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마시던 술 끊고 독경 통해 노파 천도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지옥 일대는 금색광명이 내리 쏟아져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선처에 수생하려 했는데, 갑자기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닥쳤습니다. 당연히 광명은 어느 새 사라지고 〈법화경〉 다섯째 권부터 일곱째 권까지 읽을 동안에도 술 냄새는 여전히 진동을 하였습니다.12월은 다사다난한 연말이라 각종 회식이 많습니다. 그런데 회식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시는 술의 양이 세계 최고 수위라는 뉴스도 종종 듣습니다. 춤과 노
지옥 떨어진 도반, ‘법화경’ 사경으로 구해 중국 수나라 때 행견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그는 늘 〈법화경〉을 읽고 선정을 닦아 절조(節操)가 매우 엄정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있어 태산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산중의 사당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알다시피 태산은 중국에서도 높기로 유명한 산, 온갖 귀신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아우성을 친다는 소문이 무성한 그런 산이지요. 그 중턱에 자리 잡은 사당.사당은 매우 음침하고 스산했습니다. 아무리 평정심을 갖춘 수행자라고
왕이 비구 앞에 엎드려 머리칼로 진흙 덮어“여래께서 열반하신 후 누가 〈묘법연화경〉 한 게송이나 한 구절만이라도 듣고 오직 한 생각으로 기뻐하면 내가 모두 완전한 깨달음의 수기를 주리라.”조금 더 들어가자 한 수행자가 〈법화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온 몸이 금빛으로 빛나는 어떤 사람이 큰 코끼리 위에 앉아 그 수행자를 향해 합장을 하고 있었습니다.옛날 인도의 어떤 조용한 절에 ‘마하라’라는 이름의 비구가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수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혼자 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산
50여 년 걸려 〈법화경〉 외우고 서방정토 태어나발징(跋澄)이란 스님이 있었습니다.그는 어려서 출가하여 채식만 했고, 오후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오후불식을 닦았으나 정신은 그리 맑지 못하였습니다.“저 동자 스님은 성실하기는 하나 큰 그릇이 되기는 글렀네.”“저리 아둔해서 무엇을 할꼬?”함께 생활하는 대중들은 모두 그렇게 수군댔습니다.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습니다.“내가 이런 둔한 머리로 어떻게 부처님을 따를 수 있는가? 차라리 이렇게 앉아 밥을 축내느니 환속하여 나무꾼이 되는 게 낫겠다.”발징 스님이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 앉
감옥서 ‘관세음보살’ 칭명, 쇠사슬 풀려 탈출두전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정성스럽게 관세음보살님에게 의지하였습니다. 그러하기를 딱 사흘이 지나자, 그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수갑과 쇠사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채워졌던 수갑과 쇠사슬이 느슨하게 풀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그는 시험 삼아 쇠사슬로부터 벗어나 보았습니다. 헐렁해진 수갑과 쇠사슬에서 그는 쉽게 빠져 나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질길자해(桎桔自解)로, 쇠사슬의 질곡에서 저절로 풀려난 것입니다.서기 350여 년, 중국 동진. 병주자사 고창과 기주자사
‘법화경’ 독경하던 머슴의 원력으로 사찰 창건 큰 머슴은 샘이 나서 더욱 늑장을 부렸지만, 좌장의 눈이 무서워 하는 수 없이 지게를 지고 어슬렁어슬렁 불사 현장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느라 큰 머슴이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그러자 큰 머슴은 지게에 짐을 지고 몇 걸음 옮기다 말고는 심술이 났습니다. 그래서 칡덩쿨 속에 짐을 쳐 박고는 벌렁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신세한탄을 했습니다.신라 경주 월성.보구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가지 못한 채 마을 좌장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혼
