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불교가 불교 명맥 이어
신도 재료 공양, 스님 조리
가정법회 땐 공양·보시하기도
법회시간 중간에 점심 대중공양

네팔 신도가 서울네팔법당인 택첸사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리고 있다. ―

네팔의 국가명은 고대 인도 문자인 데바나가리로 ‘신의 보호를 받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 18℃의 열대몬순기후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는 건조하다. 고산지대 특성상 야채를 구하기 어려워 과거에는 사찰에서 육식을 일부 허용했다. 현재는 엄격하게 채식을 지키고, 오신채(五辛菜, 마늘·파·부추·달래·흥거)도 금한다.

서울 일원동에 위치한 서울네팔법당 텍첸사의 주지 라마 쿤상 도르제(Lama Kunsang Dorje) 스님에 따르면 네팔 스님들은 일반적으로 오전 7시에 ‘박랩(Bhaklep)’이라고 부르는 통밀빵이나 죽으로 아침식사를, 낮 12시에 달밧커리와 아자르(Achar) 등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저녁에는 허기를 달랠 정도의 간단한 음식을 섭취한다. 원하지 않으면 식사를 거를 수도 있다.

네팔 사찰에서는 신도들의 공양간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공양간을 담당하는 스님들이 공양을 직접 준비하고, 신도들은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공양물로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 밖에도 과자·과일·음료수 등을 공양물로 올리기도 한다.

취재과정에서 조리를 도와준 네팔 신도가 텍첸사 주지 쿤상 도르제 스님에게 음식을 올린 뒤 합장을 하고 있다. 쿤상 도르제 스님도 평소에는 직접 조리를 해 공양을 한다.

네팔 사찰의 법회시간은 행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법회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점심공양을, 오후 3시에 간식을 먹는다.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직접 만든 박랩과 소금·버터를 넣은 밀크티 수찌아(Solchia)를 제공하는데, 박랩은 법회 중간 간식시간에 먹을 수 있고, 수찌아는 기도나 법문 중에도 마실 수 있다.

네팔 사찰에서는 명절·특별법회 등을 제외하고는 그릇·컵·수저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이 사용할 식기는 각자 지참해야 한다. 최근에는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일회용 용기를 제공하는 사찰도 늘고 있다.

네팔 스님들은 탁발(托鉢)을 하지 않는다. 쿤상 도르제 스님은 “과거에는 봄에 스님들이 신도 가정에 방문해 기도하고 곡식이나 생필품 등을 보시 받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다양한 명절·축제·의식이 있는 날에는 신도가 스님을 초청해 가정법회를 열고, 법회를 집전한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거나 보시하는 형태로 변화했다.”고 덧붙였다.

음식을 만드는 네팔 스님들의 모습. 네팔에서는 신도들의 공양간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스님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한다.

명절 때는 사찰에서 음식 제공

네팔의 불교 4대 명절은 바이사크(Baeshakha, 음력 4월 7일·석가탄신일과 음력 4월 15일 성도·열반일)·둑파채시(Drukpatshesi, 음력 6월 4일·초전법륜의 날)·라밥되이첸(Lhabupduchen, 음력 9월 22일·부처님이 천상에서 설법을 마치고 하강한 날)·쳐튤되이첸(Chotrulduchen, 음력 1월 1일~15일·우리나라의 설날부터 대보름까지의 기간) 등이다.

이 명절을 앞두고 네팔 스님들은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에게 제공할 음식준비에 분주하다. 일반적으로 점심을 제공하는데, 아자르·데르가(Derga)·짬바(Tsampa)·데실(Dresil) 등을 대접한다. 뷔페식으로 준비하는데,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발우공양을 할 수 있다.

네팔 사찰에서는 설날인 ‘로사르(Lhosar)’도 특별하게 챙긴다. 법회 때 진행되는 대부분의 의식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새해에는 축복과 행운이 넘치길 바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적으로 불교명절에는 대중에게 체마르 가루와 창굴(Chhangkol)·갑새(Khapse) 등의 음식이 추가로 제공된다.

