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 물리친 구국의 영웅 ‘타인 종’ 기리는 축제
탄생지·승천지 사원서 봉행

제사의식의 시작인 신맞이 의식은 속 사원 ‘타인 종’ 축제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 푸령산의 물로 목욕 후 제사의식이 시작되면 종이로 만든 코끼리를 불태워 신을 맞이한다.

베트남에서는 북부(하노이)·중부(후에·꽝남)·남부(호치민)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을 모시고 제(祭)를 올리고 있다. 길게는 수 천 년부터 짧게는 몇 백 년 이상 이어온 지역 전통신앙인데, 대부분의 제의식은 커다란 지역축제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중 북부 전역에는 ‘타인 종(Thánh Gióng, 聖揀)’을 숭배하는 의식인 ‘푸동 사원과 속 사원의 종 축제(Gióng festival of Phù Đổng and Sóc temples)’가 행해지고 있는데,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반랑국을 지켜낸 ‘타인 종’

타인 종이란 이름에서 ‘타인’은 거룩한 성인(聖人)을 의미하고, 대나무란 뜻을 가진 ‘종’은 사람의 이름이다. 타인 종은 ‘푸 동 티엔 브엉(Phù Đổng Thiên Vương, 扶董天王)’, ‘속 티엔 브엉(Sóc Thiên vương, 朔天王)’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베트남 신화에 등장하는 영원히 죽지 않는 네 명의 불사신 중 한 명이고, 그 중에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받는 신이다.

타인 종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 나라를 지켜낸 베트남 민족의 영웅이다. 그는 베트남 반랑국 6대 훙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기원전 2,000년 경 세워진 반랑국은 한국의 고조선에 해당하는 베트남의 고대국가이다. 어느 날 반랑국 북부 지역에 혼자 살던 나이 많은 여자가 들판에서 큰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발동해 발자국에 자신을 발을 맞춰 보았는데 얼마 뒤 임신을 하게 됐다. 그리고 9개월 10일이 지난 후에 아기를 낳았다. 그녀는 아기의 이름을 ‘종(Giong)’이라고 지었다. 종은 매우 특별하고 신기한 아이였다. 세 살이 되던 해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밥만 먹었다.

베트남 사불사(영원히 죽지 않는 신) 중 가장 추앙받는 ‘타인 종’. 베트남 북부지역 전체에 ‘타인 종’ 숭배사상이 퍼져 있다.

당시 반랑국 북쪽에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 왕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 왕조는 반랑국 정복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훙왕은 나라 전 지역에서 능력 있는 장군을 찾고 있었다. 이때 타인 종은 어머니께 전령을 집으로 초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린 타인 종은 집으로 찾아온 전령에게 좋은 말과 좋은 철검과 철갑옷을 만들어주면 적과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전령이 돌아간 후 타인 종은 갑자기 덩치가 큰 장수로 변했다. 전령이 왕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하자, 왕은 하얀 백마와 철검·철갑옷을 타인 종에게 하사했다. 타인 종은 왕이 하사한 철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군대를 이끌어 전쟁에 나갔다. 그는 철검을 휘둘러 수많은 적을 물리쳤다. 나중에는 철검이 부러지자 대나무를 무기로 사용해 결국 모든 적을 물리쳤다. 이렇게 침략자를 물리친 타인 종은 홀연히 백마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베트남 하노이 자람(Gia Lam)성 푸동에 위치한 푸동 사원(ĐỀN PHÙ ĐỔNG)은 ‘종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타인 종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푸동 사원은 강을 사이에 두고 상사원(上寺院)과 하사원(下寺院)으로 나눠져 있다. 상사원은 타인 종이 태어나 그의 어머니가 살던 집터이고, 하사원은 타인 종의 어머니가 발자국을 발견한 곳이다. 이 사원은 리타이도(Lý Thái Tổ)왕이 1010년에 탕롱(Thăng Long, 지금의 하노이)으로 수도로 이전했을 때 세워졌다.

푸동사원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 행진. 수백명이 참여해 ‘타인 종’ 군대의 힘을 표현하는데, 깃발의식을 봉행한 모든 사람들은 건강을 얻는다고 믿는다. 장엄한 깃발 봉행의식은 푸동사원 어머니구역에서 ‘타인 종’의 태어난 곳까지 진행된다.

