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 2019년 作색색, 어떤 것_99x70cm_종이에 아크릴릭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와 뒤이은 민중시위는 정치에 대한 불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미얀마 만달레이 인근의 식당 앞에 걸린 아웅 산 수치와 그녀의 아버지 아웅 산 장군의 사진.불교의 나라 미얀마가 아비지옥이 되어가고 있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 산(Aung San, 1915~1947)의 딸인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이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62.4%를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자 지난 2월 1일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대장이 쿠데타를
어둠 묻은 새벽빛이 조금씩 물러서고 어스름한 빛이 버스 위로 흘러내리는, 새벽인 듯 아침인 듯 오전 6시 출발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내 손을 끌어당겼다.“남자 그거 별거 아닌기라.”아마도 언니처럼 연애하면서 결혼을 당기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어머니는 남자의 값을 깎아 내리려는 듯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나에게서 남자라는 인물의 정을 완전히 떼어버리려는 마음 그것이었다. 오직 무엇인가를 이루고 사회적으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라는 당부의 시작을 나에게 풀어 놓는 일이었을 것이다.“연애 같은 거 하지 말고
보현사는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현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묘향산(妙香山)에 위치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묘향산에 360여 개의 암자가 있었고, 보현사(普賢寺)가 묘향산의 대표 사찰이었다고 적고 있다.의상대사가 784년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묘향사보현사사적기〉에 따르면 1042년 탐밀(探密) 대사와 굉확(宏廓) 대사가 창건했다. 크고 작은 보수와 함께 여섯 차례 중창이 있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중창이 이루어졌으며, 현재 북한 불교의 총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을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정신적·육체적 활동’이라고 좁은 의미로 개념 정의를 하면 농민은 노동자가 아니다. 이렇게 정의하면 농민 뿐 만 아니라 상인·수공업자도 노동자가 아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비나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을 노동자로 간주했지만, 농민은 자기 소유의 토지에서 자기만의 사업을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라는 개념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농민이 농촌에서 쫓겨 도시로 와서 임금을 받고 일하면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노동력을 사고파는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출가와 재가의 노동부처님 당시는 농경사회에 수공업이 새롭게
부처님, 말먹이용 보리를 드시다부처님께서는 한때 나레루(Narelu)의 님바(Nimba) 나무 인근에 있는 베란자(Veranja) 마을에서 500명의 비구 제자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베란자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한 브라만(婆羅門)이 부처님께서 자신의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처님의 훌륭한 명성을 접한 브라만은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부처님께서는 자상하게 대답해주었다. 브라만은 부처님 법문을 듣고 감복하여 부처님을 찬탄했다. 그 자리에서 브라만은 즉시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다. 그리
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인간의 행동에 관심을 가졌다.그는 자유가 인간에게독립성과 합리성을 부여하지만인간을 고립시켜 불안에 싸인무력한 존재로 만든다고 보았다.그래서 인간은 자유라는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해새로운 의존과 복종의 대상을 찾거나적극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해 나아가는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말했다.‘자유’.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자유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누군가의 구속에서 헤어 나와 마음대로 사는 것도 자유이고,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는 팍팍한 살림에서 벗어나 돈 걱정
루스탐이 받은 선물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영웅 ‘루스탐’이 노인 한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늦은 밤 별빛이 초롱초롱한 밤하늘 아래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주 앉은 영웅 루스탐과 노인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노인이 이렇게 말했지요.“저를 구해주셨으니 아름다운 것을 선물하고 싶습니다.”하지만 전쟁터에서 살다가 죽어야 할 운명인 루스탐에게 그런 바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저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모닥불의 따뜻함과 나른함,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머리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저 별들의 아름다움까
1300년 전 한반도의 수도는 서울이 아닌 서라벌(현재의 경주)이었다. 당시 서라벌은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세계 4대 도시(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이슬람 바그다드·중국 장안) 중 하나로, 신라의 왕경(王京)은 한민족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꼽을 만하다.그 중심에 황룡사와 9층 목탑이 우뚝 서 있었다. 황룡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년) 창건된 신라 최대의 사찰이지만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됐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세워진 9층 목탑도 이때 함께 소실됐다.현재 터만 남은 ‘경주
