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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과 피안을 잇는 다리(下)세상과 세상을 잇는 다리2
  • 글 · 사진 이강식 기자
  • 승인 2019.03.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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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창건된 경주 불국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대표적인 불교사원이다.불국사 경내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청운교 · 백운교, 왼쪽으로는 연화교 · 칠보교가 있다.

지난 호 ‘차안과 피안을 잇는 다리’ 상편에서 호남지역에 남아있는 여수 흥국사 홍교, 순천 송광사 삼청교ㆍ우화각과 선암사 승선교, 곡성 태안사 능파각ㆍ능파교를 소개했다. 이번호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불국사(佛國寺) 경내에 있는 연화교(蓮華橋)ㆍ칠보교(七寶橋)와 청운교(靑雲橋)ㆍ백운교(白雲橋), 강원도 고성 건봉사(乾鳳寺) 능파교(凌波橋)와 고성 화암사(禾巖寺) 돌다리로 안내한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다 다 아는 국내 명소는 몇 곳 되지 않는다. 그 중 첫 손에 꼽힐 만큼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경주 불국사다. 불국사 창건연대는 고려시대 일연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와 불국사 중수기록인 ‘신라동국토함산화엄종불국사사적(新羅東國吐含山華嚴宗佛國寺事蹟, 이하 불국사 사적)’, 조선 영조 때 동은 스님이 불국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 기록이 각기 다르다. <불국사고금역대기>는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라고도 부른다.

시기는 달라도 천 년을 훌쩍 넘긴 역사를 가진 고찰임은 분명하다. 불국사는 과거에는 신혼부부들의 여행지로 각광을 받았고, 현재도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천 년 고찰이다.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런 면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사찰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 청운교 · 백운교에 이어 자하문을 지나면 불국사의 본전인 대웅전이 나온다.

그러나 불국사는 설명이 아주 많이 필요한 사찰이다. 역사가 깊고 남아있는 문화유산이 많으며, 화엄사상을 구현해놓은 도량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곳이 이번에 소개하는 국보 제22호 연화교 · 칠보교, 국보 제23호 청운교 · 백운교다. 불국사 경내 여타의 전각과 달리 출입이 제한돼 있고, 꼼꼼히 들여다 볼 수 없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매표소와 천왕문을 지나 직진하면 드넓은 불국사 경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성벽 같은 느낌도 든다. 왼쪽에는 연화교 · 칠보교와 안양문(安養門), 가운데에는 범영루(泛影樓), 오른쪽에는 청운교 · 백운교와 자하문(紫霞門)이 있다. 오래 묵은 덩치 큰 나무들이 전각과 다리의 시야를 조금 가리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야 안내판과 다리를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을 보지 않고 다리를 보는 이들은 분명 ‘계단’으로 생각할 것이다. 일반적인 다리와는 달리 계단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연화교 · 칠보교 측면. 이 다리와 안양문을 지나면 아미타불이 머무는 극락전이 있다.

아미타부처님과 보살님 다니는 연화교ㆍ칠보교

연화교와 칠보교에 관한 문헌으로는 ‘불국사 사적’이 있다. ‘불국사 사적’에는 ‘연화칠보양교(蓮花七寶兩橋) 위극락도사아미타불보살승항지계(爲極樂導師阿彌陀佛菩薩升降之階)’라고 기록돼 있는데, ‘연화교와 칠보교 두 다리는 극락도사인 아미타불과 보살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하였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연화교와 칠보교를 오르면 극락정토에 도달한다는 종교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연화’와 ‘칠보’는 아미타불이 머물고 있는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연화와 칠보로 장식되어 있다.’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등 경전 내용에서 딴 표현이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잇는 부분에는 완만한 곡선을 지닌 무지개다리가 있다.

