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백제 스러지던 날 황금빛 용봉은 땅 속에 숨어들고 서기 660년 6월. 계백의 5,000 결사대는 신라군에 맞서 잘 버텨냈지만 결국 황산벌에서 전멸하고 만다. 이어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13만 대군과 신라의 5만 군사가 연합해 사비성으로 밀어닥쳤다. 의자왕은 사비성을 탈출했고, 귀족들은 달아났다. 성에 남아 있던 차남 태가 왕위에 올라 항전했지만 결국 항복을 하고 만다. 당나라 군대가 사비성을 함락하던 그때, 백마강 건너 능산리 왕릉 일대에도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특히 당나라 군사들은 보물을 약탈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궁궐
한 길 치솟은 하얀 피 역사를 바꾸다 법흥왕은 크게 진노했다. “당장에 이차돈을 참하라”고 명령했다. 칼을 찬 무사가 이차돈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끌려나온 이차돈은 왕과 대신들이 모인 장소에서 하늘을 향해 맹세를 하듯 외쳤다. “대왕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제가 목숨[身命]을 돌보지 않고 세상 인연을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로움을 두루 백성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이차돈이 선 채로 목을 숙이자 형을 집행하는 옥리가 칼을 휘둘러 목을 벴다. 큰 칼이 목을 치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치솟았다. 그리고 머리는 멀리 날아가 소금강산(경주
허 황후 싣고 온 신비한 돌탑 한반도-인도 잇는 소중한 유물 왕의 명에 따라 망산도에서 기다리니 서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횃불을 올리니 사람들이 육지로 내렸다. 한 신하가 대궐로 달려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기뻐하며 아홉 촌장[九干]을 보내 예의를 갖춰 왕후를 대궐로 모시게 했다. 이때 왕후가 아홉 촌장에게 말했다. “나는 본래 너희들을 모르는데 어찌 경솔하게 따라갈 수 있겠느냐?” 신하들이 돌아와 왕후의 말을 전하니 왕은 친히 행차해 대궐 서남쪽 산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고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