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태동, 1975년 창립
유럽 16개국 50개 기관
영적 교류·대사회활동 지원

유럽불교연합을 창립한 폴 아놀드.

유럽불교연합(European Buddhist Union)은 프랑스 파리에서 판사로 활동하던 폴 아놀드(Paul Arnold, 1909~1992)가 1975년에 런던에 창립한 단체다. 하지만 유럽불교연합 창립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 역사는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재능 있는 작가이자 여행가이기도 했던 폴 아놀드는 1965년에 달라이라마를 두 시간 정도 개인적으로 친견했다. 그는 8년이 흐른 1973년 프랑스 사브아(Savoy)에 사찰을 세우고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불교단체 설립을 서원했다. 그는 같은 해 11월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불교회의(International Buddhist Congress)에 참여한 200여 명의 유럽 불자 앞에서 그의 뜻을 개진했고, 승낙을 받아 유럽불교연합의 초대의장이 되었다.

사실 유럽에서 불교회의는 1933년 9월 베를린에서 처음 열렸다. 그 후 1934년 9월 영국, 1937년 6월 파리에서 두 차례 더 개최됐다가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긴 휴식기간을 가져야 했다. 1973년 마침내 재개된 파리회의에서 유럽불교연합 결성 안건이 통과됐다. 그리고 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오스트리아 불교연합 간의 긴 협상 끝에 1975년 유럽불교연합을 발족할 수 있었다.

2014년 9월 함부르크 정기총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

유럽연합 비정부기구로 인준

정기총회는 매년 회원국을 번갈아가며 개최하고 있다. 첫 총회는 앞서 언급했듯이 1975년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그 후 냉전시대가 끝날 즈음에는 철의 장막 양측에서 각각 정기총회를 연 적도 있다. 1989년 공산주의 진영에서 열린 헝가리 총회가 일례이다. 또한 유럽불교연합은 유럽불교회의를 주관하고 있는데, 첫 회의는 1979년 6월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건물에서 열렸다. 당시 15개 유럽국가에서 250명의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공리에 개최됐다. 역대 가장 성공적이었던 유럽불교회의는 1992년 베를린 회의이다. 이 회의에는 2,000명 이상의 불자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 개인회원 가입은 불가능하고 기관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16개 유럽국가에서 50개에 달하는 기관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2008년에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 의회가 유럽불교연합을 정식 비정부기구로 인준했다. 그 후 유럽불교연합은 유럽지역 및 유럽 권역 밖의 국제기구와 교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자문위원회에서 선거를 통해 의장을 선출하는데, 현재 의장은 2017년 9월에 선출된 독일의 론 아이혼(Ron Eichhorn)이 맡고 있다. 의장 외에는 두 명의 부회장, 코디네이터, 운영위원, 회계 담당자가 임원을 맡아 유럽불교연합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불교연합은 홈페이지에 유럽 불교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로 흔히 떠올리는 19세기나 20세기 훨씬 이전부터 유럽에 불교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불교연합의 역할과 목표로는 △국제교류 도모 △유럽 불자 간의 영성적 교류 △불교적 가치에 의거한 사회활동 지원 △유럽 내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불자 목소리 증진을 꼽고 있다.

2017년 9월 폴란드에서 열린 자문위원회 선거 후 기념촬영.

특히 2008년 유럽연합 인준 후의 활동이 특히 이목을 끄는데, 유럽비영리기관의회(The Council of Europe’s Conference of International Non-Governmental Organisations)에 참여한 후 유럽불교연합의 위상은 격상되었다. 2014년 6월 당시 유럽불교연합 대표였던 미쉘 아귀라(Michel Aguilar)가 3년 임기의 인권위원회(The Human Rights Committee) 의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인권위원회는 유럽연합 권역 내 160개 비정부기관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또한 유럽불교연합은 ‘종교와 신앙을 위한 유럽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Religion and Belief)’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종교와 신앙을 위한 유럽네트워크는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EU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을 기반으로 각종 차별에 대항하고 종교간 상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출범한 조직이다.

유럽불교연합은 불자 간의 소통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여성과 불교, 불교와 성소수자[Queer], 불교의 사회 참여 등을 주제로 하는 세부조직을 통해 동시대에 중요한 논제를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온라인 잡지도 발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 발간된 2020·2021년 겨울호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주제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유럽불교연합 홈페이지에는 최근 미얀마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유감을 표하는 성명도 게재돼 있다.

2021년 4월 온라인 콘퍼런스

콘퍼런스 포스터.