유마거사 문병은 누가 감당할까?[부처님의 10대 제자-2]• 무대 - 인도 바이샬리 성• 주요 등장인물 - 부처님, 유마거사, 사리불을 비롯한 부처님의 십대제자.• 주요 전개과정사리불이 유마거사 문병을 할 수 없다고 물러서자, 부처님께서는 마하 목건련과 수보리 등 나머지 10대 제자에게 차례로 유마거사 문병을 부촉한다. 그러나 모두 그 소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물러서면서 유마거사와 법담(法談)을 하다가 꺾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아뢴다.지혜제일이라는 사리불이 물러났습니다. 유마거사 문병 사절을 감당할 수 없다
‘루카다 나트야(Rūkada Nātya)’는 스리랑카의 전통 줄 인형극이다. 마을공동체에서 농한기에 가벼운 여흥 삼아 부처님의 전생담 등 도덕적인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공연한다. 이 줄 인형극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학자들은 ‘줄 인형극’이란 용어를 여러 형태로 정의하는데, 주로 나무로 제작한 인형에 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의 의지가 더해졌다고 풀이한다. 줄 인형극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부터 부처님오신날 관등놀이로 행했던 ‘망석중놀이’가 있었고, 미얀
‘베를린 불교의 집’의 창건베를린 불교의 집(Das buddhistische Haus in Berlin)은 파울 달케(Paul Dahlke, 1865~1928)가 1924년 완공한 사찰이다. 불교가 대중화 되지 않았던 1920년대에 세워진 몇 안 되는 사찰 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남방불교사원이다. 불교의 집은 베를린과 바로 옆 행정구역인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경계지역인 프로나우(Frohnau)에 위치해 있는데, 베를린 북서부행 전철 노선의 마지막 정거장이라 베를린 중심부에서도 한 시간 이상 소요된다. 유럽의
이인 2002년 作색색풍경11_130x180cm_한지에 채색
토끼가 달린다나는 새하얀 털에, 두 귀가 길고, 눈은 빨갛고,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길어서 오르막길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토끼입니다. 오랜 옛날, 나는 야자나무 덤불숲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토끼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젓하게 지내고 있었지요. 어느 날 숲에서 먹이를 구해와 보금자리에 느긋하게 누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만약 이 땅이 꺼지면 난 어디로 가야할까?’땅이 꺼지는데 과연 도망갈 곳이나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바
이인 2018년 作색색, 어떤 것_99x70cm 중성지 위 아크릴릭
안국사는 평안남도 순천군 사인면 안국리(현 평안남도 평성시 봉학동)의 봉린산(鳳麟山)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안국사사적비(安國寺史蹟碑)에 의하면 503년(천감 2년)에 법석 현욱(法釋 玄旭)이 20여 년에 걸쳐 창건했다. 대웅전의 종도리에 기록된 상량문에는 대웅전이 1419년 창건됐고, 임진왜란 후 1654년·1669년·1785년에 각각 중수됐다.남아있는 건축물의 기법으로 보아 현재의 전각은 1785년 중수 당시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종교미술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불교미술은 일반미술과 마찬가지로 조각·회화·공예 등 어떤 종류든 간에 시각적 매체를 이용해 아름다움의 추구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불교교리 및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미술을 일컫는다. 따라서 훌륭한 불교미술이란 곧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신심(信心)을 얼마만큼 크게 일어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즉, 미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친밀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불교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종교미술로서의
유럽불교연합(European Buddhist Union)은 프랑스 파리에서 판사로 활동하던 폴 아놀드(Paul Arnold, 1909~1992)가 1975년에 런던에 창립한 단체다. 하지만 유럽불교연합 창립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 역사는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재능 있는 작가이자 여행가이기도 했던 폴 아놀드는 1965년에 달라이라마를 두 시간 정도 개인적으로 친견했다. 그는 8년이 흐른 1973년 프랑스 사브아(Savoy)에 사찰을 세우고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불교단체 설립을 서원했다. 그는 같은 해 11월 파리에서 개최된
베트남에서는 북부(하노이)·중부(후에·꽝남)·남부(호치민)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을 모시고 제(祭)를 올리고 있다. 길게는 수 천 년부터 짧게는 몇 백 년 이상 이어온 지역 전통신앙인데, 대부분의 제의식은 커다란 지역축제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중 북부 전역에는 ‘타인 종(Thánh Gióng, 聖揀)’을 숭배하는 의식인 ‘푸동 사원과 속 사원의 종 축제(Gióng festival of Phù Đổng and Sóc temples)’가 행해지고 있는
과연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을까? 어머니는 갖은 곤욕과 비탄을 벗어 버리고 제2의 인생을 살아보기로 작심을 하셨습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탓일까? 아버지가 자신에게로 온전히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탓일까? 어머니는 냉정하게 새 인생의 문을 두드렸던 것입니다.그것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이 아니라 이미 자신은 아무것도 될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생각해낸 새로운 인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그냥 되는대로 하루하루 사는 일’에는 손을 들 수 없는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목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