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목표는 부처를 이루는 것[成佛]이다. 이를 위해서는 업장과 번뇌를 소멸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올라야 한다, 그 방편은 바른 믿음과 실천[信行] 그리고 수행이다. 하지만 지난해 불어 닥친 ‘코로나19’는 불자들의 신행과 수행의 일상을 뒤바꿔놓았다. 사찰 참배와 법회 참석이 어려워졌다고 수행을 멈출 수는 없는 일.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신행과 수행을 하며 정진하는 불자들을 만나봤다. 

○ 독경 수행하는 이란 여여원 원장 ―  글·사진 이강식 기자

서울 관문사를 참배한 이란 여여원 원장이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다

“20여 년 한결같이 경전 읽고 있어요!”

경전(經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문자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경전을 ‘법보(法寶)’라고 부르며 존귀하게 여긴다. 모든 불제자는 경전을 배우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만큼 자주 독송하며 경전 내용을 되새기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이란(71, 법명 수덕화) 여여원 원장은 30여 년 전부터 날마다 경전을 수지·독송해오고 있는 신심 돈독한 불자다. 특히 그녀는 여러 경전 중에서도 20여 년 째 〈법화경(法華經)〉을 애독하고 있다. 사실 매일 경전을 독송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극한 신심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을 그녀는 어떻게 지속해왔을까? 

경전 공부모임 결성

이란 원장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결혼 직후다. 남편이 신심 있는 불자였다. 이 원장은 1990년대 초반 (사)우리는선우에서 진행한 사경법회에 참가했는데, 당시 인연 맺은 도반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자신의 집에서 가정법회를 열었다. 첫 법회에는 15명가량이 모였는데, 일 년에 세 차례 정도 모였다. 대부분 초심자여서 법사 스님을 초청해 △경전을 대하는 마음가짐 △사찰참배 예절 △스님을 만났을 때 인사법부터 시작해서 6개월 동안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옥야경(玉耶經)〉·〈육방예경(六方禮經)〉 등을 공부하고, ‘관세음보살’을 칭명하는 관음정근을 하게 했다. 

“당시에는 이름난 스님들이나 불교학자를 집으로 초청해 가정법회를 열었어요. 가정법회가 익숙하지 않을 때인데, 덕분에 ‘가정법회 보살’이란 별명도 얻었지요. 3년간 진행했더니 회원이 180명 정도 모였어요. 단독 주택에 살 때인데, 인원이 많을 때는 집안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꽉 차고는 했지요.”

3년여 간의 가정법회는 이란 원장에게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6년 경전공부모임인 ‘여여회(如如會)’를 결성했다. 2년간 자신의 집에 지도법사 스님을 초청해 도반들과 함께 〈법화경〉을 독송했다. 그런데 스님의 강의가 이론에 치중하다 보니, 경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실생활과 접목된 가르침으로 풀어줄 수 있는 스님을 수소문해서 모신 분이 해인사 종진 스님(전 해인총림 전계사)이다. 

종진 스님을 모시고 월 1회 〈법화경〉 공부를 재개했는데, 2015년까지 근 20여 년 동안 〈법화경〉만 배웠다. 하나의 경전을 20여 년 이상 독송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처음에는 경전공부에 앞서 경전을 마주 대하는 예법부터 배웠다. 경전을 독송할 때 앉는 자리는 정갈해야 하고, 경전에 묻은 먼지를 제거하는 법도 익혔다. 스님의 강의를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강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한 후 복사해서 다음 달 경전공부모임 때 나눠줬다. 녹음을 풀어 A4용지에 출력해서 공부했고, 녹취본도 주위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법화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줘 선행을 권장[勸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밖으로 나갈 때는 경전의 크기에 알맞게 직접 제작한 가방에 경전을 넣어 다니며 공부했다.

여여회가 가정법회 당시 종진 스님의 〈법화경〉 강의를 정리해 만든 책. 오른쪽은 여여회가 만들어 보급한 경전류

교재 제작, 보급에도 앞장

〈법화경〉 공부를 하는 날이면 여여회 회원들은 ‘공부하는 어머니’가 됐다. 아이들은 엄마가 여여회 모임에 다녀오는 걸 사찰에 다녀오는 것과 같이 생각했다. 그만큼 회원들이 경전공부모임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이란 원장은 여여회 회원들과 함께 인도성지순례도 네 차례 다녀왔다. 모두 〈법화경〉 독송을 위한 성지순례였다. 영축산에서 법회를 봉행한 후 〈법화경〉을 독송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법화경〉을 설하신 장소에서 그 경전을 읽는다는 감동에 어느 때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경전공부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법화경〉 공부를 권장하기 위해서는 교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마침 서예를 하는 회원이 있어서 100일 기도를 한 후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필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필사본으로 1,200권을 제작했다. 

