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의 노력과 훈련 통해
경직된 사고에 유연성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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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불행의 주된 근원이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또는 친구든, 가까운 사람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는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부딪히는 일도 많다. 서로의 성격, 가치관, 행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갈등을 겪더라도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고 화해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할 뿐만 아니라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 갈등과 불화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모두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 사람 고통주는 성격장애

정신장애는 별문제없이 적응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되면서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개인의 독특한 성격특성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과 지속적으로 갈등과 불화를 겪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성격적 문제를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s)’라고 한다.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을 비롯한 삶의 여러 영역에서 심각한 인간관계 갈등을 유발하여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심리상담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50대 남성인 K씨는 이혼을 원하는 부인과 부부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실을 방문했다. 부인의 말에 따르면, K씨는 가정에서 제왕처럼 행동하며 자신을 하녀처럼 부린다.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부인의 생각은 묵살한다. 맞선을 봤을 때 남편이 자신감에 넘치고 미래의 포부가 큰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결혼했으나 남편은 신혼 때부터 모든 일을 자신 뜻대로 하려고 했다. 유순한 성격의 부인은 남편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했으나 남편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인해 결혼생활이 불행했지만, 자녀를 위해 견뎌왔다.

남편은 자신의 사업체를 키우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으며 회사직원들 역시 하인처럼 부려서 잦은 갈등과 직원교체로 회사운영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들이 아버지의 강압적인 행동에 반발하면서 가족갈등이 심해졌고, 남편은 모든 문제를 부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면서 비난과 폭언을 일삼았다. 더구나 최근에는 회사의 여직원과 외도를 하면서도 당당하게 행동하는 남편의 모습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K씨는 상담자와의 개인적 면담에서 부인의 입장과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으며 이혼하게 될 경우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 손상되므로 부인의 생각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성격장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융통성 없이 고집하여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향이 삶의 여러 영역에 나타나서 K씨의 경우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갈등적 관계를 유발하며 지속적인 불화를 겪게 된다. 성격장애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K씨는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에 해당하는 행동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나는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다.”라는 웅대한 자기상과 더불어 “나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은 나의 특별함을 인정하고 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특권의식을 지닌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고 커다란 포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는 귀족, 너는 평민’이라는 의식구조를 지니고 자기중심적인 일방적 행동을 일삼기 때문에, 이들과의 관계에 잘못 얽혀들게 되면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면서 고통을 받게 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독점적 애정을 받으면서 독불장군으로 성장했거나 어린 시절에 겪은 자존감의 상처와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서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되는 환상을 즐기며 웅대한 자기상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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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장애의 다양한 유형

백인백색(百人百色)이듯이,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다. 성격은 개인이 지니는 독특한 사고방식과 신념체계, 정서 체험과 표현 방식, 그리고 대인관계 방식을 의미한다. 개인의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심리적 기질과 더불어 성장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통합되어 형성된다. 아동의 심리적 경험은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면 성격특성으로 고착되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성격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성격은 우리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다. 독특한 선천적 기질과 성장과정의 특수한 경험으로 인해 극단적인 성격을 형성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과 좌충우돌하며 부적응적인 삶을 살게 되는 ‘성격에 모가 난 사람들’이다.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과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고집하면서 결코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거나 왕따를 당하여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성격장애는 여러 하위유형으로 구분되고 있다. K씨의 경우와 같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외에도 △의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의도를 악의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과도한 적대감을 느끼며 갈등과 반목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편집성 성격장애 △처음에는 강렬한 호감과 애정으로 급속하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를 좌절시키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여 인간관계를 불행하게 끝내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계선 성격장애 △도덕과 법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폭력을 일삼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지나친 완벽주의와 꼼꼼함으로 인해 실수를 두려워하며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청결과 절약을 요구하여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강박성 성격장애 △무시나 비난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회피성 성격장애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그 사람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의존성 성격장애가 있다.

성격장애는 뿌리가 깊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괴팍한 성향이 강화되어 성격장애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모난 돌이 둥글어지듯이,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격장애가 완화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성격장애를 개선하는 방법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주변 사람과 지속적인 갈등과 불화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이 올바르고 정당하다는 집착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의 갈등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은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K씨의 경우처럼, 부부갈등이나 이혼과 같은 심각한 문제로 인해 마지못해 배우자에 이끌려 상담실을 찾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리상담자에게 있어서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성격장애는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성격장애자들은 자신의 성격적 문제를 쉽게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격장애의 특성이 상담자와의 관계에 재현되어 그들과 갈등적 관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격장애의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성격장애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는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이 현재의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운 인간관계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굳건한 의지다. 노련한 심리상담자는 이러한 사람들과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하면서 두 가지의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성격장애는 쉽게 변하지 않지만 세 수준의 변화가 가능하다. 비유하자면 성격이라는 건물의 골조를 허물고 다시 세우는 ‘재건축 수준’, 건물 구조의 일부만을 변화시키는 ‘리모델링 수준’, 건물의 골조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내부의 가구와 장식을 바꾸는 ‘인테리어 교체 수준’과 같은 다양한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성격장애를 재건축 수준으로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교체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성격장애의 치료적 초점은 사고의 유연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성격장애자의 경직된 사고와 신념을 구체적으로 찾아내어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집착했던 자신의 생각과 신념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집착이 누그러진다. 성격은 습관의 집합체이며, 습관은 오랜 세월 반복을 통해 자동화된 사고와 행동방식을 의미한다. 자동화된 반응방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알아차림을 통한 의식화가 필수적이다. 꾸준한 알아차림의 노력과 훈련을 통해 과거에는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던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을 좀 더 적응적인 것으로 조금씩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성격장애는 오랜 시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만큼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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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을 통한 개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상대방을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대방을 성격장애자로 매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갈등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갈등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또 정상 성격과 성격장애의 경계는 모호해서 심리전문가가 아니면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서로의 책임을 인정하며 자신의 변화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몸은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 딱딱한 뼈는 몸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부드러운 살은 외부세계와의 접촉에서 충격을 완화해준다. 마치 뼈만 있는 경직된 몸처럼, 성격장애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고집하여 주변 사람과 접촉할 때마다 충돌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삶에서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고집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불교는 삶의 고통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집착을 자각하고 그러한 집착의 공성(空性)을 깨달음으로써 유연하고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가르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실체적 근거가 없으므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불필요한 갈등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수행의 핵심은 불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 속에 실천하며 체화하는 것이다. 수행의 열매는 인간관계의 나무에서 가장 먼저 수확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고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이 줄어들어 마음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고 거슬리는 것이 많다면, 자신의 마음을 더 깊이 살펴보는 수행이 필요하다.

권석만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유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 이상심리학〉·〈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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