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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12_ 이창규 건축가“‘제주다움’ 간직한 제주풍경 만들고 싶어요”
  • 글·사진 정현선 기자
  • 승인 2020.11.1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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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상의 경험이 건축으로 통한다는 건축가 이창규 씨. 어린 시절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건축 철학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한다.

가족구성원의 취향을 반영하고 주변 마을과 잘 어우러지는 단독주택을 짓는 과정은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런 집에는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제주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이창규(37) 씨를 만났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에이루트(a root architecture)’의 공동대표인 그는 제주에서 지역 건축과 이웃의 삶을 섬세하게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는 감귤 꽃향기를 머금은 나지막한 돌담집이 있다. 소박한 민가 형태의 이 집은 가장 제주다운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한 이창규 건축가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사실 이곳은 2014년 그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이다. 서울에서 건축설계사무소를 다니다가 부모님이 제주에 집을 짓겠다는 말에 주저 않고 귀향을 결정했다.

그가 부모님 집을 직접 짓고 싶었던 건 제주 고유의 지역성을 살린 전통적인 면과 함께 생활에 불편하지 않은 현대화된 집을 지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은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학습에 의한 경험이 아니라 절로 몸에 밴 흔적을 고스란히 건축물에 녹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마당에서 창을 열고 흙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했고, 돌 하나하나를 골라 담을 쌓고 아담한 수목을 이용해 남은 땅에 그늘을 만들었다. 집이 다 지어진 후에는 ‘가장 제주적인 집, 어머니의 집’이라 이름 지었다.

그는 제주 지역성을 잘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가장 제주적인 집, 어머니의 집’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놀다가 천직을 찾다

이창규 건축가는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무엇이든 만드는 것이 좋았던 그는 집 앞 돌담을 울타리 삼아 천으로 지붕을 올리고, 나무다리로 기둥을 세워 작고 아늑한 아지트를 만들었다. 유난히 말수가 적은 아이였지만, 동네 여러 곳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친구들을 초대했다.

만드는 일이 좋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그가 건축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거장 건축가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담은 〈건축가들의 20대〉 등 관련 서적을 접하면서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건축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동료들과 세미나를 열고 설계의도와 과정을 발표하는 등 공부를 하다보면 밤이 새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할 때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건축을 사랑하게 된 건 대학교 때인 것 같아요. 건축가가 되고 싶어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물론 대학교 4학년 때는 열심히 준비한 공모전에서 떨어지면서, 친구들보다 재능이 뒤쳐진 느낌이 들어 제가 정말 잘하는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작은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며 자존감을 많이 회복했어요. 지금은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지만요.”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건축설계로 유명한 구가도시건축에서 일을 시작했다. 전통가옥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학생 때까지는 미래지향적 도시에 걸맞은 이른바 ‘하이테크 건축물’을 지향했다. 그 생각은 우연히 펴본 건축 관련 잡지로 인해 뒤바뀌었다. 잡지 한편에는 곱슬머리를 한 중년 남자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단숨에 관련 기사를 읽어 내려갔는데, ‘조정구 소장’, ‘현대한옥’,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소식에 심장이 터질 듯 흥분됐고, 결국 구가도시건축은 그가 건축 인생을 시작한 첫 일터이자 유일한 직장이 되었다.

그가 구가도시건축에서 근무한 기간은 2009년부터 6년이다. 이 기간은 그가 건축가로서의 태도를 배우고 가치관을 견고히 쌓는 시간이었다.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을 따라 전통사찰과 한옥을 답사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배웠다.

입사 2년차에는 서울 은평구 진관사 함월당의 설계 초기단계부터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다목적공간인 함월당은 철근콘크리트가 지하층을 받치고 있어 건축양식이 다른 전각과 비교할 때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그는 당시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이 함월당에 앉아 자연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도록 기단과 돌담의 높이를 정하고, 창호의 위치와 크기 등을 조절하는 일을 보조했다.

