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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話 속으로> 70. 제주 스님 이야기(끝)
삽화=강병호

평생 마시던 술 끊고 독경 통해 노파 천도

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지옥 일대는 금색광명이 내리 쏟아져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선처에 수생하려 했는데, 갑자기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닥쳤습니다. 당연히 광명은 어느 새 사라지고 〈법화경〉 다섯째 권부터 일곱째 권까지 읽을 동안에도 술 냄새는 여전히 진동을 하였습니다.

12월은 다사다난한 연말이라 각종 회식이 많습니다. 그런데 회식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시는 술의 양이 세계 최고 수위라는 뉴스도 종종 듣습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신명 넘치는 민족이기 때문이겠지요. 술은 때로 고해(苦海)라는 세상살이를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의 인연을 더욱 부드럽게도 만들지만, 우리의 인연을 엉망으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음주의 서른여섯 가지 해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열반에서 멀어지며, 미치광이 짓이 자꾸 늘게 되고, 몸과 마음이 산란하고, 나쁜 짓과 함께 게으르게 되어, 죽고 나서는 큰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법화영험전〉에도 술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나옵니다.

명나라 북경 형부가에 축봉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이 절은 전단불상(檀佛像)에 공양을 올리던 절입니다. 신종제 말년에 제주라 하는 스님이 이 사찰의 주지로 있었는데, 마음씨가 진실하고, 부처님을 엄숙하게 받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단점은 단 하나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찰 신도 중에는 과일과 여러 곡식을 부처님께 정성껏 공양하는 한 노파가 있었습니다. 노파는 늘 부처님 전에 기도하였습니다.

“부처님을 경배하옵니다.”

“제가 죽게 되면 저를 좋은 곳은 아니더라도 지옥만은 면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 제주 스님은 옆에 앉아 항상 빙긋 웃었습니다.

“보살님같이 착하신 분이 어찌 지옥을 가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가난한 죄로 착한 일 한 번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님은 또 웃었습니다.

전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언제나 초하룻날이 되면 어김없이 절을 찾아와 성심껏 기도하는 노파가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지요. 스님과 노파는 그렇게 서로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했기에 오히려 누구도 스님께 금주를 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노파는 달랐습니다.

노파는 늘 술을 마시는 스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 스님은 곡차를 끊지 못하십니까?”

스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노보살님, 죄송합니다.”

“스님, 곡차를 끊으시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난 다른 건 다 끊어도 곡차는 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곡차를 끊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노파가 그렇게 말했지만 스님은 그 때마다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파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슬펐습니다. 자신에게 남들이 하지 못하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던 노파가 죽었으니, 스님은 또 술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스님은 노파를 생각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보살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소서!”

그리고 어렴풋 잠이 들었을 무렵.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나는 지옥에 있는 사자입니다. 스님이 알고 있는 노파가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하였지만, 오로지 자신만 지옥을 면해달라는 이기심으로 기도를 하였기에 지금 지옥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매월 초하룻날 이 절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과일을 가져다가 스님께 드린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인연을 생각하시어 그 노파를 위하여 부디 〈법화경〉 한 구절을 읽어 주어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저승사자가 홀연히 사라지자 잠에서 깬 스님은 곰곰이 생각을 하였습니다. 분명 그 노파가 틀림없었습니다. 스님은 백종제를 기다려서 그 노파의 위패를 놓았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법화경〉을 읽어 나갈 때 다섯째 권에 이르러서 날씨는 무덥고 목이 몹시도 말랐습니다.

“얘들아, 술을 가져오너라!”

“술을 가져오라니까!”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술을 가져오는 시자는 없었습니다. 스님은 할 수 없이 부엌으로 갔습니다. 이리저리 술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어쩐다. 난 술이 없으면 경을 읽을 수 없는데…….”

그런데 다행히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습니다. 정말 간절했습니다. 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을 타고 넘는 그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속가 사람에게 한 잔 술을 청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을 읽다보면 목이 마른데 가난한 우리 절엔 차가 없으니 이를 어이할꼬.”

스님은 일부러 입을 쩍쩍 다시며 말했습니다.

비로소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스님은 또 다시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스님, 차는 없지만 곡차는 있습니다.”

스님이 기다리던 바로 그 대답이었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차면 어떻고, 곡차면 어떻습니까?”

“곡차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차 중에 제일은 곡차지요.”

그러자 사람들이 마구 웃으며 한 사발의 술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단숨에 그 한 사발의 술을 들이켰습니다. 아주 시원했지요.

“경을 읽느라 목이 칼칼하던 차에 아주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달게 술을 들이키는 스님을 그냥 보낼 술꾼들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님을 아예 술자리에 모셨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스님을 한 잔으로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한 술꾼이 얼른 사발을 내밀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었던지라, 스님은 대뜸 또 한 사발의 술을 순식간에 마셔버렸습니다. 이제는 얼큰히 취한 붉은 얼굴. 그런데도 술꾼들은 다시 스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이 세상 어디 가도 두 잔의 술청은 없는 법. 딱 세 잔은 하셔야 합니다.”

“아참, 술의 법도가 그렇지요?”

불감청고소원이라고 했던가요? 스님은 냉큼 또 한 사발의 술을 목으로 넘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 전에 꿇어 앉아 일곱 권의 〈법화경〉을 몽땅 읽었습니다. 책장이 아주 술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밤 꿈에 저승사자가 다시 찾아와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지옥 일대는 금색광명이 내리 쏟아져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선처에 수생하려 했는데, 갑자기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닥쳤습니다. 당연히 광명은 어느 새 사라지고 〈법화경〉 다섯째 권부터 일곱째 권까지 읽을 동안에도 술 냄새는 여전히 진동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 노파는 힘을 얻지 못하여서 그대로 갇혀 있습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해서 그 즉시 일어나 다시 목욕재계하고 가사장삼을 입고 불전에 나아가 지성으로 참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다섯째 권에서 일곱째 권까지 정성을 다하여 다시 읽어 마치고는 그로부터 한 평생을 마치도록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 회식자리나 모임에 참석하여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매우 지키기 어려운 일입니다. 술을 마시되, 과음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다른 때와 달리 모두 특별한 소회가 없을 수 없는 한 해의 끝, 그리고 시작. 술이 정말 즐거운 대화의 묘약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수년 간 연재해오던 ‘동화, 법화 속으로’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성원해주셨던 불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느 곳에선가 찾아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작가/우봉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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