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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그땐그랬지11_6.25 전쟁 속에서
  • 글·한승원 삽화·전병준
  • 승인 2020.09.1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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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부엌 안에는 창고를 겸한 골방이 있었다. 신혼의 아버지가 쓰던 방이고, 큰 누님이 태어난 곳이다. 그곳에는 씨앗 자루들, 포개진 곡식 가마니, 쪽파 씨, 마늘씨, 그리고 참깨·들깨 등의 양념재료가 쌓여 있었다. 드나드는 출입문과 뒤란 쪽의 손수건만한 창문은 쥐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양철로 붙여놓았으므로 한낮에 들어가도 어두컴컴했다.

골방

어느 날 오후에 어머니 몰래 쪽파 씨를 훔쳐 화롯불에 구워 먹으려고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곡식 가마니 옆에 누워 있는 누군가의 두 눈이 뒤란 쪽 창문 틈으로 날아든 불그죽죽한 빛에 말똥거리고 있었다. “놀라지 마라. 나, 네 이종사촌형이다.”하고 속삭이며 나의 손 하나를 끌어다가 자기의 두 손으로 감싸 토닥여주었다. 나는 그의 낮은 숨결 소리와 땀내 어린 체취에 몸을 움츠렸다. 이종사촌형 이름은 갑년이었는데, 그는 남로당 선전부에 가담해서 활동하다가 경찰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광주형무소에 갇힌 외삼촌하고 동갑이었다.

다음날 오후 경찰부대가 마을을 포위하고 총을 쏘아대며 마을의 모든 집들을 수색했다. 대장 한 명은 우리 집 뒤쪽 동산의 높다란 계단밭에 서서 마을의 동태를 살피며 수신호와 호루라기로 지휘를 하며 튀어 날아나는 자가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경찰들이 들이닥쳐 우리 집안을 샅샅이 뒤져 골방의 이종사촌 형을 잡아가면 어쩔까.

아버지는 출타하고 없었고, 어머니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사색이 된 채 부엌과 방과 마루를 들락거리던 어머니는 디딜방아에 나락을 넣고 찧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누님과 함께 어머니가 방아 찧는 것을 도왔다. 천정에서 데룽거리는 끈을 잡은 어머니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숨결도 떨었다. 이때 경찰이 들이닥치면 어머니의 동태만 보고도 누군가를 숨겨놓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었다.

그런데 마을의 다른 집들을 샅샅이 뒤질 뿐 다행히 우리 집을 수색하지는 않고 돌아갔다. 그 낌새를 알아차린 어머니는 디딜방아 찧기를 그만두고 툇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으며 맥을 풀어버렸다. 작은 누님이 어머니를 위해 뒤란 옹달샘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다 드렸다. 어머니는 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훗날 어머니는 말했다. 경찰이 들이닥칠 것을 대비해, 그들을 속이는 술수 하나를 생각했었다는 것이었다. 골방에 숨어있는 이종사촌 형은 체구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처녀처럼 예쁘장했으므로 그에게 붉은 치마에 파랑저고리를 입히고 머리에 흰 수건을 씌워 가지고 디딜방아를 찧게 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여장을 한 이종사촌형과 함께 디딜방아를 발로 디디고, 어머니는 방아확에 들어 있는 덜 깎인 쌀을 손으로 우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 만일 경찰이 들이닥쳤다면 그러한 속임수로 그들을 속일 수 있었을까? 오히려 경찰이 여장한 이종사촌형이 머리에 쓴 흰 수건을 벗기고 잡아가지 않았을까?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아슬아슬 조마조마해 했다.

큰누님

이종사촌형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 어느 아침 미명에, 송아지 먹일 부드러운 풀을 베러가려고 꼴망태와 낫을 찾아들고 사립을 나서려는데, “어무니!”하면서 큰누님이 마당으로 달려 들어왔다. 어머니가 맨발로 달려 나와 큰누님을 맞았다. 재 너머 장산마을로 시집 간 큰누님이었다. “어따 어메! 새벽같이 먼 일이냐!”

큰누님은 흐흑 울어버렸다. 어머니는 큰누님을 얼싸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울지 말고 어서 말을 하라고 큰누님을 다그쳤다. 큰누님은 자기가 당한 일을 울음 반 말 반으로 늘어놓았다.