전통가옥의 매력에 빠지다

이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답사’를 다니며 건축적 아이디어를 주는 공간을 찾아 실측하고 설계모형을 제작했다. 마을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제안하기 위해 가졌던 대안개발연구모임을 통해 5년에 걸쳐 조사·연구한 성북구 장수마을이 재정비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정구 소장님을 만나 말과 건축이 일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어요. 건축물을 보면 건축가의 성향이 보인다고 하거든요. 각 마을이 품고 있던 문화와 가치를 건축적으로 고민하고 기록하면서 저 역시 지역 풍토와 어울리는 건축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일 년 동안 열흘도 채 쉬지 않고 사무실에 출근했어요. 선배들이 입을 모아 10년 치 경험을 6년 만에 했다고 말했을 정도였죠. 누구도 억지로 시킨 적 없었지만 야근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구가도시건축에서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 위주로 작업을 이어 가던 중 어머니가 주택설계를 의뢰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도면이 땅 위로 펼쳐지는 순간을 상상했다. 결국 퇴사를 결정하고 제주에 내려와 사내 연애로 맺어진 아내 강정윤 소장과 함께 건축사사무소 ‘에이루트’를 개소했다.

첫 단추를 잘 꿰었기 때문일까? 그의 첫 프로젝트인 ‘가장 제주적인 집, 어머니의 집’은 지역성을 잘 담아낸 곳으로 주변에 알려졌다. 이후 제주도 내에서 건축설계를 의뢰하는 이들이 줄지어 생겼다. 개소한 지 5년 만에 그의 손길이 닿은 집 여덟 채가 도내 곳곳에 들어섰다.

이창규 대표가 현장소장과 시공현장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다.

자신의 설계의도대로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은 대단히 감동적인 일이다. 대신 그 과정은 긴장의 연속이다. 직원으로 일할 때는 몰랐던 건축주와의 조율, 시공사와의 협의, 건축법규, 심지어 조명·조경·전등·벽지와 타일·냉난방기·콘센트 위치까지 모든 공정을 일일이 검토하고 결정해야했다. 이 모든 과정을 정해진 기한 안에 해내야 해서 밤늦게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건축사무소는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 문을 열어둔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지만 건축가가 출퇴근시간에 맞춰 일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무실에 있다가도 시공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현장으로 달려 나가야하고, 불시에 건축주와의 미팅이 생기기도 한다. 올 1월에는 ‘제1기 제주특별자치도 공공건축가’로 선정돼 틈틈이 자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여기에 제주대 건축학부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맡게 됐다. 일과가 바쁘다보니 건축 디자인은 주로 저녁에 집에 귀가한 후 하고 있다. 마감날짜를 맞추려다 새벽까지 못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창규 씨는 오래된 시간과 장소에 관심을 두고 주택·카페·작업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은 제주 과수원 풍경을 담은 ‘소원재’

건축가의 입장에서 건축물이 완성되었을 때 느끼는 감동은 매우 특별하다. 특히 건축주가 완공된 집을 보면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을 때면 힘든 과정을 보상받는 듯 뿌듯한 성취감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의 설계에서 완공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1년 반에서 2년 정도다. 한 장의 도면을 완성하기 위해 건축주와 수십 차례 피드백을 주고받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 도면 수정을 거쳐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건축설계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즐거움은 건축가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고, 매력이다.

그는 2019년 한 해 동안 제주 구(舊)도심과 온평리의 마을공간을 기록하며 제주건축의 기억을 지키는 작업을 했다.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라 구도심의 정서를 이야기하고, 도시재생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기초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훗날 기회가 된다면 제주의 오래된 마을과 민가에 대한 그간의 관심을 바탕으로 제주 건축물에 대한 책을 엮어낼 계획이다. 그는 책을 통해 제주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서로 도움과 영감을 주고받고 싶다.

‘소원재’ 안의 방(왼쪽)과 티룸(오른쪽).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 살면서 제주지역 건축물을 기반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배제된 채 상업화, 난개발이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삶을 비롯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균형을 지키며 동네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마을풍경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지역의 오래된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 역시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훗날에는 해외에 건축물을 세워 한국에도 이런 인간미를 담아내는 건축가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이창규 건축가와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의 이름은 음악코드 ‘a root’에서 따왔다. ‘a root’는 코드의 기본이 되는 근본음을 의미한다. 건축의 근원을 탐구하고, 기본에 충실한 건축가가 되겠다는 다짐이 건축사무소 이름에 담겨 있는 셈이다. 건축설계를 할 때 언제나 공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공간이 되길 소망한다는 이창규 건축가. 감귤 꽃향기 흩날리는 제주에서 그가 꿈꾸는 ‘제주다움’의 풍경이 무척 기다려진다. 

글·사진 정현선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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