<불설아미타경>에는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극락세계에는 … 중략 … 네 곳의 계단은 금 · 은 · 유리(琉璃) · 파려(玻璃)를 섞어 만들었으며, 또 연못 위에 있는 누각에는 역시 금 · 은 · 유리 · 파려 · 자거(硨磲) · 붉은 진주[赤珠] · 마노(瑪瑙)로 장엄하게 꾸몄으며, 연못 한가운데에는 수레바퀴처럼 생긴 큰 연꽃이 피었는데 …….”라며 극락세계의 모습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연화교와 칠보교를 지나면 ‘안양문(安養門)’이 있다. ‘안양’은 극락세계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이 안양문을 지나면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진 극락전, 즉 극락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 문화재 보호 명분으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다닐 수 없다. 그래도 위쪽의 안양문 난간에서 다리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연화교 · 칠보교는 반대편의 청운교 · 백운교와 구조나 형태는 유사하지만 규모는 작다. 안양문 아래에 위치한 다리는 위와 아래 2단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아래쪽이 연화교, 위쪽이 칠보교다. 연화교는 좌우로 나뉘어져 있으며, 디딤돌은 총 10개다. 각 디딤돌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는데,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맞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닌 탓에 조각이 희미해졌다.

칠보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총 8개의 디딤돌로 이뤄져 있다. 연화교와 같이 좌우로 나누어져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8세기인 751년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잇는 부분은 완만한 곡선을 지닌 무지개다리[虹霓]로 돼 있다.

두 다리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데, 1916년 일본인들이 해체 · 수리하면서 일부 변형됐다고 한다. 돌난간은 1973년 복원공사 때 설치한 것이다. 청운교 · 백운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소박한 멋이 느껴지는 다리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잇는 부분의 무지개다리. 홍예틀이 2중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제불보살 오르내리는 불국사 청운교ㆍ백운교

국보 제23호 청운교 · 백운교는 불국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로, 연화교 · 칠보교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다리들에 대한 기록은 ‘불국사 사적’과 <불국사고금창기> 등에 나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잇는 부분의 무지개다리. 홍예틀이 2중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불국사 사적’에 ‘… 우설청운백운지양교(又設靑雲白雲之兩橋) 위제불보살유리지계위(爲諸佛菩薩遊履之階位)….’라는 구절이 있는데 ‘또 청운교와 백운교 두 다리를 가설하여 제불보살이 노니시며 밟는 계단으로 하고…’라는 의미다.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청나라 강희(康熙) 25년(1686)에 경눌(敬訥), 설언(雪彦), 유정(裕淨), 추임(秋任) 등 4명의 화주로 청운교와 백운교를 중수했다고 한다.

불보살이 다니는 다리인 청운교 · 백운교.

다리가 건립된 이후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일제강점기인 1918~1925년 사이 불국사를 보수할 때 기울어지고 흐트러진 석축과 계단을 정비하면서 작성했던 도면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1973년 불국사를 복원정비하면서 청운교와 백운교의 난간도 복원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목조건축 기법을 본떠 쌓은 석축이 받치고 있다. 위쪽이 청운교, 아래쪽이 백운교다. 청운교는 디딤돌이 16개, 백운교는 디딤돌이 18개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잇는 부분의 무지개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 홍예의 틀이 위 · 아래 2중으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디딤돌에 장식은 없지만 연화교 · 칠보교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한 모습이다.

백운교와 청운교를 오르면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인 자하문이 있고, 자하문을 통과하면 불국정토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불국사의 본전(本殿)인 대웅전과 다보탑, 석가탑이 있다.

그래서 청운교와 백운교는 사바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상징적인 장치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다리,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넘어가는 다리, 그것이 청운교와 백운교다. 청운교(靑雲橋)는 푸른 청년의 모습을,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다리는 개울이나 강 또는 계곡을 건너기 위해 설치한다. 청운교 · 백운교 아래에도 구품연지(九品蓮池)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연못에 비쳐진 불국사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록 개울도 없고 연못도 없지만, 연화교 · 칠보교, 청운교 · 백운교는 중생세계와 극락정토세계를 이어주는 장엄하고 웅장한 그리고 매우 품격높은 상징적인 다리다.

고성 건봉사 능파교, 대웅전ㆍ극락전 영역 연결다리

신라시대에 창건된 강원도 고성 금강산 자락의 천 년 고찰 건봉사는 6.25 전쟁 당시 일주문을 제외하고 잿더미가 됐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양성한 호국사찰이었고, 염불만일회를 결성해 불자들의 신행을 독려하던 고찰이었다. 조선 왕실의 원당이기도 했던 건봉사에도 이름처럼 아름다운 옛 돌다리가 남아 있다.

