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삽화=강병호

연등 부처님은 전생의 무수한 겁 동안 범부의 몸으로 다섯 갈래[五道]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한 생이 다하면 다시 한 생을 받는 등, 나고 죽음이 한량없어서 마치 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베어서 산가지를 만들어 그이의 옛 몸을 헤아린다 하여도 셀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늘과 땅이 시작하여 끝나는 동안을 일겁이라 하거니와, 그이에게는 하늘과 땅이 바뀌면서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헤아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이는 모든 중생들이 세간의 탐욕으로 인해 애욕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파한 까닭에, 혼자 그 근원을 깨닫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깨우치려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서는 피나는 고행을 하면서도, 조금도 괴로움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마음을 비워 고요함을 즐기며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그이는 모든 중생을 사랑하며, 가난하고 불쌍한 이를 가엾이 여기고, 근심하고 슬퍼한 이를 크게 위로하며, 중생을 길러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제하였습니다. 여러 부처님과 독각승과 아라한 등을 받들어 섬겼으므로 쌓인 과보가 기억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이의 아버지는 제화위국(提和衛國), 등성치(燈盛治)라는 성왕(聖王)이었습니다. 그는 인자하여 부모에겐 효도하고, 마음은 어질고 의로웠습니다.

그는 태자가 탄생하자 이름을 ‘연등’이라고 지었는데,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상에서 비견할 이가 없었습니다. 성왕은 태자를 매우 총애하다가 임종에 이르러 나라를 태자에게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모든 게 무상함을 깨닫고 나라를 아우에게 물려주고 즉시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출가한 태자는 연등 부처님이 되시어, 위없는 높고 거룩한 덕의 광명을 성취하셨습니다.

그이는 밤낮 없이 비구대중 육십이만을 거느리고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시다가 백성들을 제도하고자 여러 대중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나라 안의 백관과 신하들은 모여서 대책을 의논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대중을 거느리고 돌아와 나라를 쳐서 빼앗으려고 한다.”

“우리가 미리 군사들을 일으켜 항거해야 한다. 나라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렇게 결정한 후 즉시 대군을 이끌고 부처님에게 향하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섯 가지 신통력으로 그 마음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을 유리(瑠湜)로 만들어 양쪽의 성 안이 서로 안팎에서 비치게 하시고, 다시 육십이만의 비구들을 부처님과 다름없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왕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금방 모든 의심이 풀렸습니다.

왕은 곧 부처님께 나아가서 공경히 머리 조아렸습니다.

“성품이 고루하고 둔해서 악한 뜻으로 부처님께 향하였나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잘못이라 용서하시옵고, 곧 정사로 돌아가시옵소서. 칠일 동안 정성껏 공양을 마련하여 지극히 받들어 맞이하겠사옵니다.”

부처님은 그의 뜻을 아시고 정사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전륜성왕을 받들어 맞이하는 법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신하가 대답하였습니다.

“전륜성왕을 맞이하는 법은 국토를 장엄하되 두루 사십리 길을 편편하게 다듬고 깃발을 세우고, 도리천과 같이 등을 켜서 뭇 이름 있는 향을 사르면서 공경히 길에 나아가 모시어야 합니다.”

왕은 그 말대로 칠일만에 준비를 마치고, 몸소 부처님을 마중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어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공양을 마련하고 잘 꾸민 광채를 눈으로 보느냐? 전생에 내가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공양하고 장엄한 것도 지금의 이런 모습과 같았느니라.”

이 때에 무구광(無垢光) 보살은 어리면서도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뜻이 크고 포부가 넓었습니다. 그는 산과 숲에 숨어 살면서 선정을 행하며 다니다가 사람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길을 평탄하게 다듬고 향을 사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입니까?”

행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오늘 연등 부처님께서 오시므로 공양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보살은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부처님을 어떻게 공양하면 됩니까?”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할 때는 꽃과 향과 비단 깃발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부처님께 공양할 것을 끝내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왕께서 꽃과 향을 공양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칠일이 되면 혼자만이 공양한답니다.”

이 말을 들은 보살은 마음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 때 마침 인근에 당도하신 부처님께서 보살의 마음을 알고 신통력으로, 광명을 내쏘아 꽃병을 유리로 변화시켜 안팎에서 서로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때 한 여인이 병에 꽃을 담아 가졌느니라.”

보살은 합장하며 기쁜 게송을 읊었습니다.

“은전이 무릇 오백전이 있어 다섯 송이의 꽃을 사기를 청합니다. 부처님께 받들어 올려 저의 본래 서원을 구하겠습니다.”

그러자 문득, 꽃을 담아 가진 그 여인이 게송으로 물었습니다.

“이 꽃의 값은 오륙전인데 오백전으로 사려 하십니까? 지금 어떠한 서원을 구하기에 은전의 보배를 아끼지 않으십니까?”

보살은 곧 대답하였습니다.

“제석왕을 구할 것도 아니요, 사천왕과 전륜성왕을 구할 것도 아니며, 다만 부처를 이루어 시방 삼세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함입니다.”

여인은 다시 말하였습니다.

“장하십니다. 서원을 빨리 이루소서. 원컨대 저는 후 세상에 태어나서 언제나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하소서.”

보살이 그 때 여인의 전생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백 생 동안 자신의 아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살은 이에 곧 허락하고 기뻐하면서 다섯 송이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코자 하였습니다.

이 때 여인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저는 연약한 여인이므로, 나아가 부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저의 몫으로 두 송이 꽃을 다시 맡기오니, 부처님께 올려 주소서.”

마침내 연등 부처님이 보살이 있는 곳에 이르셨는데, 국왕과 신하와 백성이며 장자와 거사의 권속들이 수천 수백 겹이었으므로, 보살은 나아가 꽃을 바치려고 하였지마는 나아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보살의 지극한 뜻을 아시고, 다시 신통력으로 땅을 질게 만들어 사람들을 양 쪽으로 갈라서게 하시니, 비로소 보살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간 다섯 송이 꽃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한 곳에 머물러서 큰 우산으로 변하여 칠십 리를 덮었으며, 두 송이 꽃은 부처님의 양 어깨 위에 머물러 있어서 그것은 흡사 뿌리에서 나무가 자란 것 같았습니다. 보살은 너무 기쁜 나머지 머리를 풀어 땅에 깔고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 밟으시옵소서!”

“어찌 밟을 수 있겠느냐?”

“오직 부처님만이 밟으실 수 있사옵니다!”

무구광 보살은 열반하기까지 연등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계율을 받들고 바른 법을 수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숨이 다해서는 도솔 천상에 올라가 하늘의 임금이 되었고, 위로부터 내려와서는 눈 어두운 이들을 빠짐없이 제도하는 전륜성왕 비행황제(飛行皇帝)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각각 서른여섯 번을 지상과 천상을 오고 가심을 되풀이 하면서, 사바세계 중생들을 교화하였고, 지금도 교화하고 계십니다. 삼천의 해와 달과, 만 이천의 하늘과 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태어난 그 곳, 카필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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