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닮았네

높은 보관보다 눈 쌓인 소나무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부여 대조사 미륵보살입상.

소나무는 종류가 많고,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소나무 줄기 중앙의 색으로 구분하면 붉은 빛이 도는 홍송(紅松), 검은색의 흑송(黑松), 그리고 쑥색에 가까운 백송(白松)이 있다. 홍송은 내륙에 많이 자라서 ‘육송(陸松)’으로도 불리고, 흑송은 바닷가에 많아 ‘해송(海松)’·‘곰솔’로 불린다. 또 그 생김새에 따라 아래부터 줄기가 갈라지는 ‘반송(盤松)’, 줄기가 위로 뻗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늘어지는 ‘처진소나무’가 있다.

소나무는 기름진 땅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성장속도가 느리다보니 빨리 자라는 활엽수에 가려 제대로 생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활엽수가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곳에서 숲을 이루고 산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나무는 온도와 광량에 매우 민감한 수종이다. 추운 지방으로 올라가면 잎갈나무(낙엽송)가, 덥고 습한 지방에서는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잘 자라는데 소나무는 그 중간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최근 기후온난화로 인해 남부지방에서는 소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산이든 잘 자라는 소나무인지라, 산사(山寺)에도 소나무는 많았다. 마을에서 산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소나무길이 많고, 산사로 들어서면 노송이 우거진 숲길 가운데 선 일주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갔다. 경내에도 잘 생긴 소나무 한두 그루는 조경수로 심었다.

사찰에선 소나무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전각 건립불사를 할 때면 잘 자란 소나무로 대들보를 삼았고, 조금 굽었거나 가는 것은 서까래로 썼다. 공양간에서는 노란 솔잎을 불쏘시개로 삼아 마른 삭정이불로 공양을 준비했고, 추위를 막아주는 군불은 소나무장작을 사용했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면 소나무 속껍질이 마지막 희망이었으며, 송화가루는 사찰음식의 별미에 속하기도 했다. 저녁예불 후 수행자들은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송진이 뭉친 관솔로 불을 밝히고 경전을 읽어 내려갔다.

산속 작은 암자에서는 방구석 한 곳에 고콜(관솔불을 올려놓기 위해 벽에 뚫은 구멍)을 만들어 조명과 더불어 한겨울 작은 온기를 더했고, 켜켜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딱~ 딱~’ 소리를 내며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버릴 때면, 내년에는 보리가 풍년들 것이라고 기대하며 추위를 이겨냈다.

이렇게 수행자에게 소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도반이다. 소나무는 수행자들과 가까이 있지만 산사의 중심인 석불과도 무척 친근하게, 때로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때로는 석불의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을 막아주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닮은 소나무. 한겨울 눈 쌓인 가지로 석불의 혼침(昏沈)을 경책하기도 한다. 소나무의 나이만큼이나 오랫동안 함께 한 낯익은 풍경으로 인해 전국에 많은 사찰 이름에 소나무[松]가 들어있으니 산에 산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 숲에 산사가 있는 것이다.

김성철 - 사진작가. 대학에서 사진을, 대학원에서 문화재를 전공했다. 문화재전문작가이자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문화재 관련 책에 사진을 찍었다. 현재 문화재를 전문으로 촬영하는 ‘스튜디오49’와 해외유적도시 전문출판사인 ‘두르가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소나무가 싹을 틔었을 때부터 함께했던 연산의 송불암 석불입상. 300년을 같이 어울려 암자의 이름도 송불암이지만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은 서로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다.
논의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익어갔고 산사의 소나무는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 그래서 운문사 소나무는 더욱 푸르다.
포항 보경사 주변에는 솔숲이 무척 많아서 산에 산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솔숲에 산사가 있다고 해야 한다.
남양주 보광사의 중정에는 석탑도 없고 석등도 없다. 하지만 소나무 한그루가 자리해서 빈 공간을 가득 채운다
탑을 처음 조성했을 때는 아주 작은 나무였겠지만 이제는 제법 석탑에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자라나 석탑과 바람을 함께 한다. 당진 영탑사.
제대로 된 법당도 없었던 시절, 소나무 한그루 우뚝 서 있어 영천 묘각사의 풍경은 외롭지 않았다.
마음을 열기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 개심사(開心寺)를 오르기 위해서는 세심동(洗心洞) 돌계단을 올라야한다. 세심동 계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솔숲의 돌계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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