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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불교무형문화유산1_ 티베트 창극 아체라모우리나라 마당극 연상되는
티베트 전통예술의 총체

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 여기에 종교적 신념·사상·문화가 융합하면 인류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무형유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 가운데 불교 사상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세계무형유산을 소개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벤뒈마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백면극단(2007년 12월), 백면극단 출연진, 백면극단의 온빠뙨과 선녀들.

티베트 불교계는 전통적으로 일 년에 두 차례, 한 번에 3개월씩 안거를 한다. 상반기는 4월부터 6월말까지 3개월간인데 안거가 끝나는 6월 그믐 아침, 사찰에서는 탕카(Than-ka, 탱화)를 내걸어 수행의 증표로 내보이고, 신도들은 스님들께 ‘쇼르’를 공양하는 것으로 한 달간의 축제 ‘쇼뙨’의 개막을 알린다. 쇼뙨은 요쿠르트를 뜻하는 ‘쇼르’와 축제를 의미하는 ‘뙨’의 합성어다. 

티베트인들은 고산지역 여건상 육식을 주로 하는데, 이로 인해 소화기 장애가 많다. 그래서 우유를 반쯤 발효시킨 ‘쇼르’는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음식이다. 티베트력(한국의 음력과 거의 비슷)으로 7월 1일이 되면 평소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던 포탈라궁과 대사원의 문이 활짝 열리고, 전국에서 초청된 극단이 아체라모 경연대회를 펼친다. 아체라모는 민간설화에 춤·노래·재담을 더한 창극인데, 여인을 뜻하는 ‘아체’와 선녀를 뜻하는 ‘라모’의 합성어다. 

공연을 지켜보는 탕돈게보를 재현하고 있다.(2007년 7월 쇼뙨에서 남면극단의 노블링카 공연)

탕돈게보가 교화극으로 각색

‘쇼뙨’을 국민적 축제로 제정한 사람은 제5대 달라이라마 롭상 갸초(Ngawang Lobsang Gyatso, 1617~1682)다. 당시 티베트 불교계는 종단 간의 갈등과 대처승 문제 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때 외교술이 뛰어났던 롭상 갸초는 청나라의 도움을 받아 대립하던 티베트 불교계를 통일했다. 개혁종단 겔룩파의 수장이었던 롭상 갸초가 명실공히 법왕으로써 신정일치(神政一致)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것이다.

티베트인들은 유독 춤과 노래, 연극을 좋아하는데, 롭상 갸초는 아체라모를 종교축제로 활용해 티베트의 민심을 하나로 모았다. 현재 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는 인도로 망명(1959년)하기 전까지 축제 개막일에 노블링카(罗布林卡, 별궁) 테라스에 나와 정부 관료, 고위급 승려들과 함께 축복을 내리며 친히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다. 

아체라모를 오늘날과 같이 완전한 틀을 갖춘 불교 교화극으로 만든 사람은 14세기 승려 탕돈게보(1385~1464)이다. 탕돈게보는 전국을 다니며 만행을 하던 중에 홍수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목도했다.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설해야 했는데 공사비용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터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다가가보니 유랑극단에서 창극을 하고 있었다. 탕돈게보는 이때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며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창극의 내용을 불교식으로 각색해 새로운 아체라모를 만들었다. 

당시 티베트의 정세는 혼란했다. 원나라의 무력을 등에 업은 무리들이 네탕 지방을 본거지 삼아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투뵈(토번) 왕조의 도읍지였던 총게나 신흥도시 네탕이 속한 산난(山南) 지방은 사람들이 대거 모여들면서 재물이 넘쳐났다. 탕돈게보는 자신이 각색한 아체라모를 이곳에서 공연했다. 

요즘 티베트의 기후를 떠올리면 사막화로 인해 홍수가 날 만큼 큰비가 내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탕돈게보가 살았던 당시는 그렇지 않아서 호우로 인한 산사태가 빈번했던 모양이다. 큰 비가 내려 산골짜기 암자와 함께 그곳에 살던 어린 제자가 떠내려갔고, 스승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어린 제자를 살린 이야기가 구전(口傳)될 정도였다. 다리 건설 비용 모금을 위한 아체라모 공연에 권문세족들은 앞 다투어 보시금을 내놓았고, 탕돈게보는 공연 수익으로 전국 곳곳에 다리를 놓아 ‘대보살’이란 칭송을 받는다. 오늘날 티베트 사원에 가면 하얀 수염을 한 보살상이 있는데 그가 바로 ‘창극의 신’이요, ‘대장장이 신’으로 추앙 받는 탕돈게보이다.

