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인접한 산비탈에 초록의 보물섬 펼쳐져

기차의 종착역인 꾸르세옹은 다르질링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다르질링 차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막카이바리 다원이 있다.

19세기 초 영국식민지 시절에 조성

다르질링(Darjeeling)은 인도 북동부 서벵골 주에 위치한 도시로 네팔에서 남쪽으로 뻗은 히말라야 산맥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2,123m에 위치한 이 도시는 세계 3대 명차(名茶) 산지로 유명하다. 면적은 서울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3,149 k㎡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다. ‘다르질링’이란 도시명은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비를 주관하는 신 인드라(Indra)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홀(笏) ‘도르제 링(Doreje Ling, 천둥번개가 머무는 곳)’에서 유래된 티베트어다. 다르질링은 이런 이름에 걸맞게 변덕스런 구름이 자주 몰려와 소나기를 뿌려 늘 습도가 높고, 흙이 산성이어서 차나무 재배로는 최적지로 꼽힌다.

원래 다르질링은 불교왕국인 시킴(Sikkim, 1642~1975)의 영토로, 티베트 고승 파드마삼바바는 이곳을 ‘약속의 땅’, ‘숨겨진 보석’, ‘과일과 꽃의 땅’이라 부르며 티베트 불교가 훗날 이곳에서 번창하리라 예언한 바 있다. 당시 이곳은 네팔의 구르카용병(Gurkha mercenaries)이 식민통치를 하고 있었다. 1814년부터 2년간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시킴, 즉 다르질링은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820년대 영국은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의 3분의 1 가량을 점령해 대영제국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전, 중국에서 막대한 양의 차를 수입해야했던 영국은 그것만으로는 물량이 부족하자 중국산 차나무를 인도에서 직접 키우고자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씨앗과 묘목을 몰래 빼내어 인도 곳곳에서 몇 년간 실험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때 유일하게 차 묘목이 살아남아 재배에 성공을 거둔 곳이 바로 다르질링이다. 이때가 다르질링이 명차 산지가 되는 출발점이다.

불모지였던 땅이 다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에는 계절의 기온변화와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다르질링은 사계절이 온대성 기후로 일찍이 영국인들이 하계 휴양지로 지목한 곳이다. 봄의 기온은 20℃ 전후로 선선한 반면, 겨울은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 눈이 내리기도 한다. 특히 여름 몬순(Monsoon)시즌에는 비가 지루할 정도로 내린다. 산맥으로 형성된 지형이어서 하루에도 수차례 해와 바람과 비가 심술을 부리는 변덕스런 날씨다.

이런 변화무쌍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다르질링에 차나무가 뿌리를 잘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에 심은 차나무가 비바람에 잘 견디는 소엽종이고, 기후도 중국 차나무의 본고장 중 한 곳인 복건성(福建省, 푸젠성) 무이산의 환경과 흡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아쌈(Assam)의 대엽종과 소엽종을 접목시킨 차나무도 늘고 있는 추세다.

지역의 명물인 로프웨이를 타면 차나무들이 울창한 숲속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을 한다. 딱벌다원과 그 너머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다원의 모습까지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로프웨이에서 내려본 딱벌다원

다르질링 행정구역에는 공식적으로 82개(2014년 기준)의 다원이 있는데, 이 차밭에서는 인도 차 총생산량의 5%에 해당하는 9,000톤 정도를 매년 생산하고 있다. 필자가 2014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특이한 이름을 가진 ‘딱벌다원(Tukvar Tea Estate)’이 유독 여행자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시내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인 싱아마리(Singamari) 마을 산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트레킹 삼아 가보기로 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찾아가던 중에 지역의 명물인 로프웨이(Ropeway, 케이블카)를 타고 다원을 감상할 수 있다는 팁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힘들게 산비탈을 오르내리지 않고도 한눈에 풍경을 담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로프웨이에서 내려다보니 차나무들이 울창한 숲속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을 하는 듯 했다. 마치 다랑이 논이 연상되듯 초록빛 파도가 너울거리는 모습이 사라질까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딱벌다원 너머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다원의 모습까지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장관은 로프웨이를 탄 승객들만의 특권이다.