‘체마르 가루’는 보리를 갈아 만드는데, 의식용으로 사용한다. 가운데가 뾰족하게 올라온 형태로 통에 담는데,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한다. 의식이 끝난 후에는 사찰에서 제공하는 수찌아에 체마르 가루를 섞어 ‘짬바’를 만들어 먹는다.

설날에 먹는 특별식 중 가장 눈에 띄는 음식은 네팔식 쌀막걸리인 ‘창굴’이다. 사찰에서는 술을 담글 수 없기 때문에 신도들이 구정을 앞두고 사찰에 보시한다. 창굴은 밥과 누룩을 섞어 볏짚에 올리고, 큰 잎사귀와 이불로 감싸 2~3일 정도 발효시켜 완성한다. 이후 항아리에 6개월 정도 숙성시킨 뒤 버터와 계란, 견과류(호두·마카다미아·아몬드) 등을 약간 넣어 끓여서 마신다. 창굴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축복을 내리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스님들도 한두 모금 정도는 반드시 마셔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꽈배기 과자와 비슷한 갑새를 제공한다. 갑새는 스님들이 모여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데,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전한다.

준비된 음식을 담는 스님들. 먹을 만큼만 덜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강을 유지할 정도의 양만 섭취한다.

곡식 한 알에 담긴 축복 새겨

법회시간은 평균 8~9시간에 달하기 때문에 점심공양을 사찰에서 제공한다. 이때 일부를 제외한 스님들과 신도들은 음식을 받아 사찰 앞마당에 모여 먹는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솔췌(Solchyoe)’라고 부르는 공양게(供養偈)를 외운다.

공양게에는 ‘불법승 삼보에 이 공양을 올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식사 중에는 대화를 삼가고,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게 예의다.

네팔의 안거는 우리나라와 달리 하안거만 있다. 일반적으로 비가 많이 오는 기간[雨期]인 6~7월에 60일간 진행한다. 안거기간에는 하루 중에 점심공양만 하고, 아침과 저녁에는 과일 등 간단한 음식을 섭취해 허기만 달랜다. 다만 10만 배 수행이나 1만 일 안거 등 개인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안거와 관계없이 공양을 규제하지 않는다.

네팔 사찰에서는 환자라고 해도 별도의 특별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만약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심한 경우에는 사찰에 거주하지 못하고, 가족 등의 도움을 받아 별도의 장소에서 지내게 한다.

네팔 스님들에게 음식은 ‘축복’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곡식 한 알, 풀 한 포기에 담긴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을 항상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강을 유지할 정도의 음식만 섭취한다.

다음은 쿤상 도르제 스님이 추천한 네 가지 네팔 사찰음식 △키르 △데지르 △아자르 △알루담이다.

완성된 키르

커스터드 크림 같은 ‘키르’

경전에는 6년간의 고행을 마친 싯다르타가 수자타가 공양한 우유죽을 섭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네팔의 우유죽 ‘키르’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오신날이나 큰 법회 때 사찰에서 준비하는 대표 음식이다.

‘키르’는 우유와 ‘안남미’라 불리는 인디카(Indica) 쌀에 다양한 향신료와 견과류를 섞은 음식이다. 먼저 쌀을 깨끗이 씻어 30분 이상 불린다. 잘 불린 쌀을 냄비에 넣고 우유를 부어 약한 불에서 30~40분 정도 끓인다.

키르의 주요 재료들. 쌀알이 형태를 잃을 때쯤 버터와 준비된 재료를 넣고 저어주며 끓인다.

완성된 키르는 커스터드(Custard) 크림과 같이 달콤하고 몽글한 식감이 특징이다. 오랫동안 끓여 우유의 비린 맛이 느껴지지 않고, 달콤함과 고소함만 살아 있다.쌀알이 형태를 잃어갈 때쯤 버터를 한 숟가락 넣고, 설탕으로 적당히 간을 한다. 여기에 미리 채썰어둔 코코넛, 향신료인 카더멈(Cardamom)·루왕(Lowang)·아랜지(Alaniji), 아몬드, 마카다미아, 건포도를 닮은 키스미스(Kismis) 등의 재료를 넣는다. ‘루왕’은 박하향이 나는 매운 향신료로, 단맛과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향신료의 강한 향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생략해도 된다. 이후 잘 저으면서 끓이면 완성이다.