매형은 대덕면 남로당 선전부장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 골목에 비라 붙이는 일을 독려하고 다니다가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밤이면 경찰이 큰누님의 집 근처에서 잠복해 있곤 했는데, 간밤에 경찰 두 명이 큰누님의 방으로 들어와, 남편 숨어 있는 곳을 이실직고하라고 주리를 틀었다. 큰누님은 밤새도록 비명을 지르며, 제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어디 숨어있는지 알겠느냐고, 울부짖다가 새벽에 그들이 돌아가자 친정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고통에 시달리는 딸을 어떻게든지 구해 주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아버지에게 졸랐다. 아버지는 한탄하듯 “좌우당간에 그 자식을 붙잡아야 어떻게 하지.”하고 나서 큰누님에게 말했다. “지금 너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얼른 시가에 가서 있다가 혹시 줄이 닿으면,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한시가 급하다 밥 먹고 얼른 가거라.”

큰누님은 한 손에, 시아버지에게 드릴 술병을 들고 울면서 돌아갔다. 그런지 며칠 뒤 골방에 들어갔다가 이종사촌형이 있던 자리에 누워있는 매형을 발견했다. 언제부터 여기 와 있었을까? 매형은 내 손 하나를 끌어다가 주무르며 속삭였다. “니가 반에서 공부를 제일로 잘한다면서? 열심히 해라. 좋은 세상 오면 내가 꼭 중학교 보내주께.”

한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남로당 선전부장인 매형이 우리 집 부엌의 골방에 숨어 있다는 것을 병술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아니, 그것을 모든 아이들에게 말함으로써 따돌림을 면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참았다. 이웃집 기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골방의 매형도 사라졌는데 며칠 뒤에 그 까닭을 알았다. 아버지가 매형을 한밤중에 억지로 끌고 가서 자수시키고, 큰누님과 함께 군산으로 데리고 가 어협공판장에 서기로 취직을 시키고 온 것이었다. 군산어협조합장은 아버지와 김 동무장사를 한 바 있는 사람이었다.

밀짚모자 쓴 당숙

그 무렵 산에 소를 뜯기러 가면, 흰 한복에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소를 뜯기러 다니는 널팬이 당숙을 볼 수 있었다. 여순 사건 때 한밤에 총을 쏘아대며 날뛰다가 어디론가 잠적한 그 당숙이었다. 그는 자수를 하고 근신하고 있었다. 그는 한재 꼭대기 벌판에서 소를 놓아두고 뛰노는 아이들이나 나무꾼들을 피해 외딴 숲 속에서 고삐를 잡은 채 소를 뜯기곤 했다. 밤이면 혼자 바다로 낚시질을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가 자수한 내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한밤중에 큰댁 할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군복 차림으로 총을 든 채 도망간 그는 강진군 칠량면의 외딴 민가에서 허름한 옷을 얻어 입고, 총을 땅에 묻고 머슴노릇을 하며 살다가 자수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큰댁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작은 보자기를 내밀며 말했다. “도짓소 준 거 팔아왔네. 이것 들고 가서 이 새끼 어떻게 좀 살려주소.” 아버지는 당숙 널팬이를 앞세우고 읍내까지 80리 밤길을 달려갔다. 새벽녘에 경찰서장 집으로 찾아가 그 보자기를 바치고 자수를 시킨 것이었다.

6.25 전쟁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6월 26일 이른 아침에 깨보니, 형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장흥읍내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형이 언제 왔을까? 뒤란 샘으로 세수를 하러 가니 어머니가 형의 옷과 구두와 책가방을 빨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갯벌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것들이 갯벌투성이 되어 있는 연유를 말했다.

간밤, 형이 삼산리와 덕도 사이의 갯벌에 돌덩이로 놓은 십리 노둣길을 건너오다가 밀물에 쫓겨, 갯벌로 내려 달리며 옷과 구두와 책가방을 다 망쳤지만 다행히 무사했다는 것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만일 개웅에 빠졌으면 어쨌겄냐!”

나중에 들으니 대리 사는 아버지의 친구가 형의 손을 잡고 달려서 밀물에 휩쓸리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었다. 형이 갑자기 집에 온 것은, 터진 전쟁으로 인해 학교가 무기한 휴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학교에 갔는데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좋아 날뛰었다. 서로를 장난삼아 때리고 도망치고 잡으려고 쫓아갔다. 어두운 표정의 담임선생님이 그냥 집으로 가라고 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리 마을의 대장 아이에게서, 대한민국 정권은 망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으로 도망을 가고, 북쪽의 조선 인민공화국 김일성의 나라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고 모두 똑같이 나누어 먹고 살게 된다고 했다.