다원에 닿으면 시간을 넉넉하게 배려해준다. 이때 초록 융단 길을 따라 걷다보면 힐링이 따로 없다. 가이드가 “이제 그만, 타세요!”라고 말할 때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원에는 차를 판매하는 상점도 갖추어져있어 여러 품종의 차를 선물용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이드가 별도로 상점을 안내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로프웨이에서 내린 후 우리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혹시 딱벌다원에서 로프웨이 여행을 하게 된다면 탑승한 차가 허공에서 멈추더라도 놀라지 않길 바란다. 추억을 담아가라는 셀카 타임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르질링에서 생산되는 차는 인도 차 중에서 처음으로 ‘지리적 표시제(GI)’ 사용허가를 받았다. 지리적 표시제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상품의 품질과 명성이 생산지의 기후와 풍토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허가하고 있다.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와인에 ‘삼페인(Champagne)’, 스코틀랜드 위스키에 스카치(Scotch), 영국 체다 지방의 치즈에 ‘체다(Cheddar)’라는 상표명을 붙여 판매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르질링 차밭에서 차를 따는 현지 여인(바간나이). 〈사진=오월〉

실제 인도차연구협회가 다르질링의 차나무를 다른 지역에 심었는데, 차나무는 뿌리를 내렸지만 다르질링 차의 향미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남인도의 차나무를 다르질링에서 재배했더니, 특유의 향미를 띠었다고 한다. 토질과 기후가 차 맛을 좌우한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다르질링 차의 수확과 향미

이 지역은 4월 늦봄부터 시작해 가을까지는 차를 수확하는 성수기,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차나무가 동면으로 접어드는 비수기다. 작황이 좋을 때 2월 말부터 수확하기도 하는데, 이때부터 4월까지 수확한 새싹으로 만든 차를 ‘퍼스트 플러시’(First Flush) 또는 ‘첫물차’라고 부른다. 퍼스트 플러시는 품질이 높은 반면 생산량이 매우 한정적이어서 가격 또한 비싸다. 우려내면 색이 연하고 꽃향기가 나는데, 주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 수출을 한다.

‘퍼스트 플러시’는 3~4월에 수확하는데 세 번째 새싹까지 딴다. 품질이 좋지만 생산량이 한정적이어서 가격이 비싸다. 시계방향으로 퍼스트 플러시, 세컨드 플러시, 오렌지 페코, 화이트 티이다. 〈사진=오월〉

이에 비해 5~6월경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는 ‘세컨드 플러시(Second Flush)’ 또는 ‘두물차’라고 부른다. 세컨드 플러시 또한 매우 훌륭한 차다. 차나무가 왕성하게 성장할 때 수확했기 때문에 맛과 질감이 퍼스트 플러시보다 강하다. 찻물도 진하고 과일향이 감돈다. 특히 세컨드 플러시 중 첫 2주 간 생산한 차를 머스캣(Muscat) 포도에 견줄만한 향미라고 해서 ‘무스카텔 티(Muscatel Tea)’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잠깐 동안 진딧물이 발생하는데, 이때 잎에 난 상처에 효소반응이 일어나면서 이 같은 특징을 띠게 된다. 이밖에 7~8월 우기 때 수확한 찻잎으로 생산하는 차를 ‘몬순플러시(Monsoon Flush)’, 10~11월 수확한 차를 ‘오텀플러시(Autumn Flush)’라고 부른다.

여러 형태의 시즌 차(Season tea)는 이렇게 다르질링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차를 생산해낸다. 또한 동일한 다원에서 자란 찻잎도 어느 쪽의 공기와 햇볕을 쪼이고 자랐느냐에 따라 풍미가 다르다보니 다원마다 전통적이고 일관성 있는 차 상품이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빈티지(Vintage) 홍차의 천국’이다. 이 차 또한 ‘머스캣 플레버(Muscat Flavor, 백포도향)’의 독특한 향을 자랑한다. 실제 머스캣 향은 중국의 오룡차(Olong, 녹차)나 키먼차(Keemun, 기문차)와 향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차의 색도 분류·등급·공정·시즌에 따라 다채롭다. 맑고 상큼한 색부터 연한 블루, 때론 진갈색이나 옅은 황금색 또는 비취색으로 카멜레온 같은 색깔이 나온다. 이렇게 다양한 색깔은 아쌈이나 다른 지역의 차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또 차의 종류에 따라서도 색의 조화는 끝없이 변신한다. 문라이트 티(Moonlight Tea)와 화이트 티(White Tea), 스노우 티(Snow Tea)까지 차 한 잔 속에서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매력이 세계시장에서 다르질링 명차가 주목받게 한 요인일 것이다.

다르질링 시내버스터미널 근처에는 조크 바자르(Chowk Bazzar) 재래시장이 있다. 수많은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시장 골목을 누비며 어떤 차를 살까 상점을 기웃거린다. 외국인 손님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상인들은 제일 비싼 첫물차를 팔려고 안달이다. 그러나 필자는 두물차를 권하고 싶다. 맛과 향, 색에서 나무랄 바 없는 반면 가격은 첫물차에 비해 무척 저렴하기 때문이다.

