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팔만 정도인데도 인구 밀도가 매우 조밀한 이 작고 이상한 곳. 바닷가를 따라 마을이 긴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 어디서고 조금만 방향을 틀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어느 맑은 날, 시내를 따라 걷다보면 저 멀리 울산바위가 어떤 거룩한 속삭임처럼 드러나는 곳.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바다였던 옛 시간의 흔적이 무려 두 곳이나 호수로 남아 있는 곳. 걸어서 어디든 다다를 수 있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근래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생긴 곳. 사람들의 말투는 다소 거칠지만 대체로 친절한 곳.”
해가 서산 위에 걸리고, 산그늘이 내렸을 때 인민군이 한재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왔다. ‘욈소리쟁이’가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높은 목청으로 외쳤다. “인민위원회 회의가 있으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거무스레한 그늘이 드리워진 사장 마당에 마을사람들이 모였다. 아버지는 흰 바지와 맨 저고리 차림으로 마을사람 속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있었다. 아버지와 더불어 반동자로 지목된 남자들도 보였다. 여섯 마지기 이상 농사를 짓는 사람, 이장이나 어협조합 총대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 사람은
길고 긴 밤이 지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눈을 뜹니다. 이른 새벽이면 우리는 부지런히 소리를 내는데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소리를 ‘지저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지저귐을 들으면 누구나 정신이 번쩍 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지저귐에는 중생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아난존자와 두 앵무새의 성불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실 때 남에게 베풀기로는 으뜸인 급고독장자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급고독장자 집으로 갔고, 장자는 즐겁게 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19세기 초 영국식민지 시절에 조성다르질링(Darjeeling)은 인도 북동부 서벵골 주에 위치한 도시로 네팔에서 남쪽으로 뻗은 히말라야 산맥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2,123m에 위치한 이 도시는 세계 3대 명차(名茶) 산지로 유명하다. 면적은 서울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3,149 k㎡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다. ‘다르질링’이란 도시명은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비를 주관하는 신 인드라(Indra)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홀(笏) ‘도르제 링(Doreje Ling, 천둥번개가 머무는 곳)’에서 유래된 티베트어다. 다르질링은
매일아침 예불 올린 참 불자‘한국 상법학의 태두’로 불려무애(無碍) 서돈각(徐燉珏) 박사는 필자의 은사님이다. 제자로 은사님을 추모하는 글을 쓸 기회가 생겨 영광인 동시에 감개무량하다. 무애 선생은 1920년 11월 3일 태어났으니 11월로 꼭 탄신 100주년이 된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세상이 난리를 쳐서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가 어렵게 되어 무척 안타깝다.필자는 누구보다도 무애 선생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제자로서 합당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항상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부처님의 위대한 사상을 사해(四
가족구성원의 취향을 반영하고 주변 마을과 잘 어우러지는 단독주택을 짓는 과정은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런 집에는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제주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이창규(37) 씨를 만났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에이루트(a root architecture)’의 공동대표인 그는 제주에서 지역 건축과 이웃의 삶을 섬세하게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다.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는 감귤 꽃향기를 머금은 나지막한 돌담집이 있다. 소박한 민가 형태의 이 집은 가장 제주다운 공간을 누릴 수 있도
100년 전 영국 식민지 시절 개발고품질 차 연간 5,000톤 생산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마주하는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적도 부근에 자리하고 있어 연평균 기온이 32~34도를 웃돌지만, 중북부 정글 속 해발 1,500m의 고원지대는 연평균 기온이 15~20도에 불과할 정도로 선선하다.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은 이 비옥한 땅에 차나무를 심었는데, 바로 카메론 하일랜드(Cameron Highlands)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홍차의 산지, 카메론 하일랜드 차밭을 소개한다.