왼쪽부터 백면극단의 온빠뙨(사냥꾼 또는 머슴), 선녀 분장을 한 남자배우, 좌고와 자바라를 동시에 연주하는 백면극단의 고수.

창극 이끄는 타악기는 법구

아체라모를 중국에서는 ‘가극(歌劇)’, 서양에서는 ‘쇼툰오페라’라고 부르는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창극(唱劇)’ 혹은 ‘마당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창극의 공간은 △큰 원-링꼬르(마당) △중간 원-바꼬르(관객) △작은 원-낭꼬르(무대)의 삼원(三圓)을 이룬다. 세 개 원의 중심은 무대 가운데 세워져서 천막을 떠받치고 있는 장대다. 이 장대에는 탕돈게보의 탕카가 걸려있고, 그 앞에는 공양물을 진설(陳設)한 상도 놓여 있다. 배우들은 이 장대 주변을 돌며 공연을 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창극을 이끌어가는 고수(鼓手, 북이나 장구를 치는 사람)다. 우리나라로 치면 좌고(座鼓)와 자바라(啫哱囉) 같은 두 가지 타악기로 창극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노련한 고수는 혼자 두 악기로 연주를 하지만 요즘은 두 사람이 악기를 하나씩 연주하기도 한다. 배우들은 좌고와 자바라 소리를 듣고 등장·퇴장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각 장을 여닫으므로 고수는 극의 총지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들고 있는 두 가지 타악기는 사찰에서 스님들이 의례를 행할 때 쓰는 응아·롤모와 동일하다. 또 배우들은 춤을 출 때 사찰 법구(法具)인 다마루와 종을 들고 추는 경우가 많다. 법구가 사용되는 창극을 보고 있노라면 ‘불교의례의 세속 버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창극은 △서막인 자루와 온빠의 장 △중심 이야기인 ‘슝’ △축복과 회향의 장 ‘따시뗀진’의 3막으로 진행된다. 서막은 다시 △온빠뙨 △자루첸비 △라모뒤까의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먼저 ‘온빠뙨(사냥꾼 혹은 머슴과 같이 하층민을 대표함)’이 빙글빙글 돌며 오색천을 한데 엮어서 마당을 쓸 듯이 정화의 춤을 추며 노래한다. 이어서 태자나 마을 장로급의 인사가 등장해 축복의 인사를 전하는 자루첸비를 하고나면 오색무지개 옷을 입은 선녀들이 춤을 추는 라모뒤까로 끝을 맺는다. 

예전에는 달라이라마께서 축복의 가탁(흰 수건으로 된 禮布)을 내리기까지 신성하고 장엄한 서막이 펼쳐졌겠지만, 필자가 티베트를 방문해 창극을 관람했던 2007년 7월 초하루의 노블링카 마당에는 중국 공안이 총을 메고 순찰을 하고 있었다.  

중심 이야기 마당인 ‘슝’은 한 가지 이야기를 하루 종일 이어갈 정도로 내용이 길다. 공연 중에는 수시로 전통 곡예가 펼쳐지고, 관객과 주고받는 재담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티베트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울고 웃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민속적 캐릭터들이 다 등장한다. 

‘슝’은 △선녀와 롭상 왕자의 사랑 △치미갱등 태자의 보시행 △모진 고생 끝에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빼마원빠 소년의 모험’ △별주부전과 유사한 ‘돈둡과 돈위 형제의 우애’ △장화홍련을 연상시키는 ‘쯔와쌍모 선녀와 남매’ △농노를 주인공으로 하는 ‘찬란한 빛 속의 남싸 처녀’ △‘여승 수지니마의 일생’ 등과 같은 설화가 있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는 ‘문선공주의 출가’ 등 여덟 마당이 있다.

