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키우며 자급자족
엄격한 채식에 오후불식

대만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쫓겨난 국민당 측이 세운 국가다. 국민의 대부분이 중국계 한족이다. 그렇다보니 음식과 문화 또한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만 사찰에서 스님들이 별도로 즐겨먹는 음식은 없다. 하지만 엄격하게 채식을 지킨다.

대만 자제공덕회의 총본산 정사정사(靜思精舍)의 본당인 정사당(靜思堂).

도교와 불교 영향 채식인구 300만 명

대만(臺灣,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한다. 현재의 대만은 중국 본토에서 항일전쟁 후 발발한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쫓겨난 국민당 측이 세운 국가다. 국공내전의 영향으로 중국 본토와 대만 양측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만에는 원주민인 타이부안(Taivoan)족이 살고 있지만, 2%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8%는 중국계 한족이다. 그렇다보니 한족들에 의해 전수된 중국 여러 지방의 문화와 음식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 면적의 작은 섬나라인데, 기후가 온화하고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총 인구는 2,300만 명 정도다. 이중 80%가 도교와 불교를 신앙한다. 이런 영향으로 대만에는 채식 인구가 대단히 많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현재 대만의 채식인구는 약 300만 명에 달한다. 세계 채식시장에서 2위를 차지한다. 이렇다보니 채식요리가 발달해 거리에 채식전문음식점이 즐비하다. 대만 전역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 6,000개 이상 운영 중이다. 일반 식당에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있고, 모든 요리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로 주문이 가능하다.

대만불교에서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육식은 물론 오신채(마늘·파·달래·부추·흥거)가 들어간 음식도 철저히 금한다. 음식의 섭취는 ‘수행자의 지혜를 닦기 위한 방편으로, 또 육체를 위한 약으로 삼아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양만 섭취해야 한다.’는 계율을 철저하게 실천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보니 별도로 스님들이 즐겨 먹거나 승단을 대표하는 사찰음식이 있지는 않다.

자제정사(慈濟精舍)로도 불리는 정사정사에는 자제공덕회 회주인 증엄 스님과 그를 따르는 250여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다

자제정사 2,500여 명 동시 공양

대만의 불교 종파는 크게 불광산사·법고선사·중태선사·자제공덕회로 나눌 수 있다. 본지는 이 가운데 ‘인간불교’를 표방하면서 불교의 생활화에 힘을 쏟고 있는 ‘불교자제종 자제공덕회’의 사찰음식을 소개한다. 코로나19로 현지 취재가 어려웠던 관계로 한국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세계적인 불교구호단체로 자리매김한 자제공덕회는 대만중부 화롄(花蓮)에 총본산을 두고 있다. 자제정사(慈濟精舍)로도 불리는 정사정사(靜思精舍)에는 자제공덕회 회주인 증엄 스님과 그를 따르는 250여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다.

자제정사의 정기법회는 매일 오전 4시부터 두 시간 가량 진행된다. 법회가 끝난 후 증엄 스님을 비롯한 상주스님들과 신도, 자원봉사자까지 적은 경우 500명에서 많은 경우 2,500명까지 동시에 아침공양을 한다. 순번을 정해 공양을 준비하는 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은 그날 대중의 숫자에 맞춰 음식의 양을 준비한다. 식재료는 스님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외부에서 충당하는 제철 재료가 섞여 있다.

스님과 불자들은 공양간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 열 명씩 앉아 테이블 중앙 유리원반을 돌려가며 준비된 음식을 덜어서 먹는다. 테이블에는 개인용 식기와 수저가 비치돼 있지 않다. 개인용 그릇과 수저는 각자 지참해야 하고, 음식을 담을 때만 공용 수저를 이용한다.

아침에는 주로 채소가 들어간 왕만두와 따듯한 두유, 흰죽 등으로 식사를 한다. 각 테이블에는 10인분의 음식이 준비돼 있어서 한 명당 한 개씩만 먹을 수 있다. 음식이 부족할 경우에는 조용히 손을 들어 봉사자에게 추가음식을 요청하면 된다.

점심공양은 낮 12시에 시작한다. 점심 때는 일반적으로 밥과 국·반찬·채소와 과일 등을 먹는다. 다섯 가지 요리를 기본반찬으로 만개한 매화꽃처럼 보기 좋게 차려놓는다. 습도가 높고 더운 기후로 땀을 많이 흘려 염분섭취가 중요한 만큼 국이나 탕보다는 볶음요리를 많이 먹는 편이다.

공양을 하기 전에는 음식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는 공양게를 빠뜨리지 않는다. 공양을 할 때는 머리와 허리를 곧추세워야 한다. 왼손으로 밥그릇의 굽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해 천천히 소리 내지 않고 먹는다. 공양을 마친 후에는 주전자에 담긴 물을 그릇에 따라 마신 후 조용히 나가 개인 식기를 씻는다.

