에 가서 열매가 잘 익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했고, 여러 날이 지난 후에는 한 바가지 정도의 개복숭아를 따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개복숭아는 열매가 작았고, 그 맛은 달콤하기보다는 쓴맛이 더 돌았다. 태풍이 지나갈 적에는 개복숭아를 따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개복숭아나무 아래 섰을 때는 열매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 벌레 먹은 상태여서 결국 주워들 수 없었다. 비바람이 지나갔으므로 가지에도 열매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개복숭아나무는 내 어릴 적 여름의 시작과 끝을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쓴맛은 마치 씀바귀를 먹은 듯 아직 내 입안에, 기억에 남아 있다.

작은 공책

내가 아끼는 물건이 몇 있다. 그 첫째는 일명 ‘시 창작 노트’인데, 문득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메모하는 작은 공책이다. 여기에는 시어나 구어체의 대화, 한 문장의 시구, 시적 모티프 등이 삐뚤빼뚤한 내 육필로 기록되어 있다. 더러는 내가 그린, 사물의 드로잉이나 다른 사람이 내 면전에서 그린 내 초상이 들어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노트는 내가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이 노트는 여러 권에 이르게 되었는데, 내가 1994년에 등단을 했으니 꽤 오랜 세월 동안의 메모가 적혀 있는 셈이다. 나는 가끔 이 노트를 펼쳐보면서 과거에 내 가슴에 담겼던 뜨거운 열의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내가 쓴 것이지만 그때그때 마다 필체가 상이하다. 아마도 내 감정 상태가 마침 그때 높고 낮거나, 고르거나 울퉁불퉁하거나, 세거나 여리기에 어떤 글씨는 눕고, 어떤 글씨는 서고, 어떤 글씨는 짙고, 어떤 글씨는 휘발하듯 날아가는 모양새이다. 그 글씨를 알아보는 데 조금의 지장이 없음은 물론이다. 노트에 어제 적은 시어는 ‘하피스트’였다.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 이 언어는 라디오를 듣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하피스트’라는 단어가 마치 용천수처럼 솟아났으니 이제 이 단어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시편에 들어가 제자리를 잡고 앉을 것이다. 오늘은 지인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이가 외국에 있다고 하기에 대뜸 부탁을 하나 했는데, 그것은 다른 부탁이 아니라 좀 근사하고 흔하지 않아 보이는 작은 노트를 하나 사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났더니 그이가 돌아올 날이 벌써 기다려지고 마음이 막 뛰었다.

어딜 가면 돌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냇가의 수석을 알아보는 눈도 없고, 조경석을 고를 줄도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돌을 보면 무언가 흐뭇한 느낌이 생겨났다. ‘석수(石手)’라는 말이 있다. 돌을 다루어서 뭔가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돌담을 쌓는 사람도 석수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나는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참 대단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돌을 이리저리 돌려 앉히고, 뒤를 받치고, 얹어 누르는 솜씨를 곁에서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석수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돌 얘길 더 하자면, 나는 바닷가 해변에서 밀물에 우는 몽돌도 좋고, 저 먼 골짜기에 뿌리가 박혀 푸른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는 무명의 돌도 좋다. 그래서 가끔은 어딜 가서 돌을 보다가 그걸 주워 들고 집으로 오기도 했다. 몇 개는 내 책상 한쪽에 앉아 있다.

문제는 내가 몽골의 시인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가 지은 한글 번역 시집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를 읽을 때 생겼다. 담딘수렌 우리앙카이는 ‘몽골의 돌’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소똥같이 푸른 돌…/ 이 돌은-시간보다 오랜 돌!// 빛처럼 환한 돌…/ 이 돌은-신보다 흠 없는 돌!// 눈물처럼 말 없는 돌…/ 이 돌은-언어보다 진실한 돌!// 아이의 숨결처럼 사랑스런 돌…/ 이 돌은-아들의 숨골보다 여린 돌// 인간의 머리처럼 값진 돌!/ 이 돌은-몽골의 돌!” 돌에 대해 이처럼 애정을 갖고, 내 살갗처럼 내 혈육처럼 여겨 쓴 시는 처음 읽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시집의 해설에 실린 다음의 문장이었다. “몽골인들은 돌 하나에도 생명과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산에서 돌을 가져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발에 걸리는 돌도 차지 않으며, 구르는 돌은 3년 동안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먼 곳에 갈 때 고향의 돌을 가져가는 습속이 있는데, 자기가 살던 곳의 돌이 먼 길을 가는 동안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내 책상에 놓여 있는 돌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저 돌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된 데에는 내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평소에 돌 하나에 생명과 마음이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를 어쩌나 싶어 마음 둘 데를 찾지 못했다.

