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음해와 비방에도 상냥
붓다 “가장 친절한 우바이”

〈삽화=필몽〉
〈삽화=필몽〉

한 부부가 ‘사마바티(Samavati)’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딸과 함께 밤사(Vamsa)의 한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 마을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사마바티와 그녀의 부모는 많은 사람과 함께 피난처를 찾기 위해 밤사의 수도인 코삼비(Kosambi)로 향했습니다. 도시는 난민으로 가득 차 있었고, 코삼비 시민들은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할 시설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정오마다 식량을 배급했는데, 난민들은 최대한 많은 음식을 가져가려다 몸싸움을 벌이곤 하였습니다.

코삼비로 피난 떠나

사마바티는 처음 음식을 얻으러 왔을 때 세 사람이 먹을 양을 달라고 했었고, 얼마 후에는 두 사람의 양을 요청했고, 그날은 한 사람의 양만 요청했습니다. 음식을 나누어주던 중년의 여인, 밋타(Mitta)는 사마바티가 요청한 음식 양을 듣고는 비꼬듯이 말했습니다.

“이제야 당신은 당신의 위(胃)에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까?”

사마바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저와 부모님 두 분을 위한 3인분의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2인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음식만 있으면 됩니다.”

밋타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 자신의 빈정거림에 대해 사마바티에게 사과했습니다. 밋타는 사마바티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해 듣고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밋타는 사마바티에게 그녀를 수양딸로 입양하고 싶다며 의향을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사마바티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으므로 그녀는 많은 피난민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음식 배급을 받을 때 질서와 규율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시끄럽게 떠들고 서로 밀치는 대신 질서정연하게 피난민이 줄을 서서 공평한 몫을 받고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어느 날 왕실 재무로 임명된 부유한 상인 고시타(Ghosita)는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음식이 매우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것을 보고 밋타에게 상황을 물었습니다. 사마바티에 의해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듣자 고시타는 사마바티를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고시타는 사마바티를 보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과 인내심을 갖고 일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고시타는 밋타에게 사마바티를 입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밋타는 사마바티가 고사타에게 입양될 경우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가 될 것을 알기에 마지못해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사마바티는 빈곤에 허덕이다가 엄청난 부와 높은 지위를 가진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왕비가 되다

이제 그녀는 귀족이나 왕족 계급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삼비의 우데나(Udena) 왕의 이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왕에게는 이미 바술라닷타(Vasuladatta)와 마간디야(Magandiya)라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두 왕비 모두 육체적으로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매력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우데나 왕은 외롭고 불행했습니다. 우데나 왕은 사마바티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아내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왕은 고시타에게 자신의 소원을 알렸는데, 고시타는 왕의 요구를 정중히 거절하기로 했습니다. 왕은 화가 나서 고시타를 높은 직위에서 해임하고 코삼비에서 추방했으며 모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사마바티는 양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우데나 왕에게 가서 그의 아내가 되기를 제안한 후 고시타에 대한 왕의 박해를 중단했습니다.

사마바티는 천성적으로 인내심이 강하고 수용적이어서 곧 왕궁의 새 삶에 적응했고, 우데나 왕의 돌발적인 분노에 대해 참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데나 왕은 사마바티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사마바티의 하인으로 쿳줏타라(Khujjuttara, 곱사등)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쿳줏타라는 등이 굽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왕실의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사마바티도 궁궐에 갇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바티는 자신의 머리를 꽃으로 장식하고 싶을 때 쿳줏타라에게 심부름을 시켜 꽃을 사오게 했습니다. 쿳줏타라는 매번 절반의 돈만큼 꽃을 산 후 나머지 절반의 돈은 자신을 위해 몰래 감추어두곤 했습니다.

