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 연꽃향기 담아 부처님 가르침 전해요.”

매일 작품에 대한 고민을 삶의 화두처럼 붙잡고 있는 장정윤 작가는 불교미술을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있다.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을 불화(佛畵)라고 한다. 하지만 불화를 비롯한 불교미술 분야는 활동 영역이 좁을 뿐 아니라, 급변하는 현대인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해 사양길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다. 전공자들마저 외면하고 있는 불교미술 분야에 웹툰(Webtoon)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이가 있다. 불교일러스트레이터 장정윤(31) 씨다.

별 모양의 보관(寶冠)을 쓴 사랑스러운 요술공주가 한 손에는 여의주를, 한 손에는 마법지팡이를 들고 커다란 유리구슬 위에 앉아있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원한다는 대자대비보살인 ‘지장보살’을 불화 성격의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장정윤 작가의 작품이다.

부전공으로 시작한 미술콘텐츠학

장 작가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성적인 아이였다. 혼자 공책에 그림을 그리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녀의 공책에는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이 가득했고, 친구들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기도 했다. 학급반장보다 미화부장을 도맡아 했던 그녀는 미술시간을 가장 좋아했고, 기다렸다.

서양화를 전공한 어머니는 동네에서 초·중학생을 상대로 미술과외를 했다. 덕분에 그녀는 미술학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원하는 그림을 실컷 그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수시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화가를 꿈꾸던 그녀는 미대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미술은 취미로만 삼길 바라던 부모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접고, 서울대학교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삼육대학교 동물자원학과에 진학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낯선 전공과목에 적응하지 못했고,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아 당시 전공 성적은 부끄러울 정도였다.

“학교 다니는 재미를 점점 잃어갔어요.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강의시간표를 짜는데 듣고 싶은 과목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고민 끝에 제가 배우고 싶었던 과목을 찾아 복수전공으로 미술콘텐츠학(현 아트앤디자인학)을 선택했어요. 뒤늦게 결정한 선택인 만큼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컸죠. 정규수업이 끝나면 화실을 다니면서 민화와 유화를 배웠어요. 늘어난 과제에 몸은 고단했지만 내가 원하던 걸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냥 행복했어요.”

장 작가는 자라면서 불교와 그 어떤 인연도 없었다. 그저 책 읽는 걸 좋아해 성인군자의 말씀이나 자아성찰에 관한 철학서, 명언이 담긴 책을 주로 읽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가끔씩 사찰을 찾아 마음에 평화를 얻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요한 사찰에서 강렬한 장면과 마주치게 됐으니, 바로 경내에 걸린 탱화였다. 진한 채색은 아니지만 오묘하고 신비한 보색(補色)이 발산하는 황홀감에 압도됐다.

장엄했던 탱화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틈만 나면 사찰을 찾았다. 관련 전시회가 열리면 어디든 가서 불화를 감상했다. 대학교 졸업작품도 연꽃을 주제로 삼았다.

졸업 후에는 ‘불화의 아름다움에 나만의 색채를 녹여낸 작품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교미술 전공자처럼 그릴 수는 없겠지만 새롭게 재해석한 불화를 대중적인 이미지로 녹여낸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붓다아트페스티벌과 대원상

전시회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카페에서 1년 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노트에 기록하고 그렸다. ‘관세음보살’은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는 불교의 보살이라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 위험에서 구해주는 원더우먼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원더우먼’이다. 이 작품에서 원더우먼은 커다란 연꽃잎에 앉아 버드나무 가지가 든 감로수병을 안고 있다. 인맥도 학맥도 없이 모든 전시 과정을 혼자 준비해야 했지만 작품을 준비하고 구상하면서 점차 작가로서 역량이 쌓이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다. 장 작가는 작품 ‘원더우먼’을 시작으로 전통불화를 재해석한 현대적 느낌의 ‘관세음보살 시리즈’를 그려나갔다.

27세가 되던 2016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일환으로 열린 제4회 붓다아트페스티벌에 불교미술작가로 참가하면서 그녀의 본격적인 불교크리에이터 활동이 시작됐다. 장 작가는 직접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부스를 운영했다. 현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처음 시도한 일러스트 불화에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관람객들이 자신이 그린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다.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제5회 붓다아트페스티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두 번째 전시회 때는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도 생겨났다. 세 번째 전시회인 제6회 붓다아트페스티벌을 마친 후에는 각종 방송출연과 인터뷰 제의가 쏟아졌다.

“취업준비를 해야 할 바쁜 시기에 전시회 준비를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주변 친구들에게 조차도 작품을 보여주지 않다보니 전시회 직전까지 마음을 많이 졸이셨던 모양이에요. 당시 저는 힘들고 불안했지만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염려 가득하셨던 부모님은 첫 전시회를 다녀가신 후 저에 대한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고 계세요.”

제15회 대원상에서 콘텐츠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붓다, 얻다’의 두 작품.