건봉사 일주문을 지나면 복원 중인 건봉사 경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길 오른쪽에는 계곡이 있고, 계곡 위쪽으로 아치형의 다리가 보인다. 보물 제1336호 건봉사 능파교로, 대웅전 영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다.

능파교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사찰 경내 불이문 옆에 있는 1745년(조선 숙종 34년)에 건립한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기록돼 있다. ‘능파교신창기비’에 따르면 능파교는 1704년(숙종 30년)~1707년(숙종 33년) 사이에 처음 축조됐다. 폭 3m, 길이 14.3m 규모다.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며, 홍예의 하부 지름은 7.8m, 높이는 기단석의 하단에서부터 4.5m인데,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다리의 중심인 홍예는 다리 양쪽 바닥부분의 두꺼운 2단의 지대석 위에 올린 홍예석 29개로 이루어져 있다.

고성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영역(오른쪽)과 극락전 영역을 연결하는 다리다.

능파교는 축조된 이후 영조 21년(1745)에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붕괴됐고, 4년 뒤인 영조 25년(1749)에 중수했다. 하지만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다리의 석부재를 대웅전 돌계단과 산영루(山映樓)를 중수할 때 쓰기도 했다.

2003년 능파교의 홍예석과 접하는 호안석 중 변형된 부분을 해체해 원형을 찾아 보수하던 중 훼손돼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2005년 10월 복원했다. 그래서인지 언뜻 보면 근래에 건립한 다리처럼 보인다. 능파교의 원형을 제대로 보려면 다리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가까이에서 홍예 안쪽을 들여다보면 오래된 돌의 모습이 드러난다. 정성껏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장인의 멋스러운 솜씨가 느껴진다.

고성 화암사 석교 외나무다리 형태의 옛다리

건봉사와 함께 고성 지역의 명찰인 화암사는 신라시대 진표 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6.25 전쟁 당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오래전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돌다리는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전해오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새로 놓인 다리 ‘세심교(洗心橋)’를 건너면 전각들이 있는 화암사 경내로 진입하게 된다. 세심교 중간에서 왼쪽 아래를 보면 외나무다리와 흡사한 크고 긴 장대석 2개가 눈에 띈다. 장대석을 받치고 있는 판석도 보인다.

고성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영역(오른쪽)과 극락전 영역을 연결하는 다리다.

세심교가 생기기 전 계곡을 건너 사찰을 오가던 돌다리다. 이 다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다리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전하지 않는다. 사찰 관계자 등을 수소문했지만 “옛날부터 있던 다리라는 것 외에는 전하는 게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면 다리를 잘 볼 수 있다. 길이가 4m나 되는 작지 않은 규모의 다리였다. 흐르는 계곡물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해 보였다. 장대석 3개가 맞닿은 다리의 가운데 부분과 한쪽 끝에는 각각 판석 3개를 쌓아 높이를 높였다.

고성 화암사 돌다리는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심교가 놓이기 전까지 사찰을 오가던 옛 다리로 추정한다.

어떤 이들은 이 다리가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쯤에 건립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그저 꽤 오래된 다리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2월 중순 경 찾아간 화암사는 겨울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잔설이 다리 부근에 쌓여 있었고, 계곡의 물은 거의 없었다. 새 다리가 놓이기 이전, 사람들은 이 다리를 건너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소구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때론 손 때 묻은 오랜 인연의 사람과 물건이 편해서 더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옛 것을 ‘오래돼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그 물건이 없어지면 다시는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찰의 옛 돌다리도 그렇다. 문명이 발달해 교통도 편리해지고 길도 좋아졌지만, 옛 다리가 주는 고즈넉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현재 남아있는 옛 다리들을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도 불교인의 사명이다.

사찰의 다리는 사람이 지나고, 차가 지나는 일반적인 개념의 다리가 아니다. 사바세계인 차안에서 부처세계인 피안으로 가는 길, 숭고한 구도의 길이다.

글 · 사진 이강식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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