어느 날 쿳줏타라가 평소처럼 심부름을 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보고 멈추어 섰습니다. 부처님은 군중 뒤에 있는 쿳줏타라을 보고 그녀가 비록 못생겼지만,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법문의 요지를 바꾸어 그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법을 설했습니다. 법문이 끝날 무렵 쿳줏타라는 예류과(豫流果,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삽화=필몽〉
〈삽화=필몽〉

시녀 통해 불법에 귀의

쿳줏타라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그 순간 사마바티의 돈을 훔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바티 왕비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습니다. 쿳줏타라는 사마바티에게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마바티 왕비는 쿳줏타라의 극적인 변화와 붓다의 가르침에 매료되었습니다, 왕비는 쿳줏타라를 용서한 후 그녀에게 부처님께 가서 법에 대해 더 많이 듣고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쿳줏타라는 매일 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녀가 들은 모든 것을 왕비에게 충실하게 전달했습니다. 사마바티는 결국 삼보에 귀의하고 나중에 왕실의 다른 모든 여성도 삼보에 귀의하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 날 우데나 왕은 사마바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마바티는 곧바로 부처님을 궁궐로 초청해달라고 요청했고, 왕은 초청장을 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당신 대신에 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난다는 왕족과 귀족에게 법문을 했습니다. 아난다가 법문을 마칠 즈음에 사마바티는 예류과를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바티의 격려로 왕실의 많은 사람들은 열성적인 불교도가 되었지만, 완고하고 변덕스러운 우데나 왕은 분노의 억제를 가르치는 불교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바티의 인내심과 부드러운 설득으로 우데나 왕도 조금씩 명상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신심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편 우데나 왕의 아내 중 한 명인 마간디야는 사마바티를 점점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회만 있으면 사마바티의 앞에서 그리고 등 뒤에서 비꼬는 말을 했고, 그녀가 신앙하는 불교를 조롱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그녀의 진정한 노력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데나 왕 앞에서 사마바티를 비방하기 일쑤였습니다. 마간디야의 이런 악행에도 불구하고 사마바티는 마간디야에게 전혀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바티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계속해서 마간디야에게도 예의 바르고 착한 성품으로 대했습니다. 사마바티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마간디야는 더욱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마간디야는 마치 사마바티가 왕을 위해하는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습니다. 마간디야의 끈질긴 음해에 성질 급한 우데나 왕은 사마바티와 시녀들의 죄를 추궁하고 나섰습니다. 시기심에 불탄 왕은 화살 끝에 독을 바르고 시위를 팽팽히 당겨 위협했지만 사마바티와 궁녀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평온한 여인들의 모습에 더욱 화가 치민 우데나 왕은 군사들에게 활을 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원한과 증오심을 버린 그녀들 앞에서 화살은 낙엽처럼 떨어졌습니다. 그 모습에 감복한 우데나 왕은 왕비와 시녀들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마간디야는 왕이 사마바티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했으나 이에 실패하자 마침내 사마바티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마간디야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사마바티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불을 지르기로 했습니다. 마간디야는 질투와 증오로 가득 차서 사마바티의 처소와 그곳에 사는 다른 여성들의 목숨까지 모두 없애려고 했습니다. 방화범은 불을 질렀고, 사마바티와 500명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불에 타죽었습니다.

우데나 왕은 사마바티의 죽음으로 마음이 황폐해졌으며 오랫동안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 왕은 비극적인 화재의 범인들을 밝혀냈고, 마간디야와 그 친척들을 체포하고 외부로 데려가 산 채로 불태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람들은 왕의 행동에 경악했지만, 대부분은 마간디야가 받아야 할 인과응보를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전염병으로 부모님과 사별하게 된 사마바티는 어떤 오해와 비방에도 화내지 않고 차분히 대응했고,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결국 왕비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시녀가 잘못을 고백할 때 기꺼이 용서했고, 시녀가 전한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귀의했습니다. 또 불교에 관심이 없던 우데나 왕을 인내와 기다림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했습니다. 다른 왕비 마간디야가 질투로 여러 가지 비방과 음해를 했지만 늘 인욕과 친절로 응대했습니다. 사마바티의 인욕과 부드러운 말씨는 국왕 등 주위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마바티를 우바이 가운데 가장 친절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장·불교문화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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