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연등 부처님은 전생의 무수한 겁 동안 범부의 몸으로 다섯 갈래[五道]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한 생이 다하면 다시 한 생을 받는 등, 나고 죽음이 한량없어서 마치 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베어서 산가지를 만들어 그이의 옛 몸을 헤아린다 하여도 셀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늘과 땅이 시작하여 끝나는 동안을 일겁이라 하거니와, 그이에게는 하늘과 땅이 바뀌면서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헤아릴 수조차 없었습니다.그이는 모든 중생들이 세간의 탐욕으로 인해 애욕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아내 향해 쏜 화살, 시주한 가사에 박혀 지금으로부터 154년 전.황해도 안악군 안악면 고령산 연등사(燃燈寺).연등사는 몇 년마다 큰 불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가사불사(架裟佛事)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각자 연고 있는 신도 집을 찾아다니면서 시주를 받았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가사를 만드는 비단을 시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집에서는 쌀을 내고, 다른 집에서는 돈을 내고는 하였습니다. 그래서 절에서 수행하는 모든 스님들의 가사를 제작하게 되었지요. 절에서는 하루 두 번씩 설법을 하였는데 불공을 올리
돌부처 세 분 모신 공덕으로 목숨 구해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제정코자 명나라 주원장의 재가를 받기 위해 사신을 보낼 때의 일입니다.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는 원래 공민왕의 신하로 북벌에 공이 큰 장군이었으나, 고려의 기세가 쇠약한 틈을 타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또 그 뒤 우왕, 창왕, 공양왕 등도 봉림하다가 결국, 그들을 모두 죽인 후 나라를 세우니 고려로 보아서는 역신 중의 역신이요, 조선으로 보아서는 건국 태조가 된 것이지요.그러나 이렇게 나라를 세우기는 하였으나 그 나라의 이름을 그대로 고려로 할 수는
사경 종이 살 때 벌써 극락에 태어나 중국 낙양사람 하현령은 당나라 고종 용삭 2년에 경성에서 죽었는데, 명부에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그 재능을 아깝게 여겨 주부(主簿) 벼슬을 시켰습니다.‘주부’란 이승에서와 마찬가지로 염라국의 문서와 장부를 담당하며, 왕명출납을 맡은 행정실무관직입니다. 그러므로 염라국의 주부가 되었다는 것은 염라대왕의 직속관료가 된 것이지요. 물론 그는 염왕의 믿음대로 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현령의 고향 사람이 죽어 명부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고향이란 그곳서
진나라 황후가 되어 불사 약속 지켜 전남 순천 낙안 땅에 한 처녀가 하염없이 바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처녀의 이름은 성덕(聖德)이었습니다. 그는 곡성 옥과 마을의 어느 가난한 집의 딸인데 무슨 일로 낙안 땅까지 왔으며, 왜 그 바닷가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없었지요.얼마 후, 수평선 저쪽으로부터 조그만 물체 하나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성덕의 시선은 그 물체에 집중되었지요.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그 물체는 이상하게 생긴 배 한 척이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온 그 배는 눈
관음보살 앞 맹세 어겼다가 꿈 통해 뉘우쳐 옛날 중국 소주 땅에 돈 많은 장자 시대창(施大昌)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불교신자로서 신심이 대단하여 호구산에 관음사를 창건하고, 다시 관음전 법당을 새로 건축하였습니다.밤낮으로 〈법화경〉을 읽으며 백의관세음보살상을 조성해 모시고 법당을 찬란하게 장엄했습니다. 현판을 조각한 뒤에 금색으로 글자마다 도금하여 높이 달아 놓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중생을 위한 구고구난을 베풀어 주시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저의 죄를 소멸하여주시고 복을 이루어 주시며, 동시
뱀으로 화해 범종에 숨은 승려 태워 죽여 11월 ‘동화, 법화 속으로’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일본의 도조지 설화(道成寺 說話)입니다. 기실 설화가 아닌 이 법화(法話)는 일본 기슈 지방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기요히메(淸姬)와 승려 안친(安珍)의 이야기입니다.때는 일본 엔죠(延長) 6년(928년) 여름.다이고 천황의 치세(일본식의 평가)에 오슈(奧州)의 시라카와(白河)]에서 구마노(熊野)로 참배하러 온 승려가 있었습니다. 안친이라는 이름의 이 승려는 대단한 미남이었지요. 기이국의 마사고(眞砂)에서 그곳 장자인
