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폭우와 폭설을 감당하는 일도 버겁지만 바람을 감당하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얼마 전 또다시 실감했다. 쏟아져 내려오는 비는 물길을 돌릴 수 있고, 갑자기 내리는 많은 눈은 그때그때마다 사람의 노동과 땀으로 치울 수 있지만 바람이 야수처럼 불어오는 것은 막거나 대처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 그래서 물이나 눈보다 바람이 더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시작된 바람은 밤이 되자 점점 몰아쳤다. 전기가 들어왔다 나가기를 거듭했다. 집안의 전기를 최대한 껐다. 집은 바람 속에 섬처럼 있었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집
18세에 선문에 든 이후 동암성수, 탄허택성, 고송종협, 퇴옹성철, 서옹상순, 설악무산 등을 참문한 월조(越祖) 송준영(宋俊永) 시인이 스스로의 생애 가운데 핵심만을 골라 엮은 책이다. 책은 자선시(自選詩) 20편과 찬(讚) 6편, 대표논문과 설평(說評)으로 짜여 있다. 먼저 그의 자선시 한 편을 읽어 본다.손가락조차 예쁘답니다물은 하늘에 있고 구름은 땅에 있으니몇 사람이나 저울눈 자리를 잘못 읽었던가속삭이는 개울물 소리은코끼리는 손가락 세워 무방비로 찔러댑니다그래도 땅에 한 선객(禪客)이 휴지를 줍습니다또 다시 하늘 틈새로 별들이
“세 가지를 명심하거래이. 첫 번째는 공부 열심히 하는기다. 공부 많이 한 너거 숙모 봐라. 공부 많이 항께 아들도 많이 낳지 않냐? 그래야 사람들이 떠받드는 기라. 무시 받는 기 젤 나쁜 기다. 두 번째는 돈을 많이 벌어라. 살아봉께 여자도 돈이 필요하더라. 남자 돈 받는 거 그거 마음 상할 때 많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세 번째를 말씀하셨다. “여자로서도 행복해라.”서울 가는 딸어머니는 서울로 가는 딸에게 재차 이 세 가지를 확인시켰다. 그것도 전화로 말이다. 이 당부는 처음 한 말이 아니다. 아마도, 아니 적
연극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무대를 놀이터로, 의상바구니를 요람 삼아 자랐다. 아이는 국극 배우인 어머니의 아역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 무대의 매캐한 먼지 냄새와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 다채로운 연기, 관객의 박수갈채를 마음의 안식처로 여기던 아이는 그렇게 연극인이 됐다. 배우 김성녀(73)의 이야기다.마당놀이의 대모인 김성녀는 가수, 가야금병창, 연극·뮤지컬·드라마 배우,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등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하는 팔방미인이다. 최근 모노드라마뮤지컬 ‘벽속의 요정’에서 1인 32역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녀는 불
예로부터 ‘한밭’으로 불리는 대전(大田)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지만, 고려시대 이전의 문화유적은 별로 없다. 다만 보문산 보문사지,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식장산 고산사 등 불교유적에서 지난 역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朱子學]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은 말년에 이곳 대전의 소제동 일원에 터를 잡았다. 송시열 선생의 유흔(遺痕)이 남아 있는 가양동 인근에는 선생을 기리는 우암사적공원이 조성돼 있다. 사적공원 내에는 우암이 말년에 건립해 경학을 하며 후학
인간관계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불행의 주된 근원이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또는 친구든, 가까운 사람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는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부딪히는 일도 많다. 서로의 성격, 가치관, 행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갈등을 겪더라도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고 화해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할 뿐만 아니라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 갈등과 불화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모두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주변 사람 고통주는 성
한 부부가 ‘사마바티(Samavati)’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딸과 함께 밤사(Vamsa)의 한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마을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사마바티와 그녀의 부모는 많은 사람과 함께 피난처를 찾기 위해 밤사의 수도인 코삼비(Kosambi)로 향했습니다. 도시는 난민으로 가득 차 있었고, 코삼비 시민들은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할 시설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정오마다 식량을 배급했는데, 난민들은 최대한 많은 음식을 가져가려다 몸싸움을 벌이곤 하였습
꽃의 수정을 돕는 벌세상이 온통 꽃밭입니다. 일 년 중 우리들 꿀벌이 가장 바쁜 때이지요. 우리는 인간이 등장하기 전부터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녔습니다. 그저 날아다니기만 한 건 아니에요. 꽃가루를 옮기며 식물이 수정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전 세계 식량 자원의 70%를 수정해서 결실을 맺게 하는 일꾼이 바로 우리 꿀벌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그러니 우리가 없으면 사람들의 식량 생산에 적잖은 차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우리 꿀벌은 많게는 6만 마리에 이르는 거대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향긋한 꽃냄새를 따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간단한 질문은 수 세기 동안 인류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진 물음이다. 인간은 이 근본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학자와 영적 지도자에게 의존했고, 지금도 과학자·철학자·예술가들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애쓰고 있다.심리학에서도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심리치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심리치료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을 본능과 무의식에 지배당할 수 있는 존재로 보면서, 본능과 무의식을 현실적으로 잘 다스리는 게 무
부처님오신날 나라별로 달라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아기 부처님이 태어난 날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축제를 봉행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부처님오신날 축제는 우리나라의 ‘연등회(燃燈會)’다. 연등회는 그 문화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12월 ‘연등회, 한국의 등 축제’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만큼 부연 설명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이웃 나라들은 언제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할까? 먼저 국가별로 부처님오신날은 조금씩 상이하다. 북방불교권인 우리나라와 중국은 음력 4월 8일(2022년 기준 양력 5월