증엄 스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스님들은 오후불식을 한다. 다만 자제공덕회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등 울력에 나선 스님들은 오후 6시에 신도들과 함께 저녁공양을 하기도 한다.

2019년 설날 정사정사 공양간 모습. 메인식당 내 원형테이블에 요리와 과일 등이 올려져 있다.
같은 날 정사정사 메인식당 앞마당에 마련된 원형테이블에서 대중이 공양을 하고 있다.

연말에 이웃 돕는 ‘동령탁발’

대만불교의 스님들은 탁발을 하지 않는다. 대신 매년 연말에 ‘동령탁발(冬鈴托鉢)’을 한다. 동령탁발은 연말에 거리로 나가 음식과 물품들을 공양 받아 지역의 사회복지기관에 희사하는 행사를 말한다. 자제공덕회 스님들 또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생활을 실천하며 제자들로부터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는다.

대만에서는 음력 사월초파일을 부처님오신날로 정해놓은 우리나라와 달리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부처님오신날로 정해 부처님 탄신을 기념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대만 총통과 외교사절단 등이 참석해 타이베이 자유광장에서 부처님오신날과 어버이날, 자제의날을 함께 기념한다. 대만불교에서 가장 큰 행사로 손꼽히지만 이날 스님들이 먹는 식단은 평소에 먹는 평범한 한 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 다섯 가지의 요리반찬에서 가짓수가 두세 가지 추가될 뿐이다. 살아 숨 쉬는 매일을 특별한 날로 삼고 마음의 부처를 찾는다면 어느 하루도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제공덕회 스님과 대만 불자들은 음식을 단순한 먹을거리로 보지 않고, 수행과 실천을 위한 방편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한 끼 식사를 할 때 배를 80% 정도 채우고, 나머지 20%의 음식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라.’는 증엄 스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다. 살생이라는 악업을 짓지 않기 위해 채식을 생활화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완성된 샹지판의 모습.

재난용 구호식량 ‘샹지판(香積饭)’

자제공덕회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해외구호활동이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지진과 홍수,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구호활동이 필요한 세계 곳곳으로 달려간다. 이때 재해를 겪는 사람과 봉사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물품은 바로 음식이다. 하지만 전기와 불을 사용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라면 일반 음식은 구하기도 조리하기도 어렵다. 이때는 보관이 용이하고 취식이 간편한 구호식량이 필요하다. 자제공덕회의 경우 구호활동 시 재해민과 봉사자들이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구호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물만 부으면 조리가 가능한 즉석밥과 라면 등의 긴급식량이다. 즉석밥은 건조된 누룽지와 야채 후레이크 등에 물만 부으면 간편하게 취식이 가능하도록 만든 비상식량이다. 날씨에 따라 뜨거운 물은 20분, 생수는 2시간 정도 불리면 부드러운 쌀알의 식감과 쌀 특유의 고소함을 맛볼 수 있다. 즉석밥은 세계인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 미역현미밥·옥수수밥·카레밥·푸른양배추밥·토마토허브밥 등 종류가 다양하다.

완성된 시엔도우푸의 모습.

소금에 절인 두부구이 ‘시엔도우푸(鹹豆腐)’

증엄 스님은 자제공덕회를 1966년 창설했다. 1960년대 중반은 음식을 구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곤궁한 시절이었다. 이 당시에 대중이 먹었던 음식이 바로 소금에 절인 두부구이다. 언뜻 보면 우리가 흔히 먹는 두부구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두부를 5mm 두께로 얇게 썬 후 두 세 시간 정도 소금에 절여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먼저 소금 간을 한 두부는 키친타올로 눌러 물기를 제거한다. 이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수분을 제거한 두부를 올려 약한 불에서 바삭해지도록 굽는다. 소금 간이 밴 짭짤한 두부 한 조각은 밥 한 공기의 반찬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두부를 기름에 부쳐내는 게 전부인 이 단순한 음식은 대만 스님들이 과거 음식이 귀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완성된 마요우미엔시엔의 모습.

참기름 채식국수 ‘마요우미엔시엔(麻油麵線)’

미엔시엔(국수)은 대만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에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대중음식이다. 대만은 생일날 보통 닭고기를 넣은 미엔시엔을 먹는다. 출산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의 산후회복을 돕기 위해 섭취를 권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대만 스님은 닭고기를 빼고 만든 채식국수를 즐겨먹는다.

달군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얇게 저민 생강과 표고버섯, 양배추를 차례로 볶는다. 송이버섯은 수분이 나와 양배추의 단맛을 해칠 수 있어 물기를 뺀 후 따로 볶는다. 재료가 익으면 냄비에 채수와 물을 넣고 15분가량 끓인다. 불을 끄기 전에 붉은 구기자로 색을 더하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미리 삶아 둔 국수를 넣고 그릇에 담아내 마무리한다.

섬세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자연스러운 맛과 생강이 어우러져 깊은 국물 맛을 낸다. 버섯의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참기름까지 더한 국수는 스님들의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