차향과 함께 하는 히말라야 여행

다르질링은 차밭으로 유명하지만,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다르질링 시내에서 32km 떨어진 곳에 ‘꾸르세옹(Kurseong)’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 가려면 색다른 경험을 해야 하는데, 바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히말라야 열차를 타 보는 것이다. 원래 차 운송을 위해 영국 식민지시절이던 1881년 만들어진 두 량의 기차로, ‘장난감 기차(Toy train)’라는 닉네임이 붙은 오리지널 증기기관차다. 이 열차를 권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 꾸르세옹에서는 일명 ‘장난감 기차’를 타볼 수 있는데,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층층이 펼쳐진 다원을 감상할 수 있다. 영국 식민지시절이던 1881년 차 운송을 위해 만들어진 두 량의 기차는 매일 한번 왕복 운행한다. 〈사진=오월〉

운행은 매일 왕복 한 번, 좌석도 한 량에 30석 뿐이기 때문에 몰리는 관광객들로 일주일 전부터 예약을 서둘러야한다. 그래서 갈 길이 바쁜 여행객들은 이 기차를 타게 된 것을 인드라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창가에 앉아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층층이 펼쳐진 다원만 감상해도 비용과 시간이 아깝지 않다. 길을 따라 휘어진 코스에서는 히말라야 설산이 고개를 내밀었다 숨었다한다.

마을로 진입할 무렵에는 상인들이 철길 위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위험해보여 마음을 졸이게 되는데, 멀리서 울려오는 기차의 경적소리를 듣고 좌판을 걷어내는 행동이 꽤나 민첩하다. 간혹 미처 물건을 챙기지 못한 상인이 있으면 기관사가 알아서 멈추고 기다려준다.

꾸르세옹의 철길 옆에는 상점과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사진=오월〉

32km를 두 시간에 걸쳐 달리는, 인도 특유의 여유와 느긋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기차의 매력 또한 산악열차답게 지그재그로 기울어지면서 굽이굽이 산허리까지 올라가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출발하는 여유로움이다. 일부 주민들은 “너무 답답해요. 자전거로 가는 게 더 빨라요.”라고 말하지만, 대다수는 이 기차에 애착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편도 30루피(한화 대략 400원)의 착한 가격도 한몫하고 있다. 꾸르세옹 마을도 시원하고 건조한 여름 날씨로 영국인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이 곳 또한 시킴왕국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주민의 80%가 불교신자이며 대문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표시로 ‘타르초(Tharchog)’를 걸어놓고 있다. 다원에서는 룽다(Lungda, 만국기)가 펄럭이며 오색물결을 만들어낸다. 크고 작은 다원들은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기차의 종착역인 꾸르세옹에는 다르질링 차의 롤 모델이랄 수 있는 막카이바리 다원(Makaibari Tea Estate)이 있다. 지금의 오너는 라자 바네르지(Rajah Banerjee) 4세인데, 그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다르질링의 차밭.

20여 년 전, 그가 영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 말을 타고 농장을 거닐 던 중에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그는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커다란 나무가 “라자를 살려 주세요!”하고 외치는 환청을 들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향에 정착해 아직까지 차와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의 OBS채널에서 중국 CCTV의 ‘차(茶)이야기’를 연속기획으로 방영 한 바 있다. 막카이바리 다원과 라자 바네르지는 이 프로그램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방문객을 위해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있는데, 2005년부터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며칠 지내면서 바간나이(Baganai, 찻잎 따는 여인)들과 찻잎도 따고 홍차 만드는 과정도 지켜보는 마니아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요. 룸을 더 늘려야하나.” 라자의 행복한 고민이다. 이곳의 차 중에서 ‘실버 팁 임페리얼 오가닉 티(Silver Tips Imperial Organic Tea)’는 일반차의 두 배 정도의 높은 가격으로 영국·미국·일본에 팔려나간다. 또 ‘실버 그린 하우스 티(SilverGreen House Tea)’는 전매 특허권을 갖고 있다. 또 고가로 거래되는 차 중에는 이른 봄에 출시되는 퍼스트 플러시가 있는데, 원형 그대로 제조된 온 잎(통 잎)이다. 언뜻 녹차로 보일 정도로 연녹색이지만 홍차다. 유럽인들이 이 다원의 홍차를 유난히 선호하는 이유는 품질도 좋거니와 자칫하면 파괴될 수 있는 온 잎차를 포장까지도 완벽하게 관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라자 바네르지는 마케팅에도 정성을 다하는 탁월한 오너가 분명하다.



오월
본명은 김영자. 인도 아쌈 다원과 다르질링 다원에서 전문 티 마스터(Tea Master) 과정을 이수한 다원여행가이자, 홍차문화서포터다. 아쌈 티와 다르질링 티 전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아쌈 차차茶〉·〈인도 아쌈에 취하고 마줄리에 빠지다〉·〈여왕의 입맛을 훔친 홍차를 만나다〉·〈홍차 로드〉 등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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