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문학에 평생 바친
老 작가의 총체적 결산

〈삽화=배종훈〉
〈삽화=배종훈〉

18세에 선문에 든 이후 동암성수, 탄허택성, 고송종협, 퇴옹성철, 서옹상순, 설악무산 등을 참문한 월조(越祖) 송준영(宋俊永) 시인이 스스로의 생애 가운데 핵심만을 골라 엮은 책이다. 책은 자선시(自選詩) 20편과 찬(讚) 6편, 대표논문과 설평(說評)으로 짜여 있다. 먼저 그의 자선시 한 편을 읽어 본다.

손가락조차 예쁘답니다

물은 하늘에 있고 구름은 땅에 있으니
몇 사람이나 저울눈 자리를 잘못 읽었던가
속삭이는 개울물 소리
은코끼리는 손가락 세워 무방비로 찔러댑니다
그래도 땅에 한 선객(禪客)이 휴지를 줍습니다
또 다시 하늘 틈새로 별들이 쏟아집니다
집집마다 달빛이 가득가득, 방방마다
이것이 이곳의 소식입니다
이곳엔,
손등 예쁜 사람은 손가락조차 예쁘답니다

현대에서의 선시

백담사 만해마을에 시집박물관이 개관했을 때였다. 사람들이 가장 애쓰신 무산 스님께 한 말씀을 청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은 푸르고 물도 잘 흐르니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송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무산 스님의 그날 말씀을 떠올렸다. 그 무산 스님께 송 시인은 이런 찬(讚)을 바친다.

법사法師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대선사 찬讚

책장을 넘겼다 그 하얀 백지위엔 무수한 흰 개미가
몸을 흔들며 검은 기호를 털어내고 있었다.
동에서 서에서 동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귀밖에 걸리는 소리너머

내가 걷고 있었다. 텅 빈 백지 위 아득한
하얀 법의 속 할안(瞎眼)의 노스님이 눈을 들고 있었다.

但只餘事看兩手 단지 두 손바닥을 볼일만 남았네
父子多皆大瞎矑 저 부자 모두 다 위대한 당나귀라
只末託師亦今難 이제 스승에게 맡기니 역시 오늘도 가난해
東山日出西日沒 동산이 해 건져내고 서산은 해 감춘다네

啞! 아!
不忘和尙施慧恩 화상께서 베푼 혜은을 잊지 못함이라
只敬不爲我說識 다만 나를 위해 말씀치 않음을 공경합니다

불교는 어렵다. 그 깊이는 까마득하여 들여다보면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 가운데 선시(禪詩)에 대해 송준영 시인은 ‘현대 선시의 발흥과 확장을 위한 제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선어록은 크게 선시와 선시를 짓게 한 본칙(本則)과 본칙을 드러내고자 하는 선화(禪話)의 소개로 양분할 수 있다. 즉 후대 선의 스승들에 의해 우리를 선문(禪門)에 들도록 하는 ‘염(拈, 꼬집어 말함)’과 이것을 드러내는 기표인 수시(垂示, 전언)·평창(評唱, 총평)·착어(着語, 단평)·게송(偈頌, 게·송)으로 표전(表詮)되어 왔다. 이는 우리를 깨달음에 들게 하려는 선사들의 노파심절(老婆心切)이다. 이에 반해 우리의 인식은 논리적인 이해에 의한 학습과 지식으로 축적해 왔는데 이것이 ‘식(識)’이라고 하는 알음알이다.

선적 표현 중 오늘날 선시라 불리는 게송은 산스크리트어로 ‘가테’, ‘게테’가 ‘게’로 음사되고, 중국에 본래부터 있던 ‘송’과 합쳐져 ‘게송’이라 부른 선가 특유의 시적 표현으로 나타났다. 이 게송과 염(拈)·착어 등은 오늘날 선시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염은 ‘장시(長詩)’가 되고 착어는 ‘단시(短詩)’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시라고 하면 선 사상을 시적으로 표현한 언어 양식을 말한다. 곧 선사들의 선적 체험과 선 수행의 결과로 체득된 오도의 경지를 선시적 수사법으로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선시라 통칭되는 시군(詩群)들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청량(淸凉)·단순(單純)·명징(明澄)·무사(無事) 등으로 대표되는 맛이다.

극단으로 몰아붙인 정신세계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과 동향인 전제형이 심요(心要)의 법문을 청한다. 이때 법연은 소염시 ‘빈호소옥원무사(頻呼少玉元無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 두 행을 예로 든다.

一段風光畵不成 한 조각 풍광은 그림으로 그릴 수 없어
洞房深處設愁情 동방화촉의 깊은 곳에서 시름만 전하네
頻呼少玉元無事 자주 소옥을 부르지만 소옥에겐 일 없지
只要檀郞認得聲 다만 낭군에게 알리는 소리일 뿐

- 소염시(小艶詩)

양귀비와 안록산의 고사에서 유래한 시다. 양귀비가 자주 자기의 몸종인 소옥의 이름을 부르는 뜻은 정부(情夫)인 안록산을 찾는 암호인 것 같이, 선이 찾고자 하는 심요는 언어 밖, 낭군 안록산에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묻던 이가 이 뜻을 모르고 돌아가는 것을 본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은 스승에게 묻는다.

“스님께서 소염시를 말씀할 때 그 사람이 진의를 알까요?”

“아니, 그 사람 단지 소리만 들은 것 같네.”

“그가 이미 소리를 알았으면 되는 게 아닙니까?”