“경전공부를 하는 동안 도반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그래서 경전공부를 포교의 방편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받아들일지 말지 여부는 당사자의 몫이니까요. 좋은 취지였기에 도반들과 함께 시도를 했지요. 그렇게 시작한 게 일명 ‘신앙 띠잇기 운동’입니다. 먼저 가족구성원을 동일한 신행공동체로 만들고자 했어요. 불교를 접한 후 남편과 자녀를 ‘남편부처’, ‘아들부처’, ‘딸부처’로 여기며 가정에 더 충실하게 되면 남편과 자녀는 저절로 불자가 되요. 그게 손주까지 이어진다면 바로 신앙 띠잇기가 형성되는 거지요.”

이란 원장은 경전 보급을 시작으로 하루에 한 장씩 넘기는 평생달력, 경전 가방, ‘차 한 잔에 너를 깨우고 나를 깨운다’ 등 좋은 글귀를 새긴 다포 등을 제작해 나눠주고 있다. ‘불교를 믿으라.’는 직접적인 권유보다 마음을 나눠주다 보면 서서히 불교에 녹아들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법화경〉에 등장하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녀 나름의 방법이다.

이 원장은 단양 구인사 등 사찰을 참배할 때 부처님 전에 〈법화경〉 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심지어 승용차 후면 선반에 경전을 비치해, 유리를 통해 다른 운전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녀는 2015년 여여회(2008년 단체 명칭을 여여원으로 전환) 차원의 〈법화경〉 독송을 회향한 후에도 몇몇 도반과 함께 경전 독송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종진 스님의 〈법화경〉 강의를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 녹음을 풀어 가제본 형태로 만들어놓고 교정·교열 작업을 하고 있다. 별도로 정해놓은 시간은 없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독송하려 노력하고 있고, 건너뛴 날에는 다음날 보강을 하기도 한다. 

여여회는 2000년 2월 13~23일간 인도성지순례를 하며 경전학습을 진행했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한 영취산에서 지도법사 종진 스님과 이란 원장(스님 옆), 회원들이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다

새 생명 안겨준 불교

이 원장은 〈법화경〉을 독송하기 전에 항상 ‘관세음보살불퇴금륜수진언(觀世音菩薩不退金輪手眞言)’을 외운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그녀만의 다짐이다. 그리고 매월 관음재일마다 집을 나선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을 삼가고 있지만 여러 사찰을 순례하며 경전을 독송하면 신심을 다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전을 독송한 뒤 불교가 내게 새 생명을 줬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이란 원장. 그녀는 “만약 불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삶이 무척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개성이나 성품 중에는 고치려고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불교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경전독송을 통해 자녀들도 불교로 이끌었다. 신앙 띠잇기에 성공한 셈이다. 그녀는 가족부터 전법해야 타인도 전법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법화경〉 독경 수행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법 세 가지를 터득했다. 첫째 복을 먼저 지어라, 둘째 크게 버린 자 크게 얻는다, 셋째 기도는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법화경〉을 몇 차례나 완독했는지를 묻자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읽고 뜻을 새기며 공부하는데 의미를 두다보니 횟수를 세어보지 않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우문에 현답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법화경〉 독송 수행을 하고 있는 이란 원장.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의 가르침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이 원장의 수행 모습이 언제나 여여(如如)하길 기원한다. 

사경 수행하는 이인범·여금옥 부부 ―  글 정현선 기자

지금 현재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부부는 입을 모아 “사경 수행을 하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물이 바위를 피해 흐르듯 지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글자 쓸 때마다 욕심 내려놓게 돼요”

한 달에 수차례 열리던 사찰법회가 멈췄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스님에게 직접 듣던 법문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게 됐지만, 대면 법문만큼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자칫 신행과 수행에 태만해질 수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대전에 거주하는 이인범(62)·여금옥(60) 부부는 오히려 코로나19의 위기상황을 신행과 수행의 성장기회로 삼고 있다. 그 비법은 바로 사경(寫經) 수행이다. 

