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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法話 속으로 54. 죽음과 맞바꾼 원력

가난한 노파의 서원 … 공주로 몸 바꿔 ‘각황전〈覺皇殿〉’ 세워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한 밤, 고요한 절간에 독경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독경은 단지 관세음보살님만을 이름할 뿐이었습니다.

낮에는 〈법화경〉을 사경하며, 밤에는 닭 우는 새벽까지 주지스님인 계파 스님의 간절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깜박. 지친 계파 스님이 잠깐 조는 사이.

“주지와 대중은 들으라.”

“예.”

“내일 아침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화주승으로 삼아라!”

때는 조선 숙종조.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 중창 원력을 세운 대중들이 백일기도를 마치기 전날 밤, 대중들도 일제히 그 백발의 노승으로부터 이 같은 부촉을 받았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는 그들이 현실적으로 그 백발 노승을 보았는지, 아니면 꿈속에서 모두 함께 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 노승은 홀연히 나타났다가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파 스님이 꿈속에 보았던 그 백발 노승을 대중들도 그대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일을 어이할까?”

계파 스님은 대중들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너무 이상한 일이라 그 노승의 지침을 함부로 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의 의견은 각기 달랐습니다.

“어찌 근본도 알 수 없는 그런 노인의 말을 듣는단 말입니까?”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보았지 않습니까?”

계파 스님은 그 백발의 노승이 보통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승의 말을 듣는다고 우리가 해를 당할 일은 아닌 것 같소. 일단 그의 말대로 해봅시다.”

회향일인 이튿날 아침 큰방에 모인 대중은 긴장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려 노인이 시킨대로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었으나 한결같이 흰 손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계파 스님뿐. 스님은 스스로 공앙주 소임을 맡아 백일 간 부엌 일에만 충실했기에 아예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았습니다. 혹여라도 부정을 탈까봐서였지요. 그러나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주지스님의 손에는 밀가루 한 점 묻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걱정이 태산 같아 밤새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너무 걱정 말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청하라.”

간밤 꿈에 만났던 그 백발의 노승이 다시 나타나 일깨워 주었습니다.

새벽 예불 종소리가 끝나자 스님은 법복을 입고 산기슭 아랫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한 스님은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아! 내가 한낱 꿈속의 일을 갖고…….”

스님이 그렇게 허탈하게 웃으며 마지막 마을 모퉁이를 돌아설 때, 눈 앞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기쁨에 넘친 스님이 얼른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남루한 거지 노파의 모습에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간 밤 꿈속에 나타났던 백발 노승의 말을 믿기로 한 스님은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래진 거지 노파는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니 스님, 쇤네는…….”

그러나 스님은 그 자리에 꿇어앉아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습니다.

“소승의 소망은 불타 없어진 절을 다시 복구하는 일이옵니다. 하오니 절을 지어 주시옵소서.”

“아이구, 나같이 천한 늙은 여자가 스님에게 절을 받다니 말이나 되나. 안 되지, 안 됩니다.”

노파는 얼른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 말을…….”

그러나 노파는 총총히 멀어져 갔습니다.

스님은 노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합장을 하고는 다시 절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중들이 어두운 얼굴로 돌아온 스님께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

주지스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편, 주지스님께 황공한 예를 받은 노파는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다 늙은 것이 주지스님께 욕을 뵈인 셈이니 이젠 죽는 수밖에 없지. 난 죽어야 해.

아무데도 쓸데없는 이 하찮은 몸, 죽어 다음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루도록 부디 관세음보살님은 가피를 내리소서!”

노파는 곧바로 가까운 강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짚신을 바위 위에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러게, 아무 것도 모르는 노파에게 불사를 부탁하다니?”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목숨을 끊겠어.”

“사람의 탈을 쓰고는 그럴 수가 없지. 더구나 대중들에게 추앙받는 주지스님이…….”

계파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허무맹랑한 꿈을 믿다니……. 자업자득이로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눌러 앉아 대중들 얼굴을 볼 수 있나?”

그로부터 스님은 바랑을 짊어진 채 피신길에 올라 방랑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5~6년이 지난 후. 임금님이 사는 궁 안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는 공주를 큰길 옆에 다락을 지어 가두라는 왕명이 내려졌습니다.

“전하, 노여움을 푸시고 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듣기 싫소. 어서 공주를 다락에 가두고 명의를 불러 울음 병을 고치도록 하라!”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계파 스님은 호기심에 대궐 앞 공주가 울고 있는 다락 아래로 가 보았습니다. 그 때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울기만 하던 공주가 울음을 뚝 그친 것입니다.

“공주야!”

왕비는 방실방실 웃어대는 공주를 번쩍 안으며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아니, 공주가 손가락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웃사옵니다.”

“어허! 정말 그렇구나.”

임금님과 왕비는 주위를 훑어보았습니다.

“전하! 저기 저 스님을 가리키고 있사옵니다.”

“응, 스님을?”

모든 사람의 시선이 계파 스님에게 쏠렸습니다. 주위를 의식한 스님이 그만 자리를 떠나려 하자 공주는 또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봐라, 당장 저 스님을 모시도록 하라!”

임금님 앞으로 나온 스님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전하, 이 무슨 일입니까?”

“스님, 대체 스님은 누구십니까?”

오히려 묻는 것은 임금님이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누구이며, 또 왜 이렇게 떠돌아다니는지 사실대로 말하며 눈물지었습니다.

“저로하여 불쌍한 노파가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바로 그 때, 울음을 멈춘 공주가 달려와 스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스님!”

그리고는 태어날 때부터 펴지 않던 한 손을 스르르 펴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그만 손바닥엔 놀랍게도 ‘장육전’이란 석 자가 또렷이 씌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임금님은 지긋이 눈을 감았습니다. “내 일찍이 부처님의 영험을 알지 못하고 크고 작은 죄를 범하였으니, 스님은 과히 허물하지 마십시요.”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소승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 공주가 스님을 알아 보고 울지 않는 것은 필시 스님과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음을 뜻함이오. 짐은 이제야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스님을 도와 절을 복구할 터인즉 어서 불사 준비를 서두르시오.”

임금님은 ‘장육전’ 건립의 대원을 발하고 전각이 완성되자, ‘각황전’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왕이 깨달아 건립했다는 뜻입니다.

이승과 저승을 초월하는 불사의 의지, 이런 아름다운 전설이 우리의 7월을 채웠으면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원력(願力)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우봉규 작가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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