리타이도 왕은 전국에 수많은 사찰을 지었다. 대표적인 사원은 푸동 사원과 함께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에 있는 응옥선 사원이다. 푸동 사원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키앤소 탑(Kien So Pagoda)이 세워져 있다.

속 사원(ĐỀN SÓC)은 베트남 하노이 중심에서 북쪽으로 35km 떨어진 푸령(Phu Linh)산에 위치하고 있다. 베트남의 창건과 역사를 같이하는 푸령산은 타인 종이 하늘로 승천한 곳이기도 하다. 속 사원은 많은 불자의 참여로 근대에 와서 부처님을 모신 전각과 탑을 복원했다.

즉, 타인 종이 태어난 곳에서 열리는 축제가 ‘푸동 사원 축제’이고, 타인 종이 승천한 곳에서 열리는 축제가 ‘속 사원 축제’이다. 매년 음력 1월에 열리는 속 사원 축제와 음력 4월에 열리는 푸동 사원 축제를 합쳐 ‘타인 종 축제’로 부르고 있다.

검 없는 전투, 푸동 사원 축제

두 축제는 마을축제에서 시작해 지금은 지역적인 축제이면서도 베트남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푸동 사원 종 축제는 전쟁과 국가사회의 변화 등 베트남의 아픈 역사로 인해 많은 격변 속에서도 신화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지지받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신맞이 의식 후 가마 위에 ‘타인 종’이 내려와 앉을 때가 축제의 가장 흥겨운 시간이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가마 위의 ‘타인 종’을 만진다. 행복·건강·재물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푸동 사원의 종 축제는 ‘타인 종 신화’의 발상지이다. ‘푸동’은 타인 종의 다른 이름인 ‘푸 동 티엔 브엉’에서 유래된 명칭인데, 매년 음력 4월 8일과 9일 이틀간 축제를 개최한다. 필자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을 몇 차례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관람할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웅장하고 장엄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푸동 사원 내에 있는 ‘어머니 구역’에서 타인 종이 태어난 ‘상사원 구역’까지 깃발을 옮기는 의식을 봉행하는데, 타인 종이 이끈 군대의 힘을 보여주는 군무로 시작한다. 젊은이들은 평소 축제를 위한 연습을 하는데, 깃발 대장·북 대장·징 대장·군대 대장·어린이 대장의 역할을 뽑아서 역할을 나눈다.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은 정오(11시~1시) 무렵 펼쳐진다. 먼저 아이 라오(Ai Lao)마을 사람들은 상사원 앞에서 호랑이 사냥놀이를 선보이며 야수를 정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강인한 타인종 군대의 힘을 보여준다. 동 비엔(Dong Vien)마을 끝에 연꽃호수 인근 동 담(Dong Dam) 마을에서 적의 장수를 대표하는 28명의 여장군이 전투를 준비한다. 여장군은 9세부터 13세 사이의 소녀들 중에서 선발된다.

깃발 대장의 춤사위와 북·징의 소리는 전투의 시작을 의미한다. 휘날리는 깃발에서는 종이로 만든 나비가 떨어지는데, 침략자가 타인 종 군대에 의해 흩어지는 장면을 의미한다. 이런 장면을 전통무용을 통해 보여준 후 타인 종 군대의 승리를 기뻐하는 춤을 선보인다. 축제 후에 내리는 비에는 성인이 나라의 풍년을 축복해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푸동사원 종 축제의 본격적인 시작인 호랑이사냥놀이. 베트남 전통악기와 음악 그리고 군무로 아름다운 예술무대가 만들어진다. 호랑이를 사냥 하면서 ‘타인 종’의 강인한 힘을 보여준다.

두 번째 전투공연은 승리 후 타인 종과 사람들이 상사원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적군이 허술한 틈을 타 타인 종 군대를 포위한 상황이다. 타인 종은 군대를 이끌고나가 두 번째 전투를 시작한다. 또다시 전통음악이 연주되고 수백 명이 아름다운 군무를 시작한다. 두 번째 전투까지 끝나면 북과 징이 세 번 울려 퍼진다. 타인 종 군대의 완전한 승리를 알리는 의식이 치러진다. 28명의 적 장군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용서를 빌면, 타인 종은 모두를 용서하며 화해와 평화를 당부한다. 이후 모든 대중은 함께 아름다운 군무를 춘다.

