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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法話 속으로 53. 망명 스님의 눈물

잠 자면서도 독경 … 입에서 나온 광명 절간 뒤덮어

일불승의 실상묘법 연화경을
보장보살 게송으로 찬탄하네
연꽃으로 잘꾸며진 화장장엄 세계바다
왕사성중 기사굴산 다른이름 영축산에
늘머물러 열반않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시방삼세 부처님께 지성으로 귀의하니
가지가지 인연들과 가지가지 방편도로
일승묘법 진리바퀴 영원토록 굴리소서

밤이면 밤마다 조용히 들리는 소리를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꽃 피고 새 우는 봄에서 눈 내리는 겨울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경상도 상주 땅은 예로부터 불교가 성해 한 집 건너 사찰이 있을 정도라고 전해집니다.
그 상주 땅에 망명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항상 음양 사주책으로 점을 쳐주고 있었습니다. 또 아랫마을에 출입하여 길흉화복의 물음에 대답하여 주고 그로써 호구지책으로 삼았습니다.
“며칠 날은 늘 조심하시오. 특히 불어난 물은 무섭소.”
“아들 혼인을 시키면 시어머니는 그 부부 사이에 끼지 마시오.”
주로 이런 상담이었습니다. 낙동강 상류인 상주는 홍수가 가장 무서운 재난이었고, 또한 지나친 시어머니의 간섭으로 가정이 파탄난 예가 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위 양반입네 하는 유학적 분위기가 유독 강했던 탓이지요.
물론 망명 스님이 그렇게 하였던 데는 생활이 너무 어려웠던 탓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이 나라의 지난 날, 그 당시의 사찰이 어려운 재정으로 겪었을 고초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망명 스님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찰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쌀 한 톨이 남지 않았습니다.”
“풀뿌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망명 스님은 그런 말을, 함께 기거하는 대중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면 아사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오직 춘궁기를 면하기 위해 부모형제를 떠나 절로 찾아온 어린 동자승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 못할 일이 없었던 게지요.
“관내의 사찰들 중에 꼭 한 명의 승려들은 모두 관아로 오시오!”
어느날 관가에서 법회를 열고 상주 지역에 있는 각 사찰의 대표 스님들을 청하여 모이게 하였습니다. 관가에서 스님들을 오라가라 하는 것은 풍속을 단속한다는 핑계로, 세금을 더 물리거나 스님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각 사찰 스님들의 영향력이 대중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게지요.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 민중들의 생각을 무던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물샐틈 없는 방호벽을 치고 있었던 게지요.
물론 망명 스님도 그 법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관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여러 대중 스님들도 그를 점치는 중이라고 여겨 아무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고명하신 스님이구먼.”
“점이나 쳐서 대중을 현혹하는 저런 사람을 우리와 같은 수행자라고는 할 수 없소.”
“부끄럽고 창피한 노릇이오.”
그런데도 망명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도 삼천리 강토에서 가장 절이 많다는 우리 관아에서 중앙에 바치는 곡식이 가장 적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승려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관아의 수령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곡식을 바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망명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망명 스님은 어찌 승려의 탈을 쓰고, 나라의 은혜를 모른단 말이오. 그대가 정녕 부처님의 제자가 맞소?”
“…….”
“우리 관아뿐 아니라 나라의 모든 백성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달리 할 말이 없소?”
그런데도 망명 스님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강제로 징수를 하겠소이다. 그대는 아랫마을 주민들에게 길흉을 봐주고 축적해 놓은 재산이 상당하다고 하니 다음과 같이 지시하겠소. 우리 관아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일컫고 있소. 즉 좋은 쌀과 명주, 그리고 곶감을, 각 백 석과 백 필, 그리고 백 동을 관가에 바치도록 하시오. 이 공양미는 모두 우리 임금님께 특별히 진상하도록 하겠소.”
그렇지만 관아 수령의 엄청난 명령이 떨어져도 망명 스님은 미동도 않은 채 묵묵히 서편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두 눈에 가득 눈물을 담은 채.
“그 동안 쌓아놓은 재물, 다 토하게 생겼군.”
“백 석이 아니라 천 석이라도 해낼 걸.”
“그렇지. 워낙 재물에 밝은 땡중이니까.”
대중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망명 스님은 자신의 거처로 향했습니다. 온 나라 백성이 굶고 있다고 한 수령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별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망명 스님의 흉중은 배가 고파 헐떡이는 어린 동자승들의 겨울로 가득 찼습니다.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오직 기댈 곳은 부처님 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 저에게 관세음보살님 같은 힘을 주소서!”
“부처님, 이 고통 받는 땅에 나투셔서 우리를 건져주소서!”
망명 스님은 자신이 배정받은 방으로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제대로 된 거처를 배정받았지만, 망명 스님이 거처하는 방은 방이라고 할 수 없는 마굿간 옆이었습니다. 장판이나 도배도 되지 않은 축사나 다름없었지요. 바로 옆에는 관아에서 기르는 말들의 방이었습니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온갖 냄새가 코를 찔렀지요. 그러나 망명 스님은 빙긋 웃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그는 태연히 그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그 방 아닌 방에서는 고즈넉한 독경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때때로 울부짖는 말 울음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각 방의 등불이 모두 꺼지고 모든 대중이 잠이 들었는데, 별안간 상서로운 기운의 광명이 등불보다 더 밝게 어디선가 뻗쳐나왔습니다.
“불이야!”
“물을 가져오너라!”
그러나 물을 들고 대중이 뛰어간 곳은 망명 스님이 묵는 방이었습니다. 당황한 대중들은 급하게 방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놀랍게도 그 불은 망명 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망명 스님은 그 소란을 모른 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그 옆 방의 말들조차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대중들이 소란을 피우자 그제야 말들이 울부짖었습니다.
“히히힝!”
“히히힝!”
관아의 포졸들이 급히 말을 대피시키고, 망명 스님을 깨웠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망명 스님은 살며시 눈을 뜨고 일어나 조용히 말했습니다.
“내가 불쌍한 백성들의 길흉을 점치고, 그것을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으니 장차 부처님을 어떻게 뵐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오늘 그 많은 양의 공납물을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삼천리 강산의 모든 백성들이 굶고 있다고 하니 그 또한 가슴 아픈 일, 저는 이러저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속 마음으로 참회하고 항상 〈법화경〉을 하루의 일과로 삼고 독송해 온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그제야 수령은 망명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합니까? 우리 관내에 이런 대선사가 있는 줄 모르고 무례를 범했으니, 대사께서는 이제 안심하소서. 앞으로 두 번 다시 관내의 사찰을 핍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용서하소서!”
“같이 부처님을 모시는 수행자로 스님같은 대덕을 몰라보고 흉을 보았으니 그 죄가 하늘에 닿고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부디 어리석은 저희를 제도해주소서!”
그러나 대중스님들이 그렇게 머리를 조아려도 망명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표표히 그 밤을 택해 다시 자신의 절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을 전혀 모르는 그 절의 대중들은 절에 있으면서 음양술수나 행하고, 속으로 〈법화경〉을 공부하는 줄 몰랐다고 하니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를 본으로 삼은 간도 땅 수월 스님이 그리운 봄날의 끝입니다.

우봉규 작가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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