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가 언덕이었을지도히말라야보다 높은암벽이었을지도작은 충만, 작은 기쁨이기는 했을 것이다. 딸에게 처음 받아본 작은 돈은 그냥 돈이 아니다. 딸이 상금으로 받은 그 작은 돈은 절대적 충족이며, 기쁨이며, 더할 나위없는 위로이며, 그리고 어머니에게 새롭게 등장한 희망이었다.‘희망’이라는 단어는 어머니에게 아주 멀리 있거나 잔인하게 사라지고 없는 단어였다. 그 작은 축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 내게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되었고, 어머니는 ‘희망’이라는 항아리에 거대한 무게를 날마다 기도로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딸의
∷ 무대 _ 인도 바이샬리 성∷ 주요 등장인물 _ 유마거사, 문수보살, 사리불. 수미상 세계의 수미등왕불∷ 함께 한 대중 _ 많은 보살대중과 성문대중∷ 주요 전개 과정사리불이 유마거사의 좁은 방에 앉을 자리가 없음을 걱정한다. 유마거사는 그런 사리불에게 “법을 위해서 왔느냐? 자리를 찾으러 왔느냐?”고 묻는다. 사리불이 “법을 위해서 왔다.”고 대답하자 유마거사는 “법을 구하는 이는 목숨도 돌보지 않는데 하물며 자리를 찾겠는가?”하고 말한 후 역설적으로 “법을 구하고 싶다면 어떤 법도 구하
소나무는 종류가 많고,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소나무 줄기 중앙의 색으로 구분하면 붉은 빛이 도는 홍송(紅松), 검은색의 흑송(黑松), 그리고 쑥색에 가까운 백송(白松)이 있다. 홍송은 내륙에 많이 자라서 ‘육송(陸松)’으로도 불리고, 흑송은 바닷가에 많아 ‘해송(海松)’·‘곰솔’로 불린다. 또 그 생김새에 따라 아래부터 줄기가 갈라지는 ‘반송(盤松)’, 줄기가 위로 뻗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늘어지는 ‘처진소나무’가 있다.소나무는 기름진 땅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성장속도가 느리다보니 빨리 자라는 활엽수에 가려 제대로 생육하지
도쿄올림픽에 이어 열린 패럴림픽이 지난 9월 5일 일본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된 폐회식을 끝으로 13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패럴림픽에서 말하는 신체적 장애란 근육의 손상(하반신 마비와 사지마비·근육 영양장애·포스트소아마비증후군·척추파열), 수동적 운동장애, 사지결핍(절단과 사지 이상), 다리 길이의 차이, 짧은 신장, 긴장 과도, 운동 실조, 시각장애, 지적장애, 정신장애를 포함한다.장애는 업, 잘못된 해석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장애를 어떻게 보셨을까?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방귀희 선생이 지난 8월에 출간한 〈불교의 복지사상
‘호남의 동맥’ 전라남도 목포(木浦)는 영산강 하구와 서해바다 사이 여울목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무안현에 딸린 작은 포구에 불과했는데, 1897년 개항 후 일본영사관·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들어오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그들은 힘겨운 삶의 애환을 소설·음악 등으로 승화시켰다. 이 때문인지 목포에서는 가수 이난영(李蘭影, 1916~1965), 극작가 차범석(車凡錫, 1924~2006), 소설가 박화성(朴花城, 1903~1988) 등 많은 문예인이 배출됐다.2000년대
불교는 전파 시기와 문화권에 따라 크게 남방불교·북방불교·금강승불교로 구분한다. 남방(상좌부)불교는 주로 스리랑카·캄보디아·태국·미얀마 등 동남아 문화권으로 퍼져나가 부처님 재세시의 문화인 탁발을 이어오고 있는데, 요즘도 새벽에 탁발을 나가 “신도가 주는 음식을 차별 없이 받고 먹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오후불식도 지킨다.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에 전파된 북방불교는 추운 날씨의 영향으로 탁발이 어렵고, 산물이 풍부해 사찰음식이 발달했다. 남방불교와 달리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는 계율이 있고, 하루 세 끼 공양을 기본
몽골을 대표하는 종교는 불교다. 몽골은 법으로 종교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종교인구의 87%가 불교를 신앙한다. 몽골불교는 라마불교 전통을 잇고 있는데 하루 세끼 공양을 허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님이 오후불식을 한다. 음식도 특별히 가리지는 않는다. 최근 채식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으며, 불교 기념일에는 엄격히 채식을 지킨다.종교인구 중 87%가 불교 신앙몽골은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몽골의 ‘국가와 종교법인 관계법’ 제3조(몽골 국민의 신앙의 자유) 제1항에는 ‘어떤 종교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것은