코로나19로 다시 사경 시작

고요한 새벽, 이인범·여금옥 부부는 몸을 정갈히 한 뒤 작은 책상에 앉아 경전을 펴고 사경을 시작한다. 부부는 코로나19가 지구 곳곳을 덮친 지난해 2월 본격적으로 사경 수행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전을 필사하고 있다.   

남편 이인범 씨가 처음 사경을 접한 시기는 2009년이다. 그는 당시 포항 구룡포 용주사에서 〈법화경〉 사경집을 받아 경전을 베껴 썼다. 사경 수행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경전을 베껴 쓰는 것에 가까웠다. 이후에도 간혹 사경을 했는데, 2017년에는 부부가 함께 쓴 〈법화경〉 사경집을 분당 대광사 미륵전에 봉안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사경 수행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 부부는 천태종 대전 광수사 신도다. 부부는 매주 수요일마다 광수사에서 주지 무원 스님의 〈법화경〉 강의를 듣고 공부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된 후에는 법회가 열리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광수사는 코로나19를 불심(佛心)으로 극복하고자 사경집을 제작해 신도들이 수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매월 사경집을 집으로 보내 신행을 독려했다.

부부가 매일 집에서 사경하는 경전은 〈법화경〉 외에도 〈무량의경〉·〈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반야심경〉·〈아미타경〉과 ‘상월원각대조사법어’ 등 다양하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완성한 사경집은 광수사 부처님 전에 올린 후 집안 가장 높은 곳인 책장 위에 보관하고 있다.

“저(남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은 뒤, 방석을 펴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입정에 듭니다. 삼귀의례를 모신 후 〈반야심경〉, 〈천수경〉, 〈법화경〉 ‘약찬게’, 관음정진, 사홍서원 순서로 예불을 하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제가 예불하는 동안 아내는 거실에서 사경을 합니다. 저는 하루일과를 마친 후 오후 7~8시 사이에 사경을 하지요.”

남편 이인범 씨는 저녁에, 아내 여금옥 씨는 아침에 사경을 한다. 집중해서 사경을 하다보면 이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상념들이 사라진다

작년 7월경 아내 여금옥 씨는 사경을 잘하고 싶은 욕심에 쉬지 않고 사경에 몰두하다가 허리가 틀어져 재활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부터는 하루에 한 장씩만 정성을 다해 쓰고 있다. 한글 사경을 끝내고 지금은 한문 사경을 하고 있다는 여금옥 씨는 연필 끝에 집중하며 경구(經句)를 써내려 간다. 뜻을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찾아가며 맥락과 의미를 새긴다. 뜻이 드러난 구절은 한 구절씩 소리를 내어 독송한다. 사경을 마친 후에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 차분히 마음을 관조한다. 

어린 시절, 부처님오신날이면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연등을 밝히곤 했다는 이인범 씨는 36살이 되던 해, 천태종 구인사와 인연을 맺었다. 승진에서 자꾸 누락되고 건강마저 좋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그에게 매제가 단양 구인사에 찾아가 기도를 해보라고 권한 것이다. 어렵사리 구인사를 찾아가 배정 받은 3층 기도방에는 이미 1,000여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칭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한 염불소리는 이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옆 사람을 따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되뇌었다. 작았던 염불소리가 점점 커져가면서 기도에 조끔씩 빠져들었다. 이튿날 옆자리에 앉은 70대 불자가 친근하게 말을 건네더니 “앞으로 10년 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30분 이상을 기도하라. 이 한 가지만 명심하라.”고 조언했다.

사경 시작 전에는 날짜를 꼭 적는다. 날짜를 기입하면 수행을 하지 못한 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10년 간 매일 30분씩 기도

이인범 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 기도실에서 만난 노불자의 조언을 실천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이나 회식 후에도 기도했고, 3년간 KTX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느라 수면시간이 서너 시간에 불과할 때도 기도를 거르지 않았다. 1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30분씩 기도를 했더니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일순간 사라졌다. 무언가를 바라던 마음을 내려놓은 덕분이다. 

