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풀의 유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세요!”

부처님이 들려준 네 무리 사슴이야기는 탐욕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사진은 인도의 한 사찰에 세워진 조형물. 사슴이 중앙의 법륜을 좌우에서 올려보고 있다.

나는 초식동물입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산과 숲을 거침없이 뛰어다니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옵니다. 고운 털 빛깔과 눈망울, 그리고 날렵한 몸매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와 내 동료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멀리 도망칩니다.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도저히 사람들과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풀만 먹고 살아서 금방 허기가 집니다. 

그래서 간혹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이 키우는 작물을 먹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우리는 늘 감각을 열어둡니다. 여차 하면 달아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난 풀도 미련 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따금 먹이에 정신이 팔려 사람에게 붙잡히는 동료도 있습니다. 나도 그랬지요. 아주 오래 전 전생이야기 한 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맛에 집착한 사슴

아주 먼 옛날입니다. 어느 날 나는 먹이를 찾아다니다 왕의 동산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잘 가꿔진 동산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맘이 놓였지요. 유유히 이곳저곳을 다니다 멀리서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본능적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잡히면 안 됩니다. 우리는 여린 동물이어서 잡히면 저항도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달아나다 뒤를 흘깃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남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쫓아오다가 포기하고 돌아선 걸까요? 그래도 나는 무서웠습니다. 

‘잡히면 죽을 거야.’

한참을 달아나 동산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는데도 내 몸은 심하게 떨렸습니다. 

‘절대로 그 근처에 가면 안 돼!’

나는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나도 모르게 그 동산에 다시 들어가게 됐습니다. 역시나 지난번에 보았던 남자가 동산을 가꾸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자니 남자는 내가 동산에 들어왔는지 풀을 먹는지 아예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조심스레 다니다보니 자신이 생겼습니다. 마치 그 동산이 내 것인 양 나는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풀을 먹고 샘물을 마시게 되었지요.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동산에 들어가 풀을 먹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주 달콤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그 달콤함에 취해 정신없이 풀을 먹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산지기가 바로 내 옆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풀이 나를 유혹했습니다. 정말 달콤한 풀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지요. 나는 그 남자가 내미는 풀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꾸 움직였습니다. 나는 행여 풀을 놓칠 새라 그의 곁에 바싹 다가갔습니다. 그의 손에서는 달콤한 풀이 연이어 나왔고 나는 쉬지 않고 그 맛난 풀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먹었을까요? 갑자기 ‘와~’ 하는 함성이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왕궁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달아나야 해!’

나는 내달렸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무작정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내 몸 위로 그물이 내려 덮이고 내 발에는 밧줄이 묶여졌습니다. 나는 어떻게 될까요? 금세 죽임을 당할까요? 아니면 이렇게 묶인 채 갇혀서 죽을 때까지 지내게 될까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저 높은 누각 위에서 왕이 말했습니다.

“사슴이란 동물은 인간이 나타난 곳에는 7일 동안 가지 않고, 위협을 당한 곳에는 죽어도 가지 않는다. 이 녀석은 그런 밀림에 사는 사슴이면서 맛에 집착하고 미각의 탐욕에 빠져 포로가 되어 지금 이곳까지 제 발로 걸어왔구나. 아, 실로 세상에서 미각에 탐착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을 것이다.” 

왕은 또 말했지요.

“집에 대한 탐착도 있고, 교제에 대한 탐착도 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음식에 대한 탐착이다.”라고요.   

- 〈자타카〉 열네 번째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자면 집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이런저런 교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되는 법입니다. 그 중에서도 맛에 집착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달콤한 맛에 사로잡히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국 몸을 망치게 되니까요. 왕의 동산에서 노닐다 사로잡히고만 나를 보세요. 우거진 숲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내가 음식 맛에 취해 그만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네 무리 사슴의 교훈

누구나 살려면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음식의 맛에 집착하는 바람에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이하는 존재는 우리 같은 사슴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은 먹이에 집착하는 바람에 손쉬운 사냥감이 되어버리는 우리들 사슴에 빗대어 이런 가르침을 들려주셨습니다. 

사슴사냥꾼들은 늘 함정을 판 후 미끼를 놓아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슴들이 내가 놓은 미끼에 정신을 잃고 먹어치워야 할 텐데. 미끼의 맛에 홀려서 정신없이 먹다가 그 맛에 취해 버리고, 맛에 취한 뒤에 경계심이 흐려지고, 그렇게 마음이 게을러져 덫에 걸려들어야 할 텐데. 그러면 나는 사슴을 사로잡아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슴사냥꾼들이 숨겨놓은 미끼는 무척 맛있어서 사람을 무서워하는 우리도 그 맛에 금세 취해 순식간에 사냥꾼에게 붙잡힙니다. 그리고 자유와 목숨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 무리 중에 일부가 그만 그 미끼를 덥석 물고 말았습니다. 사냥꾼이 노리던 그 희생물이 된 것이지요. 

