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다치지 않게 하면서
꽃가루 널리 퍼트려
온 세상 이롭게 하지요!”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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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수정을 돕는 벌

세상이 온통 꽃밭입니다. 일 년 중 우리들 꿀벌이 가장 바쁜 때이지요. 우리는 인간이 등장하기 전부터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녔습니다. 그저 날아다니기만 한 건 아니에요. 꽃가루를 옮기며 식물이 수정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전 세계 식량 자원의 70%를 수정해서 결실을 맺게 하는 일꾼이 바로 우리 꿀벌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그러니 우리가 없으면 사람들의 식량 생산에 적잖은 차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 꿀벌은 많게는 6만 마리에 이르는 거대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향긋한 꽃냄새를 따라 날아가서 꽃가루를 취한 뒤에 밀랍으로 집을 지어 꿀을 저장하고 새끼를 키우는 곤충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꿀과 벌집에는 아주 귀한 영양소가 가득 담겨 있어 예로부터 사람들이 소중하게 사용해 왔습니다. 보통의 꿀은 물론이고, 프로폴리스, 로열젤리는 우리가 없으면 만날 수 없는 아주 귀한 약재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애써 모은 꿀을 가져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웅~웅~’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꿀을 지킵니다. 꿀을 가져가려면 수 백 마리의 벌을 먼저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빗대어 〈대방등여래장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순수한 꿀이 벼랑의 나무에 있는데 무수한 벌의 무리가 둘러싸고 지킨다. 이때 어떤 사람이 교묘한 지혜와 방편으로 먼저 그 벌을 제거하고서 꿀을 취하여 마음껏 먹고 이후 멀고 가까운 사람에게도 그것을 나눠주어 은혜를 베푼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붓다의 성품이 깃들어 있으니 그것은 마치 저 순수한 꿀이 벼랑의 나무에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붓다의 성품은 여러 번뇌에 덮이고 가려져 있으니 마치 저 벌떼가 지키는 것과 같다. 여래인 나는 부처의 눈으로 이런 상황을 잘 살펴서 좋은 방편을 내어 법을 설하여 번뇌를 제거하고 없애 모든 생명들이 부처의 지혜를 얻고 나아가 널리 세상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도록 인도한다.”

우리가 꿀을 지키기 위해 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을 붓다 성품을 덮고 있는 번뇌에 비유한 것은 좀 유감입니다. 번뇌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번뇌를 없애려고 덤벼들면 더욱 맹렬히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런 이치를 잘 아는 부처님이 여러 수단을 강구해 사람들 마음을 덮고 있는 번뇌(벌 떼)를 없애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이 되도록 인도한다는 것이지요.

자린고비 남자의 마음 열기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것과는 정반대의 장점이 있습니다. 오래 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 가운데 신통제일인 목련(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바로 꿀벌과 같은 존재라고 찬탄하셨는데, 그 사연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마가다국 라자가하 가까운 곳에 도시 삭카라가 있었는데 그곳에 맛챠리 꼬시야라는 이름을 가진, 8억 개의 은화를 보유한 대부호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꼬시야는 인색해도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습니다. 풀잎 끝으로 기름방울을 묻혀보십시오. 그 방울의 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꼬시야는 그 방울만큼도 남에게 베푼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자신에게 눈곱만큼의 재산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이나 수행자들에게 베풀 리 만무이지요.

어느 날 꼬시야가 거리에서 만두를 구워 먹는 어떤 남자를 봤습니다. 그렇잖아도 출출하던 차에 저절로 침이 고였습니다. 집에 가서 해먹으면 될 일이지만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내가 저걸 해먹다가는 집안의 처자식은 물론이요 식솔들이 전부 한 입 먹겠다고 달려들 테지. 내가 왜 재산을 낭비해야하지?’

꼬시야는 집에 돌아와서 그만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배는 고프고 만두는 먹고 싶은데 집안 어느 누구도 그걸 함께 먹는 걸 용납할 수 없겠기에 그는 꾹 참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를 살살 달래며 힘들어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싼 음식인 만두 때문인 걸 알고 아내는 너그럽게 웃으며 대답했지요.

“아이고, 겨우 그 만두 때문이에요? 걱정 말아요. 내가 이 도시 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만들어줄 테니까요.”

바로 이 점을 염려했던 꼬시야가 버럭 역정을 냈습니다.

“당신은 어마어마한 부자여서 좋겠소.”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사는 동네 사람들도 다 먹을 만큼만 만들어 볼게요.”

“난 당신이 그렇게 흥청망청 재산을 써버리는 게 정말 못마땅하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우리 가족이랑 식솔들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배가 고픈 사람은 난데 왜 그들을 먹여야 하지?”

“그럼 우리 둘이 조용히 만들어 먹읍시다.”

꼬시야는 짜증이 났습니다.

“당신이 왜 먹는데?”

