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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상·김영태 〈한국불교사〉

광복 후 한국불교 연구에 초석
 

소산 우정상 선생.

세상에 나오게 된 인연

세상에 나오는 모든 결과물에는 인연이 있다. 40년 가까이 불교학을 연구해보니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 역시 그 인연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현대 한국불교사 연구의 초석이 된 이 책의 발간 역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인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불교학을 전공하던 대학원 석· 박사 과정에서 조선시대를 배울 때 우정상 선생의 유고집인 〈조선전기불교사상연구〉를 교재로 썼다. 강의를 담당한 김영태 선생은 우정상 선생에 대한 인연관계를 이야기 하면서 50세의 이른 나이에 타계하여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소회하였다.

우정상(禹貞相) 선생과 김영태(金煐泰) 선생은 연령적으로 16년 정도가 차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선후배로 돈독한 사이였던 것은 우정상 선생의 학업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서 사교과를 수료하는 동시에 통도중학교를 졸업한 우 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후 1941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임제종 종립대학인 하나조노(花園)대학에서 선학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 1946년 혜화전문이 국내 최초의 동국대학으로 승격하자 불교학과에 다시 입학한 후 1950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1953년에 대학원에 진학 1956년에 마쳤고 이 무렵 대학을 다닌 김영태 선생과는 선후배로 지내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불교학 연구자의 수는 지금보다도 적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분야 전공자를 제외하면 한국불교사 전공자의 수는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나이 차이를 넘어 한국불교사 전공자로서 서로를 존경하고 격려하던 두 학자의 꿈은 한국불교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우정상 선생이 동국대에서 불교학 연구의 저변을 넓히고, 김영태 선생이 마산대학에서 동국대로 옮겨오면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실에서 만나 한국불교사 전체를 논의하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그런 논의의 결과 전체 구성과 체제는 우정상 선생이 기획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집필을 맡았다. 김영태 선생은 삼국 및 신라시대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발간 계획은 우정상 선생의 타계로 보류되었다. 영결식장에서 김영태 선생은 타계 1주년에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다짐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3주기가 되어서야 나오게 되었다. 집필 과정도 어려움이 많았다. 우정상 선생의 타계로 처음 계획처럼 체계적인 집필을 할 수 없게 되자 책의 체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년간 대학에서 강의한 노트를 중심으로 엮다보니 전문 연구서가 아닌 소략한 내용의 개설서가 되었다. 이런 인연을 거쳐 두 사람을 공동저자로 하여 1969년 진수당(進修堂)에서 발간된 〈한국불교사〉는 한국불교 연구의 초석이 된 것이다.

김영태 선생. 〈사진=법보신문〉

최초가 갖는 상징성

어느 분야이던지 선구자는 힘들고 외롭다. 그런 까닭에 오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에 드러낸 최초에 대한 대중들의 찬사는 매우 크다. 누군가 앞에서 지남(指南)이 되어준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처음 개척할 때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앞에서 처음 하는 일은 실수와 오류도 많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바탕으로 뒤에 사람은 누락된 것을 찾아서 보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다.

운전을 처음 배우고 밤에 주행할 때였다. 80년대 후반 지방 국도는 가로등이 없는 곳이 많았다. 초심자인 까닭에 심장이 벌렁거리고 어두운 공간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당황하였다. 그러자 옆에 앉아 지켜보던 노련한 운전자가 비법을 알려주었다. 가로등이 밝지 않은 국도에서 운전할 때 앞서가려 하지 말고 다른 차량을 따라가면 수월하다는 조언이었다. 맨 앞에 가는 차량은 전방은 물론 좌우를 살펴야 하는 극도의 주의력이 필요하지만, 뒤따르는 차량은 앞의 차량이 지나간 길을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행연구가 많은 분야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처음 개척하는 분야보다 수월하다. 앞선 연구를 읽고 고민하다보면 하지 않은 분야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개척하는 분야는 무엇을 읽고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많은 고민과 연습이 필요하다.

우정상, 김영태 공저의 〈한국불교사〉는 광복 후 한국불교의 역사를 다룬 개설서의 효시이다. 이 책에 앞서 한국불교 역사를 다룬 책이 있었다. 1876년 개항이후 근대적 연구경향이 반영되어 불교계에서 1917년 권상노의 〈조선불교약사〉와 1918년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가 출판되었다.

모두 1910년대 출간된 한국불교 관련 저술이지만 다음과 같은 부족함이 있다. 먼저 권상로는 불교가 번성했던 인도, 중국, 일본 등 모두 불교사가 있는데 유독 우리의 불교사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간략하게 약사를 저술한 까닭에 내용이 소략하다. 그는 이후 불교사 연구를 진행하여 1930년대 〈신찬조선불교사〉와 1939년 〈조선불교사개설〉을 출판하였지만 근대 집필된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는 한국불교사 전체를 전개과정에 따라 집필하면서 고승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났으나 한국불교사의 중요 사건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런 과정을 지나 광복 후 한국의 불교역사를 공부한 세대에 의해 쓰인 불교사로는 〈한국불교사〉가 처음이다. 그 뒤 김영태 선생이 1986년 〈한국불교사개설〉을 발간하였으니 17년 동안 한국불교사의 지남이 된 명저이다.

시대적 의의

현존하는 〈한국불교사〉를 보면 표지의 디자인과 종이 질 등 모든 것이 어설프지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불교사 책으로는 유일하였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발간된 책의 의미로 볼 때 그 시대적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두 저자를 지도한 조명기 선생은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오늘의 한국불교계에는 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불타의 진정신(眞精神)을 다시금 이 땅에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할 일이 너무도 많고 벅차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문제는 불교학의 부흥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불교를 정확하게 연구하여 그 역사적 진면목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내외의 학자가 한국불교의 제문제(諸問題)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연구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불교사의 전반적인 것을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일관시켜 놓은 완벽한 사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때에 김영태 교수가 고 우정상 교수의 유고 일부를 정리하고 한국불교사 개설을 성책하여 출간하게 된 것은 학계의 기쁨이며 한국불교의 내일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런 평가 외에도 〈한국불교사〉는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먼저 전해지는 사실을 해당 문헌을 찾아 하나하나 대조해서 고증의 정확성을 기한 점이다. 역사서 기술의 기본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다.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 후 그것이 갖는 시대적 의의를 더하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불교사 연구의 모범이 된다.

저자는 찾고 대조한 사실을 정리하여 연표로 작성하였다. 이 연표는 요즘 작성된 연표에 비하면 매우 소략하다. 그렇지만 이때까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연표가 정리된 적이 없었던 때에 처음 시도되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의미를 살펴볼 때 〈한국불교사〉는 광복 후 불교학계의 연구토대가 매우 미흡할 때 두 학자의 노력에 의해 한국불교의 정리와 함께 향후 연구방향이 제시된 최초의 개설서임을 알 수 있다.

김경집

대한불교 진각종 부설 진각대학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중앙승가대, 동국대 강사, 위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 한국불교학회, 불교학연구회 이사, 보조사상연구원 연구위원이다. 저서로 〈한국 근대불교사〉 외 10여 권이 있으며, 근현대 불교와 관련하여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김경집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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