우리 집 부엌 안에는 창고를 겸한 골방이 있었다. 신혼의 아버지가 쓰던 방이고, 큰 누님이 태어난 곳이다. 그곳에는 씨앗 자루들, 포개진 곡식 가마니, 쪽파 씨, 마늘씨, 그리고 참깨·들깨 등의 양념재료가 쌓여 있었다. 드나드는 출입문과 뒤란 쪽의 손수건만한 창문은 쥐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양철로 붙여놓았으므로 한낮에 들어가도 어두컴컴했다. 골방어느 날 오후에 어머니 몰래 쪽파 씨를 훔쳐 화롯불에 구워 먹으려고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곡식 가마니 옆에 누워 있는 누군가의 두 눈이 뒤란 쪽 창문 틈으로 날아든 불
세상을 요란스레 적시던 장맛비가 잠시 주춤하던 7월 말, 유튜버 ‘별빛사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산동에 위치한 녹음실로 향했다. 건물 계단을 내려가자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는 찬불가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문을 여니 전자피아노·마이크 등 녹음장비가 빼곡하게 놓인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멤버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별빛사리’ 세 청년이 꿈을 키워가는 작은 공간이다.불심으로 뭉친 세 청년‘별빛사리’는 대중의 마음에 불심을 저격하겠다며 뭉친 청년불자 송우주(35, 본명 박정환)·송승현(32)·서정민(32) 씨로 구성돼 있다. 별빛사리는
인도는 붓다의 고향이다. 그래서 인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성지가 있다. 바로 198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치 불교기념물군(Buddhist Monuments at Sanchi)’이다. 공식 명칭은 ‘불교기념물’이지만 의미상 ‘불교유적군’으로 표기한다. 인도 보팔(Bhopal)에서 4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치(Sanchi)는 넓은 평야를 굽어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12세기까지 인도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던 산치에는 사원·왕궁·수도원·돌기둥 등 불교유적군이 있는데, B.C. 3세기부터 A.D. 1세기까
불연(不然) 이기영(李箕永, 1922~1996) 박사는 황해도 봉산군 만천면이 고향이다. 대지주의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41년 경성제대(현 서울대)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했고, 1943년 일제의 학병징용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5년 포로가 되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감금되었다가 해방과 동시에 석방됐는데, 집안에서는 전사한 것으로 간주해 제사까지 지냈던 터였다. 귀국 후 공산당 치하에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결국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가족과 함께 남하했다. 전쟁 당시 자리를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인사가 아무래도 좀 생뚱맞지요?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독자 여러분께 안부를 여쭈며 글을 시작해야 합니다. 본래 우리말에서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일종의 입버릇처럼 으레 건네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닙니다. 상대방과 자신의 ‘안녕’을 절실하게 걱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시절을 건너고 있기 때문입니다.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일명 코로나19의 기세가 한동안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습니다. 그 사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을 불화(佛畵)라고 한다. 하지만 불화를 비롯한 불교미술 분야는 활동 영역이 좁을 뿐 아니라, 급변하는 현대인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해 사양길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다. 전공자들마저 외면하고 있는 불교미술 분야에 웹툰(Webtoon)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이가 있다. 불교일러스트레이터 장정윤(31) 씨다.별 모양의 보관(寶冠)을 쓴 사랑스러운 요술공주가 한 손에는 여의주를, 한 손에는 마법지팡이를 들고 커다란 유리구슬 위에 앉아있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