기도를 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큰 가피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인범 씨. 그는 기도를 생활화하면서 자연스레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남편의 변화는 아내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부부는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기도와 사경 수행을 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부부가 함께 사경을 하다 보니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수행을 지속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혼자서 사경을 했다면 내일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함께한 덕분에 나태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집중해서 사경을 하다보면 산란했던 마음이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요. 당면한 과제를 풀어낼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문제의 원인이 나의 집착과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돼 참회를 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의 체감은 사경 수행을 지속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이인범 씨는 36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5년 가까이 대전세종충남니트공업협동조합 상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3년 전부터는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광수사 중구지회장을 맡고 있다. 아내 여금옥 씨는 9년 간 광수사 중구지회 재무를 맡았는데, 지금은 화주로 봉사 중이다. 부부의 모범된 신행활동은 남편의 형제자매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의 영향으로 7남매 모두 천태종 신도가 됐다. 이들은 거주지역 내 천태종 사찰에서 합창단장·홍보위원 등을 맡아 열심히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수행 활동과 포교 이야기를 나누느라 밤을 꼬박 새운다.
부부는 현재 〈묘법연화경〉·〈무량의경〉·〈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으로 구성된 〈법화삼부경〉을 사경하고 있다. 오늘도 부부는 한 글자를 쓰고 합장하고, 한 글자를 쓰고 축원을 올린다. 

“불자가족의 인연을 지어주신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 평온을 느끼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딸도 임신 중에 친정 부모님의 권유로 남편과 함께 여러 경전을 사경했다. 온 가족이 사경을 통해 부처님 뜻과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 염불 수행하는 오덕근·조전자 부부 ―  글 조용주 기자

“염불 수행을 하면 좋은 일이 생겨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한량없는 백천 만억 중생이 온갖 괴로움을 받을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一心)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해탈케 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듯, 불보살의 명호를 한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부르는 염불(念佛) 수행은 불자들의 주된 수행 법 중 하나다. 

특히 요즘과 같이 코로나19로 인해 종교활동이 제한될 때는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별다른 준비물 없이도 가정에서 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염불 수행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수행법이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오덕근(76)·조전자(70) 불자 부부도 40여 년 동안 사찰과 자택에서 염불 수행을 하고 있는 신심 돈독한 불자다. 

오덕근(오른쪽)·조전자 부부는 자택 서재를 염불 수행 공간으로 정해놓고 기도 정진을 하고 있다. 부부가 서재에서 함께 염불 수행을 하고 있다,

어머니 권유로 수행 시작

현재 오덕근 불자는 천태종 서울 관문사 신도회장을, 조전자 불자는 관문사 서초지회의 간부를 맡고 있다. 오덕근 불자가 염불 수행을 시작하게 된 건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970년대 후반 지인의 추천으로 단양 구인사를 참배하게 됐다. 오덕근 불자는 “어머니께서 ‘구인사에 가서 열심히 염불 수행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정성을 다해 수행을 했는데, 믿기지 않게도 구인사 기도를 다녀온 후부터 집안에 좋은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고 하셨다. 그 인연으로 어머니는 천태종 신도가 됐고, 2003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안과 사찰에서 염불 수행을 하셨다.”고 회고했다.

불심 돈독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오덕근 불자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여러 사찰을 다녔다. 하지만 이렇다 할 수행은 하지 않았다. 그는 1972년부터 개인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사업이 잘 안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구인사에 가서 염불 수행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때가 1980년이었다.

“1972년에 공업용 재봉틀(미싱)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요.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다치는 일도 생기고, 심지어는 사기를 당하는 일까지 겪었어요. 그때 어머니의 권유로 구인사에 가서 4박5일 동안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다녀온 후부터 사업이 다시 잘 풀렸고,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기도에 가피가 따른다는 걸 체험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집과 사찰에서 틈날 때마다 염불 수행을 하게 되더군요.”

부인 조전자 불자는 결혼 전까지 조계종 사찰에 다녔다.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구인사를 다니면서 염불 수행을 시작했다. 그 후 부부는 평일에는 가게 문을 닫은 후 저녁에는 우면동 관문사와 신촌 성룡사, 주말에는 구인사에 찾아가 염불 수행을 했다.

부부는 “염불 수행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입으로 소리를 크게 내고, 그 소리를 귀로 듣다 보면 몸 안에 쌓여있던 ‘화’가 가라앉고, ‘욱’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수행하는 동안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척추가 바르게 펴지는 등 자세교정과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집 인근의 천태종 사찰과 구인사를 꾸준히 다니면서 염불 수행을 하던 어느 날, 급한 일정이 생겨 사찰에 가지 않았고, 그날은 염불 수행도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날마다 수행을 하던 부부의 입장에서는 찜찜한 느낌이 들면서 몸과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문득 ‘절에서 염불 수행을 못하면 집에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덕근 불자가 의견을 말하자 아내도 “그런 방법이 있었네.”라며 찬성했다. 그날부터 부부는 서재를 염불 수행 공간으로 정해놓고 기도 정진을 하고 있다.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염불 수행을 하고 있는 오덕근·조전자 부부가 관문사 7층 대불보전에서 부처님 전에 합장 인사를 하고 있다.