‘철의 나라’로 불렸던 금관가야는 기름진 평야에서 생산한 쌀과 질 좋은 철을 기반으로 성장해 초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다. 금관가야의 중심지는 현재의 김해시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해반천 일대에서 금관가야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현대에 들어 김해시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흐름에 따라 점차 공업도시로 변모했다. 특히 1980년대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많아졌고, 결혼 등의 이유로 정착하는 인구도 늘었다. 김해시는 이주민들이 정착해 원주민과 잘 어우러지도록 다양한 정책을 마련, 지원했다.김해는 가야문화와 다문
대만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쫓겨난 국민당 측이 세운 국가다. 국민의 대부분이 중국계 한족이다. 그렇다보니 음식과 문화 또한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만 사찰에서 스님들이 별도로 즐겨먹는 음식은 없다. 하지만 엄격하게 채식을 지킨다. 도교와 불교 영향 채식인구 300만 명대만(臺灣,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한다. 현재의 대만은 중국 본토에서 항일전쟁 후 발발한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쫓겨난 국민당 측이
네팔의 국가명은 고대 인도 문자인 데바나가리로 ‘신의 보호를 받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 18℃의 열대몬순기후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는 건조하다. 고산지대 특성상 야채를 구하기 어려워 과거에는 사찰에서 육식을 일부 허용했다. 현재는 엄격하게 채식을 지키고, 오신채(五辛菜, 마늘·파·부추·달래·흥거)도 금한다.서울 일원동에 위치한 서울네팔법당 텍첸사의 주지 라마 쿤상 도르제(Lama Kunsang Dorje) 스님에 따르면 네팔 스님들은 일반적으로 오전 7시에 ‘박랩(Bhaklep)’이라고 부르는
스리랑카는 다종교국가지만, 2021년 기준 2,100만의 인구 중 70.2%가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 스리랑카 국기의 갈색 측면에 있는 보리수 잎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탁발 공양해 육류도 섭취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기원전 3세기로, 인도 마가다국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Aśoka, 재위 B.C. 273~232)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Mahinda, B.C. 285~205) 스님에 의해서다.왕실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스리랑카 불교는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Anur
나는 초식동물입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산과 숲을 거침없이 뛰어다니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옵니다. 고운 털 빛깔과 눈망울, 그리고 날렵한 몸매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와 내 동료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멀리 도망칩니다.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도저히 사람들과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풀만 먹고 살아서 금방 허기가 집니다. 그래서 간혹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이 키우는 작물을 먹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우리는 늘 감각을 열어둡니다. 여차 하면 달아나야 하기 때
사찰음식은 사찰에 거주하는 대중이 주로 먹는 음식을 말합니다. 사중 스님들이 만들어 먹는 음식은 물론 불자들이 공양 올린 음식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나라마다 기후가 다르고, 환경에 차이가 있다 보니 사찰음식도 제각각입니다. 세계 각국의 사찰음식과 대강의 요리법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수행과 생활을 엿보고자 합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인지 종교인구는 많지 않다. 8,500만의 인구 중 12%가 불교를, 7%가 가톨릭을 신앙한다. 이에 비해 불교가 기원 2~3세기경 전래돼 오랜 세월만큼 전국에 많은
