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은 사찰에 거주하는 대중이 주로 먹는 음식을 말합니다. 사중 스님들이 만들어 먹는 음식은 물론 불자들이 공양 올린 음식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나라마다 기후가 다르고, 환경에 차이가 있다 보니 사찰음식도 제각각입니다. 세계 각국의 사찰음식과 대강의 요리법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수행과 생활을 엿보고자 합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인지 종교인구는 많지 않다. 8,500만의 인구 중 12%가 불교를, 7%가 가톨릭을 신앙한다. 이에 비해 불교가 기원 2~3세기경 전래돼 오랜 세월만큼 전국에 많은
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 여기에 종교적 신념·사상·문화가 융합하면 인류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무형유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 가운데 불교 사상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세계무형유산을 소개한다. 티베트 불교계는 전통적으로 일 년에 두 차례, 한 번에 3개월씩 안거를 한다. 상반기는 4월부터 6월말까지 3개월간인데 안거가 끝나는 6월 그믐 아침, 사찰에서는 탕카(Than-ka, 탱화)를 내걸어 수행의 증표로 내보이고, 신도들은 스님들께 ‘쇼르’를 공양하는 것으로 한 달간의 축제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이다. 특히 인구가 몰려 있는 수도권은 확진자도 매일 수백 명씩 나오다보니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감염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이후 직장인들 사이에서 점심식사로 ‘도시락’을 이용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만큼 ‘이럴 때는 나 혼자만이도 조심해서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생각에 필자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쌀 자신이 없어 망설이다가 아내에게 부탁을 해서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며칠 도시락을 싸주던 아내가
유럽과 불교의 만남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린 간다라(Gandhāra) 불상(佛像)을 떠올려 보면 불교문화와 유럽 문화의 교류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다라 불상의 얼굴과 머리칼은 어딘지 모르게 그리스 석상을 닮았다. 뿐만 아니라 불상이라는 형식 자체가 두 문화 교류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불상은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사실 불상은 석가모니 열반 후 몇 백 년 후까지도 수용되지 않다가 간다라의 영향으로 비로소 불탑과 함께 부처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현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불교 고전에서도 유럽과
불자의 목표는 부처를 이루는 것[成佛]이다. 이를 위해서는 업장과 번뇌를 소멸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올라야 한다, 그 방편은 바른 믿음과 실천[信行] 그리고 수행이다. 하지만 지난해 불어 닥친 ‘코로나19’는 불자들의 신행과 수행의 일상을 뒤바꿔놓았다. 사찰 참배와 법회 참석이 어려워졌다고 수행을 멈출 수는 없는 일.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신행과 수행을 하며 정진하는 불자들을 만나봤다. ○ 독경 수행하는 이란 여여원 원장 ― 글·사진 이강식 기자 “20여 년 한결같이 경전 읽고
봉제품 실은 오토바이 ‘쌩쌩’‘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외친전태일 열사 현수막 나부껴골목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흔적이 서려있다. 서울 창신동(昌信洞)도 예외가 아니다. 창신동 봉제골목은 낙산 아래 미로처럼 길게 형성돼 있다. 봉제골목 인근에는 노후된 주택들이 늘어서 일명 ‘달동네’로 불리는 쪽방촌이 형성돼 있다.창신동은 수차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옛 풍경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경사진 지형 △문화재 앙각제도(仰角制度, 문화재 인근 건축물 높이 제한) △높은 주거밀도 등의 난제가 산적했고, 삶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80년 가까이 배운 모든 인간적 감정과 사회적 논리는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 어머니라는 삶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생과 양보와 인내와 질서와 견딤과 침묵과 겸허와 ‘나’를 바치고 ‘나’를 뛰어 넘는 이성과 막다른 길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그 세계는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 존재할 뿐입니다. 98세의 어느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계실 때 딸이 어머니의 귀에 소리쳤다. “엄마!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요. 얼른 부를게요.” 그 소리를 알아듣고 어머니가 실낱같은 소리로 말했다. “어어엄~마아~” 그리고 그
분수에 넘치게 〈유마경(維摩經)〉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짓을 왜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름의 변명은 있습니다. 고승대덕이나 석학들께서 강설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즉 심오하고 근엄한 방식이 아니라 부담 없이 읽으며 〈유마경〉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시대에 맞은 새로운 감각으로 〈유마경〉을 읽는 조그만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유마경〉을 풀어갈 예정이기에, 이 경이 어떤 경이고 유마거사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딱딱한 방식으로
모든 중생은 지은 업(業)에 따라 과보(果報)를 받는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이 자연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거기에는 부처님도 포함된다. 본 기획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과보로 인해 겪은 수난 이야기다. 첫 순서는 부처님께서 순다리(Sundarī, 孫陀利)의 비방을 받은 내용이다. 순다리의 음해와 죽음부처님께서는 사바티의 제타바나(Jetavana)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은 많은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기에 음식이나 옷 등 많은 공양물을 받고 있었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대중으로부터 존경받아 많은 공양물을 받