소식을 들은 두 번째 사슴 무리가 생각했습니다. 

‘조심해야한다. 절대로 사냥꾼의 미끼를 물어서는 안 된다. 모든 먹이는 우리 목숨을 위협하니 앞으로는 어떤 것도 먹지 말아야겠다.’

이들이 다니는 곳에 놓인 먹이는 거의 다 사냥꾼의 미끼였는데 이들 두 번째 무리는 단 한 입도 먹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지내다보니 몸이 쇠약해졌고 결국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사슴들은 사냥꾼이 미끼를 놓은 곳으로 가서 먹고 말았습니다. 굶주린 끝에 베어 문 먹이는 상상 이상으로 달콤했습니다. 두 번째 사슴 무리는 정신없이 미끼를 먹다가 사냥꾼에게 붙잡히고 말았지요. 

이 소식은 다른 사슴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세 번째 사슴 무리는 생각했습니다.

‘두 무리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다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숲에서는 사냥꾼들이 놓은 미끼를 먹지 않고는 현재 살아갈 수 없다. 미끼를 먹더라도 그 맛에 홀려 경계심을 잃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 끝에 세 번째 사슴 무리는 미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은밀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배고플 때면 조심스레 미끼로 다가가 먹어치운 뒤 여차하면 자신들만의 거처로 달아나 몸을 숨기기 위해서이지요. 사냥꾼들은 세 번째 사슴 무리의 꾀에 놀랐습니다. 사슴들이 미끼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붙잡으려 다가갔지만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몇 번 되풀이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냥꾼들은 꾀를 냈습니다. 미끼 둘레에 커다란 그물을 친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세 번째 사슴 무리는 사냥꾼들의 그물망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미끼를 먹고 달아나다가 걸려들었고, 그들 역시 자유와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이 멀리까지 전해졌고, 또 다른 사슴 무리는 생각했습니다.

‘사냥꾼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은신처를 마련해야 한다. 사냥꾼들이 놓은 미끼를 먹지 말고 숲속의 다른 풀을 먹으며 지내야 한다. 그러면 미끼로 놓은 먹이에 정신이 팔리지도 않고, 경계심이 흐트러지지도 않아서 저들에게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사냥꾼의 손아귀에 우리 목숨이 놓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사냥꾼들이 오지 못하는 곳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저들의 미끼를 물지 않았지요. 미끼에 정신이 팔리지도 않았고, 경계심이 흐트러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냥꾼들은 이들마저 잡으려고 그물망을 쳤지만 끝내 이 사슴들의 자취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사냥꾼들은 혈안이 되어 이 사슴들을 붙잡으려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붙잡으면 또 다른 사슴들이 우리 의도를 알아챌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슴들이 우리의 덫을 피해나갈 것이다. 그러니 이 네 번째 사슴 무리를 봐주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네 번째 사슴 무리는 영원히 사냥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사슴 무리는 미각을 단속하지 못해 몸을 망치고, 삶을 허망하게 마감하는 사람을 비유합니다. 두 번째 사슴 무리는 세상의 음식 맛에 집착하는 것이 좋지 않음을 알고서 극단적으로 세상 음식을 멀리합니다. 그렇지만 한순간에 마음이 흔들리고 결심이 무너져 오히려 세상 음식에 집착하고, 그래서 커다란 괴로움을 맞는 사람을 비유합니다. 세 번째 사슴 무리는 세상의 음식은 음식대로 먹으면서 나름대로 지혜롭게 처신했지만 역시나 맛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사슴 무리는 세상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들에 맛을 들이면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하면 분노에 휩싸이는 바람에 번뇌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다는 것을 잘 살펴서 세상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비유합니다. 

- 〈맛지마니까야〉 스물네 번째 ‘미끼의 경’

그렇다면 거대하게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가요? 세상살이가 주는 달고 쓰고 시고 새콤한 맛에 얽매여서 이 맛에서 저 맛으로 옮겨가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정신없이 세상 온갖 맛에 빠져들면서 ‘이러다 파산하면 어떻게 하지?’, ‘이러다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지?’하며 두려움에 떠는 존재들. 그러면서도 절대로 세상의 맛에 대한 집착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들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 죽어라 도망을 치면서도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 미끼를 덥석 무는 사슴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상윳따니까야〉에서는 마음을 단단히 공부시키지 않아서 온갖 세상 소리에 주눅 들고 두려움에 휩싸이는 사람들을 가리켜 바람소리에도 놀라는 숲 속의 사슴 같다고 말하고 있지요. 

세상 음식(갖가지 탐욕)에 취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이젠 다른 맛을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경전에서는 수행정진을 권하고 있습니다. 참선의 맛은 세상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정결하고, 병들지 않게 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네 번째 사슴 무리가 바로 세상의 맛이 아닌 수행의 맛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번뇌라는 악마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하니, 이렇게 훌륭한 맛을 어찌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미령
―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며, 경전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시시한 인생은 없다〉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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