선녀들과 마을 장로들의 축복을 받으며 혼례를 올리는 극 중 한 장면(왼쪽). 황면극단의 온빠뙨. 로

‘선녀와 롭상 왕자의 사랑’ 가장 인기

이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창극은 ‘선녀와 롭상 왕자의 사랑’ 이야기다. 이 설화는 본래 단순한 사랑이야기였는데, 탕돈게보는 여기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을 덧씌운 후 호법신인 간다르바의 이야기까지 추가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롭상 왕자는 수없는 생을 거듭하는 동안 쌓은 공덕으로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백성에게 덕을 베풀며 성장한 뒤 대범천의 뜻에 따라 천상의 신 간다르바의 딸 운쪼 선녀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왕비와 주술사들이 모함을 해 고난을 겪게 되고, 이를 뛰어난 지혜와 무술로 물리쳐 마침내 행복을 찾게 된다. 

필자가 어릴 때는 여의봉으로 온갖 재주를 부리는 손오공이 ‘뽀로로’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신통방통한 캐릭터였다. 우리나라 고전 중에서 오늘날까지 판소리로 살아남은 다섯 마당은 조선시대의 이상향이었던 충효정신에 부합한 것이다. 그 중 가장 인기를 누린 것이 ‘춘향가’인데, 지금도 남원에는 춘향생가까지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손오공은 인도의 ‘라마야나’, 춘향가는 중국 희곡 ‘오륜전비(五倫全備)’·‘낭자계(娘子髻)’·‘재자가인극(才子佳人劇)’과 관련이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지 상호 교류와 모방은 문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롭상 왕자의 사랑이야기에 부처님 전생담과 간다르바가 추가된 것 또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창극의 피날레는 ‘따시뗀진’이다.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에 머물 때는 그와 함께 각료와 고승들이 주연 배우들에게 축복의 가탁을 걸어주며 격려를 했다. 하지만 인도로 망명을 한 후에는 극단 관계자나 지역 유지만 행사에 참석한다. 그래도 수많은 지역 유지들이 돌아가며 가탁을 걸어주기 때문에 배우들의 목에는 금세 가탁이 가득 찬다. 배우들은 받은 가탁을 장대 앞에 내려놓은 후 다시 가탁을 받는다. 

이러한 가운데 나머지 배우들은 객석을 돌면서 권주가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술잔을 건넨다. 잔을 받아든 관객들은 보시금을 내고 노래도 한 소절 부른다. 탕돈게보 역시 이렇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보시금을 모아 전국의 다리를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체라모 공연이 흥행을 하자 지역마다 여러 극단이 생겨났다. 이들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극단이 백면(白面)·황면(黃面)·남면(藍面)극단이다. 필자는 당시 이 극단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전승활동과 공연실태를 조사했다. 

남면극단의 시연. 천상의 무희와 선녀들이 다마루와 법령(종)을 들고 춤추며 오색 매듭을 만들고 있다. (2007년 12월 남면극단 연습실)

아체라모 공연하는 3대 창극단

총게마을은 라싸(Lasa)에서 지프를 타고 세 시간 반쯤 달리면 도착한다. 이 마을은 최초의 아체라모 극단인 백면극단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탕돈게보가 생전에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고, 역대 달라이라마 중 가장 추앙받는 제5대 달라이라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백면극단은 쇼뙨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가장 먼저 공연을 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또한 탁월한 예인들을 가장 많이 배출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산난 지방은 티베트 남부에 위치해 있는데, ‘山南’이란 명칭은 티베트 고원인 캉디씨 산맥과 넨친탕라 산맥 이남에 위치한다는 의미이다. 이곳은 ‘얄룽(雅鲁)’으로 불리는 티베트문화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얄룽의 제27대 왕인 라토토리넨젠(拉托托日年贊)은 인도 승려가 가지고 온 경서와 법구를 신성하고 현묘한 신물(神物)로 여겨 융부라캉(雍布拉康, 티베트 최초의 왕궁)에 모셔 놓았는데, 이를 계기로 티베트에 불교가 자리 잡게 되었다.

탕돈게보는 당시 이곳 벤뒈(일곱 형제의 마을이란 뜻)마을에서 직접 북을 치며 지휘했고, 일곱 형제는 배우가 되어 연극을 했다. 지금도 아체라모 창극 중간에 ‘하하’ 웃는 소리를 내곤 하는데 당시 탕돈게보가 극을 지휘할 때 웃었던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다. 백면극단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보수적 전통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다른 극단에서는 아체라모에서 선녀 역할을 여성이 하지만, 백면극단은 배우가 모두 남성으로 구성돼 있어 선녀 역할도 남성이 맡는다. 아체라모 극단이 남성으로만 구성된 것은 5대 달라이라마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이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다.   