“염불은 正見 이르는 지름길來生에는 수행자로 살고 파”안동일(81·법명 觀海)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사장은 대표적인 불자 변호사이다. 홍익법무법인 고문변호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동산반야회 창립자인 김재일(1949~2008) 이사장 사후 동산반야회와 동산불교대학 제2대 이사장을 맡아 안정과 발전을 이뤄내기도 했다. 지금도 동산반야회 명예이사장과 전국염불만일회장을 맡아 신행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를 만나 그간의 신행활동과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안동일 이사장은 팔순(八旬)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 하지만 어떠한 감성에 휘둘려 처음 결정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왜 합리적인 선택인 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의식’이 제어하지 못하는 잠재적인 그것, ‘무의식’을 원인이라고 말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무의식의 존재를 정밀한 이론체계로 세상에 널리 알린 심리학자다. 그는 무의식을 바탕으로 마음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이해한 ‘정신분석’이란 새 지평을 열었다. 정신분석은 지동설이나 진화론
스님의 이름을 처음 안 것은 1968년이다. 그해 나는 〈시조문학〉에 초회 추천을 받았는데, 스님은 3회 천료(薦了)하셨다. 그래서 잡지를 통해 이름을 접한 것이다. 나는 20대, 스님은 30대였다.11년 뒤, 나는 전봉건 선생의 청으로 〈현대시학〉에 시조 월평을 쓰고 있었다. 1979년 5월호에 조오현 시인의 첫 시조집 〈심우도(尋牛圖)〉를 다루었다. 때마침 나온 승려 시인 윤선효의 〈임진강〉과 함께 ‘승려의 시조’란 제목으로 두 시조집을 비교 분석했던 것이다.스님을 직접 뵙게 된 것은 다시 11년이 흐른 뒤다. KBS 파리특파원
개성의 배후산성인 대흥산성 북쪽 천마산에 위치하고 있는 고려시대 사찰이다. 박연폭포 뒤쪽에 자리하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다. 사찰 뒤에 관음굴(觀音窟)이 있는데, 사찰명도 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굴은 970년(광종 21)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900~975)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음사는 1646년(인조 24)에 정명(正明) 스님이, 1797년(정조 21) 성훈(成訓)이 중창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1923년 중수한 이후 1935년 대웅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중건했다. 현재 옛 전각은 대웅전만 남아
이인 19998년 作색색풍경2_55x76cm 한지에 채색
고려의 수도 개성(開城)은 생각보다 가깝다. 서울에서 약 80km 거리인데, 자동차로 가면 불과 40분이 소요된다.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하면 바로 개성이다. 고려시대에는 ‘개경(開京)’으로 불렸는데, 건국 이듬해인 919년부터 약 470년 간 고려 왕조(918~1392)의 도읍으로 자리매김했다.개성은 상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다. 개성 인근을 흐르는 예성강 하류에는 벽란도(碧瀾渡)라는 무역항이 존재했다. 벽란도는 고려와 무역을 하기 위해 이슬람 상인까지 방문했을 정도로 번창한 국제무역항이었다.우리나라가
탐욕 경계할 뿐소유 부정하지 않아“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들판 위에 빨간 상의를 입은 여배우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소리친다. 속까지 후련한 이 멘트는 그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CF카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때 속물적인 느낌 때문에 ‘돈’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돈은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1997년 IMF이후 대량해고가 발생했다.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의 씨앗은 사방으로 흩어져 우리 주변에 수풀처럼 자라났다. 불안은 생존이란 명분아래 나눔보다
불기 2565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새 아침을 여는 국민들의 소원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조기 퇴치와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복귀일 것입니다. 지난 해 우리 국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엄청난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인관계를 원만히 유지할 수 없었고,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더욱 심기일전해 도약과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언론들의 신년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안정과 풍요를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여느 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
강행복 2010년 作날마다좋은날_56x76cm 목판
통영 안정사 연(輦)은 1990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4호로 지정됐으나, 1993년 3월 13일 도난당했다. 연은 불사나 행사 때 불상이나 귀중한 불구를 이운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연은 1900년에 선희궁(宣禧宮,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곳)에서 안정사 주지에게 사찰 주변 송림(松林)을 관리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관련 문서와 금송패(禁松牌, 산림감시원의 신분증) 등을 실어 하사한 채여(彩輿)이다. 전체 길이는 300cm, 높이는 130cm이다. 내부는 56×50×56
“종교 갈등 사라지려면‘다름’ 이해하려는 노력 우선돼야”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 1세대 불문학자가 있다. 민희식(閔憙植, 87) 박사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민 박사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한 최고문화훈장 수상자이기도 하다. 60여 년 동안 불교사상을 통해 서양철학을 분석하는 학문적 성과를 올린 민 박사를 만나 그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민희식 박사는 대표작인 〈법화경과 신약성서〉를 비롯해 〈프랑스문학사〉·〈불교와 서구사상〉·〈성서의 뿌리〉·〈성경 속의 성(性)〉·〈어린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