완성된 데지르.

명절에 먹는 약밥 ‘데지르’

데지르는 우리나라 전통음식 약밥과 비슷한 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평상시에는 즐겨 먹지 않고, 큰 법회 때 참석하는 사부대중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이다. 찹쌀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약밥과 달리 인디카 쌀로 만들어 찰기가 없고 밥알이 가볍게 흩어진다.

만드는 방법은 평소 밥 짓는 과정과 비슷하다. 먼저 쌀을 깨끗이 씻어 30분 이상 불린 다음 쌀을 솥에 담은 뒤 키스미스를 넣고 그 위에 물·우유·요구르트·설탕·꿀·사탕수수 원액 등을 부어 잘 섞는다.

데지르의 주요 재료들. 데지르는 평소 밥짓는 과정과 비슷하다.

여기에 버터와 호두·마카다미아 등을 넣은 뒤 30~40분 간 끓이면 완성이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아몬드·땅콩과 같은 견과류나 병아리콩·동부콩 등 곡물을 추가해도 좋다.

완성된 데지르는 접시에 동그랗게 담는다. 주로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로 조금씩 먹는다. 달콤한 밥맛이 기본이고, 첨가하는 견과류에 따라 밥의 색과 향이 변한다. 흩날리는 쌀 사이로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완성된 아자르.

네팔의 주요 반찬 ‘아자르’

아자르는 한국의 김치와 같은 음식이다. 네팔인들은 달밧커리와 함께 매일 먹는다.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며 종류도 다양하다.

사찰에서는 주로 토마토를 활용한 아자르를 만들어 먹는다. 먼저 토마토를 불에 굽거나, 물에 끓여서 살짝 익힌다. 이후 절구로 빻는데, 덩어리가 어느 정도 남아있어야 식감이 좋다. 여기에 손질한 고수와 고추를 넣고 버무린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산초와 비슷한 향신료인 딤부르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사찰에서는 오신채를 금지하므로 넣지 않지만 일반 가정집에서는 마늘과 생강 등을 함께 넣어 감칠맛을 낸다.

아자르의 주요 재료. 토마토의 식감이 살아있을 정도로 절구로 빻은 뒤 향신료 등을 넣어 섞어 먹는다.

아자르는 새콤달콤한 토마토와 살짝 매콤한 고추의 맛, 은은한 고수향이 잘 섞여 자칫 밋밋하거나 느끼할 수 있는 달밧커리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인도에도 ‘아자르’라는 음식이 있는데, 네팔과 달리 절여서 먹는 음식으로 피클과 비슷하다. 아자르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 수 있다. 토마토 외에도 망고·당근·레몬 등을 사용해 만들고, 일반 가정집에서는 고기를 넣기도 한다.

완성된 알루담.

카레 감자볶음 ‘알루담’

알루담은 물이 들어가지 않는 카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란 국물에 야채가 담긴 카레와는 다르다. 강황가루로 볶은 감자를 연상하면 된다. 네팔 사찰에서는 스님들의 주식인데, 아자르와 함께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알루담의 주재료는 감자다. 먼저 감자를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두껍게 썰면 감자가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얇게 썰면 식감이 떨어지므로 3~5mm 정도의 적당한 두께로 자르는 게 중요하다.

알루담의 주요 재료. 먹기좋은 크기로 썬 감자에 강황가루와 미티를 넣어 볶는다.

감자 손질 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향신료 ‘미티(Methi)’를 넣어 끓인다. 기름에 열이 올라오면 감자와 강황가루를 넣어 볶는다. 감자가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고춧가루를 넣어 색감을 내고, 소금으로 입맛에 맞게 간을 한다. 취향에 따라 고수를 잘라 넣기도 하고, 브로콜리와 같은 다른 재료를 곁들여 만들기도 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파와 양파를 넣기도 한다.

채소에서 충분한 수분이 빠져나와 맛이 담백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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