유럽불교연합은 2년에 한 번 콘퍼런스(Conference)를 개최한다. 2020년에 계획되어 있었던 콘퍼런스는 코로나19로 연기를 거듭하다가 2021년 4월 24일 마침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주제는 ‘불교적 관점에서 본 죽음과 죽어간다는 것(Death and Dying from a Buddhist Perspective)’이었다. 사회자는 본 콘퍼런스를 ‘불교의 사회적 의의에 중점을 둔 유럽 불자간의 대화’라고 소개했다. 200여 명의 유럽 불자가 참여했는데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출신이 많았고, 그 외 독일·네덜란드·스웨덴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1975년 유럽불교연합 창립 당시 프랑스 법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지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프랑스 내에서 유럽불교연합의 입지는 상당해 보였다. 대부분 40대 이상이었으며 20년 이상 불교수행을 하고 있다는 참여자도 꽤 많았다. 꾸준히 활동하는 참가자가 많은지 정식 개회사에 앞서 서로 간에 반갑게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의 공식 언어는 영어였지만 기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곧 다른 언어를 들을 수 있는 유럽답게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로 자연스레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로도 동시통역이 제공되었다.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불교 명상지도자 키어스틴 데리오(Kirsten DeLeo), 뉴욕 맨하탄에서 활동하는 일본 선승 코신 팔레이 엘리슨(Koshin Paley Ellison), 유럽불교연합 회장(2005~2008)을 역임했던 클라우디네 카라욜(Claudine Carayol), 로마에서 일본 조동종 선승으로서 활동하며 대학에서 불교를 강의하는 다리오 도신 기로라미(Dario Doshin Girolami) 등 총 6인이 30분간 발제를 하고 나머지 30분은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 네 개의 언어권 소그룹으로 나뉘어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1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참석자들.

발표주제는 △자녀를 잃은 불자를 위한 불교 △죽음을 앞둔 이를 위한 법문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삶과 죽음의 관계 등 폭 넓은 분야를 다루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전염병 관련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삶의 위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공통분모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의견과 경험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병을 앓고 있는 친구나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세 명의 발제자는 표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골자는 같은 답변을 했다. 한 발제자는 “내 곁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지식 같은 것들을 전달해 주거나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지 마라. 우리는 존재 자체로 충분하고, 그 존재를 나누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상대는 대부분 우리가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란다기보다는 그저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경우가 많다.”고 충고했다.

다른 발제자는 “입을 다물라. 입을 다물고 들어라. 상대가 축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면 축구 이야기를 듣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하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라.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들어라. 곁을 지키고 이야기를 들어 주어라.”고 했다. 또 다른 발제자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곁에 고요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병상에 있는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건강한 사람의 정신도 쏙 빼놓을 만큼 부산스러운 공간이다. 각종 기계음과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동요하기 쉽다. 그런 혼란 속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곁을 지키면 큰 도움이 된다. 두려움에 두려움으로 대응하지 말고 차분함과 자비로 만나라.”고 조언했다.

발제자 다리오 도신 기로라미. 이탈리아에서 여성 수감자를 대상으로 불교 명상을 지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콘퍼런스는 30분간 달라이라마의 녹화본 법문을 듣는 것을 마지막 순서로 막을 내렸다. ‘죽음’이라는 시기적절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또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유럽 불자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떤 불교 종파든 상관없이 불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유럽불교연합의 설립 취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유럽불교연합 의장 론 아이혼은 지난 3월 26일 미얀마 군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앞으로 공개서신을 보냈다. 이번 호의 글을 마무리하며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유럽불교연합은 1975년 설립 이후 미얀마 불자들과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깊은 불교 전통을 자랑하는 미얀마에게 친근감을 느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 간 지속된 로힝야족 박해에는 강한 유감을 표합니다. 로힝야 난민이 조국에 하루 빨리 안전히 돌아갈 수 있기를, 또 그들의 종교 및 삶의 방식이 존중 받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021년 2월 1일 일어난 군부 텟마도(Tatmadaw) 사태 또한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 현 군부 집권에 반대하는 비무장 민간인이 기초 인권을 행사 했다는 이유로 국가폭력의 대상이 되고 시위로 인한 사상자가 매일 늘어나는 것은 몹시 충격적입니다. …… 불교적 가치, 법제적, 인권 존중의 측면에서 현재 집권 군부가 비무장 민간인 학살을 중지하고 종교와 사상에 무관히 불법적으로 구금된 민간인을 석방하고 헌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부에게 권력을 돌려주기를 강력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혜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하고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수학중이다. 불교와 전쟁, 불교와 국가의 관계, 불교 개념의 제도화 과정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그 외 세계의 비전통적 고등교육기관에도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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