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위계이론의 정점은
대승불교의 보리살타”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에이브러햄 해롤드 매슬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간단한 질문은 수 세기 동안 인류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진 물음이다. 인간은 이 근본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학자와 영적 지도자에게 의존했고, 지금도 과학자·철학자·예술가들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애쓰고 있다.

심리학에서도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심리치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심리치료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을 본능과 무의식에 지배당할 수 있는 존재로 보면서, 본능과 무의식을 현실적으로 잘 다스리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 심리학 분야에서도 인간을 환경에 의해 통제되는 존재로 보았다. 즉, 프로이트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고도의 지능을 지닌 생물학적 기계로 여겼다는 의미다. 이후 심리학계에서 인간의 자율성이나 창의성에 관한 논의는 더욱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매슬로의 욕구위계

피라미드적 욕구위계

에이브러햄 해롤드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인간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해선 안 되며, 사랑·자유·선택·창조성·의미를 비롯해 가치·성장과 자아실현과 같은 인간의 독특한 능력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심리학자들은 주로 ‘인간은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 연구했지만, 매슬로는 ‘인간이 한평생 어떻게,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매슬로에 따르면, 육체는 성인이 되면서 성장을 멈추지만 정신은 계속 성장한다. 흥미롭게도 매슬로는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성취했고,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매슬로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먼저 생리적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면 안전하기를 원하고,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후에는 소속감을 느끼고 애정을 느끼는 상대를 찾게 된다. 그런 후에 사회적 지위와 존경 등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러한 욕구들이 차례로 충족되지 못하면 결핍된 부분에 관한 콤플렉스가 생기고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매슬로는 이 욕구들을 ‘결핍 욕구’라고 부르고 계층적 구조로 배열했다. 피라미드처럼 생긴 욕구 위계(位階)에서 아래에 있는 욕구가 먼저 충족돼야 그다음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네 단계의 결핍 욕구가 충족되면 끝으로 ‘존재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욕구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성취하려는 자아실현 욕구의 동기는 결핍이 아니라 성장이기 때문에 충족될수록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진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원하는 사람은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더욱더 키우고 발휘하려 한다.

욕구 피라미드 맨 아래에 위치한 생리적 욕구부터 네 번째 존경받고 싶은 욕구까지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이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앞의 네 가지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아실현의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면 삶은 건강할 수 없다. 매슬로는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아충족에 대한 욕구로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와 프랭크 고블.
에이브러햄 매슬로와 프랭크 고블.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에이브러햄 해롤드 매슬로는 뛰어난 학자다. 1960~1970년대에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는 전형적인 과학자였지만 자아실현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불교·도교와 같은 종교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다. 선불교 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매슬로는 특히 대승불교의 보살정신, 즉 자신의 영원한 행복을 포기하고 모든 인류가 깨닫도록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세속으로 돌아가는 보살의 행동에서 인간 성장의 정점을 보았다.

매슬로는 1908년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가정에서 일곱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러시아에서 온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유대인 이민자였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 이민자 가정이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의 가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행히 근면했던 부친의 노력으로 빈민가를 벗어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매슬로는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불행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비유대인 이웃 속에서 보잘것없는 유대인 소년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백인 학교에 입학한 흑인 아이의 심정일 것입니다. 나는 항상 외톨이였고, 불행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친구 한 명 없이 도서관에 있는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뉴욕에는 반유대주의가 만연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를 혹독하게 대했고, 동급생들이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우연히 듣기도 했다. 매슬로는 편견이 있는 선생님들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코넬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지만, 입학 직후 교내에 만연한 반유대주의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뉴욕시립대학에 편입해 왓슨(John B. Watson, 1878~1958)과 같은 행동과학자들의 연구를 공부했고, 이를 계기로 심리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그러던 중 매슬로는 사촌인 베르싸와 사랑에 빠졌다. 그의 부모는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매슬로는 스무 살이 되던 1928년, 베르싸와 결혼했다. 결혼은 매슬로의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삶의 목적을 깨닫게 했다. 그는 나중에 “결혼을 하고 위스콘신으로 갈 때까지는 내 인생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내·첫째 아이와 함께 위스콘신으로 이사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1934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매슬로는 뉴욕시에 있는 브루클린 대학교로 돌아와 1951년까지 머물렀다.

