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자유 가로막는
고독과 불안의 해결책을
불교 ‘본래 성품’에서 찾아

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의 행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유가 인간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부여하지만
인간을 고립시켜 불안에 싸인
무력한 존재로 만든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해
새로운 의존과 복종의 대상을 찾거나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해 나아가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말했다.

‘자유’.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자유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누군가의 구속에서 헤어 나와 마음대로 사는 것도 자유이고,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는 팍팍한 살림에서 벗어나 돈 걱정 없이 사는 것도 자유이며, 개인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도 자유이다.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자유는 우리에게 삶의 중요한 동기이며 목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유가 주어지면 그것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의 말이다.

자유와 구속의 양가성

독일의 저명한 정신분석가이자 인본주의 철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더 많은 고독과 소외감을 느낀다고 보았다. 어딘가에 구속된 상태에 계속 빠져 있으면 그곳에서 탈출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지만, 정작 자유가 주어지면 머지않아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양가성(兩價性, 동일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성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얻더라도 다시 구속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프롬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는 자유를 원하는 본능만큼이나 안전하고 싶은(구속되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대립되는 두 가지 본능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고독을 피하고 안전을 얻고 싶은 욕구와 자유를 추구하며 자기 창조를 이루고 싶은 욕구이다. 그래서 독신자는 서로 의지하는 다정한 커플을 부러워하는 반면, 지친 커플은 결혼생활을 굴레로 느끼며 솔로의 자유로움을 그리워하게 된다.

프롬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자유를 소극적으로 누리는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을 ‘적극적 자유’라고 불렀는데, 자발적인 선택과 함께 이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즉,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워 스스로의 인생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자유는 본래 적극적이고 자발적이며, 창의적이고 확산적이다. 프롬은 이러한 자유의 본성(本性)에 따라 “세상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말했다. 프롬이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사랑이 세상에 대한 ‘열정적 긍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성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은 우리의 타고난 천성, 즉 정서적 건강과 생산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성의 꽃을 피우게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지적·정서적·감각적 잠재력을 세상에 표현해내는 ‘자아실현’이다.

60대 초반의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 려

“자유는 해방 아닌 부담”

프롬은 1900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랍비인 할아버지와 탈무드 학자였던 삼촌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구약성서〉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주류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소수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차별 받음을 한탄했고, 마침내 종교나 인종이나 정치이념과 같은 굴레에 빠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프롬은 스스로 인종과 종교에서 벗어나 무신론적 신비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철학·사회학 등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동기에 대해 깊이 탐구했고, 스물 두 살의 나이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 훈련을 받아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프롬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관심이 많았다. 12살 때 가족의 지인이던 젊고 아름다운 여류예술가가 홀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살다가 아버지가 사망하자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사건은 어린 나이의 프롬에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다. ‘왜 그녀는 그토록 아버지에게 강한 애착을 가졌을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외적 조건을 다 갖춘 그 아름다운 여인은 왜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까?’ 이런 번민으로 인해 그는 훗날 부모와 자식 간의 병리적 애착에 대해 설명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깊이 심취해 정신분석 훈련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정신분석은 한계가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격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인정하지 않은 채 오직 생물학적인 원인만을 탐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프롬은 ‘사람은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홀로서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자유를 누리는 게 점차 두려움으로 변하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감정이 솟구치게 된다.

사회철학자이기도 했던 프롬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자유의 욕구와 구속의 욕구가 번갈아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인류는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개인 신앙의 자유와 신분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현대사회에서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더 많은 사회·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었음에도 이내 고독해졌고, 삶에 대한 회의와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현대인은 다시 다양한 모습의 속박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보통 사람에게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부담”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유를 작게 가질수록 더 큰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자유와 안전이라는 인간 존재의 기본적 딜레마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안전을 선택한다.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한다. 재산이나 명예 등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의미가 된다. ‘내가 가진 것이 바로 나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는 안전해.’라는 믿음은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된다.

프롬에 따르면, 이런 생각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를 지키고 누릴 수 있는 힘을 오히려 약하게 만든다. 자아는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더욱 약해질 경우, 결여된 자아의 힘을 외부의 권위에서 보충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을 평가하는 사회적 권위를 따르며 그 문화에 자동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사회와 문화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유행에 순응하면 자유는 포기해야 하지만 고독과 불안은 느끼지 않아 그럭저럭 만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프롬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생산은 자기 자신의 잠재된 본성과 그것의 구체화로 얻는 자기실현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와 개인의 조화로운 관계를 창조하게 된다고 보았다.

