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힘없는 ‘을’의 마음을 아시나요?”

“돌아가 쉬라 새여
훗날의 아름다운 하늘 속으로
네 지나간 자리엔
감꽃 하나 지지 않았으니.”

김사인 시인의 시 ‘새’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시인이 우리들 새의 모습을 참 잘 노래한 것 같아 가슴이 ‘찡’합니다. 아름답고 광활한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존재가 바로 우리들 새입니다. 우리는 작고 가볍습니다. 두 날개만으로 멀리 날아가야 하니 몸이 크거나 살이 찌면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새들이 다 그렇게 작고 여리지는 않습니다. 작은 꽃 속을 드나들어도 꽃잎 하나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몸집인 벌새가 있는가하면, 날개를 활짝 펼치면 4~5미터는 되는 알바트로스 같은 큰 새도 있으니까요.

왕의 겨드랑이로 숨어든 비둘기

하지만 새는 대체로 작고 여리고 그래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다뤄집니다. 게다가 지구상에 9,000여 종이나 있다고 하니 어쩌면 너무 많아서 우리 존재는 무시당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체수가 많다고 해도 그 모두는 저마다 세상에서 오직 딱 하나뿐인 목숨입니다. 그 모든 목숨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동안 죽기 살기로 힘을 내고 있습니다. 꽃잎 하나도 흔들지 못하는 가벼운 존재지만 “허공에 몸을 띄운 / 근육의 내밀한 긴장과 핏발 선 두 눈”으로 최선을 다해 날고 있다고 김사인 시인도 노래했지요.

이런 사정인데 어떤 목숨은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하찮고, 어떤 목숨은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걸까요? 귀천의 잣대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숨은 그 자체로 모두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목숨 무게가 평등하다는 것을 흥미롭게 들려주는 경전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고 오래 전 옛날, 시비왕(尸毘王)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세속 권력이 아닌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어서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노라 다짐을 했습니다. 어느 날 숲 속 나무 아래에서 고요히 참선에 들어있는데 갑자기 비둘기 한 마리가 다급하게 날아왔습니다. 비둘기는 왕의 겨드랑이 아래에 머리를 파묻고 바들바들 떨었지요. 깜짝 놀란 왕이 어쩌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비둘기를 내어 주시지요. 내가 먹을 양식입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매가 왕의 겨드랑이로 숨어든 비둘기를 노려보며 말했지요.

“그럴 수는 없다. 나는 모든 생명들을 보살피고 구제하겠다고 맹세를 한 수행자다. 그런데 어찌 이 비둘기를 네 식량으로 내어줄 수 있겠는가?”

왕의 대답에 매가 말했습니다.

“모든 생명을 보살피고 구제하겠다고 했습니까? 나도 그 모든 생명에 들어갑니다. 나는 그 비둘기를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날 보고 굶어죽으라는 말인가요?”

“내가 다른 걸 주겠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

“나는 갓 잡은 고기만 먹습니다.”

난처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뭐든 금방 죽여서 먹겠다는 것입니다. 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신하를 불러 명했습니다.

“칼을 가져오너라. 내 다리 살을 베어서 매에게 주어야겠구나.”

그러자 머리 위의 매가 못을 박듯이 말했습니다.

“이왕이면 저 비둘기 무게만큼 베어 주십시오. 비둘기보다 조금이라도 고기 양이 덜하면 난 받지 않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울을 가져오게 해서 저울 접시 한쪽에는 비둘기를 올려놓았고, 다른 접시에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올렸습니다. 비둘기 쪽이 많이 내려가 있었습니다. 왕은 다시 자신의 살을 조금 더 베어서 접시에 올렸습니다. 여전히 많이 모자랍니다. 조금씩 조금씩 베어내 온몸의 살을 거의 다 베어 접시에 올렸지만 비둘기 쪽 접시와 평형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왕이 직접 저울 접시에 올라앉았습니다. 그때서야 비둘기와 무게가 같아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매가 물었습니다.

“아니, 왜 이런 일까지 벌이시는 겁니까? 그냥 저 비둘기만 내게 넘기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지요.”

