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아미타삼존탱화(阿彌陀三尊幁畵)는 1993년 11월 19일 옥련암에서 도난당 했다.조선 후기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로 220cm, 세로 190cm 크기다.아미타 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묘사되었으며, 아미타불이 서방 정토(西方淨土)에서 설법하는 장면이다.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金銅阿彌陀佛坐像,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은 1993년 7월 24일 극락보전에서 도난당했다.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물(腹藏物)을 통해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9월 8일 승려·문무관(文武官)·신도·노비 등 300여 명의 발원으로 조성된 불상이란게 밝혀진 바 있다.높이 70cm 폭 50cm 크기로 오른발을 위로 드러낸 길상좌(吉祥坐)를 하고 있다. 머리카락은 나발(螺髮, 소라껍데기 모양) 형태이고, 머리 중앙의 삼각형이 특징이다.
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감지은니·금니묘법연화경 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 중 일부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보물 제959-1-8호)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보물 제959-1-10호)은 1993년 12월 5일 경주 기림사 유물전시관에서 도난당했다.고려 말기(14C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사경(寫經)한 작품으로 가로 31.9cm, 세로 11cm 크기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 2(卷二)〉’는 총 7권 가운데 2
“이제 우리는 육체의 청결만큼 정신의 청결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 근본은 사랑과 연민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안락과 행복을 원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똑같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기심이 사라져갈 때 내안의 행복도 커져만 갑니다.”“내 고통은 내 스스로 없애야지 누구도 대신 없애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저 고통을 없애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몸소 걸어가셨고,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냥 모든 것은 ‘내가 창조했다.’며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장수마을은 오랫동안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질문했더니 ‘아니 무엇을 하다니? 지금 하는 일을 그대로 하지.’가 대답이었다. 그들은 현재 자기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행복 위한 인위적 고민 말아야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고기만 잡고 종일 한가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 경제학자가 어부에게 조언했다. ‘몇 시간만 더 고기를 잡
달라이라마께서 청중 사이를 지나 법좌에 오르는 동안 법회장은 고요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결코 달라이라마의 권위에 압도된 불편한 적막감이 아니었다. 모두들 미소 띤 얼굴로 합장을 한 채, 다소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老)수행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느라 경건한 침묵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법좌에 오른 존자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는 불교만 권하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내 종교가 최고니까 믿으라는 말은 잘못되었습니다.모든 사람의 본
소리꾼 지향희(30) 씨의 신명나는 가락에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시원하게 뽑아내는 구성진 소리는 서도민요 · 경기민요 · 남도민요 · 판소리 · 정가까지 넘나든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청중이 그녀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지난 4월 20일 창경궁 고궁음악회 ‘꽃길을 거닐다’에서 ‘사철가’를 부르고 있는 그녀를 만나 서른 인생을 들어봤다.발레
다람살라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눈은 떴지만 눈꺼풀이 천 근 같이 무겁다. 경주를 떠나던 날 아침, 뉴델리에 도착해 다람살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다음 날 아침, 그리고 다람살라에서 처음 맞이한 오늘 아침까지 3일 연속 일찍 일어났기 때문이다.게으름이 잔뜩 묻어나는 몸짓으로 호텔 커튼을 열어젖히자 노오란 아침 해가 발아래 펼쳐진 뭉게구름 위로 얼굴을 내민다. 다람살라의 9월은 비가 잦은 시기여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가늘고 약한 비가 내리는데, 그로 인해 해님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아침 일찍 해발 1,800미터 호
200여 초가 옹기종기풍류와 기개 600년 이어져 전남 순천시 낙안에 대한 기록은 1,500년 전 마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안읍성은 조선 초에 세워졌다. 백제 때는 ‘파지성(波知城)’이라 불렸고, 고려 태조 23년(940)부터 ‘낙안(樂安)’이라 불렸다. 읍성을 둘러싼 성곽은 조선 태조 6년(1397) 낙안 출신 김빈길 장군이 부민들과 함께 토성으로 쌓았다가, 세종 6년(1424) 석성으로 개축했다. 조선을 대표하는 계획도시라 할 수 있다.정유재란 때 성곽 일부와 해자(垓子) ·
인간은 행복을 추구해야할까? 아니면 행복은 생각하지 말고 그저 깨달음만을 열심히 추구해야 할까? 혹시 ‘행복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부처님한테 혼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불교적 시각에서 인간이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게 맞는지,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경전을 보면 행복에 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숫타니파타〉에는 ‘살아 있는 존재는 다 행복하라.’고 적혀 있다. 〈법구경〉에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을 원한다.’는 경구가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 있게 행복해야 하고, 행복을 원해도