푸동 사원 종 축제는 고대 전투를 소재로 한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축제이다. 그런데 격렬한 전투를 표현하는 푸동 사원 종 축제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축제에 검(劍)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검은 존재하지 않고 모두 상징적인 의미로만 재현 되었다. 바로 타인 종의 정신 그리고 그를 계승해온 푸동 지역 사람들의 깊고 오랜 자비와 관용의 마음이다. 자비와 관용 그리고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야말로 푸동 사원 종 축제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신년에 열리는 속 사원 축제

속 사원 축제는 매년 음력 1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다. 전설을 따르면 타인 종은 적을 격퇴한 후에 푸령산에서 승천했다. 사람들은 타인 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속 사원을 건립해 전쟁에서의 승리와 타인 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축제를 지내왔다. 속 사원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은 타인 종의 제사의식(祭祀儀式)이다.

의식의 첫 순서는 신맞이 의식이다. 제관들은 모두 푸령산의 신성한 물로 목욕재개한 후 향을 피운다. 그리고 종이로 만든 코끼리와 말을 불태우고, 축제 하루 전에는 타인 종의 동상을 씻어서 신을 부른다. 제사의식의 두 번째 순서는 감사의식이다. 축제가 시작되는 첫날에는 모든 사람이 신에게 공물을 올리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감사와 발복(發福)을 함께 기원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 후 ‘타인 종’은 홀연히 백마를 타고 사라졌다.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면 모든 대중들은 일어나 군무를 추기 시작한다. 수천 명이 함께 춤을 추는 ‘타인 종’ 축제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감사의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나무로 만든 꽃[竹化]을 신께 바치는 ‘대나무꽃 공양’이다. 검이 부러진 후에도 대나무로 모든 적을 물리친 타인 종의 용맹함과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의식이다. 제사의식 후에는 속 사원을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참가자들은 이때 대나무로 만든 꽃이 축제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신으로 환생하는 성화의 날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환생과 축복의 의식이다. 제관들은 푸령산에서 타인 종이 마지막 세 명의 적을 죽이고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연기한다. 이어 속 사원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코끼리와 말을 손으로 만지면서 이 장엄물을 강둑으로 옮기며 그가 환생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베트남 전통신앙에서는 거룩한 희생을 한 사람은 누구나 환생을 해 새로운 인생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속 사원 축제의 마지막은 강으로 옮긴 종이 코끼리와 말을 불태우며 새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축제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풍요로운 세상에 환생해 행복한 삶을 꿈꾸길 기원하며 축제를 마친다.

푸동 사원 타인 종 축제가 강인한 타인 종 군대의 힘을 보여주며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고 자비와 관용의 정신을 담고 있다면 속 사원의 타인 종 축제는 새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축제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풍요로운 세상에 환생하길 기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두 축제는 베트남 국민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와 같은 베트남 최대의 축제이다.

‘타인 종’은 전투에 나가 검이 부러지자 대나무를 꺾어 적을 물리치고 전쟁에 승리했다. ‘타인 종’ 축제의 전투공연은 검이 존재하지 않는다. 칼 대신 대나무를 이용해 전투장면을 펼친다. ‘타인 종’의 정신과 푸동사람들의 관용과 자비의 정신을 상징한다.
속 사원 축제는 ‘타인 종’의 승천의식을 치른 뒤 모든 사람들이 강가로 나가 종이로 만든 말을 불태우며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와함께 사람들은 ‘타인 종’이 지키는 풍요로운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하길 기원한다.

김인성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했다. 한국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 강화 전등사 삼랑성문화축제 총괄팀장, NH아트홀 예술감독, NH아트홀 관장을 역임했다. 현재 베트남 IC Corp 대표, 베트남 꽝남(Quang Nam) 근대문화재개발위원, 다낭대학교 건축대학 벽화연구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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