병술은 곧 경찰들이 도망치고 인민군이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선생님들은 모두 쫓겨날 것이고, 인민공화국 공산당 사상 투철한 선생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빈정거렸다. “인민공화국 세상에서도 니가 일등, 이등을 하는지 어쩌는지 보자.”

점심을 먹은 다음, 어른들을 따라 뒷동산으로 올라가 북쪽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같은 포탄소리를 들었다.

조선 인민공화국 세상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차갑고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바깥출입을 하려 하지 않고, 하얀 한복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안방에서 말없이 앉아 있거나 누워 있곤 했다. 농사를 돌보기 위해 사립 밖으로 나가는 것은 어머니와 작은 누님뿐이었다. 형은 교복을 입지 않고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러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한약방에서 형의 약을 한 재 지어오게 했고, 그것을 약탕기에 넣고 화롯불로 달여 형에게 먹였다. 형은 무슨 병에 걸렸고, 어떤 약을 먹이는 것일까?

아래 촌에 사는 형의 한 학년 선배가 형을 데리러 왔다. 조선 인민공화국의 학생동맹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형의 선배에게 툇마루의 화로에 놓인 약탕기를 보여주고 나서 말했다. 형에게 신장병이 있어서 바야흐로 치료 중이므로 다 치유되면 내보내겠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보안서원

군산에 있어야 할 매형이 언제 왔는지, 널팬이 당숙과 함께 왔다. 양복차림인 그들은 아버지에게 큰 절을 하고 나서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아버님.”, “이제 형님은 저희들 둘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두 젊은이는 얼굴 표정이 환하고, 자신만만했다. 매형은 군산의 어협 어판장의 서기노릇을 차버리고 돌아온 것이고, 당숙은 밀짚모자 쓰고 소 뜯기고 낚시질이나 하던 삶을 박차고 바뀐 세상 한복판으로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려하지 않았다.

그 무렵, 다른 마을의 반동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하나씩 보안서로 끌려가서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논밭을 모두 내놓겠다는 각서를 쓰고 손도장을 찍고 나와서 똥물을 마시며 앓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매형과 당숙은 아버지의 처지에서 볼 때 구세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눈은 차가웠다. 아버지는 매형을 향해 말했다. “여편네하고 새끼는 버려두고 와서 까불고 있냐?” 매형이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바른 채 말했다.

“아버님, 이제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세상을 올바르게 보십시오. 저도 많이 생각해보고 결정한 일입니다. 여기서 자리가 잡히면 곧 가서 그 사람(큰누님)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 사람하고 애기하고는 다 먹고 살게 조처해놓고 왔습니다.”

널팬이 당숙이 거들었다. “형님, 우리 조카사위, 보안서 부서장입니다. 못미더워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당숙의 넙데데한 얼굴을 쏘아보며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함부로 나대지 마라. 이런 세상에서일수록 너희들은 한사코 삼가면서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아야 한다. 인심이 천심이다. 절대로 인심 잃을 짓거리 하지 마라.” 당숙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형님, 저희도 철이 들만큼 들었습니다. 우리가 한번은 실수를 했지만 두 번 실수는 하지 않습니다.”

아기 업고 온 큰누님

이튿날 첫새벽에 큰누님이 “어무니!”하며 사립을 들어섰다. 전라북도 군산에서부터 아기를 업은 채 몇 백리를 걸어서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따 어메! 이것이 먼 일이냐! 그 머나 먼 길을.”하며 맨발로 달려 나가서 큰누님의 등에 업혀 있는 아기를 내려 안고, 안으로 들였다. 큰누님은 한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포동포동한 아기를 등에 업은 채 하루 전 날 꼭두새벽에 나서서 하루 종일 걷고 한밤에도 걸어왔으므로 발이 부르튼 것이었다.

아버지는 16세 되는 해 같은 마을의 김 씨 집안 처녀와 결혼했었는데 26세에 그 본처와 이혼하고 당시 17세인 내 어머니와 재혼을 했고, 어머니는 그 큰누님을 두 살 때부터 키워 시집보낸 것이었다.

“길을 물어물어 신작로로만 걸어오는디, 고맙게도 어떤 트럭이 많이 태워다주어서 그래도 빨리 왔어라우.”

작은 누님은 아기를 보듬어주고, 어머니는 옹배기에 물을 길어다주며 발을 씻으라고 하고 한 다음, 마루에서 쌀을 퍼가지고 부엌으로 가며 혼잣말을 했다. “애기 어메가 하루 내내 굶었으니 어디 젖인들 나오겄냐! 철딱서니 없는 놈. 아무런 대책도 마련 안 해주고 혼자 와버리고, 그 머나먼 길을 청목같이 젊은 여편네 혼자 애기 업고 걸어오게 만들다니. 사람도 뭣도 아니다.”

