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독경하던 머슴의 원력으로 사찰 창건

삽화=강병호

큰 머슴은 샘이 나서 더욱 늑장을 부렸지만, 좌장의 눈이 무서워 하는 수 없이 지게를 지고 어슬렁어슬렁 불사 현장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느라 큰 머슴이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자 큰 머슴은 지게에 짐을 지고 몇 걸음 옮기다 말고는 심술이 났습니다. 그래서 칡덩쿨 속에 짐을 쳐 박고는 벌렁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신라 경주 월성.

보구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가지 못한 채 마을 좌장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거느린 식구 없이 혼자살고 있었지만, 그는 외로움도 모르고 성실히 일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늘 웃음을 짓는 착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더운 여름이 다 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보구는 전보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이상히 여긴 좌장이 물어봐도 보구는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들이를 다녀오던 좌장은 자기 눈을 의심했습니다. 보구가 이웃 마을에 와서 빈집을 허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에 보인 건 보구가 분명했습니다. 좌장은 가던 길을 멈추고 집을 허무는 곳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여보게, 자네 거기서 뭘 하고 있나?”

“예, 절을 지으려고 헌 집을 사서 헐고 있습니다.”

좌장은 머슴살이를 하는 주제에 절을 짓겠다는 보구의 대답에 기가 막혔습니다. 더구나 장가도 못간 형편에 언감생심(焉敢生心) 절을 짓는 불사(佛事)라니.

좌장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저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이 사람아, 이제 나이 들어 머슴살이도 얼마 못할 처지인데 절을 짓다니?”

“좌장 어른, 그런 것이 아니고…….”

“됐네. 이 사람아! 자네 하나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절이라니? 좋은 말로 할 때 정신 차리게!”

좌장은 보구가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만 같아 심하게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좌장의 동생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형님, 말씀이 너무 과하신 듯합니다. 평생 머슴살이하여 알뜰히 모은 돈으로 절을 지으려는 보구의 마음이 갸륵하지 않습니까? 형님, 우리가 도와주도록 합시다.”

좌장의 동생은 보구가 불교의 중요한 명절이면 남모르게 가까운 절을 찾는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글자도 모르는 보구가 평소 외우고 있는 경전 문구가 있는데, 그 내용이 그가 읽던 〈법화경〉의 한 대목이란 것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보구가 일을 하면서 입으로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사리불아!

여러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어 한량이 없으며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일체 성문이나 벽지불은 알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는 일찍부터 백천만억 무수한 부처님을 친견하여

여러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을 행하고, 용맹하게 정진하여

그 이름이 널리 퍼졌으며, 매우 깊고 일찍이 없던 법을 성취하여

마땅함을 따라 설했으므로 뜻을 알기 어려운 까닭이니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평생 유교 경전만 보아온 좌장은 보구가 외우는 경전 문구에 말문이 탁 막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죽도록 일만 하던 보구가 언제, 어떻게, 저런 경전 내용을 외울 수 있었겠습니까?

“난 믿어지지가 않아!”

좌장 형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보구는 그의 불교 공부를 믿지 못하는 좌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좌장어른! 김수로왕은 무엇이 모자라서 높고 높은 봉우리에 아버지를 위로하여 부운암을 짓고, 그 어머니를 위로하여 모운암을 지었겠습니까?”

좌장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좌장 어른, 비록 제가 댁에서 머슴으로 살고 있지만 부처님 품 안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랍니다.”

말을 마친 보구는 합장까지 하였습니다. 좌장은 보구가 예사 머슴이 아님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형님, 보구를 도와줍시다. 절이 다 이뤄지면 우리도 저승 가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자손들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하자. 내 잠시 보구를 업신여긴 것이 미안하구나.”

마을에 돌아온 좌장은 동네 사람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보구가 절 짓는 일을 도와주도록 일렀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보구가 정말 절을 짓나 보네.”

“평소 절 하나 짓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잘 됐군.”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착한 보구를 도와주러 갔습니다.

그런데 좌장 집 머슴 중 가장 기운이 센 큰 머슴만 빠져 있었습니다. 평소 심술궂어 주인에게 꾸지람을 많이 듣긴 하지만, 워낙 기운이 센 덕에 내쫓기는 신세를 면한 그는 아침이면 늦잠을 자는 게으름뱅이였습니다.

“빨리 보구가 절을 짓는 데 가서 도와주도록 해라!”

“아구, 저는 배가 너무 아픕니다.”

“또 꾀병이냐?”

“아닙니다. 정말로 배가 아파서…….”

그러면서 뒷간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는 뒷간에 앉아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흥, 같은 머슴인데 누구는 절을 짓고 누구는 부역하다니……. ”

큰 머슴은 샘이 나서 더욱 늑장을 부렸지만, 좌장의 눈이 무서워 하는 수 없이 지게를 지고는 어슬렁 어슬렁 불사 현장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느라 큰 머슴이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자 큰 머슴은 지게에 짐을 지고 몇 걸음 옮기다 말고는 심술이 났습니다. 그래서 칡덩쿨 속에 짐을 쳐 박고는 벌렁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살아서 무엇 하나? 남의 집 머슴으로 사는 것도 원통한데, 이제 작은 머슴에게도 괄시받네.”

마침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려고 주막에 가서 술 한통을 사서 지고 오던 보구가 먼발치서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보구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큰 머슴이 누운 숲가에 와서 노래를 불렸습니다.

“오늘 이 부역 해주는 사람, 소원 성취한다니 소원을 말해보소.

장가 못 든 사람은 장가를 들고 시집 못간 사람은 시집을 가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대광실 높은 집 네 귀퉁이 풍경 달고

아들을 낳으면 귀동자를 낳고 딸을 낳거들랑 옥동자를 낳으시라.

까마귀야 까마귀야 헤에이 헤에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누워 있던 큰 머슴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뭐? 장가도 들고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아들 딸 낳고 잘 산다고?”

큰 머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게를 지고는 보구를 따라 일터로 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자 가자 부역가자. 보구대사 절을 짓네. 헤에이 부역 가자. 절을 지으러 가자. 까마귀야 까마귀야! 갈까마귀야 너도 가자. 보구대사 절을 짓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큰 머슴은 보구에게 넙죽 절을 하였습니다.

“이 큰 머슴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힘이 센 큰 머슴이 절을 짓는데 적극 나서니, 불사에 엄청나게 도움이 된 것은 불문가지. 모두가 신명이 나서 함께 일했습니다.

“큰 머슴이 이제 철이 났네!”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보구 혼자 지으면 몇 달이 걸릴지 몰랐지만 큰 머슴과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니, 절은 순식간에 완공되었습니다.

드디어 회향 날.

좌장을 비롯한 동리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 한 가지씩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착한 사람이 된 큰 머슴도 장가를 가고, 아들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요.

훗날 사람들은 머슴들의 원으로 세워진 이 절을, 멀리까지 와서 소원을 비는 절이라 하여 ‘원원사(遠願寺)’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옛 절터 바로 밑에는 〈법화경〉을 독송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들릴 듯한 아름다운 사찰, 또 다른 원원사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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