권위와 불안, 그리고 종교

종교는 현대인이 안전을 찾아 도피처로 택한 사회적 권위의 한 형태이다. 종교는 고독한 현대인에게 친밀한 모습으로 우정 어린 손을 내밀면서 웃음으로 맞이한다. 인간적인 온정으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종교 단체는 고립과 두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제시하며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프롬은 “인간은 공통적인 가치체계를 추구하고 온전히 자신을 헌신하려는 강력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신도들은 외부에서 밀려드는 현대문명의 복잡한 정보를 종교적 신념으로 추려내는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이처럼 현대인이 종교에 몰입하는 이유는 자신이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에 따르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프롬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해줄 때 느끼는 안도감 때문에 종교에 몰입하게 된다.”고 말한다. 마치 엄마 품안에서 보호받는 느낌과 같은 안도감을 찾기 위한 또 하나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인 셈이다.

그러나 프롬은 모든 종교가 자유에서 도피하는 걸 조장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비록 어떤 종교는 사람을 옭아매지만, 어떤 종교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프롬이 종교의 옳고 그름을 나눈 기준은 그 종교가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성숙하게 만드는가에 있었다.

에리히 프롬(우측)과 독일 심리학자 고프리드 퀴넬(Gottfried Kühnel).

“올바른 종교는 인본주의적 종교”

1949년 〈정신분석과 종교〉에서 프롬은 종교를 권위주의 종교와 인본주의 종교로 구분하면서 불교를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본주의적 종교’라고 주장했다. 불교는 초월적인 힘에 대한 굴복이나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확인하면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우리에게 내재된 본연의 힘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면서 이성의 힘을 발전시키도록 돕는다. 그래서 프롬은 “불교와 같은 인본주의적 종교에서 의미하는 미덕은 신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라고 말했다.

프롬은 1959년 〈선불교와 정신분석학〉을 통해 인간은 개인적 성장을 지향하는 내적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롬은 불교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므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교에서 해답의 길을 발견한 후 이렇게 말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한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내재된 힘도 깨달아야 한다. 깨달은 후 도달하게 되는 열반의 상태는 무력함과 굴복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최상의 힘을 발전시킨 상태이다.”

프롬은 또 ‘자신을 알라.’는 명제가 2,600년 전 부처님에 의해 이미 제기되었다고 말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 교화에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신들의 비싼 옷과 패물을 훔쳐 달아난 기녀를 찾는 상류층 청년들을 교화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 청년이 부처님을 만났을 때 “존자시여, 그 여자를 보았습니까?”라고 묻는다. 부처님은 “잃어버린 재산을 찾는 것과 자신을 찾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라고 되묻는다. 이에 청년은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본래 성품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프롬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삶의 주된 임무는 자신을 낳는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생산은 자기 자신의 잠재된 본성과 그것의 구체화로 얻는 자기실현이다. 이런 자기실현을 통해 우리는 사회와 개인의 조화로운 관계를 창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롬은 이것이 바로 가장 적극적인 자유이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실현을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롬이 강력하게 경고한 것은 권위에 굴복한 채 로봇처럼 자동화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 ‘자유’라는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다. 그는 1968년 〈희망의 혁명〉에서 “인간은 생명을 잃는 위험에서 자신을 지켜야 할뿐만 아니라 정신을 잃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프롬은 여기에서 잃지 말아야 할 정신을 ‘안전을 위해 우리가 맞바꾸려고 하는 우리의 정신적 자유’라고 지적했다.

타인의 권위에 눌려 적극적으로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뭐 어때요. 그들 자신이 이해하는 방식으로만 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오히려 잘못된 겁니다. 우리에게 반사회적이라거나 비이성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찾을 용기를 내면, 분개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습니다.”

프롬은 또 적극적인 자유의 첫 걸음은 ‘용기’라는 빛으로 의존적인 마음을 밝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촛불 하나를 깜깜하게 어두운 방에 가져 오는 순간,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생겨납니다. 그 다음에 오는 수십, 수백 개의 양초는 방을 더욱 밝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는 어둠을 꿰뚫었던 첫 번째의 촛불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걸 명심하세요.”

문진건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조교수.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CIIS)’에서 동서양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IIS 동서양심리학과 초빙교수(2012~2014), 미국 중독심리전문상담사(CAADAC),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2015~2019)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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