하루 두 시간 이상 염불

오덕근 불자는 평소 저녁 8시 무렵 잠자리에 든다. 일찍 취침하다 보니 자정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때가 그의 염불 수행 시간이다. 그의 서재에는 대전 광수사 법당의 비로자나부처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는데, 염불 수행에 앞서 부처님을 향해 “항상 마음 변치 않는 부처님 제자가 되게 해주세요.”하고 합장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방석에 앉아 2~3분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후 ‘관세음보살’ 염불을 시작한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정도 염불 수행을 한다. 염불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며 집중이 풀리는 순간이 오는데, 이때 수행을 마무리한다.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집중해 염불 수행을 하기도 한다. 끝마칠 때는 부처님 전에 “오늘도 저에게 이렇게 기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린 후 자리를 정리한다.

조전자 불자는 남편보다 이른 시간에 염불 수행을 한다.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가 그녀의 염불 수행 시간이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서재에 있는 비로자나부처님께 합장을 한 후 가족의 건강을 기원한다. 끝마칠 때는 “오늘도 이렇게 저와 가족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린 후 삼배를 올리고 마무리한다. 간혹 먼저 염불 수행을 하는 아내의 기도시간이 길어질 때는 남편은 거실에서 명상을 하며 기다려주기도 한다.

부부는 집에서 하는 염불 수행의 장점에 대해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든 기도를 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종교시설의 방역지침이 엄격해진 요즘, 염불 수행은 불자들에게 적합한 수행이라고 추천했다. 

“구인사나 지역 말사에 가면 간혹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법당 안 모든 곳이 좋은 자리인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내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집에서 염불 수행을 하면 시간과 공간 제약없이 편하게 기도를 할 수 있지요. 다만 목소리가 너무 크면 이웃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덕근 불자는 현재 천태종 서울 관문사 신도회장을 맡고 있다. 2019년 5월 12일 봉행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관불을 하고 있는 모습.

부부가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염불 수행을 하다 보니, 그 모습을 보면서 자란 자녀들도 어릴 때부터 염불 수행을 함께 했다. 나이가 들면서 학업과 사회생활에 바빠 예전처럼 자주 기도를 하지는 못하지만 첫째 며느리와 손자·손녀는 두 사람 못지않게 열심히 염불 수행을 한다. 

염불 수행을 한 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오덕근·조전자 부부. 부부는 염불 수행을 망설이는 불자들에게 “염불 수행을 하면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우리의 말을 백 번 듣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염불 수행을 경험해보라. 그러면 왜 ‘염불 수행’을 권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 108배 수행하는 김복례·이지우 모자 ―  글 문지연·사진 이강식 기자

“절 수행하면 하심이 저절로”

일심(一心)을 뜻하는 합장을 시작으로 무릎과 두 손, 마지막으로 머리를 땅에 대는 ‘오체투지(五體投地)’는 우리에게 친숙한 절 수행이다. 최근 108배가 건강관리법으로 소개된 후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지만, 불자들은 이전부터 절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해왔다. 

김복례(66, 법명 법성화) 서울 기원사 신도부회장과 아들 이지우(39, 법명 선각) 불자는 매일 아침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불자 모자(母子)다. 두 사람은 “108배는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수행법”이라고 설명했다. 

김복례·이지우 모자는 매일 아침 감사·참회·발원을 담은 108배로 하루를 연다. 이지우 불자의 집에서 모자가 108배를 하고 있다.

〈자비도량참법〉 기도로 108배 접해

김복례 불자는 전라남도 무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0년 둘째 언니의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월계동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새벽녘,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이끌려 간 곳이 기원사였다. 그렇게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김복례 불자는 틈만 나면 사찰에서 법문을 들었고, 절에 일이 있으면 앞장서 도왔다. 어릴 때부터 이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 이지우 씨도 자연스레 불자가 됐다. 법회에만 참석하던 김복례 불자는 기원사 주지 스님의 권유로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기도정진’에 동참했다. 〈자비도량참법〉 기도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기도법이다.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참여하면서 제 인생의 전반을 돌아보게 됐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잘못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크게 반성했죠. 이 기도가 끝난 후에도 생활 속에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기도를 하면서 행했던 108배가 떠올랐어요.”

