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전생담 등
도덕적 교훈담아 연행한
전통 줄 인형극

스리랑카의 전통 줄 인형극 ‘루카다 나트야(Rūkada Nātya)’.

‘루카다 나트야(Rūkada Nātya)’는 스리랑카의 전통 줄 인형극이다. 마을공동체에서 농한기에 가벼운 여흥 삼아 부처님의 전생담 등 도덕적인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공연한다. 이 줄 인형극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학자들은 ‘줄 인형극’이란 용어를 여러 형태로 정의하는데, 주로 나무로 제작한 인형에 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의 의지가 더해졌다고 풀이한다. 줄 인형극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부터 부처님오신날 관등놀이로 행했던 ‘망석중놀이’가 있었고, 미얀마와 중국 복건성 등에서도 줄 인형극이 전해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줄 인형극을 ‘마리오네트’라고 부른다.

남부 가뫄리 가문에서 연행

스리랑카 줄 인형극 루카다 나트야는 역사서인 〈마하밤사(Mahāvaṃsa)〉와 싱할라어로 쓴 고대 문학작품 〈푸자발리야(Pujavaliya)〉에 언급되어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13세기 파라크라마바후 2세(Parakramabahu II) 때 코끼리 모양의 줄을 사용했고,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학자들은 〈마하밤사〉에 ‘그림자 놀이[Shadow Play·Chaya Natya]’라고 언급된 단어가 루카다 나트야를 지칭한다고 보고 있다.

루카다 나트야는 주로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수확을 한 후 다시 파종을 하기 전까지의 휴식기간에 행해졌다. 여가 시간을 즐기는 목적이 강했던 만큼 도덕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부처님 전생담 외에도 △민담 △역사 속 일화 △고대 문학 △지금은 사라진 민속오페라 ‘나다감(Nadagam)’ 등이 주된 소재인데, 비폭력·자비·사랑·관대함과 같은 불교적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어린이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에게 공동체의 공존에 필요한 세계관을 전달했다.

루카다 나트야는 남부 해안가의 암발랑고다(Ambalangoda), 발라피티야(Balapitiya), 미리사(Mirissa) 마을에 사는 가뫄리(Gamwari) 가문에서 전승해오고 있다. 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가뫄리 가문 관련 극단과 가뫄리 가문 사람에게 배운 인형극단이 서부 콜롬보(Colombo), 칼루타라(Kalutara), 감파하(Gampaha) 등에서 연행(演行)하고 있다.

루카다 나트야의 줄 인형은 몇 개의 끈으로 묶여 있는데, 막대기로 사람의 손가락에 연결돼 움직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인형이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줄 인형은 조종하는 사람이 직접 만든다. 나무 인형은 크게 두 종류로 제작하는데, 관절이 거의 없는 사람 실물 크기의 인형과 관절이 많고 크기가 100~130cm 안팎의 인형이다. 실물 크기 인형이 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작은 인형은 동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바닥보다 높은 위치에 평평한 단을 세워 무대를 만들고,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의 어깨높이에 버팀목을 설치한 뒤 그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기대어 선 채 1개 또는 2개의 교차된 모양의 막대와 연결된 줄로 섬세하게 인형을 움직인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은 인형극의 대본과 노래를 직접 준비한 후 인형을 조종하면서 연기와 노래를 병행한다. 인형극을 연행할 때는 풍금·바이올린·북 등을 연주하는 소규모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인형극에서 주의할 점은 언어와 목소리다. 줄거리가 왕실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캐릭터의 품격에 맞게 무게감 있는 언어와 목소리로 연기해 웅장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만약 부처님 전생담의 내용이라면 역시 그에 맞는 언어와 목소리를 들려줘야 하므로,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목소리 연기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인형극은 주로 5~6월에 사찰을 비롯해 공공장소에서 공동체 행사로 열린다. 학교나 고등교육기관에서 특별공연으로 개최되기도 한다. 이동식 무대를 설치할 때는 나무로 제작하는 목조 틀과 인형의 줄을 감추기 위해 목조 틀 위에 검은 색의 커튼을 덮어 작은 극장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데, 강렬한 태양이 저무는 저녁 무렵에 주로 공연한다.

줄 인형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형들.

학교에서도 인형극 가르쳐

줄 인형극은 가뫄리 가문에서 전승하고 있는 만큼 가문의 가장 어른들이 줄 인형 제작과 조종을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가문의 어른들은 인형극 대본 쓰기, 인형 만들기, 연기하기 등 인형극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기술을 두루 갖춘 다재다능한 사람들이다.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은 만큼 가족구성원들로부터 여러 방식으로 도움을 받는다.