밀교, 라마가 이끄는 비밀 수행티베트 불교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만나는 방식은 독특하다. 교리와 법문을 직접 설하기보다는, 그들만의 상징적 의식을 통해 교감하고 이끌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밀교(密敎)’와 ‘라마(Lama) 제도’라는 티베트 불교의 두 가지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밀교는 문자나 언어로 가르침을 펼치는 현교(顯敎)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비밀스러운 수행법과 의식으로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고, 교의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구전으로 직접 전수된다. 티베트 불교는 인도에서 건너온 밀교적 성격이 강한 불교와 토착신앙
〈유마경〉은 한 품 한 품이 모두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대승의 근본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관중생품(현장 역에서는 ‘관유정품’)’에 나오는 천녀의 이야기는 그 가운데서도 대승의 근본정신을 드러내면서, 우리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우리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핵폭탄급의 파급력을 가졌다는 것도, 그런 핵폭탄급의 이야기를 불발탄으로 만들어온 우리 불자들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도 모두 인정하실 만하지요?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으
“터키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 여행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만큼 터키, 즉 아나톨리아 반도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 땅이었고 로마가 번성한 지역이라는 역사적 배경만으로도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터키를 수식하는 말도 많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땅, 동서 문명의 교차로, 문명의 용광로……. 하지만 나는 누가 터키에 대해 물으면 ‘차(茶)의 나라’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말 그대로 터키는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다. 터키 사람들이 마시는 ‘차이(çay)’는 녹차를 발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나무들이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그중 세 종류의 나무를 성스러운 나무 즉, ‘3대 성목(三代聖木)’으로 꼽는다. 아기 부처님이 태어날 때 마야부인이 의지한 무우수(無憂樹), 수행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을 때 그늘을 만들어준 보리수(菩提樹), 그리고 열반에 들 때 하얀 꽃을 내려준 사라수 두 그루[娑羅雙樹]다.그중 깨달음의 상징이 된 보리수는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어 나무이름까지 깨달음을 나타내는 ‘삐팔라(Pippala)’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불교의 성지는 물론이고 수행처에는 반드시 성수(聖樹)인 보리
인천안목(人天眼目, 보물1015호)송나라 승려인 지소(智昭)가 당시 불교 5개 종파의 기본사상과 창시자들의 행적을 요약해 특징을 밝힌 책이다. 고려 공민왕 6년(1357)에 원나라에서 활동하던 강금강(姜金剛)이 간행한 책을 원본으로 삼아 조선 태조 4년(1395)에 무학대사가 회암사에서 다시 새겨 펴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세로 25.3㎝, 가로 16.7㎝ 크기다.진실주집(眞實珠集, 보물1014호)중국 송나라 때 예묘행(倪妙行)이 역대 선사들의 법어와 시문 등을 모아 편집한 선서(禪書)다. 3권 1책으로 이루어진 목판본이며,
전미경 2022년 作생명의 노래 _ 45x32cm_종이에 자연물전미경 작가는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작품 ‘공작새’와 ‘세레나데2’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저서로 〈풀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풀꽃 그림〉·〈풀꽃으로 그린 풍경〉이 있다.
세계인류는 현재 포용과 통합을 강조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뉴욕 지하철 총기 난사 사건 등 인류가 여전히 갈등과 증오를 내세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 대한 대응책이다. 실제로 남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행위는 증오와 적개심을 키울 뿐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것’만을 고집한다면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기란 난망하다.특히 우리나라는 다종교·다문화가정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칫 종교와 문화의 다름으로 인해 분쟁과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부처님오신
현재 서울시에서 건립한 시립 노인종합복지관은 총 19곳이다. 그중 강북노인종합복지관은 천태종복지재단에서 수탁해 운영 중인 강북구 유일의 시립 노인복지관이다. 이곳에는 천태종복지재단이 운영을 맡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13년 동안 복지관 발전과 직원들의 복지향상에 힘쓰고 있는 나영식(46) 부장이 근무하고 있다.어머니 권유로 사회복지학과 입학나 부장은 고향이 대전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단양 구인사를 다녔다. 어머니는 신심 돈독한 천태불자였지만, 어렸던 그는 왜 절에 가야 하는지, 기도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 채 어
잡초날씨가 궂은 날이 아니면 짬이 날 때마다 잡초를 뽑는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고 자란다. 여름에는 잡초가 매우 버겁다. 다루기가 어렵다. 그나마 늦가을부터는 그 기세가 꺾이니 이런 겨울날에 시간이 날 때마다 잡초를 뽑는다. 그냥 두어도 시들 것을 무엇 하러 굳이 뽑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잡초를 이기기에는 이 겨울의 시간만 한 때가 없다. 겨울에 그 뿌리를 뽑아 봄에 잡초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나는 것을 조금은 막고자 하는 것이다.봄에서 가을까지 자란 잡초의 뿌리는 한껏 깊어져 뿌리의 그 근거를 떼어내기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宗正)을 지낸 한암(漢巖) 대종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스님은 구한말인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온양(溫陽) 방씨(方氏) 기순(箕淳)과 선산(善山) 길씨(吉氏)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중원(重遠)이다.22세 때인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선사(行凜禪師)를 은사로 출가했다. 1899년, 금강산 신계사에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을 읽다가 크게 발심했고, 김천 청암사 수도암에서 만난 경허(鏡虛)화상의 〈금강경(金剛經)〉 법문을 듣고 첫 깨달음을 얻었다. 합천 해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