이 말끝에 갑자기 법연이 큰소리로 자문자답한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뜰 앞에 잣나무다. 악!”

이 소리를 들은 극근이 방문을 열고 나서자 순간 난간에 날아든 수탉 한 마리가 홰치며 길게 운다.

“꼬끼오~.”

이것이다. 바로 이 소리일 뿐이다. 극단으로 몰아붙인 정신의 세계. 그 시적 표현이 선시(禪詩)인 것이다.

〈삽화=배종훈〉
〈삽화=배종훈〉

다다이즘과 쉬르리얼리즘

서양에서 선시와 유사한 시적 표현은 ‘다다이즘(Dadaism)’과 ‘쉬르리얼리즘(Surrearism)’의 시에 나타난다. 먼저 선시와 다다이즘의 차별성과 연계성을 살펴보자. 다다이즘은 서구의 합리주의를 밟고 반문학주의를 부르짖으며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 전역에 전개된 문학·미술·음악 등의 반(反)예술, 반미학적 예술운동이다. 다다이즘은 현실에 대한 부정과 파괴, 허무를 담아 예술에 표현하고자 한다. 실제 다다이스트들은 소음 속에서 다양한 언어로 시낭송을 하거나, 소음연주회·분장 퍼포먼스를 하는 등 실험적인 예술활동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했다.

짜라·부르통·수포 등의 광란적인 ‘다다행위’는 당시 일반 예술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20년 2월의 1차 다다 선언 내용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다다가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 …··· 다다는 정신상태다. ···… 다다는 예술의 자유사상이다. 다다는 아무것에도 애정에도 노동에도 헌신하지 않는다. 인간이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다다는 본능만을 인정하므로 설명을 선험적으로 거부한다. …··· 어떤 제약도 가져서는 안되며 모럴과 흥미 따위는 문제 될 수 없다.

- 짜라·부르통 〈다다/쉬르리얼리즘〉

이와 대비해 우리나라 조계종의 중흥조인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법어를 간추려 보자.

달마가 서쪽으로부터 온 것은 ‘달을 알려면 손가락에 있지 않듯이 법이 나의 마음’임을 알게 하기 위해 문자를 쓰지 않고 마음을 마음에 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문에서는 집착을 깨어 버리고, 근본을 보이는 것이 귀하고, 번거로운 말이나 뜻으로 나열하는 것은 귀하지 않다. 그러므로 집착 끊는 뜻을 우매한 이는 알지 못한다.

- 지눌 〈원돈성불론〉

다다이즘 선언과 보조지눌의 법어를 비교해 읽어보면 그 근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다다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허무, 관습을 파괴하려 하며 이전의 예술활동을 뒤집으면서 느낄 수 있는 본질에 대한 향수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은 보조지눌의 〈원돈성불론〉에서 보듯이 말이나 형상을 여의어 모든 것이 평등으로 보이는 것, 이것이 진여 곧 진실로 우리의 삶을 그대로 나타낸다.

선과 다다의 공통점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가능성에서는 동일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다다와 같이 일시적인 퍼포먼스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것에 닿지 못한다고 본다.

선시와의 차별성

그럼, 선시와 쉬르리얼리즘 시와 다다이즘 시의 차별성과 그 사상을 살펴보자. 쉬르리얼리즘은 스위스 다다이즘이 파리로 전이된 1920년 이후 앙드레 부르통(1896~1966)에 의해 다다이즘이 변형된 것이다. 즉 부르통과 아라공 등이 파리를 중심으로 일으킨 정신운동으로 다다이즘에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 것이다. 부르통은 세계를 직시하는 방법, 곧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무의식·꿈·광기·불가사의·환각 등 논리적 체계로써 접근할 수 없는 의식의 이면을 추구했다.

쉬르리얼리즘의 무의식·꿈·상상력의 확대는 선의 입장에서 볼 때 망상에 불과하다. 선은 무의식 세계를 혼침(昏沈)·무기(無記)라 하여 선사들은 학인들에게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무의식에서 진일보한 툭 터진 것, 이를테면 초의식의 세계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초의식마저 깨뜨린 것을 깨침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선시의 경우 문답이나 작품은 깨달음에서 오는 정신의 어떤 경지를 읊는 것이다. 하지만 쉬르리얼리즘 시의 경우 그들의 문답이나 작품은 자동기술적인 방법에 의해 의식의 개입 없이 거의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빠르게 기록하고 집합시킨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선사의 경우 그들은 선문답이나 작품들이 맑고 선명한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의식에서 어떤 정신이 비전을 깨닫고 노래한 것이라면, 쉬르리얼리즘 시구는 그냥 무의식의 자맥질에서 선명한 의식의 참여 없이 피동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이성의 감시나 탐미적 윤리적 지배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순수한 기록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것을 자동기술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평생을 불교와 문학에 헌신해온 작가 작업의 총체적 결산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문학적인 종교가 불교라는 생각을 했다. 선승들이 많은 선시를 남긴 것도, 또 선승들 가운데 빼어난 시인들이 많았던 것도, 불교를 소재로 한 명작이 많은 것도 그런 속성 때문으로 보였다. 그것을 책 한 권으로 엮고 보니 빈책[空冊]이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자효
시인. KBS 유럽총국장·SBS 이사·한국방송기자클럽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신라행〉·〈세한도〉·시집소개서 〈잠들지 못한 밤에 시를 읽었습니다〉·번역서 〈이사도라 나의 사랑 나의 예술〉을 펴냈다. 공초문학상·유심작품상·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시인협회장, (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 지용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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