여름 농사

올해 채마밭 농사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토마토 모종을 작년보다 더 심었지만, 무더위 탓인지 여러 포기가 말라 쓸모가 없게 되어버려서 오히려 작년보다 수확이 적다. 토마토 모종을 작년에 했던 곳에 하지 않고 옮긴 탓도 있는 듯하다. 토양의 상태가 토마토가 자라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오이의 성장도 느렸다. 오이의 순이 타고 오르며 자라도록 지지대를 좀 더 일찍 댔어야 했는데 때를 놓쳤다. 올해 처음 씨를 뿌린 당근은 좀체 알이 굵어지지 않는다. 뭘 잘못 했나 따져보니 씨를 너무 많이 뿌려서 몇 차례 어린 당근을 솎아내긴 했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보람이 있다면 수박을 두 통 얻었다는 것인데, 꽤 묵직했고, 쩍 쪼갰더니 잘 익고 그 맛이 달았다. 내년에는 수박 모종을 더 해야겠다며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여름 농사를 돌아보니 그 잘됨과 못됨은 모두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잘못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때 맞춰 일을 하지 않은 내 나태였고, 또 하나는 지나치게 많이 얻으려는 내 과욕이었다. 모종과 씨앗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삽화=이지미〉
〈삽화=이지미〉

생각에 대하여

생각은 좀체 끊어지지 않는다. 잡념은 치렁치렁하게 풀어 헤친 머리카락 같다. 물론 비교적 단순한 일을 반복해서 할 적엔 잡념이 뻗어가는 것이 조금은 덜한 느낌이지만, 잡념의 뿌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나는 성질이 매우 까다롭고, 자잘한 걱정이 많은 축에 들어서 잡다한 생각에 애를 자주 태운다.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있으면 마음이 바싹 마르도록 조바심을 낸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한 지인을 만나서 이런 고충을 말했더니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그 생각 안 하면 돼요. 생각 안 하면 생각이 끊어져요, 사라져요.”

발과 모기장

요즘 도시 아파트에서는 현관문이나 창문을 꼭꼭 닫고 살지만, 내가 사는 제주의 여름밤 풍경은 조금 다르다. 낮에도 문을 열어 놓는 집이 많고, 저녁에도 문을 열어 놓은 채 잠을 자는 집이 많다. 남이 소유한 것을 공짜로 가져가려는 도둑이 없기도 하려니와 문을 닫고 사는 것이 몹시 답답하기도 한 탓이다. 현관문을 열어 놓은 대신에 가늘고 기다란 대를 줄로 엮어 늘어뜨린 발을 친 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창문은 활짝 열어젖혀 놓고서 모기장을 치고 밤잠을 자는 집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밤이 되어 땅의 열기가 식고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하면 제법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할 테다. 풀벌레 소리도 가까이 들려오니 꽤 운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졸시 ‘여름밤’을 통해 풀벌레가 우는 시골의 여름밤 정취를 표현한 적이 있다. “풀벌레가 운다// 오늘 이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전경(全景)// 내 만면(滿面)에도/ 풀벌레 소리// 한 소리의/ 언덕/ 골짜기/ 한 소리의/ 여름밤// 돗자리로 펴놓고/ 모기장으로 쳐놓고// 거기에/ 빈 쭉정이 같은/ 내가 / 내 그림자가/ 일렁일렁한다” 여름밤이 통째로 집안까지 들어와 함께 자는 셈이다. 나도 내년에는 발과 모기장을 미리 장만해서 여름밤을 통거리로 느끼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터졌다

비가 많이 내리면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장관을 만나게 된다. 낙수(落水)도 개중 하나이다. 낙수 가운데 큰 규모의 낙수를 말하자면 서귀포시 강정동 엉또폭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폭포는 평소에 물줄기가 없다가 장맛비 같은 것이 내리게 되면 이주 굵은 물줄기를 직하로 떨어뜨려 찾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거대한 물줄기가 터져서 폭포수 소리가 어마어마하다. 제주 사람들의 말 가운데 참 재밌고 그 정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 많은데,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려 평소에는 바닥이 드러나 있던 계곡에 물이 콸콸 쏟아지며 흘러내려 가는 것을 보고선 내 옆에 있던 제주 사람이 내게 “내 터졌다, 내 터졌어!”라고 말했다. ‘내’는 시내보다는 큰 물줄기가 흐르는 곳인데, 그곳이 보통의 날에는 물줄기가 끊어져 있다가 폭우가 내리자 물줄기가 잠시 생겨난 것을 일러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 “내 터졌다, 내 터졌어!”라는 말이 어쩌면 이렇게 과부족이 없이 안성맞춤일까 신기하기만 했다. 이 말에는 내가 생겨난 것을 무척 반기는 의미가 있고, 또 쾌감을 충분히 실은 의미도 있다. 막혔던 것이 뚫렸다는 뜻도 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도 내 터지듯 툭, 터지는 일이 문득 좀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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