공금까지 털어 방생 … 산짐승에 ‘법화경’ 독송 영명 스님은 약 1000년 전 송(宋)나라 스님입니다.스님은 출가 전, 16세 때에 글을 지어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아주 비상한 글재주가 있었습니다. 원래 선근이 많으신 분으로서 일찍부터 불문에 출가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님이 허락을 하지 않아 세속에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언제나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며 〈법화경〉을 볼 때마다 글을 한 번에 다섯 줄 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중에도 살생이라고는 벌레 한 마리 죽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항상 방생
거지 여인에 승복 벗어주고 벌거숭이 돼 포항으로 가려다가 언뜻 들른 경주, 서라벌. 이곳도 이제는 가을의 초입입니다. 언제나 갈까했던 삼복염천도 계절의 변화 앞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가히 절기의 여왕이랄 수 있는 9월엔 너무도 잘 알려졌지만, 또한 너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서라벌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내가 오길 잘했지. 만약 그 나이 어린 사미승이 왔더라면 이 눈 속에 큰일 날 뻔 했지.”한껏 허리를 굽히고 바삐 걷던 노스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거센 눈보라가
아이 약탈 뉘우치고 순산과 유아 수호신 돼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나를 잃고도 그토록 비통해 하면서, 그대는 어째서 하나나 둘 밖에 없는 남의 아이를 약탈하는가? 외아들을 빼앗긴 어머니의 슬픔을 생각해보라. 그대의 슬픔과는 견줄 수도 없을 것이다.마가다의 왕사성에서 좀 떨어진 산중에 노귀신왕(老鬼神王) 반도가(般迦) 야차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국토를 잘 수호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었지요. 그에게는 환희(歡喜) 야차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그들은 아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어느 날 부부가 함께 산
가난한 노파의 서원 … 공주로 몸 바꿔 ‘각황전〈覺皇殿〉’ 세워 “나무관세음보살!나무관세음보살!”한 밤, 고요한 절간에 독경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독경은 단지 관세음보살님만을 이름할 뿐이었습니다.낮에는 〈법화경〉을 사경하며, 밤에는 닭 우는 새벽까지 주지스님인 계파 스님의 간절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그런데 그만, 깜박. 지친 계파 스님이 잠깐 조는 사이.“주지와 대중은 들으라.”“예.”“내일 아침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화주승으로 삼아라!”때는 조선 숙종조.
잠 자면서도 독경 … 입에서 나온 광명 절간 뒤덮어 일불승의 실상묘법 연화경을보장보살 게송으로 찬탄하네연꽃으로 잘꾸며진 화장장엄 세계바다왕사성중 기사굴산 다른이름 영축산에늘머물러 열반않는 석가모니 부처님과시방삼세 부처님께 지성으로 귀의하니가지가지 인연들과 가지가지 방편도로일승묘법 진리바퀴 영원토록 굴리소서밤이면 밤마다 조용히 들리는 소리를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꽃 피고 새 우는 봄에서 눈 내리는 겨울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경상도 상주 땅은 예로부터 불교가
삼보 비방해 간 저승, 독경 공덕으로 살아나 당나라 옹주(雍州) 장안현의 고법안(高法眼)은 고종 3년 정월 25일에 선과(選科)를 보고 정오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나라 때 시작된 과거시험이지요. 그의 집은 동남 모퉁이에 있었는데, 거리를 향해 문을 열면 바로 화도사(化度寺)였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독실한 불자였던 그는 절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곳에 집을 마련했던 것입니다.그런데 어느 날 서쪽 순의문으로 나가려는데 말을 탄 두 사내가 그를 쫓아왔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불안한 그는 발걸음을 빨리했습니다. 이윽
일제 앞잡이가 쏜 총탄 … 관음보살 가피로 살아나 벌써 3월입니다.몇몇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혀도 찬란한 봄은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봄보다 우리들에게 3월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달입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달이기 때문이지요. 3.1 운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잊을 수 없는 의미가 되었습니다.그 주역이 바로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스님입니다. 스님은 승려요, 독립운동가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는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