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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불교를 가다1_유럽불교의 역사와 현주소불교를 종교보다 사색 대상으로 주목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간다라 불상의 얼굴과 머리칼은 어딘지 모르게 그리스 석상을 닮았다. 뿐만 아니라 불상이라는 형식 자체가 두 문화 교류의 산물이다. 사진은 2017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알렉산더 대왕이 만난 붓다-간다라 미술전’의 한 장면

유럽과 불교의 만남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린 간다라(Gandhāra) 불상(佛像)을 떠올려 보면 불교문화와 유럽 문화의 교류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다라 불상의 얼굴과 머리칼은 어딘지 모르게 그리스 석상을 닮았다. 뿐만 아니라 불상이라는 형식 자체가 두 문화 교류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불상은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사실 불상은 석가모니 열반 후 몇 백 년 후까지도 수용되지 않다가 간다라의 영향으로 비로소 불탑과 함께 부처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현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불교 고전에서도 유럽과 불교의 첫 만남이 어떠했는지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경 그리스의 밀린다 왕(Menandros Milinda)과 인도의 고승 나가세나(Nāgasena) 존자의 대화를 기록한 고전 〈밀린다팡하(Milinda Pañha)〉 역시 고대 불교와 유럽의 관계맺음의 양상을 보여주는 예이다. 

중세 유럽 문화 속에서 불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럽의 뿌리 깊은 기독교 문화 속에서도 불교모티브는 찾아볼 수 있다. 11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발람과 요사파(Barlaam and Josaphat) 이야기 속의 인물과 내용 전개는 마명(馬鳴 Aśvaghoṣa, 80~150) 존자의 저작인 〈붓다차리타(Buddhacarita, 佛所行讚)〉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세기 중엽에는 빌렘 반 뤼스부뤠크(Willem van Ruysbroeck, 1220~1293)가 중세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직접 불교국가를 방문하고 그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선교사로 1254년 몽골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불교와 도교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이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실론(Ceylon, 현재 스리랑카) 등 아시아를 방문하며 불교를 접했고,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중국 불교를 허무주의의 일환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많은 유럽의 선교사가 동남아시아 및 중국·일본·티베트를 방문하고 기록을 남겼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는 1271년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원나라로 동방여행을 떠났다.

제국주의와 불교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아 영국을 중심으로 조금 더 심도 있는 불교 탐구가 시작된다. 동인도 회사의 브라이언 허드슨(Brian Hodgson, 1800~1894)은 네팔에 주재하는 동안 산스크리트와 티베트어로 써진 불교 필사본 400여 종을 영국과 프랑스로 보내 불교 문헌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토마스 월리엄 리즈 데이비즈(Thomas William Rhys Davids, 1843~1922)는 젊은 시절 영국 식민지 공무원으로 파견됐는데, 당시 접했던 불교 문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881년에 팔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창립했다. 

같은 시기 유럽 불교학의 아버지 격인 프랑스의 으젠느 뷔르누프(Eugène Burnouf, 1801~1852)도 본격적으로 불교 연구를 시작했다. 산스크리트와 팔리어에 모두 능숙했던 그는 원전 연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뷔르누프는 최초로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를 분명히 구분 짓기도 했다. 뷔르누프는 동아시아의 불교보다 동남아시아의 상좌부불교가 훨씬 더 초기불교와 유사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견해와 그가 남긴 학문적 업적은 오랫동안 유럽이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20세기 전까지 유럽 내에서 대승불교에 대한 관심은 저조했다. 저명한 동양학자 막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 등 유럽의 동시대 다른 불교학자들 역시 산스크리트와 팔리어 사전 집필 및 초기 경전의 문헌학적 연구에 주력했으며, 동아시아 불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또한 이 시대의 많은 불교학자들은 그들의 동양학 연구가 결과적으로 식민지 지배 정당화에 기여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불교에 대한 철학적 연구가 유행했다. 대표적 사례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스스로를 불교신자라고 일컬었다.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는 독일어권에 불교철학과 불교윤리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 역시 불교를 허무주의자의 시각에서 이해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 불교는 일반적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 주로 제국주의적 시각이나 오리엔탈리즘의 틀 속에서 연구되는 학술적 탐색의 대상이었다. 

1983년 9월 11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 첫 회의를 기점으로 동아시아불교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크게 증가한다. 샤쿠 쇼엔과 스즈키 다이세쓰 일행이 이 회의에서 ‘신붓쿄’를 성공리에 소개한 것이 그 계기가 됐다.

본격적인 관심과 제도화 

스즈키 다이세쓰는 일본 근대불교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젠’을 유럽에 전파한 인물이다.

동아시아불교를 향한 서구의 관심은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종교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를 기점으로  크게 증가한다. 의회에서 샤쿠 쇼엔(釋宗演, 1858~1919)과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 일행이 메이지 시대의 산물인 ‘신붓쿄(新仏教)’를 성공리에 소개한 것이 그 계기였다. 모순되게도 신붓쿄는 그 당시 일본 본토에서 선불교를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었고, 샤쿠쇼엔과 스즈키는 추후 일본 제국주의에 가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세계종교의회가 열리고 한 세기가 더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유럽인이 동아시아 불교를 일본의 선불교와 주로 연관 지어 연상하는 이유는 19세기 후반 서양 열강에 대응해 ‘젠(禪)’에서 일본의 고유성을 찾고자 했던 20세기 초 일본과 일본불교에 그 뿌리가 있다. 