1930년대 심리학자 대부분이 그랬듯이 매슬로는 행동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호나이·프롬·아들러 등과 만나 지적 대화를 나눴고, 게슈탈트 심리·인류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심리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다. 특히 함께 공부하던 아들러가 내담자의 잠재력을 일깨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지식인과의 교류,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첫 아이의 출생 등의 경험은 그를 행동주의 학자에서 인본주의 학자로 변하게 했다. 매슬로는 첫 아이가 태어날 때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신비감과 함께 제어할 수 없는 기분에 빠졌다. 이러한 경험은 나 자신에 대해 품고 있던 열등감을 사라지게 했다. 아이를 가져본 사람은 행동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매슬로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잠재력을 다룰 심리학을 연구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인간이 증오·편견·전쟁과 같은 폭력적 행위보다 숭고한 행동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바로 유명한 매슬로의 ‘욕구위계이론’과 ‘성장심리학’이다.

1968년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1968년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완성 못한 초월자 이론

그러나 매슬로는 기존 심리학에서 다루지 않던 이색적인 주제를 연구했기 때문에 학계로부터 소외당했다. 심리학회는 그에게 논문을 발표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매슬로는 1954년 심리학계로부터 자신처럼 소외당하고 있는 비슷한 처지의 학자들을 모아 논문교환 통신망을 결성했고, 이 일을 계기로 1961년 〈인본주의 심리학회지(The Journal of Humanistic Psychology)〉를 창간했다.

매슬로는 1951년부터 1969년까지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심리학과 학과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학술상을 받았고, 1967년에는 미국심리학회 회장에 선출됐다. 하지만 1970년 새로운 책의 출간을 준비하던 중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그와 함께 했던 동료와 후학들은 같은 해 매슬로를 기념하는 인본주의 심리학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이 연구소는 인본주의 심리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담기관이 되었고, 현재는 세이브룩대학교로 개칭돼 인본주의 심리학 중심의 대학원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매슬로가 말하는 ‘자아를 실현한 사람[自我實現者]’은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확장해 더욱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매슬로는 자아실현적 삶을 영위한 자신의 동료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을 표본 삼아 자아실현자의 특성을 연구했다. 이런 연구과정에서 그는 자아실현자를 ‘절정체험이 없는 자아실현자’와 ‘절정체험을 경험한 자아실현자’ 두 부류로 구분했다.

‘절정체험(Peak experience)’은 강렬한 몰입이나 집중 상태에서 그 체험이 극한에 다다를 때 나타나는 무아경·놀라움·경외심과 환희 등의 경험을 말한다. 이런 체험의 순간을 매슬로는 “시야가 탁 트이고 기존에 느껴보지 못했던 힘과 무력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엄청난 황홀감·경이·외경심이 느껴지며, 시공을 잊게 된다.”고 표현했다. 이런 경험을 하는 동안 자아실현자는 극도로 확신에 차고, 명확하고 강력한 힘을 느끼며, 그 경험은 강화된다. 절정체험을 한 후 자아실현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명감과 가치에 대해 더욱 명확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매슬로는 예순이 가까워졌을 때 자신의 욕구위계이론을 수정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절정체험을 경험한 자아실현자들을 그의 욕구위계이론의 최고단계인 자아실현을 넘어선 단계로 분류했다. 그는 이들을 ‘초월자’라고 불렀다. 결국 매슬로는 자신이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불렀던 자아실현자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자아초월’의 단계를 추가했다. 자아초월의 단계에 다다른 사람은 개인적 자아(Ego)를 뛰어넘어 타인에게 헌신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매슬로에게 대승불교의 ‘보디사트바[菩提薩埵]’는 자아초월자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였다. 매슬로는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보살의 길’에 매료됐다. 그즈음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쎄요. 지금은 10년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수준의 자아실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절정체험이 없는 자아실현자는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성공을 이루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나 초월자는 자아초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길이 의미하는 가치 체계로 향합니다. 그(초월자)는 인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합니다. 그가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이유는 타인을 위하려는 목적이고, 마침내 개인적 자아를 초월하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매슬로는 초월자, 즉 인간 성장의 정점에 대한 이론은 체계화하지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술지에 초월자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었으며, 그의 개인적인 글은 사망 후 한동안 출판되지 않았다. 초월자 연구의 흐름이 끊겨 버린 것이다. 만약 매슬로가 보다 오랜 기간 건강하게 연구활동을 이어나갔다면,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욕구위계이론의 정점엔 불교의 보살사상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진건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조교수.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2012~2014),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2015~2019)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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