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깨달음 도왔고,
불교의 기나긴 역사와
함께해온 성수(聖樹)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나무들이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그중 세 종류의 나무를 성스러운 나무 즉, ‘3대 성목(三代聖木)’으로 꼽는다. 아기 부처님이 태어날 때 마야부인이 의지한 무우수(無憂樹), 수행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을 때 그늘을 만들어준 보리수(菩提樹), 그리고 열반에 들 때 하얀 꽃을 내려준 사라수 두 그루[娑羅雙樹]다.
그중 깨달음의 상징이 된 보리수는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어 나무이름까지 깨달음을 나타내는 ‘삐팔라(Pippala)’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불교의 성지는 물론이고 수행처에는 반드시 성수(聖樹)인 보리수를 심었다. 그러나 전륜성왕으로 불린 아소카대왕은 보리수의 상징성이 부처님을 모욕한다고 여겨 부처님께서 성도(聖道)한 인도 마하보디사원의 보리수를 불태워버렸다. 그런데 검게 그을린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면서 성스러움이 더해졌다. 이에 아소카왕은 죄책감을 느끼고 나무를 보호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공주의 신분에서 출가를 택해 비구니가 된 상가미타(Sangamitta)를 통해 경전과 함께 이 나무의 수근(樹根)이 달린 가지를 잘라 스리랑카에 전했다.
당시 스리랑카의 팃사(Tlssa, 재위 BC 454〜437)왕은 이 성수를 한 사원에 심었다. 이후 이 사원은 스리 마하보디사원(Sri Maha Bodhi Temple, 스리 마하 보리수사원)으로 불리게 됐고, 사원의 보리수와 사원은 신도들의 성지가 되었다. 특히 인도 마하보디사원의 보리수가 이교도들에 의해 불에 타 말라 죽었을 때는 오히려 스리랑카 스리 마하보디사원의 보리수 가지를 잘라 재이식했는데 그 나무가 현재 인도 마하보디사원의 보리수가 되었다고 전한다.
몇 년 전 인도 정부에서 이 나무의 DNA를 검사했는데, 수령이 2,000년이 넘는 것으로 확인돼 전설처럼 전해져온 이야기는 역사가 되었다.
이러한 보리수의 상징성은 불교가 전해진 후 한반도에서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보리수는 열대성 식물이기에 한반도에서는 살 수 없는 수종(樹種)이다. 그래서 동북아 지역에서는 결국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를 심었는데, 이 역시 이름은 ‘보리수’다. 이 보리수는 인도의 보리수와는 거리가 먼 피나무의 한 종류로 중국이 원산인 보리자(菩提子) 나무다.
이 나무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보리수’로 불리며 사찰에 심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보리자 나무의 잎 모양이 인도 보리수와 흡사해 중국에서 먼저 사찰 주변에 심었고, 이를 중국에서 유학한 승려들이 귀국할 때 가져와 심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한반도에도 이미 자생종인 피나무가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 열매로 염주를 만들게 됐고, 이 또한 보리수로 불리게 되었다. 보리자 나무와 모양과 열매가 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아 모두 보리수로 부르고 있다.
나라별 수종이야 어떻든 보리수는 그 종교적 상징성으로 인해 세계 곳곳의 수행처에서 꼭 필요한 나무로 신성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