“돌아가 쉬라 새여훗날의 아름다운 하늘 속으로네 지나간 자리엔감꽃 하나 지지 않았으니.”김사인 시인의 시 ‘새’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시인이 우리들 새의 모습을 참 잘 노래한 것 같아 가슴이 ‘찡’합니다. 아름답고 광활한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존재가 바로 우리들 새입니다. 우리는 작고 가볍습니다. 두 날개만으로 멀리 날아가야 하니 몸이 크거나 살이 찌면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새들이 다 그렇게 작고 여리지는 않습니다. 작은 꽃 속을 드나들어도 꽃잎 하나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몸집인 벌새가 있는가하면, 날개
2,800년 茶王樹 비롯천년 차나무 군락 이룬천혜의 차나무 박물관우리나라도 보이차(普洱茶) 열풍이 분지 이미 오래여서 적지 않은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보이차는 공차(貢茶)의 한 종류인데,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 유방이 건국) 이전에 이미 야생차나무를 발견했던 토착 소수민족인 백복족(百濮族)이 찻잎을 가공했고, 이후 하니족(哈尼族)·라후족(拉祜族)·와족(佤族)에게 제다기술이 전해졌다고 한다. 현재 보이차 생산은 기업화되어 있는데, 이번 호는 이런 점을 고려해 독자들이 자주 접하기 힘든 수
고백합니다. 이번 호에는 일본 고전수필을 대표하는 요시다 겐코(吉田兼好)의 〈도연초(徒然草)〉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꺼내 읽던 중에 ‘아차!’ 싶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주옥같은 글을 먼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당대인(當代人)의 삶은 아프고 뜨겁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땀땀이 남긴 선조들의 소중한 기록을 한낱 옛것이라고 저만치 밀쳐놓고 있었다니요.겨레 얼 빛낸 거장들의 글 모음
학교에 가던 아이들은 사장나무 밑에 모여 떨고 있었다. 나도 그 가운데 들어 있었다. 구레나룻이 까만 하사관 하나가 우리들 앞으로 걸어왔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던 그는 문득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고, 세상이 온통 어질어질 기우뚱거렸다. 나를 질질 끌고 가서 논둑 밑에 꿇어앉히고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뱀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혼겁한 채 떨었다. 하사관이 “너희 학교에 굴 있지? 사람들 숨는 굴 말이야.”하고 물었다. 굴(窟)나는 학교 뒤뜰 변소 옆 언덕에 있던, 일제 때의 방공호를
‘실론(Ceylon)’으로 불리던 시절, 스리랑카는 ‘인도의 눈물’ 혹은 ‘인도양의 눈물’로 불린 적이 있다. 섬의 모양이 물방울처럼 생겼기 때문에 생겨난 별칭이다. 그런데 스리랑카의 긴 역사 대부분이 고난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도의 눈물이 아니라 ‘스리랑카의 눈물’ 혹은 ‘싱할라족의 눈물’이라고 불려야 될 듯하다. 고난이 닥칠 때마다 그들은 왕실을 중심으로 슬기롭게 극복했는데, 스리랑카 왕실의 정신적 지주는 불교였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진 때는 기원전 3세기로, 인도 마가다국 마우리아 왕조의
‘블로그(Blog)’는 자신의 관심사나 생각을 글과 사진을 통해 자유롭게 게시하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개인 웹사이트다. 블로그의 글은 △여행 △스포츠 △패션 △요리 등 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으며, 간단한 검색으로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위스덤 커플(Wisdomcouple)’은 강혜성(34)·최지윤(29) 부부가 사진과 짧은 글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블로그다. 여행·데이트·농촌체험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고, 특히 템플스테이를 체험한 후기가 잘 정리되어 있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
소사 백성목장과 〈금강경〉 법회백성욱(1897~1981) 박사님은 말년의 대부분을 소사 백성목장에서 보내셨다. 타계하시기 얼마 전 거처를 한강변 반도아파트로 옮기시고 거기서 열반하셨다. 나는 2019년 9월 소사 백성목장 옛터를 도반들과 함께 방문하고 박사님의 사리탑에 참배했다. 백성목장은 내가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을 온 곳이기도 하다.현재 그곳에는 선생님이 기거하시던 건물은 없어졌고, 선생님의 사리탑과 동국대학교에서 세운 비석만 남아있다. 원래 경기도 장흥 대승사에 모셨는데 어느 해 큰 홍수로 유실되기 직전에 이선우 도반 등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