인형 제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분은 얼굴 조각이다. 인형 각각의 표정이 두드러져야 하기 때문에 무척 까다롭다. 조각된 몸체를 서로 연결하고, 인형의 표면을 부드럽게 갈아서 색을 칠하는 과정, 화려한 의상을 만들어 입히는 작업은 보통 여성이 담당한다. 현재는 극단 내의 모든 남녀 구성원이 무대 관리, 인형 조작, 대사 및 가창, 음악 연주 등에 참여하지만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남성만이 이 모든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대본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을 이용하는데, 한두 편은 가문의 가장 어른이 직접 창작하기도 한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은 대본을 외워야 한다. 실제 공연을 할 때 대본을 보지 않고 대사와 노래를 외워서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줄 인형극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의 전승은 직계와 방계 가족들이 준비와 진행상황을 보고 배우면서 전승하게 된다. 가문의 어른을 돕는 과정이 배우는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가족이 아닌 견습생도 받기 때문에 전수자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도 줄 인형극을 예술과 역사 교과과정의 일부로 포함시켜 가르치고 있다. 줄 인형 조정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스리랑카 고유의 무형유산이자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정체성의 일부로 루카다 나트야를 감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콜롬보 국립박물관과 코갈라(Koggala)에 있는 마틴 위크라마싱헤(Martin Wickramasinghe) 민속박물관의 연구자들도 줄 인형극 보급과 전승에 기여하고 있다. 데히왈라(Dehiwala)에 있는 전통인형예술박물관은 줄 인형에 대한 자료 전시 연구 촉진 교육 프로그램 실시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해 지식을 전승하고 있다.

줄 인형극을 전승하고 있는 가뫄리 가문 사람들이 인형을 조각하고, 조각한 인형을 설치하고 있다.

줄 인형극의 토착성

스리랑카 줄 인형극에는 남인도의 특징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부처님 전생담인 〈자타카(Jataka)〉를 주제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스리랑카 토착적 특징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형극을 보면 전통 신(神)의 하나인 수니얌(Suniyam) 축복의식에 등장하는 바디가 파투나(Vadiga Patuna)와 같은 전통 춤이 등장한다. 또한 자타카를 소재로 한 스리랑카 민속무용인 나다감(Nadagam)과 광대에 해당하는 일부 캐릭터가 등장한다. 사찰 내에서 펼쳐지는 비두라 자타카(Vidura Jataka), 베산타라 자타카(Vessanthara Jataka), 스리랑카 인기 연극과 역대 왕을 소재로 한 연극 등은 관람객들의 종교적 신앙심을 고취시켰을 뿐 아니라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높이는 역할도 했다. 그런 만큼 생명 없는 인형을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겠다는 인형예술가의 의지가 잘 반영돼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줄 인형극에서는 주요 줄거리 외에도 현대적인 스토리텔링이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나베라 콜라마와 바디가 파투나(Anabera Kolama and the Vadiga Patuna) 같은 남부 지역의 수니얌(Suniyam) 의식 춤은 관객을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 칸디안 베스 춤(Kandyan Ves dance)과 같은 지역 무용전통, 나고라악샤 춤(Naagaraaksha dance)과 같은 남부 지역 전통 콜람 춤(kolam dances)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선보인다. 인형극이 시작될 때 관람객들은 자타카에서 유래한 연극인 코낭기(Konangi), 민속무용인 바후후타야(Bahubhutaya)와 사라스와티(Saraswathi dance) 춤도 볼 수 있다.

루카다 나트야는 역사서인 〈마하밤사〉와 싱할라어로 쓴 고대 문학작품 〈푸자발리야〉에 언급되어 있다.

국가적 지원과 과제

줄 인형극이 스리랑카 민속예술로 대중화된 또 다른 측면은 국내·외 학자들의 관심 덕분이다. 이로 인해 인형극에 관한 기사가 많이 보도됐고, △실습 워크숍 △전시회 △연구 논문 △출판 등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더 나아가 야외 인형극과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마을과 마을 사이의 임시공연장에서 며칠씩 공연되기도 한다.

인형예술가 G.S. G. 프레민에 따르면, 현재 스리랑카에서 인기 있는 줄 인형극은 약 25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어린 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른까지 전 연령층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줄 인형극에 담긴 스리랑카 고유의 토착성은 스리랑카의 전통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국가적 문화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리랑카 정부는 실론예술위원회 산하에 인형극 위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여러 인형극을 개최하는 한편 인형예술가들의 전통 계승에 대한 워크숍, 전시와 공연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관련 자격증을 관리하고, 시상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단체들이 인형극을 보존하기 위해 한데 모였는데, 이들은 인형 박물관을 설립해 스리랑카 줄 인형극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역에서 인형극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은 부족한 상태여서 육성이 시급하다. 또한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인형극을 연행하지 못하고 있어 관계자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통예술을 보존·전승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루카다 나트야는 부처님 전생담 외에도 민담, 역사 속 일화, 고대 문학, 지금은 사라진 민속오페라 ‘나다감(nadagam)’ 등이 주된 소재이다. 주로 비폭력·자비·사랑·관대함과 같은 불교적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파비트라 마두바시니 아베이나야케(Pavithra Madhubashini Abeynayake)
스리랑카 콜롬보 시각 및 공연예술대학 교수로, 현재 시각·드라마 학부 인도·아시아 무용학과장을 맡고 있다. 스리랑카·한국·중국·일본·인도·필리핀·싱가포르·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인도와 호주에서 무용 예술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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