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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法話 속으로 58. 승려 안친과 기요히메

뱀으로 화해 범종에 숨은 승려<안친> 태워 죽여

11월 ‘동화, 법화 속으로’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일본의 도조지 설화(道成寺 說話)입니다. 기실 설화가 아닌 이 법화(法話)는 일본 기슈 지방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기요히메(淸姬)와 승려 안친(安珍)의 이야기입니다.

때는 일본 엔죠(延長) 6년(928년) 여름.

다이고 천황의 치세(일본식의 평가)에 오슈(奧州)의 시라카와(白河)]에서 구마노(熊野)로 참배하러 온 승려가 있었습니다. 안친이라는 이름의 이 승려는 대단한 미남이었지요. 기이국의 마사고(眞砂)에서 그곳 장자인 기요쓰구(淸次)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기요쓰구의 딸 기요히메는 안친을 보고 한눈에 반해, 대담하게도 안친이 자는 방에 몰래 숨어들었습니다.

“누, 누구요?”

“저는 이곳 장자인 기요쓰구의 딸 기요히메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저… 저는 스님을 보고… 앞으로 평생 스님에게 제 몸을 의탁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스님의 처소를 스스로 찾았습니다. 부디 저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안친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부처님을 따르는 승려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제자라고는 하지만 스님 또한 세상에 태어난 남자 아닙니까? 저같이 어리석은 한 아낙의 소원마저 들어주지 못한다면 어찌 참다운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요히메는 급기야 안친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애원하였습니다. 안친은 더 이상 기요히메를 설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지만 구마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꼭 다시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씀이 정녕 참이십니까?”

“그럼요. 꼭 약속하리다.”

안친은 일단 이 당황스런 만남을 피하고자 덜컥 그렇게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그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안친은 그렇게 기요히메를 돌려보낸 뒤, 구마노 참배가 끝나자 그녀에게 들르지 않고 곧장 가버렸습니다. 급작스런 기요히메의 열정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지요.

뒤늦게 안친에게 속았다는 것을 안 기요히메는 맨발로 안친을 뒤쫓아 도조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우에노(上野) 마을까지 따라왔습니다.

“스님, 왜 약속을 어기십니까?”

기요히메의 눈은 더할 수 없는 분노로 이글거렸습니다. 안친은 그녀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면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청신녀님,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청신녀님을 처음 봅니다.”

기요히메의 눈 꼬리가 올라갔습니다.

“부처님 제자를 자처하시는 분이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십니까?”

그러나 일단 한 거짓말, 안친은 기요히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집요한 기요히메는 안친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안친은 할 수 없이 소리쳤습니다.

“이곳 곤겐님, 이 청신녀를 말려주십시오!”

급히 달려온 구마노의 곤겐은 그 자리에서 기요히메를 묶었습니다. 그 사이 안친은 36계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기요히메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결국 뱀의 몸으로 변해 안친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히다카 강(日高川)을 건너 히다카지(日高寺)로 도망친 안친을 쫓는 기요히메의 모습은 입에서 불을 뿜으면서 강을 건너오는 분노의 화신, 그 자체였습니다. 안친은 뒤쫓아 오는 기요히메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나루터의 뱃사공에게 뒷돈을 얻어주며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부탁입니다. 뒤쫓아 오는 여인을 절대로 건네주지 말아주시오.”

그러나 이미 뱀으로 변한 기요히메는 가볍게 강을 건너 안친이 도망친 사찰 도조지까지 따라왔습니다. 다급한 안친의 사정을 들은 도조지 승려들은 급히 종각에 매달아 두었던 범종을 내려 주어 그 속으로 안친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극에 달한 기요히메는 절의 문을 닫고 얼마 되지 않아 절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아놓은 문도 쉽게 넘어와 종루 주위를 한두 번 돌더니 종루 입구 밑으로 꼬리로 백 번이 넘게 문을 쳐서 종루 문을 부수고, 종을 칭칭 감아버렸습니다.

연이어 그녀는 꼬리로 범종 꼭대기의 용두를 두 사흘 동안 두드렸습니다.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안친은 그만 뜨거운 종 안에서 불타 죽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두려움에 떨던 도조지 승려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종루의 사면을 들어 안을 보았는데, 뱀은 두 눈에 피눈물을 흘리며 목을 들어 올려 혀를 날름거리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승려들이 합심하여 물을 끼얹어 식히고, 마침내 커다란 범종을 걷어내자 안친의 육신은 약간의 재만을 빼면 뼈조차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친을 죽인 후, 기요히메는 뱀의 모습으로 투신하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법화의 귀한 설화로 오래도록 여러 사람들에게 전승되지 않았겠지요.

그로부터 얼마 후, 히다카지 주지 스님의 꿈에 두 개의 꼬리를 서로 휘감은 뱀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두 개의 꼬리 중 하나가 자신을 종 안에 갇혔던 승려, 안친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안친은 지옥에서 독사가 된 기요히메에게 붙잡혀 부부가 되었고, 사도(蛇道)에 전생한 뒤 보기도 흉한 몸을 받아 무량의 근심을 받으며 성불하지 못하고 있다며 주지에게 자신을 공양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성인의 넓고도 크신 은덕에 의지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사옵니다. 부디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서사하시어 저희 두 마리의 뱀을 위해 공양을 베풀고, 이 괴로움에서 우리를 구해주시기 바라나이다.”

주지가 설법한 〈법화경〉의 공덕에 의해 두 명은 성불해, 천인의 모습으로 주지의 꿈에 나타나 뱀의 몸을 버린 기요히메는 도리천에, 안친은 도솔천에 오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덧붙여진 후일담.

안친과 함께 범종을 태워 없앤 히다카지(日高寺)는 400년 쯤 지나 이름을 가네마키지(鍾卷寺)로 바꾸었는데, 마지막으로 바꾼 이름이 도조지(道成寺)였습니다. 400년 동안 몇 번이나, 불타버린 범종 대신 다시 새 종을 만들려고 했다가 남북조 초기인 쇼헤이(正平) 14년(1359년)에 겨우 범종을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 이때 범종 공양을 하면서 여인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주지 스님의 명이었습니다.

범종이 완성되어 낙성식이 열리고, 인근에 사는 남녀 신도들이 모두 모였는데, 한 명의 시라뵤우시(광대로 주로 남장을 한 기녀)가 나타나 절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기이국의 어느 마을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자신의 춤을 범종에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범종도 다 만들어졌는데 무슨 일이야 설마 있겠느냐, 싶어 승려들은 들어오도록 허락했습니다.

신도들이 모두 돌아가고 중들이 졸기 시작하는데 시라뵤우시는 멈추지 않고 춤을 추더니, 모든 승려가 잠들자 춤을 멈추고는 범종을 노려보며 소리쳤습니다.

“난 저 종(鐘)이 싫어!”

그리고는 범종을 끌어내리고, 아래쪽 땅을 파서 종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주지는 그때서야 대중들에게 이 절에 여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음을 말해주고 그 자리에서 〈법화경〉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범종 안에서 불을 내뿜는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왔고, 범종을 불살라버리려다 오히려 자신의 몸에 불이 붙자 계단을 굴러 히다카 강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합니다.

덧댄 후일담은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못한 전설. 〈법화경〉을 통해 인간애욕의 무상함을 설하는 부처님의 뜻이겠지요.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 그것은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조금 덜 사랑하는 법이 아닐까요?

우봉규/작가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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