결국 꼬시야는 자신이 먹을 만큼의 재료를 가지고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7층 누각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그 재료도 내버릴 정도의 질 낮은 것들이었지요. 아내가 만두를 만드는 사이 꼬시야는 1층에서부터 7층까지의 모든 입구를 단단히 걸어 잠갔습니다.

한편, 아침 일찍 세상을 두루 살피며 교화할 인연을 찾고 있던 부처님 눈에 이들 부부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부처님은 신통제일의 제자 목련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목련존자여, 오늘 나는 이 절에 있는 500명의 수행승들과 함께 저 부부가 만든 만두로 공양을 하려 하오.”

목련존자는 순식간에 꼬시야의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허공에 뜬 그 상태로 7층 누각에 있는 꼬시야를 바라보았지요. 만두를 만들어서 막 먹으려던 찰나에 목련존자를 발견한 꼬시야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존자를 보고 말했습니다.

“바라는 게 뭡니까? 허공에서 왔다 갔다 해도 내게서 얻어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존자는 허공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자 꼬시야가 또 말했습니다.

“소용없습니다. 허공에서 편안하게 앉아도, 이리 가까이 다가와도 내게서 얻어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존자가 그의 말대로 편히 앉기도 하고, 다가가기도 하자 꼬시야가 또 말했습니다.

“소용없다는데도 그러시는군요. 허공에다 향불을 피워 연기를 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목련존자는 순식간에 향을 피웠습니다. 갑자기 뿌연 연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자 이러다 집이 불탈까 겁이 더럭 난 꼬시야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만두를 작게 하나만 빚어서 저자에게 줘서 보내버리시오.”

아내가 즉시 반죽을 아주 작게 빚어 냄비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반죽은 순식간에 커지더니 냄비에서 넘칠 정도가 됐습니다. 그는 손이 큰 아내를 나무라면서 직접 숟가락 끝으로 반죽을 떼어내 빚어 냄비에 넣었지만 그건 더 커졌습니다. 더 작게 빚을수록 더 커졌습니다. 꼬시야는 그만 넌덜머리가 났습니다. 아무거나 하나 줘서 빨리 쫓아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만두를 하나 꺼냈습니다. 그 순간 모든 만두가 착 달라붙어서 한 덩어리가 됐습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땀범벅이 된 부부는 만두를 그릇째 목련존자에게 올렸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목련존자는 그제야 다른 이에게 베푸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복을 짓는 일인지를 들려주었고, 그 법문을 듣자 꼬시야는 그동안의 인색했던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살핀 목련존자는 부부를 데리고 순식간에 제타숲으로 날아가 그들이 만든 만두를 부처님과 500명의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게 하였지요. 자린고비인 그가 혼자 먹으려고 만든 것이라 양이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뜻밖에도 그 많은 사람이 다 먹고도 남았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지요. 그들은 승원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굶주린 사람들에게도 넉넉히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준 부부는 부처님에게 다시 나아가 법문을 들었고,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희사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스님들이 목련존자의 교화행을 찬탄하자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수행승이 재가자를 교화할 때, 재가자를 조금도 손해 보게 해서도,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마치 꿀벌이 꽃에서 꿀을 취하는 것처럼 다가가서 붓다의 덕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꿀벌이 꽃에서 그 빛깔과 향기를 다치지 않고서

달콤한 맛을 취하고 날아가 버리듯이

성자는 마을에서 이렇게 탁발한다.

- 〈담마빠다〉·〈본생경〉

〈대방등여래장경〉에서는 ‘순수한 꿀’을 부처될 성품에 비유한다. 연꽃에 앉은 꿀벌.               ⓒGettyimagesBank

목련존자가 가져간 것

사람들은 이 시를 음미하면서 ‘수행자가 재가자에게서 음식을 얻을 때의 마음가짐’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생경〉의 내용은 목련존자가 그저 만두라는 음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무게가 겨우 90㎎에 지나지 않는 우리 꿀벌은 수많은 천적이 목숨을 위협해도 날마다 부지런히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채취합니다. 몸무게가 가벼운 만큼 우리는 꽃에게 날아가 필요한 꽃가루를 취하지만 그 꽃을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꽃에서 취한 것을 사방에 퍼뜨려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꿀벌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재가자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지요. 상대방의 인색한 마음을 교화하려고 다가갈 때 그 마음은 더욱 옹색해집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움켜쥐기 마련이지요. 빼앗기기 싫어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입니다. 교화한다는 명분 아래 강제로 움켜쥔 손을 펼치게 하면 인색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견고하고 탐욕스럽게 바뀔 뿐입니다. 저들의 마음이 자연스레 열리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주도록 인도하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입니다. 그저 그들의 마음에서 탐욕과 인색함만을 걷어주면 그만입니다.

누군가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목련존자의 이 방식을 떠올리시면 어떨까요? 마치 우리가 꽃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꽃가루를 취해 훌륭한 꿀을 만들어내어 온 세상을 이롭게 하듯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북칼럼니스트이며, 경전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시시한 인생은 없다〉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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