그녀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시기는 2017년 (재)대한불교진흥원에서 주최한 제15회 대원상에서 일러스트레이션 ‘붓다, 얻다’로 콘텐츠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수상작은 현대 의약품을 활용해 약사여래불로 형상화한 ‘약왕의 여래약국’과 인형뽑기 기계에 부처님을 접목한 ‘불락기(佛樂機)’다. 두 작품은 당시 참신하고 재미있게 불교 이미지를 접하게 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2017년에는 ‘행복한 돼지 부처 시리즈’를 작업하며 만들었던 캐릭터 ‘땡지’가 국내 최대 규모의 캐릭터 잡지인 〈아이러브캐릭터〉에서 ‘캐릭터’상을 받았다. 돼지해인 2019년에 홍콩의 대형 쇼핑몰 두 곳과 ‘땡지’로 협업을 한 일도 꿈만 같다. 장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울 연등회 불교문화마당의 청춘마당 전시체험,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불교방송 패널, 에세이 집필 등을 통해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으며 자신만의 분야를 구축하고 있다.

‘행복한 돼지 부처’ 시리즈가 홍콩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2019년 홍콩의 대형 쇼핑몰 MCP1(Metro City Plaza one) 전체가 장 작가의 캐릭터 ‘땡지’로 꾸며지기도 했다.

작년에는 조계종 포교원에서 위촉한 불교크리에이터 1기생으로 선발돼 만화콘텐츠 제의를 받고 웹툰 불교동화 ‘별세음공주 공덕연’을 SNS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멈춰있는 일러스트 작품을 보여줬다면 웹툰은 시나리오를 짜고 대화체로 엮어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 작업이라 새로웠다. ‘별세음공주 공덕연’은 연꽃에서 태어난 공주 덕연이 작은 암자의 주지인 평림 스님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잔잔한 성장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찰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한 회당 10컷의 만화 스케치를 완성하면 연출이나 설정이 부자연스럽지 않은지 스님의 조언을 듣거나 불자인 지인에게 피드백을 얻기도 했다.

불교에 빠진 연꽃공주 ‘德蓮’

사실 웹툰 속 주인공인 연꽃공주의 이름인 ‘덕연(德蓮)’은 장 작가의 법명이다. 불교계에서 작품활동을 많이 하게 되면서 법명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템플스테이에서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으로 있던 혜안 스님이 지어주었다. 이후 공덕을 의미하는 ‘공’이라는 성을 붙여 캐릭터 이름을 만들었다.

“웹툰 한 회분을 올릴 때마다 출가(出家)를 시키는 기분이 들어요.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저만의 작품스타일을 고수하되 부처님 가르침도 놓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불교 전공자가 아니라 불교를 좋아하는 작가의 작업이다 보니 혹여 교리나 신앙적인 부분에서 놓치는 게 없는지, 너무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지 보다 꼼꼼하게 확인하게 돼요. 간혹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휴식을 취하는 편이에요. 전시관을 찾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영감이 불현듯 떠오르거든요. 지나치게 잘하려는 욕심을 버릴 때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SNS에 연재한 웹툰 ‘별세음공주 공덕연’. 사찰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세심하게 캐릭터와 스토리를 완성시켜나갈 계획이다.

장 작가는 요즘 코로나19로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가 줄어들면서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고 있다. 본의 아니게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게 됐지만 다음 작업물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는 않는다. 이전에 작업했던 ‘지장보살도 시리즈’가 합장을 하거나 손에 여의보주를 든 정적인 작품이었다면, 지금은 몸을 움직여 수행을 하는 요가를 테마로 한 동적인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교크리에이터 1기에서 만난 젊은 창작자들과 유튜브 채널 ‘고사리유랑단(GO!사리)’을 개설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찰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불교에 대한 편견을 깨고 불자와 비불자 간의 벽을 낮추는 예능형 포교채널이다. 평소 일반인들이 불자들에게 가지고 있던 궁금증도 솔직하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직업에 따라 각자 받는 스트레스가 모두 다르겠지만 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버티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른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마다 신기하게도 매번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어요. 이번 영상콘텐츠 ‘고사리유랑단’ 제작 참여를 통해 불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에게 제가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아보려 해요. 지금은 창작자로써 여러 방향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해서 불교만화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대표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지금의 작품 활동들이 은은한 연꽃향기처럼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불교는 인연의 종교다. 사찰의 분위기에 한껏 취했다가 눈을 떠보니, 이미 불연(佛緣) 깊은 불자가 되어 있더라는 장정윤 씨. 시대 변화에 둔감하고, 새로운 문화콘텐츠와의 접목을 두려워하는 불교계에 창작열 뜨거운 젊은 불교일러스트레이터의 등장이 반갑기 이를 데 없다. 그녀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불교계 각 종단의 관심을 통해 관련 콘텐츠 산업이 보다 활발해져 제2, 제3의 장 작가가 보다 많이 발굴되길 기대해본다. 

장 작가는 지난 8월 불교크리에이터 1기에서 만난 창작자들과 ‘GO!사리’를 결성하고, 불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유튜브에 ‘고사리유랑단’을 검색하면 전국 사찰을 종횡무진 누비는 최신 영상들을 만날 수 있다. 영상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된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