봉제품 실은 오토바이 ‘쌩쌩’‘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외친전태일 열사 현수막 나부껴골목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흔적이 서려있다. 서울 창신동(昌信洞)도 예외가 아니다. 창신동 봉제골목은 낙산 아래 미로처럼 길게 형성돼 있다. 봉제골목 인근에는 노후된 주택들이 늘어서 일명 ‘달동네’로 불리는 쪽방촌이 형성돼 있다.창신동은 수차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옛 풍경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경사진 지형 △문화재 앙각제도(仰角制度, 문화재 인근 건축물 높이 제한) △높은 주거밀도 등의 난제가 산적했고, 삶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80년 가까이 배운 모든 인간적 감정과 사회적 논리는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 어머니라는 삶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생과 양보와 인내와 질서와 견딤과 침묵과 겸허와 ‘나’를 바치고 ‘나’를 뛰어 넘는 이성과 막다른 길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그 세계는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 존재할 뿐입니다. 98세의 어느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계실 때 딸이 어머니의 귀에 소리쳤다. “엄마!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요. 얼른 부를게요.” 그 소리를 알아듣고 어머니가 실낱같은 소리로 말했다. “어어엄~마아~” 그리고 그
분수에 넘치게 〈유마경(維摩經)〉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짓을 왜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름의 변명은 있습니다. 고승대덕이나 석학들께서 강설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즉 심오하고 근엄한 방식이 아니라 부담 없이 읽으며 〈유마경〉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시대에 맞은 새로운 감각으로 〈유마경〉을 읽는 조그만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유마경〉을 풀어갈 예정이기에, 이 경이 어떤 경이고 유마거사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딱딱한 방식으로
모든 중생은 지은 업(業)에 따라 과보(果報)를 받는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이 자연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거기에는 부처님도 포함된다. 본 기획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과보로 인해 겪은 수난 이야기다. 첫 순서는 부처님께서 순다리(Sundarī, 孫陀利)의 비방을 받은 내용이다. 순다리의 음해와 죽음부처님께서는 사바티의 제타바나(Jetavana)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은 많은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기에 음식이나 옷 등 많은 공양물을 받고 있었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대중으로부터 존경받아 많은 공양물을 받
스님의 이름을 처음 안 것은 1968년이다. 그해 나는 〈시조문학〉에 초회 추천을 받았는데, 스님은 3회 천료(薦了)하셨다. 그래서 잡지를 통해 이름을 접한 것이다. 나는 20대, 스님은 30대였다.11년 뒤, 나는 전봉건 선생의 청으로 〈현대시학〉에 시조 월평을 쓰고 있었다. 1979년 5월호에 조오현 시인의 첫 시조집 〈심우도(尋牛圖)〉를 다루었다. 때마침 나온 승려 시인 윤선효의 〈임진강〉과 함께 ‘승려의 시조’란 제목으로 두 시조집을 비교 분석했던 것이다.스님을 직접 뵙게 된 것은 다시 11년이 흐른 뒤다. KBS 파리특파원
고려의 수도 개성(開城)은 생각보다 가깝다. 서울에서 약 80km 거리인데, 자동차로 가면 불과 40분이 소요된다.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하면 바로 개성이다. 고려시대에는 ‘개경(開京)’으로 불렸는데, 건국 이듬해인 919년부터 약 470년 간 고려 왕조(918~1392)의 도읍으로 자리매김했다.개성은 상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다. 개성 인근을 흐르는 예성강 하류에는 벽란도(碧瀾渡)라는 무역항이 존재했다. 벽란도는 고려와 무역을 하기 위해 이슬람 상인까지 방문했을 정도로 번창한 국제무역항이었다.우리나라가
구글 초창기 멤버이자 엔지니어인 차드 멩 탄(Chade Meng Tan)은 어느 날 명상이 가진 놀라운 효과에 매료됐다. 그는 구글의 지원을 받아 신경과학자·심리학자·선승(禪僧)의 도움을 받아 명상을 기반으로 하는 감성지능 강화프로그램 ‘내면 검색(Shearch Inside Yourself)’을 만들었다. 차드 멩 탄은 구글 직원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효과를 확인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를 저술했다. 이 프로그램과 책은 전 세계에 ‘명상 열풍’을 불러일으켰는데, 국내 명상 애플리케이션(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