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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의 알면 도움되는 노후준비3_자식과 행복의 관계부모 봉양 전제 없는 자식 경제 지원은 위험
<삽화=박구원>

인간은 행복을 추구해야할까? 아니면 행복은 생각하지 말고 그저 깨달음만을 열심히 추구해야 할까? 혹시 ‘행복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부처님한테 혼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불교적 시각에서 인간이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게 맞는지,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경전을 보면 행복에 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숫타니파타〉에는 ‘살아 있는 존재는 다 행복하라.’고 적혀 있다. 〈법구경〉에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을 원한다.’는 경구가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 있게 행복해야 하고, 행복을 원해도 문제가 없으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처님조차 행복하라고 하셨으니 당당하게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자.

자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심리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병든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의 심리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순간 행복에 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늘어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행복에 관한 긍정심리학 연구결과가 많이 축적되었다. 행복도와 여러 가지 요인에 대한 긍정심리학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예를 들어 날씨가 좋으면 더 행복하기에 햇빛이 부족한 지역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우울하다는 게 이해가 된다. 건강해도 행복도가 올라가고, 좋은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배우자와 좋은 친구 역시 행복의 요인이다.

언젠가 ‘자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하는 주제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아주 흥미로운 긍정심리학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약간 의아했지만 나중에는 ‘아~’하며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은 어렸을 때 온갖 귀여운 짓으로 부모와 조부모를 즐겁게 해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의 만족도가 손주 때문에 쑥쑥 올라간다. 남에게 손주 사진을 보여주고 자랑하려면, 돈을 주고 자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주일 내내 손주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도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부모의 속을 썩인다. 그래서 우리말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있다. 과거에는 사춘기 때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극심했는데, 요즘은 학원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시작된다. 부모자식 간의 갈등은 어느 정도 부모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찌되었건 문제는 아이가 크면서 부모에게 불행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주었던 즐거움을 크면서 모두 빼앗아가는 셈이다. 자식 때문에 속 썩여본 사람이 한둘인가? 그러니 자식은 행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또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젊은이가 쉽게 독립하기 어려운 사회다. 예를 들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은 아파트 가격이 너무 높다. 젊은이가 돈을 벌어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계획은 비현실적이다. 요즘은 ‘명문대학 출신에 좋은 직장을 다니는 신랑감보다 부모가 재산이 많은 신랑감이 최고’라고 한다.

어느 날, 친구가 혼기를 놓친 자기 딸의 혼사를 걱정하며 좋은 신랑감을 소개해달란다. 친구는 자기 딸을 부탁하면서 솔직하게 딸의 문제점에 대해 한탄했다. 집이 없는 신랑감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자신은 월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집도 마련하고 문제없이 살았다는 거다. 필자는 친구에게 ‘우리 세대와 우리 자식 세대는 처한 환경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에는 부동산이 쑥쑥 올라가는 시대였고, 아파트 하나 분양 받는 것은 아주 쉬웠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집 마련이 정말 힘든 세상이 되었고, 집이 없는 삶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도 알고 나도 아는 말이지만 새삼스럽게 변해버린 세상을 한탄하는 넋두리였다.

부모자식 경제관계는 쌍방향적

미국에 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 자식은 빠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늦어도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부모로부터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결혼한 아들이 저축을 못하고 전세금이 오를 때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답답했던 한 부모는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놓고 한 달 지출을 하나하나 따졌다고 한다. 아들과 며느리의 설명을 들은 부모는 ‘도저히 저축하며 서울에서 살기 어렵구나.’하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식이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다보니 대학 졸업 후에도, 결혼 후에도 부모가 자식을 끊임없이 돌보아야 한다. ‘평생 에이에스(A/S)’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요즘 경제적 여유가 충분치 않았던 부모가 자식을 돕다가 노후빈곤에 빠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퇴직금을 모두 자식에게 쓰고 자식에게 부양도 받지 못하는 비극적 사례도 심심찮다. 부모가 가진 유일한 재산인 집을 팔지 않으면 자식이 운영하는 가게가 넘어가게 생겼다는 말에 부부가 이혼을 했다는 집도 있다. 남편은 집을 팔지 않겠다고 하고, 아내는 팔자고 하다가 부부 사이가 악화된 것이다. 결국 아내가 자식을 돕겠다며 이혼하고 집의 절반을 자식의 사업자금으로 주었다고 한다. 결혼자금이 부족해서 부모가 사는 집을 팔거나 집을 줄여가는 상황도 흔한 사례이다.

〈중아함경〉에는 “부모가 자식을 잘 보살필 때 자식에게 빚을 지지 않게 하며, 가진 재물을 즐거이 모두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구절을 보면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 A/S를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경전에는 “혹은 부모나 나이 많은 이에게, 제때에 받들어 섬기지 않고, 재물이 있으면서 주지 않는 것, 그것은 곧 잘못된 문[負門]에 들어섬이다.”라고 설하며 처자식보다 부모에게 먼저 지출해야 한다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 간의 경제관계는 부모가 자식에게만 주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쌍방향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놀란 점 중의 하나는 불교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경제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인 경제관계라는 점이다. 경전에서는 재물과 이익을 받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식은 부모를 공양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경제적으로 최대한 도와주어야 한다. 다만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풍토인데 부모가 자비의 정신으로 일방적인 희생만 할 수는 없다. 쌍방향적인 부모자식 간의 경제관계가 불교가 보는 바람직한 경제관계다.

윤성식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와 미국 오하이오대 졸업 후 일리노이대에서 석사, UC버클리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또 동국대에서 불교학 석  ·  박사를 받았다. 2004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 미국 텍사스대학(오스틴) 경영대학원 교수를 맡은 바 있다. 저서로 〈부처님의 부자 수업〉·〈예측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등 다수가 있다.

윤성식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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