참회·감사·발원이 모두 담겨있는 108배는 김복례 불자가 생각했던 수행방향과 일치했다. 그때부터 법회가 끝난 뒤에 홀로 법당에 남아 108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쁜 일이 있어서 108배를 하지 않고 돌아온 날에는 절에 다녀왔다는 느낌보다 잠시 외출을 하고 온 듯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 후 법회에 참석할 때는 108배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습관이 됐다. 

한동안은 법당에서 108배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도 마음이 흐트러질 때 절을 하게 됐다. 날마다 업을 짓고 살고 있으니 그것을 참회하고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08배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평정심도 잘 유지할 수 있게 됐다.

4년 전 김복례 불자는 척추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허리를 단련하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 바로 108배가 떠올랐다. 이전까지는 하루씩 건너뛸 때도 있었는데, 이후 건강에도 좋고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매일아침 108배를 했다. 

김복례 불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 향을 하나 사르고, 조용히 삼귀의를 한다. 이어 안방에 좌복을 깔고, BTN의 ‘나를 깨우는 108배’에 맞춰 절을 한다. 시간이 될 때는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도 독송한다. 김복례 불자는 108번 몸을 굽히고, 108번 몸을 일으키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 속에서 하심(下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108배를 꾸준히 하면서 삶과 인간관계가 변화하는 걸 느꼈어요. 자영업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어요. 직원들이 저의 표정을 보고 ‘한겨울에 에어컨을 틀어둔 것보다 더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108배 수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난 후부터는 주위에서 저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더군요.”

108배는 모자에게 하루를 이끄는 원동력이자,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한 수행법이다. 서울 월계동 기원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끝내고 명상을 하고 있다.

명상지도사로 진로 바꿔

아들 이지우 불자는 어머니 덕분에 108배를 접하게 됐다. 어머니를 따라 법회에 참여해 독경이나 염불을 할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어머니 옆에서 절을 할 때는 정신이 집중되고 맑아짐을 느꼈다.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가만히 앉아서 하는 수행법은 잘 맞지 않았다. 그는 절 수행을 하면서 ‘절 삼매’를 경험하기도 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108배 수행을 하고 있다.

이지우 불자는 10여 년간 사회생활을 하다가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뒀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평소 존경하던 한 스님이 “명상을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어릴 때부터 불교를 접했던 만큼 진지한 고민 끝에 명상지도자의 길을 선택했고, 불교명상지도사 과정에 입문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이지우 불자는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큰 난관은 ‘혼침(惛沈, 혼미하고 침울한 마음 상태)’이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108배 수행을 떠올렸고,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절 수행을 했는데 큰 효과가 있었다. 절을 하는 동안 산란한 마음이 정리되다보니 명상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지우 불자가 날마다 108배를 하게 된 계기다. 

모자의 절 수행은 가족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특히 김복례 불자의 큰며느리는 이웃종교를 신앙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따라 사찰에 다니고 법문도 듣더니, 오계를 받고 불자가 됐다. 최근에는 〈법화경〉 사경을 시작했는데, ‘하루 한 글자 쓰기도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꾸준히 하고 있단다.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불심이 이어지더니 손녀들도 자연스레 불교와 인연을 맺고 사찰에 다니고 있다. 

수행의 시작은 습관들이기

어떤 일이든 매일 반복하다보면 하기 싫을 때가 생긴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김복례 불자는 슬럼프가 찾아올 때면 ‘수행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108배를 하고 있다.’고 되뇌인다. 자신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고 다독이다 보면 금세 108배가 끝나고 성취감도 밀려왔다. 그런 후에는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그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는 습관들이기”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종교활동이 사실상 어려워진 요즘도 모자는 집에서 108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집에서 108배 수행을 시작하려는 불자들을 위해 조언을 구하자 이지우 불자는 “‘108’이라는 숫자에 집중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수행은 힘들게 오랫동안 버텨내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작심삼일을 하더라도 반복해서 계획을 세워 실천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에 습관이 배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 도반들에게 절 수행을 적극 권하지는 않는다. 이지우 불자는 각자에게 맞는 수행법이 있고,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개개인에게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떤 수행을 하든 꾸준히 실천하는 도반이 늘어나 수행의 즐거움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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