안방 아랫목에 앉은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모두가 다 반기는 바뀐 세상을 나도 반겨야 할까? 아버지처럼 왼고개를 틀어야 할까?

쌀 한 자루 지고 보안서로

큰누님이 돌아온 그날 아침 식후에 쌀 한 말 담긴 자루를 지게에 짊어지고 사립을 나섰다. 그것의 무게가 어깨와 등과 허리를 억눌렀으므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새로 들인 머슴은 세상이 바뀌자 나가버렸다. 그는 육지 마을에서 온 남자였는데, 이제 더 머슴살이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그 동안 일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다투려 하지 않고 쌀 한 가마니를 주어버렸다. 남은 두 가마니는 가을에 추수를 한 다음에 주기로 그에게 약속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의용군에 자원해 갔다고 했다.

어머니는 쌀자루 짊어지고 나서는 나에게 “지고 갈 수 있겄냐?”하고 다짐 받듯이 물었다. 내가 지고갈 수 있다고 대답을 했지만, 어머니는 못미더워 “안 되겠으면 반으로 나누어서 느그 형보고 한재 꼭대기까지 좀 물어다주라고 했으면 좋겄다.”하고 말했다. 그 말에 아버지가 안 된다고 했다. 형이 바깥출입을 하는 걸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열두 살인 내가 짊어지고 재를 넘어가기에는 버거운 짐이었지만 나는 참을성 있게 가다가 쉬고 다시 가다가 쉬며 갔다. 보안서 부서장인 매형의 체면을 위해 짊어져다 주는 장모의 선물이었다. 전날 인사차 온 매형이 아버지 듣지 않게 어머니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다른 서원들의 집에서도 쌀자루를 임시 숙소로 쓰는 여관에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조선 인민공화국의 질서가 아직 정비되지 않아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돈이 내려오지 않으므로 보안서원들이 자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안서가 회진포구에 있어 나룻배를 타야 했다. 이날은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았다. 나룻머리에서 지게를 벗어 바위에 기대놓고 나룻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재를 넘어온 내 몸은 땀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나룻배는 파도로 인해 기우뚱거렸으므로 비틀거리며 배에 올라탔다. 한 어른이 위태위태하게 비틀거리는 내 지게와 쌀자루를 붙잡아 주었다. 나룻배가 시퍼런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는 지게를 뱃바닥에 세우고 어지러움을 어찌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쌀자루를 짊어지고 여관에 들어섰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을 겸한 여관 마당은 분주했다. 사부인댁이 깜짝 반기며 “아이고 어쩔꺼나! 사둔 총각이 이 고생을 해서!”하고 쌀자루를 받아 여관주인에게 인계하고, 나를 한쪽 마루로 데리고 가서 밥 한 상을 받아다주었다. 하얀 쌀밥 한 그릇에 김 가루와 오이 조각 몇 개가 들어 있는 채국에 김치 한 접시와 구운 가조기자반 한 조각이 반찬의 전부였다.

“어서 묵소. 인제 큰 고생은 다 했네. 매형이 자리 잡히면 자네를 군산으로 데리고 가서 웃학교에 보내줄 것이네. 자네 매형은 늘 작은 처남이 똑똑하다고, 앞으로 큰 사람 될 것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네.”

빈 지게를 짊어지고 한재 고개를 넘어오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오며 노래하고 있었다. “백두산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인민군이 가지고 온 김일성 장군 찬양 노래였다. 나는 나무그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들은 덕산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마을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의 꼬마머슴 노릇만 하고 있었다. 인민공화국 세상으로 바뀌자, 아버지는 표변해 있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식구들을 모두 집 밖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작은 아들인 나 하나만을 내보내곤 했다.

마을공회당 지붕 위에 인공기가 기운차게 펄럭거리고 있었다. 깃발 가운데 두 개의 선이 그어져 있고 한가운데에 붉은 별이 선명했다.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소설 원효〉·〈초의〉·〈다산〉 등 다수의 소설을 쓴 이 시대의 대표 소설가다. 고향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을 써오고 있다. 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이상문학상·대한민국문학·한국소설문학상·한국해양문학상·한국불교문학상·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글·한승원 삽화·전병준  ggbn@ggbn.co.kr

행복을 일구는 도량, 격월간 금강(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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