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서로 의존한다는 게 空性의 핵심”

“이제 우리는 육체의 청결만큼 정신의 청결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 근본은 사랑과 연민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안락과 행복을 원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똑같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기심이 사라져갈 때 내안의 행복도 커져만 갑니다.”

“내 고통은 내 스스로 없애야지 누구도 대신 없애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저 고통을 없애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몸소 걸어가셨고,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냥 모든 것은 ‘내가 창조했다.’며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조차도 당신이 만들었으니 당신이 책임져야 하니까, 모든 책임을 각자 개인에게 돌리셨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부처님께서는 아주 ‘스마트’ 하셨습니다.”

이렇게 존자께서는 수행승으로 살아온 당신의 삶으로부터 나온 사랑과 연민의 가치와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했다. 말씀 중에 잊지 않고 가벼운 농담을 던지자 다시 한 번 경내는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법회 직전 태국 수도원공동체 스님들이 달라이라마와 법담을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이 법회는 이렇게 이야기로만 구성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묵직한 주제도 정해져 있었고, 그를 위한 교재도 마련돼 있었다. 그래서 내 손에는 이 법회의 교재인 한글판 〈붓다팔리타 주석〉이 놓여있었고, 옆자리의 싱가포르에서 온 참석자는 영어판으로, 그 옆자리 누군가는 한문 번역본으로, 그렇게 아시아 각지의 참석자 모두 자국의 언어로 번역된 교재를 준비해왔다.

그런 이유로 법회 참석 전 법회의 교재에 대해 들었을 때 과연 이 어려운 교재가, 아니 일반 불자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 경전이 어떻게 존자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되어질까 몹시 기대되었다.

〈붓다팔리타 주석〉은 붓다팔리타(Buddhapālita, 470?~540?)가 쓴 주석서(해설서)인데, 특히 티베트 불교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저자 붓다팔리타는 인도인으로 그 이름의 의미를 따라 한자문화권에서는 ‘불호(佛護)’라고 번역한다. 그래서 그가 쓴 주석서는 흔히 〈불호주(佛護註)〉라고도 불린다. 저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붓다팔리타 주석〉은 ‘해설’이 필요할 만큼 중요한 어떤 문헌에 대한 주석서인데, 해설의 대상이 된 책이 바로 용수보살(龍樹菩薩, 150?~250?)의 저서 〈중론(中論)〉이다.

〈중론〉은 대승불교 철학의 핵심인 공(空)사상을 체계화한 철학서로 불교사상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저자인 용수보살은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중요한 사상가인데, 불자라면 ‘용수보살약찬게(龍樹菩薩略纂偈)’에서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용수’로 번역된 그의 인도 이름은 ‘나가르주나(Nāgarjuna)’이고, 남인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뛰어났던 그는 브라만들이 익혔던 인도 고대 사상은 물론 대소승의 모든 불교경전을 섭렵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대승의 공성(空性)을 철학적으로 논증한 〈중론〉이다.

우리나라는 불교 중에서도 대승불교 문화권에 속하기에 불교를 이야기할 때면 으레 ‘공(空)’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에 대해 친하게 지내는 어느 스님이 농담조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법회 때 가끔 신도님들께 ‘공’이 뭐냐고 물어보면 되돌아오는 답변이 뜬구름 잡기식이란다. “공이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공은 공한 것도 아니요, 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공을 말로 하면 이미 공이 아니다.”

결론은 스님도, 신도들도, 제3자가 들어도 알기 힘든 말들의 나열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에게 불교의 교리란, 특히 대승불교 사상을 대표한다는 공사상 역시 불교를 종교로 가진 이들이나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의 이미지로만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용수보살은 〈중론〉에서 공성을 구체적으로 붓다의 연기법(緣起法)에 바탕 하여 생겨남과 멸함, 영원과 순간, 같음과 다름, 가는 것과 오는 것의 8가지 양극단을 벗어난 중도(中道)로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중도에 관한 사상이라는 의미에서 ‘중관(中觀) 사상’이라 불렀고, 그의 사상을 따르는 학파를 중관학파라 했다. 당연히 중관학파는 용수보살을 학파의 개조(開祖)로 받들었다. 하지만 용수보살 스스로는 중관학파의 개조라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는 약 6세기 경 인도불교 사상계 내에서 서로 다른 학파 간 대항의식이 커져갈 때 후대 불교사상가들이 규정한 것이다.

물론 후대의 많은 대승불교 철학이 〈중론〉의 공사상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인도의 중관학파뿐만 아니라 티베트·중국 등의 많은 대승불교의 학파 및 종파에서 그를 조사(祖師)로 추앙했고, ‘보살’의 칭호까지 부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사적 흔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충북 단양에 위치한 대한불교천태종 총본산 구인사(救仁寺)에 가면 천태종 역대조사전(歷代祖師殿)이 있다. 천태종의 개창조와 그 법맥을 이어온 고승들을 모셔놓은 전각이다. 천태사상은 중국 지의 대사(538~597)로부터 비롯되어 고려시대 의천 대사(1055~1101)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이처럼 천태사상은 화엄사상과 더불어 중국불교의 양대 사상인데 그 뿌리를 인도의 용수보살에 두고 있다. 그래서 구인사 역대조사전에 가보면 가장 중앙에 인도의 용수보살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중국의 천태지의 대사와 우리나라의 의천 대각국사가 모셔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용수보살의 〈중론〉이 대승불교 사상에 끼친 영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후대의 여러 불교 논사들에 의해 〈중론〉의 주석서가 편찬되게 되었다.

티베트 스님들과 전 세계에서 찾아온 6,000명의 불자들이 법회에 참석해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경청했다.

이 법회의 교재인 〈붓다팔리타 주석〉은 용수보살보다 약 3세기 후대의 위대한 중관학파 사상가였던 붓다팔리타가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용수보살의 〈중론〉을 새롭게 조명한 주석서인 셈이다.

존자께서는 공성을 깨닫기 위해 수행할 때 용수보살의 〈중론〉과 이에 대한 〈붓다팔리타 주석〉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3,000~4,000년 전부터 이미 인도인들이 행했던 내면의 발견을 위해 공부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피를 내려줄 수 없습니다. 사랑과 연민의 자비를 행하고,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공성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공부를 통해 얻기 바랍니다.”

존자께서는 용수보살이, 붓다팔리타가, 지의 대사가, 그리고 의천 대사가 가르쳤던 것처럼 사랑과 연민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음에 대한 이해를 공성의 핵심으로 제시하며 법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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