온몸의 살을 베어내서 커다란 고통에 시달리던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 비둘기는 내게 와서 의지했다. 살려달라고 내게 매달린 목숨을 어떻게 너에게 내어주겠느냐? 나는 부처가 되기 위해 저울에 올라앉았으니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고작 비둘기 한 마리를 살리려고 제 목숨을 내놓은 왕의 말이 끝나자 천지가 진동하면서 ‘시비왕은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는 찬탄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어느 사이 비둘기와 매는 사라졌고, 왕의 몸도 상처 하나 없이 회복됐습니다. 비둘기와 매는 하늘의 신이 왕의 발심을 시험하려고 그런 상황을 펼쳐 보인 것이라고 〈중경찬잡비유경〉은 설명합니다.

비둘기 한 마리의 목숨이 한 나라 왕의 목숨과 같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잡아먹히는 쪽의 목숨과 잡아먹으려는 쪽의 목숨이 똑같이 소중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잡아서 먹고 삽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무엇인가에 잡아먹히겠지요.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죽인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둘기와 왕의 일화는 이 같은 삶의 아이러니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둘기와 매와 왕, 어느 쪽 목숨이 더 소중한가요?

시비왕이 비둘기를 구해주는 내용의 경전 내용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목숨 무게는 동일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 자고새

작고 여린 탓에 늘 힘센 녀석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는 운명이야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하나만의 죽음이라면 또 모릅니다. 다른 동료까지 죽

음으로 몰아넣는 미끼가 되고 있으니 문제지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랜 옛날 히말라야 가까운 곳에 새 사냥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냥꾼은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자고새 한 마리를 잡아서 조롱에 넣어 길렀습니다. 그는 새 사냥을 하러 숲으로 갈 때면 자고새를 넣은 조롱을 들고 갔지요. 자고새의 지저귐을 듣고 온 숲의 자고새들이 날아오면 그걸 잡아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자 자고새는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저귀지 않으리라 맹세했지요.

새 사냥꾼이 숲으로 자고새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자고새는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냥꾼은 작대기를 조롱에 넣고 자고새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온 수많은 자고새들은 사냥감이 되어 붙잡혀서 팔려나갔습니다.

자고새는 지독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내 동료를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결국은 나 때문에 다들 붙잡혀서 죽었으니까. 이 사람은 나로 인해 날마다 살생의 악업을 짓고 있잖아. 어쩌면 좋을까? 이 모든 죄는 언제고 반드시 괴로운 과보로 돌아오겠지.’

자고새는 언제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현자를 만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입니다. 사냥꾼이 숲으로 새 사냥을 나갔다가 더위에 지쳐 연못가 근처에서 낮잠을 청했습니다. 자고새가 들어 있는 조롱은 어느 나무 아래에 두었는데 마침 그곳에는 숲 속의 현자가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현자 만나기를 고대했던 자고새는 더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사냥꾼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린 끝에 낮은 소리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지요. 새는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겠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현자가 물었습니다.

“네 마음에 동료들을 죽이겠다는 생각이 있었던가?”

“없었어요. 절대로 그들을 죽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 때문에 다들 죽임을 당했지요.”

숲속의 현자는 자고새에게 말했습니다.

“네 마음에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는데 어찌 네가 악업을 지었다고 하겠느냐? 너는 악업을 지은 것도 아니고 악업에 따라 괴로운 과보도 받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놓아라.”

자고새의 괴로움과 불안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바로 그때 사냥꾼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숲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꿈에도 모른 채 자고새가 들어 있는 조롱을 들고 숲을 떠나갔지요.(〈자타카〉 319번째 이야기)

명령을 거역하지 못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을’의 괴로움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세상은 권력의 서열이 매겨져 있습니다. 아무리 그런 질서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살겠다고 외쳐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갑이나 을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갑이면서 을의 위치에 있고, 을은 또 자기보다 더 작고 힘없는 병 위에서 권력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렇다면 갑이니 을이니 병이니 하면서 자꾸 서열을 매길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목숨이 다 그처럼 나약하고 안타까운 것이라고만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경전에 등장하는 우리들 작은 새의 모습은 바로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당신의 목숨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권력의 부림으로 원치 않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더라도 스스로를 비하하지는 말라는 것이지요.(계속)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