해외여행 3,000만 시대다. 매년 3,000만 명 이상이 해외를 다녀온다는 말인데, 우리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나아졌다는 얘기고, ‘여행’이 그만큼 우리의 일상 깊숙히 들어왔다는 말일 것이다. 해외에 나가려면 주로 공항 내 체크인 카운터를 통해 출국수속을 진행해야 한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항공사 승무원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이번 호의 주인공, 김영주(25) 씨다.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제2 여객터미널도 개장해 여행객들이 보다 편리해졌
경주 손 씨, 여강 이 씨 500년 집성촌이언적 등 명현(名賢)의 향훈 오롯경주 양동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이후 35년 간 객지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적지 않은 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일흔이 된 지금도 어릴 때 추억은 생생하다. 어쩌면 고향 마을로 돌아온 후 양동전문해설사로 일하면서 옛 기억을 자주 떠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전통문화가 일상이던 어린 시절돌이켜보면 당시 또래 아이들과 밤낮없이 개구쟁이 짓을 많이 했다. 봄이면 앞산 성주봉에 올라 보릿고개에 허기진 배를 진
뉴델리에서 출발하는 다람살라행 비행기 역시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 한국에서 출발할 때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야했다. 뉴델리 공항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새치기 하는 사람들로 인한 작은 실랑이 속에서 수속을 마치고 나니 피곤이 더해졌다. 그렇게 상당히 먼 탑승게이트에 도착하고 나서야 분주했던 아침을 뒤로한 채 한 숨 돌릴 수 있었다.다람살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은 물론 티베트 및 아시아 여러 나라의 스님들도 많았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이 게이트에 모인 우리들은 모두 내일
지난 호 ‘차안과 피안을 잇는 다리’ 상편에서 호남지역에 남아있는 여수 흥국사 홍교, 순천 송광사 삼청교ㆍ우화각과 선암사 승선교, 곡성 태안사 능파각ㆍ능파교를 소개했다. 이번호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불국사(佛國寺) 경내에 있는 연화교(蓮華橋)ㆍ칠보교(七寶橋)와 청운교(靑雲橋)ㆍ백운교(白雲橋), 강원도 고성 건봉사(乾鳳寺) 능파교(凌波橋)와 고성 화암사(禾巖寺) 돌다리로 안내한다.대한민국 사람 누구다 다 아는 국내 명소는 몇 곳 되지 않는다. 그 중 첫 손에 꼽힐 만큼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경주
100세 시대가 되면서 돈이 없는 노후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되었다. 노후가 두렵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나온 우스갯소리가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이다. 어떤 유명한 생물학자 두 명이 ‘120살까지 인간이 살 수 있다.’와 ‘없다.’를 놓고 내기를 했다고 한다. 과연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0살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돈이 없는 상태에서 100세 시대는 두려움의 대상이다.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노후에 대한 재정계획이 없다. 많은 사람이 충분한 준비 없이 은퇴하게 된다. 부처님도 열심히 돈을 벌라고 하셨다. 노
춘다의 공양을 받다석가모니 부처님은 나이가 여든이 되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음을 스스로 느꼈다. 하지만 유행(遊行)을 멈추지 않은 채 끊임없이 법(法, 진리)을 전파했다. 그해 인도 전역에는 심한 흉년이 들었다.우기(雨期)가 시작되자, 부처님은 제자 아난만 데리고 죽림마을에 머물렀다. 몸은 이미 노쇠해질 대로 노쇠해졌다. 부처님은 무더위에 지쳐 크게 아팠고, 며칠 뒤에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중병이 들었다는 걸 안 부처님은 아난을 가까이 불렀다.“아난아, 내 나이 어느덧 여든이다. 나는 늙어 몸이 쇠하였다. 내 육신은 마치 낡은
‘백련결사’ 계승, 불교중흥ㆍ인류평화천 일간 ‘참회ㆍ관음주송’으로 기원 종교인들은 기도로 개인의 소원성취뿐만 아니라, 국민 화합과 국가 발전, 나아가 인류 평화를 기원한다. 기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것을 결사(結社)라고 부른다. 과거 불교계 고승들의 주도로 여러 차례 결사가 있었지만, 현재 결사를 행하는 사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천태종 부산 삼광사(주지 세운 스님)가 지난해 12월 신도들의 수행을 독려하고, 종단 발전과 불교 중흥, 국운융창과 불국토 건설을 발원하며 천일결사에 돌
알려진 바와 사뭇 다른,호연지기 가득한 하회 '안동과 하회마을'그 옛날 안동과 풍산들녘사실 내 고향은 안동에서 100리 쯤 떨어진 경북 영주다. 하지만 고등학교 3년을 안동에서 유학하였고, 10년이 지난 뒤에 대학생활을 안동에서 다시 시작하였다. 그 후 줄곧 안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하회마을 입구로 삶터를 옮긴 상태다. 그러고 보니 안동은 비록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삶 속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20년을 넘게 이곳에서 강의하고
지난해 8월 마지막 날. 경주의 이른 새벽 공기는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나선 내게 꽤나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한국시간으로 그날 밤쯤 인도에 도착하면 이 새벽의 상쾌함이 그리워질 거라는 동료의 말에 옷 걱정은 접어두었다. 경주에서 인천공항까지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워낙 일찍 일어난 탓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버스는 어느덧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짐을 부치고 인천 발 뉴델리 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었지만, 여전히 인도에 간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인도불교를 전공한 후, 그에 대한 짧은 지식으로 밥 먹고 살아가고 있지만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꼽히는 불교를 연구하는 대학은 세계 각국에 고루 퍼져 있다. 대다수의 불교도는 아시아에 분포돼 있지만 불교학에 대한 연구는 서구가 더 활발하다. 본 연재는 개괄적이나마 불교학 연구로 이름 높은 대학을 포함한 ‘세계의 불교대학’을 소개하며, 특징과 함께 연구성과와 방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대만(台灣)의 사립종합대학 중 한 곳인 불광대학(佛光大學)은 불광산사(佛光山寺)를 개산한 성운대사(星雲大師)에 의해 2000년도에 ‘불광인문사회학원(佛光人文社會學院)’이란 이름으로 개교했다. ‘의(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