요즘 유럽에서 ‘젠’이라는 단어는 단연 좌선이나 불교서적을 통해 소수만이 영위하는 비주류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 언어문화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마르티네 바츨러(Martine Batchelor)와 함께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테픈 바츨러(Stephen Batchelor)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는 불어 동사와 함께 ‘禪’의 일본식 발음을 로마자화한 ‘Zen’을 그대로 사용해 ‘진정하다’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불교 역시 유럽인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1923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에스토니아 출신의 칼리스 테니손스(Karlis Tennisons, 1873~1962)가 13대 달라이라마(Thubten Gyatso, 1876~1933)로부터 라트비아 불교교구장으로 임명받았다고 알려졌다. 그는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사찰을 운영했으며, 불교국가를 순회하며 살다가 미얀마 양곤에서 사망했다. 세인트 피터스부르크(Saint Petersburg) 출신의 불교논리학자 테오도르 체르바스키(Theodor Stcherbatsky, 1866~1942)는 1910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3대 달라이라마를 직접 만나 티베트에서 라마들과 함께 수학할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불교에 대한 중산층의 관심에 힘입어 1920년대에는 서유럽에 불교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1924년 독일 베를린에 ‘das Buddhistische Haus in Berlin’이, 1926년 영국 런던에 ‘The London Buddhist Vihara’가 문을 열었다. 1933년에는 베를린에서 최초의 유럽불교회의(European Buddhist Congress)가 개최되었다. 세계1·2차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적 가치관과 시각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도화가 가속화 되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함부르크·뮌헨의 불자들이 모여 1955년 독일불교협회를 꾸렸고, 1975년에는 유럽불교연합(European Buddhist Union)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1950년대에는 일본의 정토진종과 일연종이 스즈키의 저서와 함께 유럽에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에는 영국과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다양한 불교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선사들이 유럽 투어를 하면서 일본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일본 선불교에 대한 관심은 티베트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 이르면 티베트 라마들도 유럽에서 주기적으로 법문 투어를 했고, 유럽의 여러 국가와 관계를 돈독히 다진다. 불교를 향한 유럽인들의 관심은 불교센터의 수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독일의 경우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 불교 관련단체의 수가 100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1960년대 베트남 출신의 정치적 망명자들과 1980년대 불교권 국가에서 유럽국가로 이주한 사람들도 불교에 대한 유럽의 관심에 기여했다. 

칼리스 테니손스는 1923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13대 달라이라마로부터 라트비아 불교교구장으로 임명받았다. 그(왼쪽)와 제자 프레드릭 러스티그(Friedrich Lustig).

공존과 불교 토착화

각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영국·독일·오스트리아 등 주요 유럽국가의 불자인구는 2000년부터 2019년 사이에 거의 두 배 또는 그 이상 늘어났다. 유럽에서는 종교적 무관심이 진행된 지 이미 오래라고 알려져 있는데 불교는 어떻게 유럽 사회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종교학자들은 현대사회가 무교화된 것이 아니라 다종교화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유럽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전통 유럽 종교에 대한 회의감과 유럽 사회의 다종교화·세속화와 함께 증가했다. 유럽 사람들은 불교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삶의 지침이라고 생각하면서 불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불교가 종교인지 철학인지를 주제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이는 여전히 불교학자와 불자들에게 주요 논제이다. 또한 스스로를 절반은 불자이면서 절반은 기독교 신자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은 불교의 다양한 모습을 수용하고, 나아가 현지에 맞게 활발히 재해석해내고 있다. 일례로 아시아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자국으로 돌아와서 자신만의 불교 교단을 이루는 비구나 비구니도 만나볼 수 있다. 이제는 태국불교, 티베트불교, 대만불교뿐만 아니라 독일불교와 프랑스불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를 반영하여 불교를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유럽인들은 불교에서 모티브를 따온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문화상품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불상은 불교신자만이 아니라 비신자 가정의 찻장도 장식하고, 정원을 장식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정원 장식 재료를 파는 큰 가게 한편에 불상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인도·네팔·일본 등 각지에서 수입된 불교의 향·염주·명상 주발 역시 인기다. 유럽에서 불교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현대의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도록 해주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또 젊은 층 사이에서 평화주의적인 세계관과 다른 문화의 수용, 풍부한 문화적 감수성, 해외 경험 및 국제적인 사고방식 등을 상징하는 트렌디한 문화이기도 하다.  

서유럽에는 1920년대부터 불교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1924년 독일 베를린에 세워진 사찰 ‘das Buddhistische Haus in Berlin’.
유럽에서 불교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현대의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도록 해주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불두를 모신 공간에서 마스크를 한 요가강사가 요가를 지도하고 있다.

이혜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했고, 현재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수학중이다. ‘불교와 전쟁’, ‘불교와 국가의 관계’, ‘불교 개념의 제도화 과정’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외 세계의 비전통적 고등교육기관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글 이혜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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