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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法話 속으로> 67. 발징 스님 이야기
삽화=강병호

50여 년 걸려 〈법화경〉 외우고 서방정토 태어나

발징(跋澄)이란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출가하여 채식만 했고, 오후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오후불식을 닦았으나 정신은 그리 맑지 못하였습니다.

“저 동자 스님은 성실하기는 하나 큰 그릇이 되기는 글렀네.”

“저리 아둔해서 무엇을 할꼬?”

함께 생활하는 대중들은 모두 그렇게 수군댔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둔한 머리로 어떻게 부처님을 따를 수 있는가? 차라리 이렇게 앉아 밥을 축내느니 환속하여 나무꾼이 되는 게 낫겠다.”

발징 스님이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 앉아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하는데 불현듯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아직 〈법화경〉을 모르느냐?”

“예?”

“눈앞에 보물을 두고 엉뚱한 것만 보고 듣느냐?”

발징 스님이 고개를 들어 아무리 쳐다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이건 부처님이 내게 내린 명이다.”

그렇게 생각한 발징 스님은 비로소 〈법화경〉을 손에 잡았습니다. 그 때 스님의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스님은 밤낮으로 〈법화경〉을 독송하며 후에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만을 발원하였습니다.

극락세계는 서방으로 기천만 기십만의 국토를 지나서 있는 곳이며, 현재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있다. 여기에 태어나는 사람은 몸과 마음에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이 있다.

이 세계는 금·은·유리·수정의 사보(四寶)로 장식되어 있다. 이 네 가지 보석에 산호·마노·호박을 더한 칠보로 만든 연못이 있으며, 여기에는 여덟 가지 공덕을 구비한 물과 황금의 모래가 깔려 있다.

또한 하늘에서는 음악이 들리고 대지는 황금색으로 아름다우며, 주야로 세 번씩 천상의 꽃이 떨어진다.

백조·공작·앵무 등의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이 노래는 그대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노래로 이 노래를 듣는 자들은 모두 불·법·승의 삼보(三寶)를 생각한다. 이 새들은 모두가 아미타불에 의해 화작(化作)된 것이다.

이 국토에는 지옥·축생(畜生)·사신(死神)이라는 명칭이 없고,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阿羅漢)이 수없이 많으며,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사람도 한량이 없다. 따라서 극락은 내세에 왕생할 세계이며, 그것이 곧 서방정토이다.

스님은 경전을 읽고 자신의 무릎을 쳤습니다.

“옳거니, 내가 오로지 갈 곳은 서방정토뿐이구나! 그곳에 가면 틀림없이 불도를 이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다!”

그러나 스님은 하루에 경전 한 줄을 외우거나, 또는 게송을 한 구절 외웠을 뿐이니, 그 진도가 전혀 빠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 80이 다 되어서야 겨우 경전을 제대로 외울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평생을 바쳐 읽은 것을 이제야 외울 수 있다니?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스님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숨이 가쁘고, 눈앞이 침침했습니다.

“이제야 내가 스스로 〈법화경〉을 외울 수 있게 되었거늘 무심한 하늘이 벌써 날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발징 스님이 그렇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꿈을 꾸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사자가 두루마리로 된 소환장을 내보였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스님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사자에게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이제 겨우 〈법화경〉을 외우며 부처님의 뜻을 알아가려고 하는데 저승으로 데려가려 하십니까?”

“저승이 아니라 도리천에 모셔 가고자 왔습니다.”

“나는 평소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했을 뿐, 도리천에 태어나기를 감히 원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슨 복업으로 도리천처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하, 도리천이 어떤 곳인 줄 모르는군요?”

“저는 오로지 서방정토만을 원할 뿐입니다.”

“스님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러자 그 사자는 돌아갔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스님은 대중들을 불러놓고 간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대중들도 신기한 듯 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눈치였지요. 그러나 그들은 또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거짓말이지. 누가 저 스님을 도리천으로 모시겠어.”

“늙어서 헛것이 보였겠지.”

그런데 다음 날 밤 발징 스님은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칠보로 장엄된 5층 부도 위에 앉아 있는 꿈이었습니다. 스님 곁에는 두 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들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청의 동자가 곰털로 만든 불자(拂子)로 계단을 털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정말 모르십니까?”

“저는 모릅니다.”

“오호, 여기는 서방정토입니다. 이 계단은 스님께서 밟고 가실 길입니다.”

“예?”

“스님께서 그토록 가고 싶다는 서방정토의 입구지요.”

“어찌 제가 이런 영광된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스님이 독송한 법화의 한 구절이면, 그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런데 스님은 평생을 읽고 또 읽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부끄러운 듯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무수히 읽었지만 나이 80이 되어서야 겨우 경을 외우게 된 제게…….”

“바로 그렇기에 스님은 서방정토에 갈 수 있습니다. 준비하시지요.”

말을 마친 역사들은 홀연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스님은 꿈에서 깨어나 제자들에게 다시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둘러앉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내 평생 소지품인 세 벌의 옷과 한 개의 발우를 정리하고 재를 올릴 준비를 하라!”

“스님, 정말 그 꿈을 믿으시는지요?”

발징 스님은 빙긋 웃었습니다.

“믿지 않고 속는 것보다야, 믿고 속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대중들이 물었습니다.

“자고로 꿈이란 참으로 믿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꿈을 꿉니다. 그걸 어찌 믿으려 하십니까?”

그러자 스님이 대중들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지금 1천 분의 부처님이 오고 계시는데 대중들은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대중들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발징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훌륭한 향내가 진동하는데 그대들은 어떤가?”

대중들이 정신을 모아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향내가 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대중들은 어중간하게 대답하였습니다.

“향내가 나긴 나는 것도 같고…….”

“나는 이곳을 향해 오시는 수많은 부처님들이 보인다!”

그리고 발징 스님은 단정히 앉아 그대로 입적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세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은 발징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오로지 현세의 탐욕과 권세만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울리는 경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시 왔다 가는 이곳을 떠날 때 남은 세 벌의 옷과 발우 하나, 그리고 그가 외운 ‘〈법화경〉 한 구절’이면 충분한 인생이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두려워 우리는 자꾸 많은 것을 두고 가려 할까요? 이 이야기는 〈현응록〉과 〈홍찬전〉에 짧게 전해 내려옵니다.

작가 / 우봉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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