황면극단은 네동현 창주진(唱珠鎭)에 있다. 창주진은 ‘새가 용의 구슬(珠)과 같은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唱)’는 뜻의 한역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이 바로 이 지역 창극단의 노래가 얼마나 좋은가를 말해준다.”고 자랑했다. 황면극단 사람들은 마을의 루캉(혹은 ‘르와데링’이라고도 함)사원에서 공연을 펼쳤다. 사찰 마당은 링꼬르·바꼬르·낭꼬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들은 축복과 회향의 장을 마친 후 놀이판을 벌였다. 

아체라모 출연배우들인 선녀·사냥꾼과 함께 동네사람들은 일렬로 마주서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가하면 강강술래처럼 둥그렇게 돌며 춤을 추기도 했다. 이때 남자들은 특이한 발장단을 보여주는데, 마치 아프리카의 탭댄스와 한국의 엇모리장단을 섞어놓은 듯 매우 인상적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아랑곳 않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아체라모로 민심을 얻었던 롭상 갸초의 지도력에 새삼 엄지가 올라갔다.

남면극단은 라싸의 북쪽 세라사원 부근 냥러(娘热)에 본거지가 있다. 1984년 게루 선생이 농민의 자녀 20여 명을 데리고 시작했는데 필자가 방문했던 2007년 당시에는 단원이 70여 명에 이르렀다. 관광시즌이면 외국인을 위한 공연이 셀 수 없이 열렸는데, 3개조로 나누어 하루에 세 차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극단이 라싸 시내에 여러 개가 있다고 하니, 아체라모가 얼마나 인기 있는 창극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남면극단의 연령층은 대개 20대로, 지방 극단에 비하면 매우 젊은 편이다. 하지만 공연 횟수가 많다보니 지방극단의 중진 연기자 못지않은 내공이 있다고 그들은 자랑했다.  

남면극단은 중심 이야기인 ‘슝’을 할 때 선녀와 여러 천상의 캐릭터가 한데 어우러져 천막을 바치는 기둥에 오색 끈을 엮는 춤을 추었다. 우리나라 전통무용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있어서 잠시 ‘누가 원조일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외에도 마당극이라는 형식, 관객과 주고받는 추임새, 민속적인 춤사위와 창법까지 한국의 마당극과 닮은 점이 무척 많아 서로 비교를 해보면 의미 있는 연구 성과가 나올 것 같았다. 

대도시 라싸에 있는 남면극단은 선녀들의 복색이 지방 극단보다 화려했다. 또 티베트 전통악기와 중국 한족의 전통악기를 혼합 편성한 실내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선녀들이 춤추고 노래했는데, 도시 젊은이들에 의해 퓨전화 되어 가는 아체라모의 모습으로 보여졌다. 

현재 극단을 구별하는 백면· 황면· 남면 등의 명칭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후 1980년대 문화정책 과정에서 사냥꾼의 가면 색깔로 구분해 지은 명칭이다. 예전에는 모두가 각 지방의 이름을 딴 명칭을 사용했고, 지방마다 아체라모의 특색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티베트인들은 가면 색깔로 명칭이 바뀐 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아체라모의 안내서에는 “중국 서북부 지역 어디 어디로”라고 문구가 시작하는데다 중국 정부의 주도 아래 행해지는 아체라모를 보면 마치 매스게임(mass game)을 보는 듯해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중국 문화재가 될 바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면 그로 인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게 된 역설적 현상도 생겨났으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6년 8월 티베트 라싸 포탈라궁 앞에서 펼쳐진 아체라모. 중국 정부의 주도 아래 행해지다보니 마치 매스게임을 보는 듯해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윤소희 
위덕대학교 연구교수. 부산대학교 한국음악과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에서 음악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국악창작곡분석〉으로 작곡과 연구를 시작했으며, 현재 전 세계 현지조사를 다니며 불교음악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동아시아 불교의식과 음악〉·〈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문명과 음악〉·〈문화와 음악〉 등이 있다. 

글·사진 윤소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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